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42화 (142/175)

# 142

화산천검 6권(17화)

7장 적진으로 가는 길(2)

“하하하, 입맛엔 맞으셨습니까?”

밥을 다 먹고 차를 마시던 중 아래층에서 올라온 객잔의 주인이 웃으며 얘기를 꺼냈다.

출렁거리는 뱃살과 볼살.

후덕해 보이는 인상 속에서 초승달과 같이 구부러진 작은 눈이 빛을 발했다.

“지기에게서 소개를 받고 왔는데 과연 그럴 만하다고 생각되는 맛이었소.”

“하하하, 감사합니다.”

객잔의 주인이 말하곤 입을 다물고 미미하게 웃고 있자 유혁 사형이 눈치를 챘다는 듯 돈을 건넸다.

“조금 많은 것 같은데…….”

객잔의 주인이 돈을 세고는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별채를 빌릴 것이오. 그리고 마차 두 대를 준비해 주시오.”

조용히,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만 들릴 정도의 얘기.

이 층엔 다른 사람이 없었다.

기감에 걸리는 숨어 있는 자들도 없었다.

있었다면 마차 두 대를 준비한다는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아무도 없기에 그런 자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객잔의 주인이 그렇게 말하곤 뒤쪽의 점소이에게 눈짓을 하였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객잔의 주인과 함께 아래로 내려간 뒤, 점소이를 따라 객잔의 주인이 가는 방향과 반대로 향했다.

건물의 뒤쪽으로 향하여 도착한 작지도 크지도 않은 건물.

이 객잔에 딸려 있는 별채였다.

[이곳에서 약 한 시진 정도 휴식을 취하고 움직인다. 두 마차를 불렀으니, 두 번째 마차에 타고 움직인다.]

유혁 사형이 계속해서 강조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우리의 정체가 탄로 날 수 있으니 조심에 조심을 기하는 것이다.

“이곳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십시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점소이가 문을 닫고 나갔다.

세 명이서 있기에는 조금은 크다고 할 수 있는 건물의 안.

말은 필요가 없었다.

이후로 할 일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마음을 안정시켜 갔다.

[이제 출발한다.]

한 시진이 지났나 보다.

이미 언질이 되어 있던 듯 유혁 사형이 뒤쪽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쪽문으로 향했다.

문의 바깥쪽에는 건물과 담장 사이의 어두운 틈 사이로 마차 두 대가 있었다.

허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이두마차.

뒤쪽에 있는 마차에 앉아 있는 마부가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살짝 허리가 굽은 평범한 노인으로 보이는 마부였다.

하지만 겉과 속이 달랐다.

속에서 느껴지는 잘 갈무리된 엄청난 기세.

‘사천당가에서도 무척이나 신경 쓰는군.’

일개 마부에도 이런 자들을 배치할 정도라니.

얼마나 이 일을 신경 쓰는지 알 수가 있었다.

뒤쪽의 마차에 들어가자 앞쪽에 있던 마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에 있는 마부가 전음으로 말했다.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기세를 잘 갈무리하고 바깥쪽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하시지요.]

히히히힝∼ 다그닥! 다그닥!

이내 천천히 출발하는 마차.

먼저 출발한 마차 덕분에 조금은 수그러든 감시의 눈길 사이로 마차가 조용히 길을 따라 걸었다.

“도착이다. 긴장을 놓지 말고 방심하지 마라.”

장일 사형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을 들으며 죽립을 더욱 눌러썼다.

오는 길에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의 마차는 속임수, 두 번째 마차를 타고 갔고 또 가다가 한 조용한 시골 마을에 들러 마차를 바꾸고 갔다.

그리고 가다가 사천당가의 영향력이 있는 주루에 내려 옷을 갈아입고 정해진 지점에서 만나 조의 인원을 바꾸며 또다시 갈라져서 왔다.

그리고 한 번은 걸리기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할 수 없이 고육지책으로 직접 감시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떠들기도 하였다.

