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화산천검 6권(5화)
2장 혈마강시(3)
‘알았다!’
방법은 나왔다.
갈천악은 이성을 잃은 상태.
아무리 임기응변이 더욱더 뛰어나지고, 실력이 급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이성을 잃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저것은 전투 본능이라고 해야 마땅하겠지.
그렇다면 통할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무리이자 가장 어려운 무리.
화(化).
더욱 발전한다면 무당의 사량발천근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무리.
척으로 맥을 끊고 화로 기운을 역이용할 수만 있다면 싸움은 쉽게 끝낼 수 있다.
생각이 끝나는 동시에 갈천악의 도가 어느샌가 내 가슴 한 치 앞에 도달했다.
조금만 늦어도 끝이다.
생각하고 휘두른다면 늦는다.
마음이 도달한다.
의(意)에 의해서 움직이는 기일진대 마음이 닿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검이 움직인다.
느리지만 빠르다.
후발선착(後發先着)의 묘리.
‘끊고 흘린다.’
맞받아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된다면 경력을 완벽히 해소하지 않는 한 바로 앞에 있는 내 몸에 피해가 가게 된다.
갈천악의 경력을 완벽히 해소하는 것은 현재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맥을 끊고 흘린다.
척(斥).
기와 기의 틈.
절대자의 경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 틈이다.
깡!
소리는 작았다.
폭음이 울려야 마땅할 엄청난 경력인데도 말이다.
본능만이 남은 얼굴에 깃드는 미약한 당황스러움.
파고들어야 한다.
‘크읏!’
하지만 흘려 냈다고는 해도 완벽히는 아니다.
남아 있는 경력이 내장을 진탕시켰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버티지 못하면 죽는다.
내가 강해졌더라도 상대는 칠사도 중 최강인 일사도이자 지치지 않는 강시.
이렇게 틈을 만들어 놓았을 때 파고들지 않으면 죽는 것은 나다.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발을 내밀었다.
턱!
발목을 구부려 갈천악의 무릎 부분을 휘감고 끌어당겼다.
갈천악의 다리가 살짝 구부러졌다.
장천수.
빠아악!
충(衝)의 묘리를 담고 내가중수법을 곁들인 일 권이다.
뇌는 치명적인 급소.
강시이기에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연이어 화(化).
빙글! 콰앙!
앞섶을 잡고 몸을 돌리자 갈천악의 단단한 몸이 바닥에 부딪쳤다.
그리고 부딪친 나무판자들이 부서지며 솟아올랐다.
“카아아!”
이제 몸이 움직이는지 갈천악이 엄청난 속도로 왜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예상을 끝낸 움직임이다.
상단전의 예감과 상승의 영역.
미래를 예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아악!
아슬아슬하게 발바닥 아래로 스쳐 지나가는 왜도.
탁!
왼쪽 발등을 밟고 재도약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이어서 자하십육검 육 검.
채채채채챙!
땅에 드러누운 상태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정확도와 줄지 않는 속도.
육 검의 경력을 발출하기도 전에 맥을 끊으며 계속해서 검을 쳐 내고 있었다.
‘곤란해.’
무리를 배우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 그건 아니지.
척은 기초적인 무리다.
그렇다면 내가 척을 씀으로 인해서 기억이 되살아났다고 봐야겠지.
아무튼 이렇든 저렇든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혈무…….’
어느샌가 또다시 혈무를 뿜어내고 있다.
혈무에 닿을 때마다 몸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든다.
독으로 변했다가 사술로 변환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능숙해지고 있다는 뜻인가?
‘칫.’
한순간에 끝내지 않으면 결국엔 지게 되어 있는 싸움이다.
소모전으로 간다면 결국 지치게 되는 것은 나뿐이다.
‘결판을 내야 돼.’
하지만 나 혼자서는 무리다.
겪어 보니 안다.
만전이었을 때라면 모르되 아직 제대로 된 정보도 없고 이렇게 피로한 상태로 싸운다면 백분지 백 진다.
‘남문기와 북초이가 나서 줘야 되는데.’
경지가 높으니 독에 대한 내성은 당연히 있다.
하지만 그 정도 내성만으로 혈마강시의 독을 해소해 내기는 무리가 있었나 보다.
손가락 끝에 독을 모아 빼내고는 있지만 빠져나가는 양이 극히 적었다.
반점이 자라나는 속도보다 조금 빠른 정도?
그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막고 있는 동안 북초이와 남문기는 입술을 깨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 믿을 것은 화다.’
생각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검을 내쳤다.
따앙!
또다시 맥을 끊는 척.
순간 흔들리는 몸으로 갈천악이 주먹을 내뻗었다.
후우웅∼ 콰앙!
“큭!”
공기가 요동친다.
귓가를 스쳐 간 주먹의 여파에 의해 소리가 잘 들리질 않고, 균형 감각이 비틀렸다.
이건 정말 위험하다.
비틀린 균형 감각에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추세.
피하는 것은 무리.
정확히 맞으면 백분지 백 치명상이다.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비친 것은 요사스런 기운을 띠고 있는, 피를 머금은 빛이다.
이어서 비친 것은 푸른빛 깃든 주홍색의 창연하고 찬란한 빛이다.
빛이 부딪친 자리에서 기가 요동치고, 이어서 강력한 경력이 몸을 날려 버렸다.
눈앞이 명멸한다.
