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33화 (133/175)

# 133

화산천검 6권(8화)

3장 만나다(3)

‘우승빈?’

분명히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얘기했던 것 같은데?

아니, 그것이 거짓말이었더라고 해도 상처는 치료하고 온 것인가?

“오른쪽이구나.”

“우와, 어떻게 알았대?”

우승빈이 방정맞게 호들갑을 떨면서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남문기의 옆에 나타났다.

“이곳은 나의 공간. 내가 펼친 사법진(邪法陣)의 안에 들어왔으면서 내가 눈치를 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라면 한심하다고 말해 주지.”

“차가워라. 얼음도 이것보단 따뜻하겠다.”

빙글빙글 웃으며 능글맞게 대답하는 우승빈.

초령의 미간이 좁혀졌다.

“우가장의 마지막 생존자, 우승빈. 살수로서의 능력으로는 칠사도 희월과 비슷한 정도. 암습을 당한다면 최소한 팔다리 한 개 정도는 잃어야 될 정도의 실력.”

“오오, 회의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흑풍을 맡고 있는 사사도에게 그런 평가를 받다니, 이거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더 능글맞아졌다.

‘아니, 다쳤다는 것을 감추려는 건가?’

상처는 모두 치료가 되어 있다.

지혈도 되어 있고, 옷도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내상을 짧은 시간 안에 치료하기는 무리다.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

대체 무슨 생각으로 온 것일까?

“다친 것을 숨기려 할 필요는 없단다. 희월과 싸우다 다쳤다는 것은 아니까.”

“쳇. 뭐야, 알고 있었잖아?”

투덜투덜거리는 우승빈.

“구주팔황 전체라면 몰라도 호북과 호남만이라면 그 누구도 우리의 정보력을 따라오지 못해.”

자신감 있게 내뱉는 말.

우승빈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호오∼ 정말 그런가?”

“무슨 뜻이지?”

성격적으로 우승빈과는 맞지 않는 듯.

초령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담겨 있었다.

우승빈이 살며시 웃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선택지 모두 잘못된 결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네?”

“잘못된 전제? 죽는다는 것 말인가?”

북초이의 말에 우승빈이 남문기를 들쳐 업으며 답했다.

“그래, 우리는 죽지 않아. 든든한 지원군이 왔거든.”

“지원군? 무슨 헛소리지?”

들어 본 적 없다는 듯한 표정의 초령.

“거짓말도 잘 쳐? 호북과 호남에선 그 누구도 혈천회의 정보력을 따라오지 못한다니 말이야.”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챙! 채챙!

초령이 손짓하자 흑풍 둘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우승빈과 비수를 맞대었다.

“알려 주지. 포위당한 건 우리가 아니라 네 쪽이야.”

싸늘히 내뱉으며 우승빈이 크게 소리쳤다.

“이쪽으로!”

콰아앙!

다친 상태로 이 진을 부수기에는 무리.

우승빈이 대신 벽을 부수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터엉!

크게 진각을 밟으며 쫓아 나갔다.

“멈춰!”

뒤쪽에서 초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흑요석과 같이 빛나는 새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른 것이라 생각하지. 쫓아가지 마라.”

흑풍들의 당혹스럽다는 듯 흔들리는 눈동자.

그 모습을 뒤로하고 일단 사뿐히 착지했다.

턱! 파앙!

내가 내려온 것을 확인하자마자 달려 나가는 북초이.

북초이는 상처를 입었고, 우승빈은 남문기를 들쳐 업은지라 평소의 속도가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도주하기엔 그것으로 충분했다.

건물 주변을 둘러싸던 해남파와 점창파의 무인들은 없었다.

왜도를 든 무인들만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 이곳에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해남파와 점창파의 사람들은 지금 창마대와 싸우고 있어. 아마 밀리고 있겠지.”

“그런데 어째서 우리가 살 것이라 단정한 거야?”

욱신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달렸다.

“말했잖아. 포위당한 건 저쪽이라고. 지금쯤이면 아마 도착했을 거야.”

“……?”

“여기는 호북, 그리고 운가장은 호남으로 들어가는 길목과 지척이야. 게다가 반룡과 세 꽃, 화산파의 사람들이 임무를 끝내고 무림맹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지.”

“설마……?”

“정말로 운이 좋았어. 감이 좋지 않아서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천천히 달리고 있는데 그 오만한 용과 마주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니까? 상황을 얘기해 주니까 사람들을 수습하고 온다고 했어.”

정말로 운이 좋았다.

이렇게 빠져나갈 틈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줄기 빛이라니.

우승빈, 정말로 큰일을 해 주었다.

“큭!”

하지만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일 뿐.

아직 완벽히 빠져나간 것이 아니다.

특히나 이 몸.

정신력으로 버티곤 있다지만 점점 축축 늘어지고 고통이 더더욱 심해져만 간다.

‘시간이 얼마 없어.’

눈앞이 흐려져 간다.

눈을 가늘게 떠서 뚜렷하게 보려고 하고 있건만 흐려지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탈출도 못 하고 기절해 쓰러질 판이다.

북초이, 우승빈도 좋지 않다.

북초이는 잠력까지 끌어다 쓴데다가 달리면서 독을 제어해야 한다.

혈마강시의 독, 절대 만만한 독이 아니다.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승빈.

외상을 모두 치료했다곤 하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이지만 내상은 아니다.

아마 지금도 무리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찰박!

눈가에 튄 물방울에 눈이 감겼다.

앞에서 날아온 물방울.

