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화산천검 6권(13화)
5장 치료(3)
저벅! 저벅! 끼익∼ 털썩!
약선은 말없이 오른쪽의 방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왼쪽의 방 안으로 들어가 웃옷을 벗고 침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약선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솔솔 풍겨 오는 탕약 냄새.
손에 들고 있는 사발 안의 검은색의 탕약에서 나는 냄새였다.
“쭉 들이키거라.”
사발을 받아 들고 마셨다.
‘읍!’
역시나 적응이 되질 않는 맛이다.
엄청난 고통에도 익숙해졌다고 할 만한 나지만 이 쓴맛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는다.
뱉어 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끝까지 다 삼켰다.
“나도 내 약이 쓴 것은 알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쓰다는 표정을 지으면 내가 미안해지잖느냐?”
살짝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푸는 약선.
피식 웃은 후 뜨거워지는 뱃속의 기운을 느끼며 눈을 감고 침상에 몸을 뉘었다.
푹! 푹!
빠르고 정확하게 한 침 한 침, 혈에 침이 꽂혀진다.
대체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약선이 침을 놓으면 온몸이 편안해지고 기운이 침의 인도에 따라 도도히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침이 모두 꽂히고 잠이 들려 할 무렵 다시 침이 회수되었다.
신속히 몸속에서 빠져나가는 침들.
인도에 따라 도도히 흐르던 기운들도 다시 하단전으로 돌아와 잔잔히 출렁거렸다.
“오늘은 전보다 일찍 끝났군요.”
한숨 자고 나서야 침을 회수했는데 오늘은 잠에 들기도 전에 침이 회수되었다.
“치료하는 방법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전보다 몸이 좋아졌는데 예전과 같은 치료 방법을 고수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오늘은 할 말이 있다.”
딱딱한 표정과 강렬한 눈빛.
인자한 표정과 부드러운 눈빛의 전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예.”
“내가 하려는 말은 네 몸 상태다.”
“몸 상태요?”
“그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지. 아직 완벽히 너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 네 경지를 뛰어넘는 무언가에 손을 댄 것 같구나.”
심검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 때문에 몸이 확실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기운은 반대로 흐르지, 가끔씩은 서로 충돌하며 반발하기도 했었다.
“그럴 리가…….”
운기를 했을 때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분명히 평소와 같이 자하심법의 구결에 따라 기운이 움직였는데?
“네가 자고 있을 때에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무척이나 미약한, 거의 느끼지도 못할 만큼의 양이 움직이고 있기에 네가 몰랐던 것일 것이다.”
“…….”
정상에서 벗어난 역(逆).
반대되는 움직임.
아무리 미약한 양이라고 해도, 정종의 심법을 익힌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독이라 해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기운이 움직인다면 혈도가 갈가리 찢겨도 모자란 일이건만 어찌된 일인지 아무런 피해도 없더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천천히, 네가 할 수 있는 곳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가거라. 너무 높은 곳을 바라면 올라가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다음에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 몸조리를 잘하거라.”
“네.”
약선의 당부.
잘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천아에 대한 이야기도 할 것이 있다.”
“마진천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아이를 잘 챙겨 주거라. 불쌍한 아이다. 하늘의 장난으로 많은 시기를 받았고, 요절을 할 운명이었다. 다행히 나와 만나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예전의 기억 때문인지 많이 삐뚤어져 버린 성격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것이 그 아이의 진짜 마음은 아니다. 사실은 무척이나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마음에 장벽을 세우고 물을 끼얹고 차갑게 얼려 버린 것일 뿐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란 것은 평생 동안 하나를 만나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천아 또한 너를 마음에 들어 하고, 너 또한 천아를 마음에 들어 하니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고 아껴 주어야 할 것이다.”
“예.”
마진천이 사실은 따뜻하고 여리다는 것은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삐뚤어졌다는 얘기 때문인지 마음이 흔들렸다.
친구.
마음이 맞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어야 할 반쪽.
나의 목표이자 경쟁자.
“낯간지러운 소리를 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예, 조금 그랬습니다.”
“허허, 알았다. 내가 얘기할 것은 이것이 끝이다.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니 네가 선택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지. 내가 이렇게 주제넘게 참견하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 이만 나가 보아도 된다.”
“치료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은 더 안정을 취해야 하고, 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볍게 붕대로 졸라매기만 해도 치료가 될 상처를 내버려 두어 한 달을 치료해야 할 정도로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그렇지요.”
내 상처는 약선의 표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아마 내버려 둔다면 한 달이 아니라 반년을 치료해도 모자라겠지.
“그건 그렇고, 더 이상 이 마을에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않겠느냐?”
“피해요?”
“이곳에 있는 무사들이 몇 명이더냐. 조용하고, 무림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기에 내가 이곳에서 은둔하고 있던 것이다. 칼을 차고 있는 사람도 한 달에 한 명 정도를 봐야 많이 본 정도지. 그런데 몇 백 명의 무사들이 이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민초들이 얼마나 괴롭고 두렵겠느냐?”
