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화산천검 6권(22화)
9장 두 호법(2)
치지직∼!
“무슨……!”
갑작스런 말싸움.
폭탄을 몸에 두른 노인이 순식간에 몸에 매달린 폭탄을 하나 들더니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게 터지면 여기가 다 무너질 텐데? 그 암고양이한테 잔소리 들어도 상관없나?”
“칫.”
노인이 심지에 손가락을 대더니 이내 비벼 불을 껐다.
눈 깜빡할 정도의 시간이면 터질 정도로 아슬아슬했던 심지의 길이.
순식간에 심지를 꺼 버리는 손놀림.
놀랄만한 속도였다.
“클클클, 후배가 놀란 것 같은데 이제 그만 놀릴까?”
“그게 좋겠군.”
서로 웃더니 이젠 내 얼굴을 보는 두 노인.
경계심에 검을 살짝 틀며 자세를 취했다.
“내가 먼저 싸워 봐도 상관없겠지, 양가야?”
“내가 싸우면 이 근처는 모두 쑥대밭이다. 어차피 싸우지도 못해, 네놈이나 잘 놀아 봐라.”
“클클클, 고맙다.”
앞으로 나서는 빼빼 마른 노인.
치링∼!
봉의 끝 부분에서 서로 맞부딪친 두 개의 고리가 이내 금빛 서기를 일으켰다.
“내가 바로 혈천회의 호법이자 삼마병 중 삼병 금환봉의 주인, 고루시수(?뀜屍帥) 망영(뉘暎)이다.”
“시수?”
“클클, 금환봉만이 나의 무기는 아니다. 검룡 청우라고 했던가? 내 역작인 혈마강시를 쓰러뜨렸다고 들었는데, 어디 그 실력을 보자꾸나.”
고루시수 망영, 자신의 역작이라고 부르는 혈마강시.
갈천악이 지나가는 말로 했던 미치광이 늙은이가 바로 이자였다.
‘한 명, 그래도 만만치 않다.’
혈마강시를 만들 정도로 뛰어난 강시술사.
게다가 삼마병도 갖고 있는, 혈천회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세 호법 중 하나.
내 전력을 기울여도 이길까 말까 한, 황신에게 비견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노인이었다.
“클클클, 혈마강시를 이겼다 했으니 어떤 강시도 일대일로 싸울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몇 명의 협공을 버틸 수 있을까?”
키링∼!
고리가 부딪치자 금빛 서기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르릉∼! 콰앙!
솟구치는 돌바닥.
흑색 신형과 녹색 신형이 땅속에서 튀어나오더니 공중으로 솟구쳤다.
쿵! 쿵! 쿵!
이제는 익숙하다 할 수 있는 흑철인 다섯 기.
그리고 녹색 강시 다섯 기와 핏빛 강시 세 기가 그 옆에 나란히 섰다.
“흑철인은 많이 보급되었으니 잘 알고 있겠지.”
“크르르∼”
고루시수 망영이 흑철인의 허벅지를 툭툭 치자 흑철인이 눈을 빛내며 침을 뚝뚝 흘렸다.
“가장 약한 것이 이 흑철인이다. 삼류무사 정도면 만들 수 있는, 우리들 사이에서는 쓰레기라고 불리는 강시가 이놈이지.”
고루신수 망영이 금빛 서기가 서린 금환봉으로 녹색 신형의 강시의 머리를 툭툭 쳤다.
“독강시(毒f屍). 말 그대로 독을 가진 강시지. 이놈은 무인들 중에서도 찾기 힘든 독인(毒人)들로 만드는 강시다. 혈마강시의 독도 신경을 쓰긴 했지만, 이놈들은 원래부터 독을 쓰고 있던 놈들인 만큼 더 지독하지. 클클클, 고생 좀 할 것이다.”
이번엔 고루신수 망영이 금빛 서기가 서린 금환봉으로 핏빛 강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놈은 혈강시(血f屍)다. 생전의 무공을 쓸 줄 알게 개조한 놈들이지. 상대하는 데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로는 별로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강시들.
하지만 수가 많았다.
열다섯.
