# 150
화산천검 6권(25화)
10장 호법들과의 혈투(3)
터엉!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유혁 사형의 검과 장일 사형의 검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고루시수 망영에게 빠르게 날아들었다.
따당!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든 기가 서린 쾌검도 금환봉 앞에선 통하지 않았다.
금빛 서기가 기를 분산시키자 쾌검은 그저 두 사형의 근력만의 힘으로 날아드는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으로 변했다.
“이제 제대로 놀아 보자꾸나.”
파팡! 따다닥! 쾅! 콰아앙!
“크윽……!”
“컥!”
빠른 속도의 공방전.
기가 분산되어 중검은 통하지 않으니 통하는 것은 쾌검과 환검뿐.
하지만 제대로 싸움에 집중한 고루시수 망영은 실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힘들었다.
조금만 틈이 보이면 순식간에 파고드는 금환봉.
게다가 쾌검과 환검보다는 차라리 중검에 가까운 두 사형으로서는 더욱더 힘든 일이었다.
두 사형으로도 힘든 마의 병기의 공능.
‘조금만 더…….’
아직 힘들다.
뒤쪽에서 어째선지 얼굴에 주름이 크게 잡히도록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정체모를 호법도 문제거니와 회복도 얼마 되지 않았다.
‘중검으로 시간을 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쾌검과 환검이 주가 되다 보니까 초고속 공방전이 되어 버렸기에 순식간에 끝나 버릴 듯한 싸움.
금환봉의 공능만 없었더라면 편히 운기를 끝내고 힘을 회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앗!”
“합!”
낭랑한 기합 소리.
이어서 낙화검법과 조화검이 커다란 힘을 싣고 날아들었다.
“미련하다, 미련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이나 경험했는데도 계속해서 덤벼드느냐? 클클클, 절망에 빠져 상황 판단도 못 하는 것이냐?”
카카칵! 카앙! 파팍!
“겨우 이걸 노린 것이더냐? 클클클, 노력은 가상하다만 검사가 박투로 봉술사에게 덤비는 것은 말이 되질 않지 않느냐?”
검을 버리고 움직였던 것은 주먹과 발.
하지만 강시술사이기도 하지만 봉술사이기도 한 고루시수 망영에겐 통하지 않았다.
삐쩍 말라 보이는 몸이건만 어떻게 두 사형의 공격을 저렇게 쉽게 막을 수가 있는 것인지.
이번 공격은 금환봉의 공능이 적용되지 않은 공격이었는데.
기의 힘과 파괴력, 중요성을 새삼스레 깨닫는 전투였다.
파파파팍! 빠각! 뻐억!
검을 놓은 두 사형.
검을 쓴다면 금환봉에 맞닿을 수밖에 없으니 아예 몸으로 승부를 보기로 작정한 듯했다.
하지만 확실히 박투는 검사보다는 봉술사가 뛰어났다.
이대 일의 상황인데도 밀리지 않는 고루시수 망영.
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은 상황인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무기를 들 때보다는 나은 상황이구나. 클클클, 쓸 만하긴 하구나.”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 고루시수 망영.
말하는 도중에도 몸 이곳저곳을 맞고 있는데도 목소리에 떨림이 없었다.
익숙하다는, 장난을 한다는 듯한 느낌.
두 사형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압!”
파파팍! 빠아악!
유혁 사형의 엄청난 속도의 연격.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장일 사형 또한 더욱더 힘을 강하게 넣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통하질 않았다.
도리어 고루시수 망영의 공격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반격을 맞을 뿐이었다.
치이익!
뒤로 밀려나는 두 사형.
고루시수 망영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금환봉을 지팡이 짚듯 하였다.
“오랜만에 몸을 푸니 삭신이 쑤시는구나. 이렇게 시원하게 몸을 푼 것은 정말 오랜만이군, 클클클.”
“…….”
“하지만 이제 조금씩 질려 가려고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느냐? 이제 그만 끝내지 않겠느냐?”
가지고 놀았다는 소리.
이제 그만 끝내고 죽으라는, 비꼬는 소리였다.
“반드시 쓰러뜨려주지.”
“네 오만이 네 목을 찌를 것이다.”
“클클클, 끝까지 나불대는 것을 보니 몸은 죽었어도 입은 살았구나.”
이이잉∼!
