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화산천검 6권(16화)
6장 다음 작전(4)
푸푸푹!
우승빈의 정면에 있던 커다란 아름드리나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확히 박혔다.
파라라락∼
휘날리는 장포 자락.
장포의 주인이 우승빈이 던진 단도가 박힌 나무에서부터 고아한 학처럼 날아와 사뿐히 착지했다.
하얀 도복.
무심한 듯하지만 타오르는 검은 겁화의 눈을 가진 남자.
무당의 유룡, 명도였다.
“대체 왜 그런 거지?”
명도가 저곳에 있다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르고 싶으면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될 것이지 대체 왜 단도를 던져 위협했단 말인가?
“그냥 심심해서.”
히죽히죽 웃으며 우승빈이 어처구니가 없는 대답을 했다.
“이곳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오?”
장일 사형이 절도 있는 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물었다.
“이곳에 있으면 모두가 모일 거라는 예감이 들더군.”
예감.
상단전의 예지다.
“반룡, 살아서 돌아왔군.”
순간 명도의 눈동자 속의 검은 겁화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죽기를 바랐나 보지?”
마진천은 피식 냉소하며 대꾸했다.
“…….”
명도는 부정하지 않았다.
가타부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검은 겁화의 눈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왜 저러는 거야?]
연화에게 전음으로 물어보았다.
[예전부터 별로 사이는 좋지 않았어. 뭐, 본능적으로 기분이 나쁜 그런 사이라고 하던가? 그랬는데 나중에 가서는 또 어떤 임무에서 뭔 사건을 겪었나 봐. 가치관의 대립이라고 하더라. 그것 때문에 더 사이가 나빠져서 지금은 보다시피 거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지경이 되어 버렸어.]
‘가치관의 대립?’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진천이 저래 보여도 결코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니다.
명문 정파 종남파의 문도인 만큼, 결코 나쁜 짓을 할 만한 위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떠한 가치관의 대립이 있었기에 저렇게 원수를 만난 것만 같이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너무 살벌한 것 같은데 일단은 자제를 해 줬으면 좋겠소.”
장일 사형이 나서서 말하자 명도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러자 마진천도 냉소를 멈추며 장일을 쳐다보았다.
“명도, 그대는 일주일 후의 임무를 아시오?”
“알고 있다. 너희들에게도 말했나 보군.”
“그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해야 될 일이니만큼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명도의 거침없는 대답.
할 말이 없는지 장일 사형이 입을 다물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모두들 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마음속에 거리낌이 있었던지라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런데 명도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뭔가 생각을 했는지 조금은 밝은 분위기가 되었다.
‘어떻게 될까?’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
아무도 죽지 않느냐, 아니면 누군가가 죽느냐.
불길하고 암울한 전망만이 보이는 이 임무.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할 뿐이다.
7장 적진으로 가는 길(1)
“무림맹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대.”
“정말이야?”
“그래, 내가 언제 거짓말한 적 있어?”
“그거야 많지. 최근 걸 말해 줄까? 한 달 전에 나한테 돈을 꾸면서 일주일 내로 갚는다고 해 놓고 지금까지 안 갚고 있지 않나?”
“그건…….”
식탁에 마주앉아 있는 두 중년인 중 염소수염의 중년인이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다물었다.
“한두 번 그런 것이 아니니 별로 신경도 안 쓰니까 빨리 이어서 말하기나 해.”
휘휘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염소수염의 중년인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알았네, 알았어. 무림맹이 이천이나 되는 병력을 움직여 호북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하더군.”
“이천? 그 정도 병력이면 황실에서 막지 않는가?”
“무림맹이 어디 고만고만한 연합체인가? 무림의 대표인 구파일방을 비롯하여 오대세가, 그리고 나머지 중소문파들 대부분이 모여 있는 곳이네. 무당의 장문인이나 소림의 장문인만 하더라도 황실의 윤허를 받을 수 있을 만큼 명망이 높은 자들인데 그에 비견되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있으니 어찌 허락을 받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듣고 보니 그렇군. 그래서 이천이나 되는 대병력이 호북으로 가서 어쨌기에 그러나?”
