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화산천검 6권(21화)
8장 흑풍의 본거지(4)
턱! 휘릭∼
유혁 사형의 몸을 끌어당겨 장일 사형의 품에 안겨 준 뒤, 전음을 날리며 또다시 기를 끌어모았다.
느긋하게 구경하고 있던 혈조부 무삼이 장일 사형의 모습을 보자 계단을 발견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다급히 몸을 날려 왔다.
“네놈들!”
지금까지의 놀리는 것만 같은 말투와는 다른, 다급함이 물씬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소용없다!”
유혁 사형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혈조부 무삼이 장일 사형과 유혁 사형의 뒤를 따라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최소한 전투불능, 최대 사망.
이곳에 사사도 초령이 있을 가능성을 감안해서 내공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쓰지 않으려 한 초식이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발출한다.
신체의 강인함을 담아 용이 승천하듯 하단전에서 빠져나와 중단전을 거치며 마음을 담고, 상단전을 거치며 염(念)을 담아 팔을 지나 검을 통해 발출한다.
삼단전의 공명을 이루어 내고, 신검합일을 이룬 상태에서의 힘의 방출.
자하십육검 삼 검의 극.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전개한 초식인지라 완벽한 위력이 나오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위맹한 위력의 초식이었다.
단 한 번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는, 자하십육검 중에서도 가장 살기 넘치는 초식.
혈조부 무삼의 갈고리 모양의 손가락과 맞부딪친 청운검에서 기이한 검명이 울리고, 연이어 조그마한 혈선이 충돌 부분에서부터 혈조부 무삼의 팔을 타고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경악성이 감도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묻어나는 목소리.
끝이었다.
푸화확!
피가 분수와도 같이 솟구치며 핏빛 안개를 만들어 냈다.
흔들리는 눈동자 사이로 흐려지는 초점.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전투불능의 상태였다.
“쿨럭!”
후두둑!
역류한 진기가 탁한 혈류를 내뱉게 만들었다.
급한 상태로 전개한 초식 때문에 혈조부 무삼의 공격을 완벽하게 상쇄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목적한 바의 첫째는 이루어 냈다.’
이제 둘째로 흑풍들과 흑철인들의 공세를 막아 낼 차례였다.
장일 사형의 의해 많은 수가 줄어든 흑풍과 흑철인들.
그래도 원체 수가 많은지라 상당수가 남아 위협적이었다.
‘조금 더 큰 내상을 입더라도 막아 내야 한다.’
자하십육검 십사 검.
파파파파! 콰아아앙!
베는 것보다는 파괴에 치중하게.
기운을 예리하게 벼리기보다는 뭉툭하고 폭발하기 쉽게 만들어 날려 보낸 기운의 집합체가 흑풍들과 흑철인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비명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엄청난 폭음에 절망의 절규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솟구치는 피분수와 떨어져 나간 핏덩이들만이 절망의 절규를 대신해 주었다.
‘크윽!’
진기의 역류가 심해졌다.
수천 마리의 개미가 몸속을 갉아먹는 듯한 가려운 통증.
가슴을 부여잡고 재빨리 뒤로 몸을 돌리며 돌무덤 사이를 제치고 들어가, 힘을 쥐어짜 벽을 내려쳤다.
콰아앙!
무너져 내리는 입구.
커다란 돌들이 입구를 가리고, 솟구치는 모래먼지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쉽게 열기는 힘들 것이다.
힘의 조절을 잘못한다면 이차붕괴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하아∼ 하아∼”
점점 심해져 가는 통증에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머리가 쿡쿡 쑤셔 왔다.
뱃속에 모아 놓고 깜빡해서 바깥으로 빼내지 않은 산공독 또한 계속해서 풀려나려는 반응을 보여 더욱 죽을 맛이었다.
“운기조식을 해라. 보조해 주마.”
가부좌를 틀자 뒤쪽에서 장일 사형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혁 사형의 응급치료를 막 끝낸 것인지 피로감이 깃든 목소리였다.
자하심법의 구결을 계속해서 되뇌며 기운을 움직이자, 기운이 움직이는 곳을 따라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았다.
안정과 치료의 공능.
게다가 기운이 반발하지 않는 같은 사문의 심법을 익히고 있는 장일 사형의 기운이 보태어져 보조해 주자 치료는 점점 더 쉬워졌다.
산공독을 해소하고 온몸의 혈도를 돌고 돌아 간신히 기운을 안정시킨 후, 운기조식을 끝내었다.
등 쪽에서 힘을 보태 주던 기운도 운기조식을 끝내자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자 피곤해 보이는 장일 사형의 얼굴이 보였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아직 뚫리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뚫릴 것이다. 적들도 만만한 것이 아니니. 어서 올라가자.”
“유혁 사형은 어찌 되었습니까?”
“약선께 받은 지혈산이 있다. 과연 성능이 좋더구나. 순식간에 출혈이 멎었다. 유혁도 이미 운기조식을 끝낸 상태다. 진행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선견지명이라도 있는 것인지 약선이 선물로 준 약이 지혈산이었다.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장일 사형을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9장 두 호법(1)
“올라왔군.”
아직 출혈의 후유증이 있는지 창백한 인상의 유혁 사형.
하지만 요혈과 사혈과 같은 중요한 혈도에 입은 상처는 거의 없기에 약선의 지혈산에 의해 출혈이 멎자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자하십육검 삼 검에다가 십사 검을 연속해서 쓴 내가 차라리 더 이상이 있어 보였다.
“조금 더 쉬는 것이 낫지 않겠나?”