벌떼가 우는 듯한 기이한 검명.
두 사형이 마지막 한 수를 준비했다.
“신명나는구나. 새파란 애송이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기쁘구나.”
미친 것만 같은 고루시수 망영.
눈에서 금환봉의 서기와 같은 금빛 안광이 비쳐졌다.
치링!
부딪쳐 울음을 터뜨리는 금빛 고리.
금빛 서기가 더욱 더 환하게 빛났다.
“자, 마지막으로 한번 놀아 보자꾸나.”
쿠우우우!
주변을 압도하며 둔중하게 찔러 가는 낙화검법의 정수.
자연의 수많은 조화를 간직한 채 신묘하게 움직이는 조화검의 정수.
화산파의 두 검법의 정수가 발현되었다.
그것에 맞서 움직이는 금환봉.
후우우웅∼!
고루시수 망영의 손가락을 따라 금환봉이 둥그런 원의 모양으로 빙글빙글 돌아갔다.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금환봉.
고루시수 망영이 옆으로 내뻗었던 손을 앞쪽으로 돌리며 땅으로 금환봉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고루시수 망영의 전면을 완벽히 차단하는, 공중으로 뻗은 금빛 기둥.
두 사형의 모습과 고루시수 망영의 모습이 금빛 기둥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예민해진 기감에 느껴지는 것은 세 커다란 기의 충돌.
아직까지는 예측불허의 승부였다.
‘부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긴다.’
금빛 서기의 기둥.
금환봉의 공능의 집합체.
두 사형의 모든 것을 다한 초식이 저것을 꿰뚫을 수만 있다면 승리는 우리 쪽에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벌써 일 분째다.
금빛 기둥도 사라지지 않았고, 세 기의 충돌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수의 싸움은 하수들의 싸움보다 더욱 빨리 끝난다.
지금쯤이면 승부가 나고도 한참이나 지난 시간일 텐데.
‘아!’
콰아앙!
승부가 났다.
금빛 서기의 폭발.
금환봉의 공능이 사라진 것이다.
“읏!”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진,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 훤히 보일 정도로 건물의 윗부분을 송두리째 부숴 놓은 격렬한 충돌.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들과 솟아오르는 먼지들에 승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이지가 않았다.
“쯧, 방심했구나. 강시의 능력 때문에 호법으로 불리는 주제에 강시도 쓰지 않고 홀로 싸우니 그런 꼴이 되는 거다.”
후웅∼!
정체불명의 호법의 목소리와 함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강한 바람이 날아와 건물의 잔해와 먼지들을 날려 버렸다.
“사형!”
졌다.
이긴 것은 고루시수 망영.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피투성이이긴 하다만 사형들보다는 덜했다.
검은 반쪽으로 부러져 서로 다른 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몸을 부들부들 떨며 피투성이인 채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후두둑!
울컥 무언가를 토해 내는 두 사형.
간간이 내장 조각이 보이는 심한 각혈이었다.
눈을 반개하고 호흡을 고르는 고루시수 망영.
내가 달려가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기에 재빨리 두 사형을 잡아채 뒤로 물러났다.
‘심각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고, 머리가 새하얘질 정도로 심한 상세였다.
유혁 사형은 한쪽 팔이 기괴하게 비틀리고 복부에 커다랗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구멍이 뚫렸고, 장일 사형은 이마가 찢겨져 머리에 피가 흐르고 두 다리가 모두 피투성이였다.
완벽한 전투불능의 상세.
이기지 못했다.
화산의 정기가, 두 신룡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것이다.
“금환봉이 버티지 못할 뻔했구나. 한 놈의 성취가 다른 놈보다 조금 뒤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클클클.”
조화검을 완벽히 터득하지 못한 장일 사형.
패배의 요인은 이것이었다.
“네놈!”
아직 완벽히 몸이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감정에 따라 기가 폭발적으로 요동치며 몸이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네놈만 쓰러뜨리면 화산의 신룡은 세 명이나 꺾이는구나. 클클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거라.”
치링∼!
다시 생성되는 금빛 서기.
하지만 두 사형의 마지막 한 수가 효과가 있었는지 전보다 몇 배는 어두워져 있었다.
‘이길 수 있어!’
쓰러뜨릴 수 있다.
아니, 쓰러뜨려야만 한다.