“아직은 뭘 어쩌진 않았네. 하지만 곧 대규모 싸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겠지. 이천이나 되는 무인들이 호북의 자연경관이나 구경하려고 가는 것은 아닐 테고 말이지.”
“그…… 혈천회라고 했나? 그런데 그쪽하고 무림맹하고 왜 그렇게 싸우는 건가?”
“무림맹의 말로는 아무런 의미 없는 피가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더군.”
“피가 왜 흐른다고 그러는가. 솔직히 그전까진 그런 단체가 있는 것도 모르지 않았는가? 그리고 알려진 이후로도 우리들에겐 아무런 피해도 없지 않았는가?”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무림맹 쪽에서 현재 잘 막고 있기도 하고, 그전에도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더군.”
“그런가? 별로 믿음이 가진 않네만…….”
“이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기에 믿지를 않는 거야?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
“자네에게 한두 번 속아야 말이지.”
“에잉, 이 사람이 아직도 그걸 우려먹는 겐가!”
조용히 떠드는 것 같지만 객잔의 안은 조용하였기에 소리가 커다랗게 울리는 것만 같았다.
‘민초들이 무림맹을 불신하는구나.’
시간을 끌수록 불리하다는 장문인의 말.
사실이었다.
아니, 더 심했다.
문파들이 반발하는 것은 괜찮다.
그것은 어차피 예전부터 있었던 일.
암암리에 일고 있었던 일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민초들이 불신의 말을 하는 것은 다르다.
무림맹이 발동한 이유는 민초들을 위한 것.
민초들이 무림맹을 믿지 못하고 반발한다면 무림맹을 존속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
민초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무림맹을 유지하여 결국 혈천회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혈천회가 탄생할 뿐이다.
그렇다고 무림맹을 파한다면 혈천회에게 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
민초들의 불신은 그만큼 엄청난 불리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연화와 눈이 마주쳤다.
슬프고 안타까워하는 눈빛.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마진천이 벌떡 일어났다.
“식사도 끝났는데 죽치고 있지 말고 빨리 나가도록 하지.”
그 오만하던 반룡도 저들의 말에는 살짝 흔들림이 있었는지 그렇게 말했다.
우승빈이 객잔의 주인에게 값을 지불하고 모두 객잔에서 나왔다.
모두의 분위기가 살짝 처져 있다.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분위기를 쇄신할 목적인지 우승빈이 웃으며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자, 시간도 얼마 없는데 빨리 가자고. 현재는 우리의 임무에만 충실해야지, 저런 말에 전부 신경 쓰다간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무언가가 얹힌 것만 같은 느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모두들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다.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소?”
모두들 얼굴이 잘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만일에 대비하여 조금씩 변장을 한 상태였다.
죽립을 눌러쓰거나 화장을 하거나 해서 분위기를 바꾸었다.
무의식중에 풍기는 기도는 어쩔 수가 없지만 잘 갈무리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죽립 아래로 눈을 빛내며 남문기가 물었다.
“이 속도라면 빠르면 삼 일, 늦어도 사 일하고 반나절이면 도착할 것이라 보오.”
유혁 사형 또한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답했다.
모두들 오감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들인지라 조용히 말해도 다들 잘 알아들었다.
“얼마 남지 않았군.”
“그러니 힘 좀 냅시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러도록 하지.”
이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부턴 긴장해야 할 때이다.
시간과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방심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무림인으로서 실격이다.
가까워질수록 눈치를 챌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된다면 실패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가라앉은 분위기로 있을 때가 아니다.
긴장하고 긴장하여 발걸음 하나하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도 더 조심을 해야 한다.
“지금부턴 따로 떨어져서 행동해야 할 것 같군.”