유혁 사형도 그렇게 느낀 것인지 창백한 인상으로 내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조금의 시간이 생사를 갈라놓는다.
언제 입구가 뚫릴지 알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올라가자.”
어떻게 된 것인지 미약하게 자체발광을 하는 은색의 계단을 달려 올라가자, 갈림길에 도착했다.
하나는 앞으로 향하고, 하나는 왼쪽으로 향하고, 하나는 오른쪽으로 향하는 십자 모양의 갈림길.
“내가 왼쪽으로 가겠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지.”
두 사형이 재빨리 말하곤 곧바로 몸을 날렸다.
남은 선택지는 하나.
나 또한 곧바로 앞으로 몸을 날렸다.
타다닥! 터엉!
내력의 소모는 최대한 적게, 몸의 충격 또한 최대한 적게.
매화작보를 극성으로 펼치고 암향표 신법 또한 극성으로 펼치며 나의 보법과 신법의 한계를 시험하듯 달려갔다.
그렇게 얼마동안 뛰었을까?
바닥의 미약한 빛만을 의지한 채 달리던 끝에 드디어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자락에 보이는 꺾어진 통로 사이로 비쳐 드는 희미한 빛.
거의 다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부드럽게 몸을 틀고 다시 몸을 날렸다.
한순간 밝아지는 공간.
하지만 이미 눈에 내공을 집중하고 있기에 눈이 마비되진 않았다.
“이 풋내 나는 꼬맹이는 어디서 온 것이더냐? 크크크.”
“굉음이 계속해서 울려서 내가 준 폭약을 잘못 쓴 건가 의아해했는데 아니었군. 웃기는구나. 겨우 이런 아이에게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니. 흑영도 많이 약해졌군. 아니, 칠사도 자체가 약해졌지.”
온몸에 주렁주렁 까만색의 무언가를 두른 노인과 뼈다귀와 혈관이 보일 정도로 피골이 상접한 노인.
이렇게 두 노인이 빛의 발원지에 서 있었다.
‘누구지?’
코를 시큼하게 할 정도로 심한 폭약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까만색의 무언가를 주렁주렁 몸에 두른 노인에게서 풍겨 나온 냄새.
‘폭탄인가?’
자세히 보니, 잘 보이지 않게 몸의 안쪽으로 갈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심지.
폭탄을 터뜨리기 위한 심지가 보였다.
“누구냐?”
나를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시시덕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민하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당당히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아아, 그래. 우리가 너무 무시하고 있어서 화가 났나 보구나. 클클클, 무림의 선배가 있으면 보고 먼저 인사하거나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당연한 예의이거늘. 너무 썩었군.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었는데.”
꿈틀했다.
화를 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지적을 고치기도 뭐한 상황.
“클클클, 약이 올랐구나. 그래, 그렇게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때가 가장 좋을 때다.”
음침한 웃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음습한 웃음이었다.
“기세를 보니 혈마강시 정도로 해도 좋을 것 같군. 클클클, 갈천악은 너무 이성을 없게 했어. 이번엔 이지를 조금은 갖게 한다면 더욱더 강해질 수 있겠지.”
“그놈은 이지를 잃게 하는 것이 적당했지. 본능적인 싸움 실력이 더욱더 뛰어났던 놈이니.”
“그런가? 뭐, 귀중한 시체가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 별 상관없다.”
갈천악, 혈마강시, 시체.
정확한 정체는 알 수가 없었지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있었다.
위험하다.
칠사도를 어린애 얘기하듯 하는 말투와 천천히 퍼져 나오는 음습한 기운.
‘설마, 호법인가?’
그 외에 저렇게 말할 만한 지위의 인물이 없었다.
‘먼저 공격한다.’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는 지금.
호법이라는 예상이 맞다면 나에게 승산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상대를 해야 하고, 또한 기습이라도 해서 당황을 시켜야 했다.
자하십육검 칠 검.
촤아악∼
자색 잔영을 따라 초승달의 모양으로 날아가는 유형화된 경기.
노인들이 서로 떠들다가 땅거죽을 뒤엎으며 날아오는 경기를 보았다.
“이거 인사가 대단하군, 클클클. 재밌는 기술이야.”
어느새 들었는지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자신의 키보다 조금 작은 기다란 봉을 휘둘렀다.
키링∼!
노인의 얼굴과 인접한 봉 끝 부분 홈에 걸려 있는 금색 고리가 서로 맞부딪치며 기묘한 공명음을 퍼뜨렸다.
봉에 서리는 금빛 서기.
“화산파 비기는 얼마나 강할까? 삼마병 중 삼병(三兵) 금환봉(金環棒)에 버틸 수 있을까?”
삼마병.
황신의 추혼칠마창이 이병, 저 노인의 금환봉이 삼병.
세 개의 마병 중 마지막, 세 번째의 병기가 저 봉이었다.
쩌엉!
‘……!’
깨졌다.
유리가 깨어지듯 금빛 서기와 맞부딪친 칠 검의 경력이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세 병기 중 마지막, 세 번째의 병기라고 얕보다가는 큰코다친다.
삼백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혈천회의 수많은 병기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 병기.
전설 속에 나오는 신병이기였다.
우우웅∼!
“금환봉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다행히 약하진 않구나, 클클클.”
“천 년의 절기가 약할 리가 없지. 약하다면 천 년이나 버텼겠느냐?”
“내가 몰라서 말했겠느냐, 양가(陽家)야.”
“그 멍청한 머리로는 생각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느냐?”
“클클, 죽어 보고 싶더냐?”
“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