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화산천검 6권(11화)
4장 구조(3)
“칫!”
이것만은 어찌할 수가 없는지 마진천이 입술을 깨물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콰아아앙!
벽력탄이라도 터진 듯 주변 일대가 크게 파이며 땅거죽이 벗겨지고 모래먼지가 솟구쳤다.
그런데 이런 공격이 한 번이 아니다.
엄청난 위력의 기술.
분명히 부담이 심한 기술일진대 황신은 반동에 의해 다시 공중으로 솟구친 몸으로, 몸을 타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창을 잡고 던졌다.
쾅! 쾅! 쾅! 쾅! 쾅! 콰아아앙!
일곱 번의 투창.
마진천이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거리를 계산하며 피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의 위력이 굉장했다.
그전의 공격들보다 두 배는 커다란 피해 반경.
마진천에게도, 멀리 떨어져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갔다.
“으아악!”
“크악!”
“컥!”
후두두둑!
솟구쳤던 모래먼지와 함께 떨어지는 누군가의 사지와 살덩이들.
연이어 피안개가 그것들의 주변을 둘러쌌다.
‘어떻게 이런 위력이…….’
순간적인 파괴력도 굉장하지만 그런 공격을 일곱 번이나 펼쳐 낸 황신이 더 굉장하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그것보다 두 배는 더 뛰어난 위력의 공격을 하지 않았던가?
혈천회의 호법.
칠사도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큭! 엄청나군.”
왼쪽 팔뚝이 피에 절어 있었다.
그리고 공격을 막아 냈을 검은 고통스럽다는 듯 계속해서 울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귀갑을 두 번밖에 펼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이라니. 막아 내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었겠군.”
입술 근처로 튄 피를 거칠게 훑어내며 마진천이 이를 갈았다.
“상처 때문에 쉽게 이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곤란하잖아.”
반 정도가 패여 뼈가 드러날 정도의 커다란 상처.
황신의 상처와 마진천의 상처는 이것으로 똑같아졌다.
“애송이에게 질 정도로 약하진 않다. 회에서 신룡 중에서 가장 예의주시하고 있는 반룡이라곤 하지만 내겐 무리다.”
“하지만 내가 지더라도 넌 빠져나가지 못해. 나 말고도 신룡은 세 명이나 더 있고, 건재한 화산파 무인들 육백이 널 포위하고 있으니.”
“많은 토끼가 사자를 둘러쌌다고 사자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룡.”
“칫.”
사실 지금 황신이 도망가고자 한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진천은 지금 다쳐 버렸고,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그리고 연화와 도우화 장로님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방위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빈틈을 뚫고 도망가고자 한다면 황신은 너무나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황신의 실력 앞에서는 매화검수나 속가의 일반 무인들이나 매한가지였다.
창을 두 번 휘두르느냐, 한 번 휘두르느냐의 차이일 뿐.
“그래서, 혈천회의 잘나신 호법께서 싸우다 말고 도망치겠다는 얘기인가? 그것도 본거지를 지키고 있지도 않고 바깥으로 나와 설쳐 대다가?”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은 없다.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서 계속 싸우는 것은 미련한 일일 뿐이지.”
실력에 따른 오만함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냉철한 판단력이 돋보인다.
가능성이 없는 싸움에서는 굴욕도 참아 내고 기회를 노리는 성격.
적으로서 싸우기 까다로운 무인이었다.
“화산의 자하, 질긴 악연은 다음번 만남에서 끝내도록 하지. 그때에는 마음의 검이 잘 연마되었기를 빈다.”
팟!
말을 끝내고 황신이 질풍과도 같이 뒤로 돌격했다.
“막아서지 마! 길을 내줘라!”
마진천의 다급한 말에 황신의 앞에 서 있던 무인들이 주춤주춤 옆으로 물러났다.
그 틈으로 황신이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놓친 적의 수뇌부.
허망할 수도 있다만 이렇게 얼마 안 되는 사상자로 상대편의 호법을 도주시켰다면 대단한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놓쳤다.’
그것도 마진천에게 도움을 받고, 사문의 사람들이 휘말려 죽어 버린 것을 눈앞에서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구조를 받았을 뿐이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아무리 두 명의 사도와 싸운 후라고 해도.
아무리 깨달음을 완벽히 습득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무리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았다고 해도.
도움을 받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강해졌는데, 분명히 강해졌는데.
죽음의 위기에 빠지고,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왜…… 이렇게 약한 거지?’
대체 뭘 더 얻어야 되는 건가.
심검을 다듬는 것? 깨달음을 완벽히 습득하는 것? 아니면 자하십육검을 더 다듬는 것?
대체 뭘 더 해야 원수를 쓰러뜨리고, 이 허망한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인가?
“뭐하고 있어? 위협도 없어졌으니 빨리 운기조식을 하라고.”
마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뭘 더 하라는 말인가.
다시 몸을 회복해도, 무엇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허망한 마음만이 들 뿐인데.
순간 눈앞에 찰랑이는 흑발과 함께 부드러운 향기가 느껴졌다.
화산에서 이별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샌가 연화는 어렸을 때의 치기 어린 모습은 사라지고 총기가 넘치고 성숙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는 여자로 변해 있었다.
짝!
오랜만에 본 친구의 모습을 더 지켜보기도 전에 고개가 옆으로 젖혀졌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뭐하고 있어! 그렇게 다쳤으면서 운기조식도 하고 있지 않고!”
앙칼지게 소리치는 연화.
순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정신이 멍해졌다.
“어서 상처를 치료하라고!”
“아…… 알았어!”
아까 전의 느낌은 어디로 갔는지.
무의식적으로 연화의 말을 따라 운기조식을 취했다.
