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화산천검 6권(14화)
6장 다음 작전(2)
마음의 검.
나 자신의, 나만을 위한, 나의 인생이라 할 수 있는 찬란한 단 하나의 신검.
미약하게나마 형태를 알 수 있던 그것을 강제로 깨우고 발현하였던 것이 한때는 화였지만, 지금은 복이 되었는지 놀랍게도 이제는 그 모습을 확연히 느끼고 볼 수 있었다.
심검을 다듬었다.
정말로 검신을 갈고닦아 내듯 정신을 집중하여 부드럽고 조용하게, 그리고 진중하게.
조금씩 껍질을 깨고 녹을 닦아 내는 심검은 계속해서 날카로워지고 단단해졌다.
완벽히 깨달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성과가 있었다.
마진천조차 이런 나를 보고는 더욱더 무공에 박차를 가할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북초이와 남문기가 완벽히 치료가 된 것 같긴 하지만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된다고 약선이 말했기에 마을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무렵.
북초이와 남문기가 바깥에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무림맹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사문의 분타에서 연락이 와서 급히 그곳으로 떠나야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약선께도 허락을 맡아서 우리가 무림맹으로 떠나는 날에 다른 방향으로 갈라졌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도착한 무림맹.
이미 우리를 빼고는 모든 사람들이 도착을 하였기에 성대한 환영을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이 거대한 웅장함을, 그리고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은 거목과 같은 진중함을, 부모형제와 다를 바가 없는 사문의 사람들의 모습을 기대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금의환향을 해 버렸다.
아니, 당해 버렸다.
저벅! 저벅!
길을 걸을 때마다 달라붙는 시선들.
직설적이고 정직하며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시선들은 사실 기분이 나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북했다.
한순간에 이런 대접을 받다 보니 뱃속에 무언가가 얹힌 것만 같이 답답했다.
갑작스레 이런 시선을 받는 이유?
간단하다.
나와 신룡들의 활약이 알려진 것이다.
특히나 나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퍼졌던 것이다.
칠사도와 일사도를 쓰러뜨리고, 바로 혈천회의 호법과 싸워 살아남았다.
죽고 싶어 환장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을 사람들이 듣고 열광한 것이다.
죽었다고 알려졌던 나.
이 소문의 향방은 나를 나름 배려한다고 한 도우화 장로님이시겠지.
‘골치 아프군.’
공명심을 아예 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장문인께서는 왜 그렇게 공명심을 탐하고 있는 것이냐고 하셨다.
그렇지만 막상 이렇게 되니 만족감이나 자부심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고 다만 거북함과 답답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농염하고 끈적한 시선이 아니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바로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다.
“시선이 익숙하지 않은가 보지?”
마진천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거북해.”
“처음에야 그렇지. 나중에 가면 익숙해져.”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야.”
이런 시선이 익숙해진다?
내가 보기엔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복에 겨운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옛날로 돌아가고픈 심정이었다.
어찌된 조화인지.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이기적이고 복잡한 사람의 마음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는 너는 익숙해?”
“당연한 말을. 네 정도의 경지는 예전에 밟고 올라선 지 오래다.”
마진천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은 맞는 말인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만하신 반룡의 말대로 곧 익숙해질 거야. 나중에 가면 아마 이런 시선이 없으면 거북해질걸?”
장난스러운 말투는 또 하나가 있다.
우승빈.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마진천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쌍둥이를 보는 듯 판에 박힌 듯한 말투와 행동이었다.
“장난은 그만 쳐요. 지금 청우가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요?”
보다 못한 연화가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우승빈과 마진천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저 피식 의미 모를 웃음만을 내보일 뿐이었다.
“무시하는 거예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이!”
연화는 마진천에게 매일 말로 농락을 당했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능글맞게 대답하고 부끄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듯한 태도이니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종남파의 장문인조차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을 정도인데.
마진천에 대한 잘생기고 예의 바르다는 예전의 호감 어린 표정은 어디가고, 지금의 연화는 마진천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앙칼지게 소리칠 뿐이었다.
“하아, 말괄량이들 같으니라고.”
유혁 사형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말괄량이.
저들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일 것이다.
“얼마나 남았지요?”
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둘은 내버려 두고 사형들에게 물어보았다.
답은 의외로 반대쪽에서 들려왔다.
“얼마 안 남았어. 바로 저기야.”
말한 것은 우승빈.
“왜 저기에 안 끼어드는 거야?”
마진천과 같은 성격에 말투, 행동이라면 쌍으로 연화를 놀리는 것이 지금으로선 맞는 행동일 텐데 우승빈은 끼지 않았다.
아니, 언제나 그러했다.
“난 아리따운 소저들에게는 예의가 있는 남자거든.”
히죽히죽 웃으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 우승빈.
제대로 된 대답을 할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도착했다.”
우승빈의 말대로 얼마 되지 않아 도착했다.
“그럼.”
우리를 안내해 준 선풍각 오칠이 인사하곤 자리를 떠났다.