물론 그 일은 마진천과 우승빈이 하였다.

능글맞기로는 두 사람을 따라올 자가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두 남자의 능글맞음은 감시자에게도 통하여 간신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지금의 이곳.

개방이 알아낸 흑풍의 본거지였다.

홍루(紅樓).

야릇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기녀들이 각 건물의 앞에서 오가는 여행자들을 붙잡고 안으로 들이고 있었다.

명도의 미간이 좁혀진 것이 보였다.

도문의 수좌, 무당의 신룡인 만큼 이런 끈적끈적한 공기가 감도는 곳을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돈을 받아 몸을 팔고, 기예를 팔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창녀와 기생들.

명문정도에서 살아온 이들이니만큼 저들을 좋은 눈으로 볼 리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사부의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창녀와 기생이라고 좋아서 몸을 팔고 기예를 파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돈이 없거나, 가족이 팔았거나, 노예로서 잡혀 왔거나. 모두들 각자의 딱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불쌍히 여길지언정 경멸하지 말거라.’

그리고 또한 종남산에서 들었던 천풍걸개의 말도 있었다.

‘사물을 보는 것은 겉이 아니다. 보아야 할 것은 마음뿐.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과 재능과 마음이다. 사도라고 사한 법 없으며, 마도라고 악한 법 없고, 정도라고 정한 법 없다.’

“목표는 세 곳. 세 명씩 나뉘어서 진입한다.”

세 조로 세 명씩 나뉘어서 흩어졌다.

목표는 세 곳.

흑풍의 본거지는 한 곳이 아니었다.

세 곳.

이 창부와 기녀들의 거리에 있는 세 홍루가 흑풍의 본거지인 것이다.

전부 다 이 근방에서는 미색과 기예가 뛰어나기로 소문이 난 홍루들이었다.

과연 그중 한 건물의 근처로 다가가자 주변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기녀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미색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촉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엔 어쩐 일이신지요? 어서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대협들.”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이 죽립을 더욱 눌러쓰며 기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봐요?”

평범한 남자들이라면 한 번에 넘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와 빼어난 몸매.

그렇지만 검문과 도문으로, 수단이 다르긴 해도 등선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화산파의 인물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누가 흑풍이고, 누가 평범한 창부냐.’

가슴이 푹 파이고 다리가 드러나는 야시시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나긋나긋한 손동작으로 술을 따르며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술에 의한 것인지, 열기에 의한 것인지 붉어진 얼굴로 여자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광경.

게다가 이곳저곳에서 창부들과 남자들이 일어나 근처의 방 안으로 들어갔고, 돈이 많아 보이는 풍류공자들은 두 명 이상의 창부들의 부축을 받으며 이 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소옥(素玉)아, 이리 와 보거라.”

우리를 끌고 왔던 여인이 조금은 어려 보이는 여인을 불렀다.

“어머, 무림인이시네요?”

“그래, 부끄러움이 많은 분들이시니 조용한 방 안으로 들어가 기분을 풀어 드리거라.”

“호호호, 네. 이리로 오세요.”

소옥이라 불린 여인이 아찔할 정도의 미소를 보이며 우리를 안내했다.

“무림인들은 명성이 중요하다고 하던데, 얼굴을 보이기 힘든 분들이신가 봐요?”

“알아서 좋을 것 없다.”

“어머, 늠름하신 목소리시네요.”

배시시 웃으며 소옥이 주변에 있는 여러 기녀들을 불렀다.

그리고 여섯 명 정도의 기녀와 우리가 커다란 방 안에 들어갔다.

양쪽에서 느껴지는 여인의 향기, 은은한 지분 냄새와 사향 냄새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정신 차리자.’

이곳은 호랑이굴이다.

그리고 사부가 도사인 화산파의 제자로서 이런 것에 넋이 빠져서는 안 되었다.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은 미혹조차 되지 않는다는 듯 평소와 같은 얼굴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더욱더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자리에 엉거주춤 앉게 되는 것은 별 도리가 없었다.