명도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
연화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진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목소리 낮춰. 오른쪽 객잔의 첫 번째 탁자에 앉아서 독작하고 있는 남자, 그리고 왼쪽에서 거리를 보고 있는 하릴없어 보이는 노인, 그 바로 위로 열 발자국 정도 거리에서 물건을 사는 여자, 뒤쪽에서 거리를 두리번거리는 촌사람 같아 보이는 젊은 무림인. 전부 다 우릴 감시하는 자들이다.”
‘벌써 눈치를 챈 건가?’
수상하다면 수상한 일행이긴 하지만 최대한 조용히, 천천히, 그리고 기척을 숨겼다.
거기다 오는 중에는 세 조로 나뉘어서 오기까지 했다.
지금도 앞뒤로, 그리고 옆으로 멀리 떨어져서 걸어오고 있는 중인데?
‘역시 만만치 않군.’
사천당가의 영향력 안에, 그리고 흑풍의 본거지 근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은 보지도 못했던 감시자들이 도처에 널리고 널렸다.
‘조심하고 조심해도 모자란다.’
고수와 싸움을 하는 때와 마찬가지로 감각을 극대화하고, 날카롭게 벼려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순식간에 걸려 버릴 것이 분명했다.
“떨어져서 간다. 내가 먼저 관심을 끌 테니 모르는 체하고 가.”
마진천과 우승빈, 그리고 연화가 길을 걷다가 서로 아는 척을 하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옆쪽으로 걸어가더니 상점의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구경하는 척했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행동.
‘이런 경험이 한두 번 있던 것이 아닌가 보군.’
혈천회와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운 신룡들.
알게 모르게 많은 감시를 받았을 터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쪽도 흩어진다. 오른쪽에 사천당가의 영향력 안에 있는 객잔이 있다. 그곳으로 간다.”
사천당가의 협력은 당연히 있었다.
얘기하자마자 분해하면서도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이미 사천당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든 곳에는 얘기가 끝나 있다.
사천당가에서 알려 준 암호만 제대로 말한다면 사천당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모든 곳들이 우리에게 협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그리고 내가 길에서 벗어나 객잔의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시오!”
객잔의 점소이가 나와서 인사를 받았다.
[청(請). 협(協).]
간단한 두 글자의 암호.
전음으로 말하고 유혁 사형에게 누구도 모를 정도로 살짝 기세를 흘리자 유혁 사형이 곧바로 자연스럽게 말했다.
“음식을 내와라. 이곳에서 가장 자신 있는 것으로.”
“하하,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점소이가 말하곤 재빨리 뒤쪽에서 놀고 있는 다른 점소이에게 눈짓했다.
일견하기에 우리의 앞에 있는 점소이의 눈빛은 ‘봉이다, 잡아라.’ 하는 것 같았다.
저쪽의 점소이는 사천당가와 관련이 있는 자가 아닌 것이다.
눈짓을 받은 점소이가 재빨리 벌떡 일어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 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일 층과 이 층에 귀빈의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 층은 시끄럽게 떠드는 자들이 많았고, 이 층은 조용하게 중요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니, 이 층으로 세 무림인이 간다고 수상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잠시 밥을 먹다가 감시의 시선이 약해졌을 즈음에 별채로 간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있다가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
아직 감시자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향해 있었다.
분명히 눈동자는 우리를 향해 있지 않음에도 그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레 아무런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은 수상하다는 의문을 증폭시켜 줄 뿐이니, 이 방법이 현재로선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첫 번째 마차는 속임수다. 두 번째 마차에 타고 간다.]
이어서 들려온 전음.
겉으론 드러내선 안 되니 탁자 아래쪽을 살피듯 살짝 고개를 숙이며 알았다고 표시했다.
짧지도,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리지도 않고서 음식이 나왔다.
가장 자신 있는 요리로 내오라고 했는데, 과연 그 냄새와 윤기에서부터 먹지도 않고 맛을 알 수 있는 듯했다.
영양분을 보충하는 것이기에 많이는 먹지 않고 적당한 양을 꼭꼭 씹어 먹었다.
하지만 많이 먹지 않았다고 해도 세 명의 성인 남성이 먹는 양이기에 음식을 거의 다 먹어치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