땀인지, 핏방울인지 알 수가 없다.

손으로 훑어 내고 정신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얼마 남지 않았어. 힘내라고.”

시기 적절히 들려오는 우승빈의 말.

‘그래, 얼마 안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힘이 난다.

터엉!

마지막으로 크게 힘을 내 땅을 밟고 앞으로 날아가듯 전진했다.

보인다.

뭉클뭉클 솟아오르고 격돌하는 두 커다란 기파가.

“막아라! 아직 신룡들이 나오지 않았다! 싸움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말주변은 없지만 강렬한 위압감을 주고 호기를 끓어오르게 하는 엄수사였다.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듯 말없이 계속해서 검을 겨누고 휘두르고, 찌르는 두 무리.

살짝 뒤를 돌아본 천선자 이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왔다! 더 이상 방어를 할 필요 없다! 밀어붙여!”

이어서 돌아본 엄수사가 우릴 발견하곤 크게 소리쳤다.

우와아아!

처음에 들어온 수에 비해서 무척이나 적다.

천 백여 명이라는 엄청난 수가 삼 백여 명, 삼분지 일도 채 남지 않았다.

그만큼 격렬했던 싸움.

아마 무림맹으로 돌아간다면 해남파와 점창파는 한동안 자중을 해야 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다.

철벅!

순간, 또다시 눈가에 뜨거운 액체가 튀었다.

감겨진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액체.

눈을 뜨자 눈앞이 벌겋게, 하얀 백지에 염료를 칠한 듯 물들어 갔다.

‘피?’

살짝 보이는 북초이의 옆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 혈류를 거슬러 올라가자 북초이의 눈이 보였다.

피눈물.

눈가에 튄 뜨거운 그것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북초이는 사문의 큰 피해에, 모두가 자신들을 위해 기다려 주고 있는데 이렇게 늦게 나왔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콰직! 파앙!

공기가 찢어질 듯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레 가속하는 북초이.

분명 더욱더 상세를 나쁘게 하는 행동인데도, 말릴 틈이 있었는데도.

말릴 수가 없었다.

파라라락!

붉게 물든 장포 자락 휘날리며 검을 빼 든 북초이.

태양을 닮은 주홍빛 신비로운 검신이 순간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이어서 내치는 것은 점창파 비기, 사일검법.

채앵!

분명히 힘이 없을 텐데도.

밀린 것은 강력한 경력이 깃든 창을 휘두른 무인이었다.

이어서 순간 북초이의 검이 아홉 개로 늘어났다.

예의 아홉 개의 화살.

태양을 떨어뜨린 전설의 화살이 이 순간 북초이의 사일검을 통해 현신했다.

푸푸푸푹!

아홉 개의 사혈과 요혈을 정확히 꿰뚫은 사일검.

털썩!

“…….”

잠시간의 정적.

내공이 없어도 기백만으로 적을 쓰러뜨린 북초이에 의해 모두의 싸움이 잠시간 멈추었다.

싸늘한 눈동자로 모든 것을 붉게 물들일 듯한 새빨간 피눈물을 흘리는 북초이.

“창마대라고 들었다. 혈천회의 호법, 창마 황신. 나와라.”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공간을 울리는 강렬한 목소리.

모든 것이 얼어붙은 이 상황에서 북초이의 말에 대답한 자는 가슴까지 닿는 검은 수염을 가진 중년인이었다.

“너 같은 애송이가 마음대로 나와라 마라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붕붕붕 공중에서 돌고 있는 묵색 창.

“잔챙이엔 관심 없다. 창마 황신, 나와 일대일로 겨루자.”

무모하다.

절대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는 싸움을 거는 북초이.

중년인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신룡이라고 떠받들어 주니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구나. 그래 봤자 후기지수, 호법께는 일 합도 되지 않을 녀석이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마, 잔챙이엔 관심 없다.”

선고하듯 말한다.

확고한 의지를 담고,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담고.

“이 애송이가!”

분노한 듯 달려드는 중년인.

카가각!

태양을 담은 주홍빛 신검과 밤의 어두움을 담은 묵빛 창이 부딪쳤다.

“캇!”

탁한 기합성.

캉! 따당! 피핏!

어째서인가.

분명 누가 봐도 수준급의 실력, 이곳에서 손에 꼽힐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금의 북초이가 이길 수 있는 무인이 아닐 텐데도.

상처 입은 북초이건만 그런 중년인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익!”

그런 자신에게 분노한 것인지, 아니면 북초이에게 분노한 것인지 중년인의 얼굴이 붉어진다.

“잔챙이엔 관심…… 쿨럭!”

투두둑! 털썩!

잘 막아 냈고, 반격했고, 압도하고 있었다.

기백만으로 모든 불리한 조건을 깨부수고 압도하고 있었건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분명 조금만 더 찔렀으면 심장을 꿰뚫었을 순간.

북초이가 말하다 말고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

“이이…… 이놈이!”

싸우다 갑작스레 쓰러진 북초이.

분노한 중년인의 무정한 창날이 북초이의 가슴을 향해 찔러졌다.

“멈춰라!”

비검(飛劍).

“칫!”

정확히 심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검을 본 중년인이 입술을 깨물며 창대를 튕겼다.

땅! 쩌저적! 푸푸푸푸푹!

창대에 맞은 순간 타격점을 기점으로 균열이 이는 검.

이내 폭발하듯 갈라지며 중년인의 몸에 수많은 검편이 박혔다.

“파……검술?”

주르륵 입술 사이로 피를 흘리며 중년인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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