금강불괴에 가까운 몸, 혈마강시보다 더한 독, 실력이 뛰어난 내가고수에 가까운 강시.
합공으로 한꺼번에 덤벼든다면 치명적인 부상을 피할 수가 없는 적들이었다.
“일대일의 싸움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도발이라도 해야 된다.
만일 모든 강시들을 다 쓰러뜨린다고 해도 두 호법이 남았다.
이대로라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단 일 푼도 없었다.
“클클, 내 무기는 금환봉이 주가 아니라 강시가 주다. 강시가 바로 나의 실력이지. 쓸데없는 수작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싸우기나 해라.”
‘칫.’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
‘최대한 힘을 빼지 않는 선에서 싸워야겠군.’
자하십육검은 강하긴 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심하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싸우다가 온 상태이기 때문에 강시들을 상대하기엔 부족함이 없겠지만 호법들을 상대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했다.
‘기본기, 사부와의 대련과 마찬가지다.’
내공을 쓰지 않고 그저 기(技)만을 이용하는 싸움.
조금 더 위험하다는 것을 빼고는 다를 것이 없었다.
“자, 시작해 보자꾸나. 클클클.”
따악!
봉의 끝 부분이 땅을 찍자 그것을 기점으로 강시들이 달려들었다.
팡! 후웅∼! 피핏!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독강시의 독수.
허리를 비틀자 옆구리가 있던 자리를 공격하는 흑철인의 철추.
다리를 들자 땅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는 혈강시의 지공.
‘숨을 참아야 돼.’
독강시.
생전에 독인이었던 자를 강시로 만든 만큼 온몸에서 독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다행인 것은 모공으로 중독되는 독이 아니고 호흡을 통해 중독되는 독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것도 달라질지 모르지.’
그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이 정도의 독기.
과연 제대로 용독술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지 말자.’
안 좋은 생각을 하다 보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안 좋은 생각만이 떠오른다.
적당한 때에 생각을 멈추는 것이 좋았다.
‘독강시를 먼저 쓰러뜨려야 돼.’
일단 가장 위험한 것이 독강시다.
나머지는 버티면서 싸울 수 있지만 독강시는 가만히 있어도 견제와 공격이 되는 까다로운 강시이기 때문에 독강시부터 먼저 쓰러뜨려야 됐다.
‘처음엔 진각.’
쿠웅!
울려 퍼지는 커다란 진각음.
터지듯 비산하는 돌조각들이 혈강시의 접근을 막았다.
‘이어서 정권 찌르기.’
후웅∼ 콰앙!
흑철인의 철추가 독강시와 내 주먹 사이로 날아들어 내 주먹을 막아 내었다.
우그러들곤 빙글빙글 회전하며 땅속으로 처박히는 철추.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팔을 접으며 팔꿈치로 일격.’
일보 앞으로 나서며 팔을 접고 팔꿈치로 독강시의 명치 부분을 찔러 넣었다.
“키에엑∼!”
강시가 되었기에 급소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전사와 함께 기를 담은 공격이다.
콰앙!
독강시의 몸이 날아가 뒤쪽의 벽에 처박혔다.
핑!
‘큭!’
생전의 무공을 쓰는 혈강시.
특히나 지공을 쓰는 저 혈강시는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틈이 생기면 절대 놓치지 않는 빠른 속도의 지공.
다행히 피해 내긴 했지만 간담이 서늘해졌다.
잠시 움찔한 사이 공중에서 내려찍히는 네 개의 철추.
사방을 노리고 달려드는 검, 도, 창, 곤.
이제 제대로 독술을 쓰기로 작정했는지 땅을 타고 스멀스멀 다가오는 초록색 독기.
피할 공간을 주지 않는 연수합격이었다.
‘어쩔 수 없나.’
이건 장천수로 막을 수가 없는 공격이다.
철추를 막으면 혈강시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고, 혈강시의 공격을 막으면 독기를 막을 수가 없다.
하나를 막으면 하나를 맞아야 하는 상태.
자하십육검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하십육검 오 검.
파파파팡!
연검처럼 휘며 전신을 반구형의 형태로 막아서는 자색 검광.