두 사형을 저렇게 만들었는데, 멀쩡히 돌려보낼 수는 없다.
키링∼! 화아아∼!
자하십육검 십오 검.
정신을 맑게 하는 그윽한 매화향.
“검향(劍香)?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경지로구나.”
뒤쪽에서 감탄을 터뜨리는 정체불명의 호법.
고루시수 망영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
치링∼!
땅으로 스며들어가는 금빛 서기.
‘강시!’
고루시수 망영은 정면으로 승부할 생각이 없었다.
뒤쪽에서 몸을 회복하며 내가 강시와 싸우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볼 요령인 것이다.
‘땅에서 튀어나오기 전에 어서……!’
아직 거리가 있다.
두 사형을 안전한 거리까지 대피시키느라 전보다 두 배는 멀어진 거리에 있었기에 생겨난 일이었다.
콰콰콰!
나보단 강시가 더욱 더 빨랐다.
건물의 바닥을 뚫고 건물의 잔해 속에서 튀어나온 세 강시.
고루시수 망영의 모습은 그들의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이익!’
자하십육검 십사 검.
촤아아악!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
자하의 기운을 담은 유형화된 경기의 무리가 강시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콰아앙! 쉬익∼!
경기의 뒤를 따라 그들의 사이를 지나쳤다.
‘……!’
쐐애액! 챙!
통하지 않았다.
흑철인 정도라면 한 번에 쓰러졌을 정도의 위력이었는데 이놈들은 아무런 타격도 없어 보였다.
“크르르∼!”
섬뜩한 핏빛을 발하는 혈안.
폭발적인 기의 유동.
‘설마……!’
“이 정도면 즐겁게 놀 수 있지 않겠느냐?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지켜봐 주마.”
‘혈마강시!’
이 엄청난 힘과 섬뜩한 혈광.
갈천악에게서 느꼈던 그 느낌과 동일했다.
“제대로 놀아 보거라.”
키링∼!
이제는 섬뜩하게 들리는 두 고리가 부딪치는 소리.
금빛 서기가 땅을 타고 두 혈마강시에게 스며들었다.
콰앙!
하나는 박도, 하나는 주먹.
솥뚜껑만 한 주먹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생전에도 만만치 않았던 고수들이다. 파산도(破山刀) 장소륭(張昭隆)과 승신권(勝神拳) 여포(予布), 들어 본 적이 있을 거다.”
백 년 전, 사천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던 고수인 파산도.
삼십 년 전에 은거했다고 소문이 난 운남성에서 손꼽힌다는 고수인 승신권.
‘이익!’
어서 다가가 쓰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가갈 수가 없다.
갈천악의 실력이 조금 더 뛰어난 듯한 느낌이지만 이들은 둘이다.
게다가 한 성의 패자를 자처할 정도로 뛰어났던 두 고수.
혈마강시가 된 갈천악과 싸웠던 때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쾅! 우우웅! 스걱!
파산(破山)의 경력을 피하고 상단전의 염력을 짧게 끊어서 쓰며 팔을 베었다.
‘통한다!’
싸우며 염력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지만 맥을 끊을 수 있도록 짧게 쓰는 것은 가능했다.
‘이길 수 있어.’
심검을 쓸 각오도 있지만 되도록 쓰지 않을 예정이다.
실력의 삼 할은 숨겨야 한다.
심검은 십육 검과 함께 나의 마지막 구명절초라 할 수 있는 기술.
숨기면 숨길수록 고루시수 망영을 쓰러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화아아∼ 까앙!
‘금환봉의 공능!’
주먹과 맞닿자 튀어나온 금빛 서기.
기가 분산되며 손아귀가 찢어질 듯 아파 왔다.
‘아까 몸속으로 스며든 금빛 서기인가?’
생겨난 변수.
아직은 알 수 없는 싸움의 행방.
‘그 웃음을 날려 주마.’
절망을 먹으며 죽은 자를 움직이는 노괴.
빠르게 싸움을 끝내지 않는다면 두 사형의 목숨이 위험했다.
“하앗!”
자하십육검 십이 검.
카카카칵! 빠각!
‘큭!’
한 번씩 주고받은 공격.
한순간 숨이 막힐 만큼 아찔한 충격이었다.
“혈마강시의 진정한 위력을 보거라.”
고루시수 망영의 목소리가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