한 명당 두 사람씩.

양쪽에서 나를 따라 앉던 여자들이 이런 나의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쪼르르∼

“처음이신가요?”

잔 안에 맑고 투명한 술이 조금씩 담겨지고 있었다.

찰랑∼ 찰랑∼

여인의 손 안에서 흔들리며 파문을 일으키는 잔속의 술.

천풍걸개가 마시던 독한 화주가 아니라 은은한 향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비싸고 좋아 보이는 술이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이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기분 좋게 웃었다.

“약관은 넘어 보이시는데 처음이시라고요? 순진하시네요, 아니면 바쁘셨던 건가?”

“알 것 없다.”

말하자 내 옆에 있는 다른 여인이 나에게 안겨 왔다.

뭉클한 느낌과 몽롱하게 만들 정도의 향수.

순간 몸이 움찔했다.

“자, 어서 드세요.”

옆에 있는 여인이 술잔을 더욱더 들이밀었다.

‘곤혹스럽군.’

술을 마실 순 있다만 지금 마시는 것은 임무에 지장이 있다.

술은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성이 마비되어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절망감 등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하지만 지나친 용기는 만용이다.

게다가 지금 이곳은 흑풍의 본거지.

칼과 같이 감각을 벼려야 할 때에 그 감각이 무뎌지게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어쩌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요?”

“사정이 있어서 마실 수가 없다. 치워라.”

“알겠어요.”

여인이 내 단호한 말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술을 옆으로 치우고 탁자 위에 잔을 올려놓았다.

“이 층은 어떤 곳이지?”

옆에서 유혁 사형의 말이 들렸다.

“일 층은 평범한 사람들이 와서 술을 마시고 저희들의 몸을 사는 곳이죠. 이 층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거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곳이에요. 특급 기녀들이 있는 곳이죠. 그리고 비밀리에 회담 같은 것을 할 사람들을 위해서 방음도 완벽하죠. 왜요? 올라가시게요?”

“올라가겠다.”

“특급 기녀들의 모습을 보고 대접을 받는 것은 이 지역 남자들의 꿈이나 마찬가지지요.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을 걸요? 쿡쿡.”

“…….”

이 이상은 대답하지 않고 유혁 사형과 함께 모두들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 몸이 달아오른 여인들과 남자들을 지나 계단의 앞으로 향했다.

“계단까지는 배웅해 드릴 수 있지만 그 후부터는 저희의 관할이 아니에요.”

계단을 올라가는 중에 내 오른쪽에 있는 여인이 말하였다.

‘아예 자리를 나누었다는 거군.’

일 층은 일 층에 있는 사람들이, 이 층은 이 층에 있는 사람들이.

수준에 따라, 능력에 따라 자리를 나누고 서로 관여할 수가 없게 만든 것이다.

계단의 끝에 올라가자 우리들의 옆에서 안내를 해 왔던 여인들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길을 막고 있는 장막을 활짝 열어젖혔다.

환하고, 나무의 가지와도 같이 나뉘어져 있는 복도.

그리고 그 복도의 양옆에 띄엄띄엄 있는 방.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들으려 해 보았다.

‘안 들린다.’

귀에 기를 모아 청력을 높여 보아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골치 아프군.’

완벽한 방음이라고 하더니, 허언은 아니었나 보다.

[일단은 안으로 가 본다. 그리고 이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자.]

건물은 이 층이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깥에서 본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계단이 없다.’

어떻게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감으로 아무리 살펴보아도 계단이 없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유혁 사형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자고 했던 것이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 오른쪽에서 한 노인이 나타났다.

“……!”

처처척!

너무도 놀란 나머지 우리 셋 모두 검을 뽑아 노인을 위협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는데…….’

어떤 위화감은 있었지만 사람이 있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엄청난 은신술.’

“허허, 무림인이신가 보구려. 위협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시지요.”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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