검신의 넓적한 면으로 철추를 밀어내고 검날로 네 병장기를 베어 내고 검풍으로 독기를 날려 버렸다.
화아아아∼!
검풍을 타고 돌며 용권풍과 같이 공중으로 솟구치는 독기.
내가 있는 자리로 뛰어내리는 흑철인을 피해 독강시가 있는 자리로 달려갔다.
“호오∼ 제법이구나.”
고루시수 망영의 감탄사를 뒤로하고 수결을 취하던 왼손으로 독강시의 목을 잡고 아래쪽으로 끌어당기며 무릎으로 얼굴을 찍었다.
퍼석!
팔꿈치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부위라 할 수 있는 무릎.
부딪친 독강시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퍼퍼퍽!
무릎을 펴며 머리가 터져 나간 독강시의 몸을 연속으로 쳐 냈다.
우당탕!
뒤쪽에서 틈을 노리던 지풍을 날리는 혈강시가 독강시의 몸과 부딪치며 중심을 잃었다.
텅! 텅! 터텅텅!
장천수 이 초, 구루수.
손목을 계속해서 튕기며 손등으로 독강시들의 협공을 막아 냈다.
‘흡!’
격렬한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숨을 쉬어 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독강시의 독기.
게다가 잘 몰랐는데 방금 독강시의 몸을 만졌던 때 독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었었다.
호흡을 통해 들어온 독기가 만졌던 때에 들어온 독기와 공명하며 활발히 움직였다.
‘신경 쓰지 말자.’
하나하나 신경 쓰다가는 모두 놓치게 된다.
차라리 독기에 몸이 상하더라도 빨리빨리 싸움을 끝내는 것이 옳았다.
무기가 부러졌지만 기를 유형화시켜 부러진 부분을 대신하여 공격해 오는 혈강시들.
장천수 오 초.
인(引).
처음 장천수를 고쳤을 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인력이 혈강시들의 무기를 끌어당겼다.
휘익∼ 스걱!
무언가가 끄는 것만 같이 내 손짓을 따라 딸려오는 혈강시들.
드러난 빈틈으로 삼재검법을 응용해 자하검을 내쳐 베어 냈다.
‘깊지는 않아.’
강시, 살아 있는 자들과는 달리 몸을 양단하거나 심장이나 뇌를 파열시켜야 활동을 멈추는 순리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이 정도 상처는 저들에게 생채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 피하자.’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연이어 공격할 수 있다.
강시들의 무서운 점은 이것이다.
스걱!
허벅지에 검상.
피하지 못한 공격이다.
연이어 들어오는 지풍과 흑철인들의 주먹과 발차기.
‘침착해라.’
피할 수 있는 공격이다.
이지가 없는 자들, 본능에만 의지한 공격.
틈이 없는, 짜인 듯한 공격 같아 보여도 분명히 틈이 존재할 것이다.
실낱같이 작은 틈.
그 틈을 찾아낸다면 피해 낼 방법은 무수히 많았다.
‘찾았다!’
흑철인의 거대한 주먹과 발차기.
그 사이가 틈이었다.
풍압으로 둘러싸인 그 틈을 빼고는 피해 낼 방법이 없었다.
파라라락!
풍압으로 인해 펄럭이는 장포자락.
옷의 군데군데가 찢겨지며 피륙에 생채기가 났다.
푸욱!
삼재검법을 응용한 찌르기.
흑철인의 금강불괴에 가까운 몸을 꿰뚫고 심장을 터뜨렸다.
파앙! 뻐억! 쿠웅!
머리를 숙여 지풍을 피해 내고 신류퇴 전추로 옆에 있던 도를 든 혈강시의 머리를 쳐 내며 쓰러져 가는 흑철인의 몸에서 검을 빼냈다.
“호오, 자하십육검도 아닌데 흑철인의 몸을 꿰뚫었다고? 클클, 재밌구나.”
“그 정도 실력도 없으면 황신 녀석이 시끄럽게 떠들지 않았을 테지.”
“그것도 그렇구나.”
또다시 시시덕거리는 호법들을 뒤로하고 연이어 발을 내치고 주먹을 찌르고 공격을 피해 내며 연이은 공방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