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37화 (137/175)

# 137

화산천검 6권(12화)

5장 치료(2)

‘하아∼’

“그만해라, 연화. 그리고 반룡도 이런 순간엔 조금 자제해 주었으면 하오.”

유혁 사형이 한숨을 내쉬며 중재에 나섰다.

“……네.”

“뭐, 연화 소저가 먼저 굽혔으니 나도 자제하겠소.”

마지막까지 말을 멈추질 않는다.

연화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연화가 진정이 되자 장일 사형이 앞으로 나섰다.

“그만 떨어지는 것이 낫지 않겠나?”

장일 사형이 지적하자 연화가 곧장 대답했다.

“싫어요. 조금만 더 이러고 있을 게요.”

“뭐, 그렇다면야…….”

별로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닌지 장일 사형은 그냥 대충 넘어갔다.

“일단 살아 있어서 다행이구나. 죽었을 거라 믿진 않았지만 그래도 혹여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예. 하지만 그땐 정말 저도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천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면 소문이 사실이 되었겠지요.”

안겨 있는 연화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살아 있으니 그렇게 장난스럽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죽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목숨을 소중히 여겨라.”

“네.”

목숨을 소중히 여겨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신과의 동귀어진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마음속으로 뜨끔했다.

“그건 그렇고…… 마진천과 싸운 자가 황신이라고?”

눈가에 비장함이 감돈다.

그래, 황신은 나만의 원수가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무림맹 최후의 적 중 하나.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그리고 나와 무진 사부의 원수이기도 하다.

“예, 놓치긴 했지만요.”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을 놓쳤다고 해야 하나?

아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이 되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별수 없는 일이지. 아무리 우리가 포위했다고 해도 임무를 끝낸 뒤 얼마 되지 않아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이라 피곤했었으니. 아마 싸웠다면 반 이상이 당했을 거다.”

장일 사형의 입가에도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적이지만, 너무나 거대한 적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 상대해도 벅찰 만큼.

“아, 그리고 기쁜 소식이 있다.”

“예? 기쁜 소식이요?”

“남궁세가와 황보세가가 싸움에 참여한다고 하더구나. 게다가 사천당가 또한 지금까지처럼 소극적으로 병력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남궁세가와 황보세가의 사람들이 오는 것에 맞추어 많은 사람들을 보낸다고 들었다. 천하제일세가인 남궁세가와 협으로 이름 높은 황보세가, 그리고 독과 암기로 이름 높은 사천당가가 이제 적극적으로 힘을 빌려 준다고 했으니 더 이상 많은 피해는 없을 것이다. 이 싸움을 빨리 끝낼 수 있게 되었어.”

‘드디어 움직이는 것인가?’

피해의 복구와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

아무리 많은 문파와 세가들이 달려들었다고는 하지만 오대세가란 자리는 노름으로 따먹는 그런 자리가 아니다.

그만큼의 힘과 여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혼란이 있었다고 해도, 반년이 넘는 시간이라면 원래 같은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일 것이다.

거기다 사천당문의 제대로 된 지원까지.

아마도 황보세가의 움직임에 맞추어 같이 움직일 예정이었나 보다.

‘다행이다.’

하나같이 쟁쟁한 지원군들.

이렇게 된다면 이 싸움은 쉽게 끝낼 수 있다.

사사도와 오사도, 그리고 세 호법과 같은 고수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이 없는 많은 전투는 우리가 손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실력의 고수가 있다곤 해도 그들이 매 싸움마다 나오지 않는 이상 이 전력의 차를 뒤엎긴 힘들 것이다.

끼익∼

생각을 마치는 동시에 바로 옆의 문이 열렸다.

한약 냄새와 쾌쾌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왔다.

“치료는 끝났습니까?”

장일 사형이 공손히 물었다.

내가 운기조식을 끝내고 나서 우승빈이 쓰러졌다.

북초이와 남문기, 우승빈 모두가 쓰러진 상황.

완벽히 치료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운기조식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시급을 요하는 중한 상태의 그들.

이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분명히 죽을 정도의 상세였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근처의 의원에 가서 이들을 맡겼었다.

하지만 우승빈은 몰라도 북초이와 남문기는 속수무책이었다.

외상은 모두 치료했지만 내상과 해독은 불가능했다.

의원에게서 북초이는 초령과 얘기를 하던 중에 독들을 한쪽 구석에 몰아넣고 내공으로 봉인을 했고, 남문기도 무의식중에 자신이 살려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북초이와 똑같이 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시간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시급을 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저 내공의 봉인이 풀리기라도 한다면, 내상이 치료되지 않았으며 의식 또한 없는 저 둘은 분명히 죽을 것이라는 의원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승빈은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기에 사람들을 남겨 깨어나기를 기다리게 한 다음, 전속력으로 달려 마을과 마을을 전전하던 중 다행히 한 의원을 만날 수 있었다.

약선(藥仙).

오선 중 가장 신비로운 자로 알려졌으며, 의학에 있어서는 수위를 다툰다고 알려진 그분.

내가 왕정치와의 싸움에서 독에 중독되어 마진천에게 받아먹은 단약이 바로 약선의 것이다.

정말로 우연히도, 천운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우연히 만난 분이다.

의원을 찾으러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길을 달리던 중 마진천이 약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곤 곧바로 약선에게 북초이와 남문기의 치료를 부탁하였다.

이 사건에서 모두가 놀랐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약선의 얼굴을 알고 있으며 친분이 있는 듯 마진천이 약선에게 인사를 하였고, 약선이 오랜만이라 대답한 것이다.