장문인들의 부름.
우리가 신분을 밝히자마자 수위들은 잠시 기다리라고 해 놓곤 선풍각 오칠을 불렀다.
그리고 선풍각 오칠은 오자마자 장문인들께서 기다리신다고 재빨리 우리를 안내했다.
목적지는 내가 청도 장로님과 함께 갔던 그 건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느껴지지조차 않는 이 거대한 존재감.
가득 차 있어 도리어 부족해 보이는 듯한 이 기괴한 현상.
반박귀진이라는 말이 있다.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경지.
너무도 뛰어나 도리어 평범하게만 느껴진다는 경지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노화를 늦추는 것이 아닌, 시간을 역행하는 반로환동(反老還童)을 한다고 한다.
현 이 무림의 최강자들이다.
반박귀진, 반로환동의 경지에 이르진 못했어도 결코 그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수준이 되지 않는 자들은 반박귀진과 마찬가지로 그 기운을 절대 느끼게 할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이 있는 것이다.
장일 사형이 앞으로 나서며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장일 사형이 입을 열려던 찰나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소란스럽게 소개를 할 필요는 없겠지. 들어오거라.”
장문인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나란히 섰다.
건물의 안에 자리한 자는 아홉 명.
용두방주 천풍걸개만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하나같이 천하를 노릴 만한 거물들.
모르는 자들이 있었다.
다른 건물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구파와 일방의 수장들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
약간만 생각을 해도 저들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나머지 구파의 장문인들이었다.
“아이들이 놀란 것 같소이다.”
가장 가운데 자리에 앉은 구파의 수좌이자 현 무림맹의 맹주, 불타승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자 아홉 명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마치 신기루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운의 수발이 자유롭다.
이 정도나 되는 기운인데도 저렇게나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과연.’
심검을 다듬었다곤 하지만 아직 저들에 비해서는 무척이나 멀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잘 돌아왔구나.”
푸근하게 웃는 불염신니.
그 한없이 자비로워 보이는 웃음에 방금 전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구나. 도우화 장로에게는 약 두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들었는데.”
장문인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북초이와 남문기가 예상외로 무척이나 빠르게 회복하였기에 그렇습니다.”
유혁 사형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 아이가 지금 세간에 소문이 자자한 새로운 신룡이오?”
알 수 없는 아득하고 현묘한 현기가 가득 담긴 듯한 목소리.
어린아이의 것과 같이 맑고 깊은 검은 눈동자의 소유자.
조용하면서도 진중한 분위기.
‘무당의 장문인이구나.’
영선 허성 진인.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와 무당파.
그중 북두 무당의 장문인, 그 이름과 분위기는 많이 들어 보았기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렇소.”
장문인께서 고개를 끄덕이자 영선이 살짝 관심을 보였다.
세상사 모든 것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무관심하게 있는지라 그것이 확연히 보였다.
눈동자가 마주쳤다.
깊고도 깊다.
끝을 알 수 없는 무저갱과 같은 깊은 연못.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하지만 너무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장문인, 검선과는 다르다.
장문인이 화산파 검문, 검으로서 신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한다면 무당의 장문인은 도(道)로써 신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장문인의 눈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정신을 놓을 수는 없지.’
마음을 다잡으며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명도가 관심을 가질 만큼의 자격은 있구나.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본 심성이 착하군. 그렇다고 여린 것도 아닌 적절한 균형이야. 이런 자질은 흔치 않은데 말이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이 무에 있다고.”
고개를 저으며 영선이 눈을 감았다.
더 이상은 할 말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검으로써 도(道)를 닦고자 하는 것이더냐?”
모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내가 보지 못한 구파의 장문인은 해남파와 점창파, 그리고 곤륜파의 장문인.
무당파 장문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감히 측량할 수 없을 만큼의 현기를 담고 있는 목소리.
점창파와 해남파가 도를 닦을 리는 없으니 곤륜파의 장문인인 무상도일 것이다.
질문의 요지는 화산파 도문이냐, 검문이냐 어디인지 말하라는 것이었다.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시간도 없었거니와 별로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지금까지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혈천회와의 싸움이 끝나면 평소의 생활상으로 돌아온다.
사부와 같이 취운암에서 생활하고, 수련하는 편안한 일상.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까마득히 옛날의 일인 것만 같은 그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직은 생각하지 말자.’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칠사도 중에는 오사도와 사사도가 남았고, 세 호법이 모두 존재하고 회주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혈천회의 대(隊)와 단(團)도 아직은 건재하다.
지금은 언젠가 돌아갈 일상을 그리워하고 그려가기 전에 현재의 상황을 도모하고 대처하며 헤쳐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그렇더냐? 도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조언을 구하거라. 내 기꺼이 도와줄 터이니.”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곤륜파의 장문인, 무상도가 말했다.
다른 문파의 이름을 날리고 있는 후기지수일진대 이런 말이라니.
무척이나 커다란 호의였다.
“그러하겠습니다.”
포권을 취하며 말하자 무상도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