“그렇군요.”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관심의 밖에 두고 있던 부분이다.
“구파의 무인들이니 분명히 민초들을 배려해 바깥을 잘 돌아다니지 않고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인 바, 어쩔 수 없이 바깥을 돌아다닐 테고 그렇게 된다면 이곳의 민초들에게 많은 피해가 가겠지. 무림맹은 혈겁을 억제하기 위해, 민초들을 위해 발동한 것이라 들었다. 그런데 그런 무림맹의 무인들이 민초들을 두렵게 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저 두 아이의 치료도 끝났으니 최대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되돌려 보내야 할 것이다.”
“예.”
맞는 말이다.
급한 불은 껐으니 더 이상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무림맹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맞는 수순이다.
“사람들을 불러야 하는데, 네가 갔다 와 주겠느냐?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 잠이나 자야 할 것이 뻔한데.”
“예,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말하곤 바깥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아직까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제 나온 거야? 이제 치료가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어?”
“응, 아직 치료는 안 끝났어. 오늘 나온 건 내가 나오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 것일 뿐이지.”
연화의 물음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온 거지? 아직 치료를 받을 시간이 아닌가?”
지금까지의 치료 시간과 비교한 것인지 유혁 사형이 정확히 지적했다.
“많이 치료가 되었나 봅니다. 이제부터는 그렇게 오래 치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야 하는데 장로님들이 어디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장로님들을 찾는 거지?”
장일 사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더 이상 몇 백 명이나 되는 무인들이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적당한 수만을 남기고 모두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약선께서 말하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장로님들을 모셔 오지. 유혁, 따라와라.”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리거라.”
“예.”
파팟!
땅을 박차고 공중을 날아오르듯 움직이는 두 사형.
“내가 말씀드리지. 둘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마진천이 말하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청우야, 할 말이 있어.”
모두가 떠나자 연화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뭔데?”
주저하듯 입을 연 연화.
“맹세해 줘. 더 이상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건 이미 두 사형도 얘기했잖아? 그것 때문에 그렇게 주저한 거야?”
“장난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야. 너 대답했을 때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았어. 칠사도와 일사도를 쓰러뜨리고 사사도에게 도주한 뒤에 호법과 싸웠다고? 죽고 싶지 않고서야 그게 말이나 되는 행동이야?”
“그건…….”
사실 지금 생각해 보니, 죽고 싶지 않고선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한 고수들.
그런 자들과 쉬지 않고 세 번이나 싸웠으니 말이다.
“그러니 맹세해. 무모한 짓은 하지 마. 더 이상 네가 죽었다는 그런 소문을 듣기는 싫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눈이다.
어찌 부정의 말을 꺼낼 수가 있겠는가?
“……알았어.”
“그래, 약속했다?”
꽃망울이 활짝 펴지듯 환하고 밝게 미소 짓는 연화다.
싱그러운 미소였다.
“아, 오고 계신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은 줄어든 수의 장로님들과 속가 장문인들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약선께서는 안에 계시느냐?”
“예, 안에 계십니다.”
“지금부터 얘기를 나눌 터이니 듣고 싶다면 안으로 같이 들어가자꾸나.”
“아닙니다. 제가 들어가 봐야 할 말이나 있겠습니까? 그저 가만히 자리나 지킬 뿐이겠지요.”
“흠, 그렇더냐? 그렇다면야 할 수 없지.”
얘기를 끝내고 도우화 장로님을 필두로 나머지 장로님들과 속가 장문인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장로님들이 들어가셨으니 그럼 조금은 시간이 날 것 같은데 바깥이라도 구경할래?”
“그래, 하지만 사람들이 무서워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돼.”
“나도 안다고.”
연화가 혀를 내밀며 내 어깨를 툭 치고는 가벼운 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해? 빨리 와.”
“알았다고.”
6장 다음 작전(1)
결국 이곳에 남기로 한 것은 나를 비롯한 신룡들뿐이었다.
약선이 그렇게 주장하였고, 다른 장로님들도 그렇게 생각해 왔던 것인지 곧바로 수긍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내가 치료를 끝낸 후 얼마 되지 않아 우승빈이 찾아왔고, 그리고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자 북초이와 남문기의 치료가 끝났다.
애초의 예상과는 다른 무척이나 빠른 차도가 있은 것이다.
두 달을 예상했건만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게다가 완벽한 것도 모자라 쓰러지기 전보다 더욱 뛰어난 기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약선 또한 놀람을 표하였다.
가끔씩 들어가 보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그때 어떠한 깨달음에 대해서 곱씹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나 또한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연화와 같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마진천과 두 사형, 그리고 우승빈과 같이 떠들며 지내곤 했지만 황신과의 싸움에서 나의 한계를 깨달은 바 그저 놀고만 있기에는 나의 조바심이 무척이나 컸다.
몸을 움직이며 훈련하는 시기는 지났다.
특히나 심검을 깨달은 뒤로는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마음속으로 명상을 하는 것이 진취에 더욱더 뛰어난 효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