5장 치료(1)
“정말로 오래간만이구나.”
도우화 장로님께서 말하셨다.
그래, 정말로 오래간만일 것이다.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반년 전에는 죽었다고 소문이 나 더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셨을 것이고, 드디어 만났는데 시급을 요하는 일 때문에 운가장에서 벗어난 지 이주일이나 되었는데도 얘기를 나누지 못하였으니.
“그간 별래무양하셨습니까?”
“무림맹이 발동되기 전까지 본산에서 밥만 축내던 늙은이가 무슨 변고가 있었겠느냐? 그저 네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던 것을 빼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살짝 머리를 쳐 주고는 허허허 웃으셨다.
어르신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것은 정말로 사과할 만한 일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서 죄송합니다.”
“그래, 사정이 있었겠지. 네가 그런 아이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네 사부인 무진에게까지 얘기하지 않고 사라진 것은 너무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몰라도 최소한 무진에게는 얘기를 해 줬어야 했는데.”
“그건…… 정말로 사부님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울컥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치달아 올랐다.
사부님의 얘기를 하는데, 안타깝다는 느낌이 절실히 드는 말투였다.
“나에게 사과할 필요 없다. 이번 일로 네 이름이 세간에 퍼질 터이니 그걸 들으면 네 사부도 꽁지가 빠지게 무림맹으로 달려오겠지. 그때 네 사부에게 사죄를 하여라.”
“예.”
“허허, 그나저나 무척이나 놀랐단다. 칠사도를 쓰러뜨리고, 두 신룡과 같이 싸웠다고는 하지만 강시로 되살아난 일사도를 쓰러뜨리다니 말이다. 그전의 육사도도 네가 쓰러뜨린 것이라고 들었다. 이건 정말로 놀랄 만한 성과야.”
드디어 그간의 해후를 풀 시간이 났기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화산에서 내려간 뒤의 행보부터 지금까지의 얘기.
공천패의 얘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그것을 빼고는 모두 다 이야기했다.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장로님이 앞으로 나섰기 때문에 나에게 직접 말을 걸지는 않고 그저 옆에서 내 얘기를 듣기만 하였다.
“그저 전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도 지나치면 안 좋은 법이다. 자부심을 가져라.”
하지만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운을 빼면, 내 실력만으로 쓰러뜨린 자라고는 칠사도 희월뿐.
그것도 우승빈과 싸운 후의 희월이다.
‘정말로 내가 실력이 높아지긴 한 것일까?’
차츰차츰 의문이 든다.
난 그저 자만했을 뿐이 아닐까?
나 혼자 다른 자들의 겉모습만 보고 나와 비교하며 자부심을 키워 온 것은 아닐까?
사실은 나는 약한 것이 아닐까?
적들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배려를 받아들이며 기회를 이용해 이긴 것은 아닐까?
“화산에 또 다른 신룡이 탄생했구나. 아니, 그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인 신룡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구나.”
기쁘신 것인지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리신다.
“허허, 그래. 내가 너무 시간을 빼앗은 것 같구나.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을 터인데.”
“아닙니다.”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다. 내 이만 물러날 터이니 서로 얘기를 나누어라.”
도우화 장로님이 어깨를 두드려 주시고는 이내 자리를 뜨셨다.
따뜻한 온기와 묵직한 손.
심란한 마음과는 반대로 편안한 느낌.
살짝 웃음이 나왔다.
“청…….”
“괜…….”
“야!”
모두가 동시에 입을 떼었다.
그중에서도 발군은 연화.
그동안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것과는 달랐다.
불문곡직하고 크게 소리치며 다가와 내 뺨을 때렸다.
찰싹!
‘윽!’
따갑다.
검에 베이기도, 권각에 당한 적도 많건만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아팠다.
멍하니 고개를 돌려 연화를 보자 이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운기조식을 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앙칼지게 소리치고 뺨을 때렸건만 그때와는 달랐다.
맑고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는 물방울.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웃겨? 지금 대체 뭐가 웃긴 건데? 내가 얼마나……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마지막에는 목이 메어서인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소리가 작아졌다.
“미안해.”
고개 숙여 말하자 연화가 달려들어 와락 안겼다.
“흑…… 걱정했잖아. 정말로 죽은 건 아닐까 걱정했다고. 사람들이 네 얘기를 할 때마다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알아? 다시는 그러지 마. 알았어?”
“응…….”
흑단 같은 머릿결 사이로 얼굴을 묻으며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축축이 젖어 가는 앞섶.
차갑게 얼어가던 마음이 따뜻한 봄바람에 녹아 갔다.
연화가 조금씩 진정되어 갈 무렵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이거. 너무 뜨거워서 끼어들 틈도 없군.”
뭐가 그렇게 불만인 것인지 마진천이 투덜거렸다.
“시끄러워요. 청우가 없어졌다고 남궁세가를 부수러 가겠다며 소란을 피웠던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연화가 갈라진 목소리로 앙칼지게 소리치자 마진천이 능글맞게 웃었다.
“내가 그런 말로 부끄러워할 것 같다면 큰 오산이오, 연화 소저. 친우의 서거 소식에 분노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으으……. 예전엔 몰랐는데 만나 보니 너무 능글맞아.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더 능글맞고 오만해지고 있어. 가끔은 짜증 날 지경이야.”
“…….”
연화의 말대로다.
시간이 갈수록 더 능글맞아지고 오만해진다.
왜 저렇게 삐뚤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말 모를 지경이다.
“누군 아닌 줄 아시오? 처음 만났을 때는 차분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나 보니 말괄량이여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시오?”
“뭐라고요?”
“틀린 말이오?”
“이이…….”
가슴이 뭉클하던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이 마진천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