이름 있는 문파의 넉 달 예산만 한 값어치의 약선의 선단을 그냥 내게 건네준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싸움이 끝나고 이주일.

드디어 북초이와 남문기의 치료가 끝난 것인지 약선께서 나오셨다.

조금은 피곤한 기색으로 약선이 대답했다.

“지독히도 당했더구나. 독은 대체 어떤 식으로 배합했는지 해독하는 데 삼 일이나 걸렸고, 내상은 곧 죽어도 하등 이상할 바가 없는 상태였다.”

그 정도의 상세였다니.

게다가 약선이 해독하는 데 삼 일이나 걸렸다.

혈마강시의 독이 그만큼 엄청났다는 뜻이다.

“다행히 들끓던 진기도 안정을 시켰고, 혈도도 보했다. 아마 이 상태로 내가 처방한 탕약을 매일 마시며 두 달 정도 안정을 취한다면, 조금 손상을 입은 선천지기를 빼고는 완벽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마진천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 오만한 마진천이, 누구에게도 공손하지 않을 것 같던 마진천이 고개를 숙이다니.

정말 놀라 버렸다.

“허허, 아니다. 의원으로서 환자를 치료한다는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인데 감사받을 일이 뭐가 있느냐? 그렇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거들랑 내 치료를 잘 따라와 준 저 아이들에게 해 주거라.”

겸손하며 자신의 일에 한 점 부끄럼 없다는 태도.

오선.

다섯 신선이라 불리는 자 중 하나다운 분이시다.

“그건 그렇고…….”

주저하는 약선.

‘왜 그러시지?’

마진천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우리가 있기에 말을 하지 못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말하셔도 됩니다. 믿을 만한 자들이니까.”

마진천의 말에 약선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믿을 만한 친구들을 얻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우며 소중한 일이지. 좋은 일이구나. 그래, 구음절맥(九陰絶脈)을 치료한 데에 대한 후유증은 없는 것이냐?”

“구음절맥?”

“그 저주받은 체질이 왜?”

구음절맥.

엄청난 오성과 끝없는 내공을 지니게 해 주는 대신 천천히 몸이 죽어 가는 특이한 체질이다.

하늘이 내려 줬다는 재능을 얻는 대신 무척이나 짧은 수명을 갖게 하는, 하늘의 장난, 심술이라고 불리는 체질.

마진천이 바로 그 구음절맥의 체질이라고?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이지?

“예. 더 이상은 없습니다. 머리가 조금 나빠지고, 내공이 조금 줄어든 것 빼고는 아무런 부작용도 없습니다.”

“그거 다행이구나. 나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는데 겨우 그 정도의 부작용밖에 없다니 말이다.”

“약선께서 치료하지 못하신다면 이 세상 그 누가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을까요?”

“조금 거북한 칭찬이로구나. 성의도 있고 만독자(萬毒者)도 있는데 말이다.”

“잠깐만, 마진천. 그러면 너 구음절맥이었다는 소리야?”

내 물음에 마진천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선께서 치료를 해 주셔서 이렇게 살아 있는 거고?”

“그래, 예전에 무척이나 어렸을 때 죽어 가고 있던 나를 치료해 주신 분이, 바로 이분이시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요절하지 않을 수 있었고, 구음절맥의 영향으로 엄청난 내공과 천재라고 칭할 만한 오성을 얻은 것이지.”

‘아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마진천의 비정상적인 강함이 이해가 간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엄청난 무위.

예전부터 그렇게 강했던 이유는 이런 이유에서였다.

“뭐야, 그럼 네 실력은 타고난 거잖아?”

“후천적인 노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너희의 노력에 비해서는 타고난 것이라 할 수 있지.”

마진천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똑같은 신룡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앞서갔던 마진천.

그런데 그런 것이 모두 타고난 것이라니.

“모두들 오해하고 있는 것 같구나. 너희들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했다면 이 아이는 매일매일을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구음절맥이 완벽히 치료된 것은 바로 작년. 너희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아이야말로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약선의 말.

그 말을 듣자 모두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했다.

질투했다는 생각, 실수했다는 생각, 미안하다는 생각.

복잡한 마음이 표정에 나타났다.

마진천이 피식 웃었다.

“뭐, 이해하니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원래 뛰어난 자는 모두에게 시기를 받는 법이니.”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느낄 수 있었다.

씁쓸한 감정을.

짝!

“분위기가 요상하게 변했구나. 이 일은 나중에 마진천 네가 잘 설명하거라. 그리고…….”

약선의 눈이 나에게 향했다.

“안으로 들어오거라.”

“네.”

치료에 대한 얘기일 것이다.

나 또한 심한 상처를 입은 바.

북초이와 남문기같이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침을 맞고 탕약을 먹으며 다른 방의 침상에 누워 안정을 취했었다.

내가 이렇게 바깥에 나온 것은 너무 좀이 쑤시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인데 그동안 얘기 한 번 못했기에 해후를 풀고 싶다고 약선에게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북초이와 남문기의 급한 불은 껐다.

이젠 나와 같이 천천히 치료를 해야 하는 것만이 남았다.

아직도 안겨 있는 연화를 떼어 내고 살짝 웃어 준 뒤 다른 사람들에게도 웃어 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약 냄새와 탕약 냄새가 뒤섞여 무겁고 쾌쾌한 냄새가 나는 것과는 달리 안은 무척이나 깨끗했다.

바로 앞쪽에 있는 커다란 방이 남문기와 북초이가 치료를 받는 방이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방이 내가 그동안 치료를 받았던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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