나타났다가 사라짐을 반복하는 세상.
“합!”
멍해져 가는 정신을 바로잡으려 기합을 내뱉으며 벽을 박차고 살짝 뛰어 착지했다.
신검이 위용을 드러낸다.
푸른빛 깃든 주홍색의 찬란한 빛이 혈무를 꿰뚫고 태우며 전진하고, 핏빛 머금은 요사스런 빛이 마성에 잠식된 듯, 계속해서 피를 바라듯 날카롭게 짓쳐 든다.
사일검법과 탈백도.
이어서 짙은 푸른색의 빛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촤아악∼
바다가 갈라지고 파도가 요동치며 바위가 깎여 나간다.
한순간 세상을 태울 듯 밝게 빛을 발하는 두 신룡.
짓쳐 드는 검에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기와 예기, 구파의 제자로서의 긍지 높은 자존심,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반드시 이곳에서 막겠다는 결사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크아아아!”
우르르릉!
건물이 요동치고 진법과 사술이 흔들린다.
죽음을 도외시하고 강하게 공격하는 두 신룡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갈천악의 외침은 전과도 비교될 만큼 강대한 공력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두 신룡은 굴하지 않았다.
잠시의 멈칫함은 있을지라도 물러날 곳이 없는 천애단장의 절벽을 마주하고 있다는 양 계속해서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그렇지만 독을 완전히 해소할 시간은 없었던 것인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인영들 사이로 언뜻언뜻 붉은 반점이 보였다.
‘저자들…….’
이곳에서 죽더라도 반드시 막겠다는 의지였다.
물러나지 않는, 죽음을 도외시한 강한 의지.
나와는 다른, 흔들리지 않는 강한 결심을 갖추고 의지라는 초를 강하게 불태우고 있었다.
흡사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잠깐…… 회광반조, 라고?’
불안감이 상단전의 힘을 통해 하나의 예지가 되어 스멀스멀 발끝에서부터 기어 올라왔다.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틀리길 빌지만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 한 줌 잠력까지도 모조리 긁어내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멈추시오!”
하지만 굉음과 살벌한 경력이 날아다니는 격전의 장에서 내 목소리는 너무나 미약했다.
스걱!
불안감이 현실화되어 간다.
북초이의 옆구리 살이 갈천악의 왜도에 한 움큼 파인다.
얇고 긴 왜도가 남긴 상처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크기.
“크윽!”
하지만 북초이는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뻗어 나간 검의 끝에 엄청나다고 할 수 있는 경력이 모이고, 이내 갈천악의 오른쪽 어깨를 꿰뚫었다.
푸우욱!
그 상태로 비틀어 내려쳐 팔을 베어 내려는 북초이.
하지만 사일검법은 점을 향해 뻗어 나가는 직선이다.
궤도를 바꿔 곡선을 그리려 하니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카가각!
검은 그 팔을 베어 내지 못하고, 피부를 꿰뚫은 그대로 불똥을 튀기며 멈춰 있었다.
“카아아!”
갈천악이 또다시 크게 소리쳤다.
이번엔 분노의 고성이 아니다.
고통에 겨워 비명을 지르는 신음 소리였다.
그리고 이내 도가 움직였다.
피부를 꿰뚫고 근육을 찢어 놓았을 텐데도 움직이는 팔.
강시.
인체의 한계를 넘어선 강대한 사술이었다.
하지만 힘이 실리질 않는다.
까앙! 탱!
내친 왜도는 그 도를 휘두른 자의 강력한 내공에도 불구하고 남문기가 휘두른 검에 막혀 공중으로 치솟았다.
빙글빙글 돌며 이내 천장에 박혀 버리는 갈천악의 왜도.
남문기가 몸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검을 내려쳤다.
우우웅∼ 퍼석!
검이 울부짖고 터져 나간 살점이 공중을 수놓으며 핏방울, 독이 비산한다.
어깨 부분에서 잘려 나간 갈천악의 오른손.
끝이다.
단단한 몸이 있지만 북초이가 검을 뽑아 냈고, 남문기가 연이어 검을 내치고 있다.
일사도 갈천악, 되살아났다만 죽은 목숨.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크아아아!”
이번엔 다르다.
고통에 찬 비명, 분노에 찬 고함, 증오에 찬 원념, 방해하는 자에 대한 짜증까지.
갖가지 감정이 목소리라는 혼돈 속에 회오리치며 두 신룡을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콰아앙!
아니다, 끝이 아니다.
갈천악은 왜도가 없어도 약하지 않았다.
금강불괴에 다다른 몸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무기이고, 이성을 잃었다지만 전투에 특화된 본능은 병장기를 들고 싸울 때보다 더욱더 빛을 발했다.
탱그랑! 퍼억! 쿠우웅!
순식간에 달려들어 수도로 남문기의 검을 타고 손목을 제압한 뒤 발차기로 명치를 올려치고 땅에서 가볍게 뛰어 몸을 돌리며 등을 내리찍었다.
빈틈이라곤 없는,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정확하고 절도 있는 몸놀림.
“커억!”
독에 걸린 몸, 잠력까지 끌어낸 부족한 내공.
남문기가 지치지 않는 체력과 메마르지 않는 바다와도 같은 내공을 가진 갈천악의 공격을 버티기엔 무리였다.
입으로 내장 조각 뒤섞인 핏덩이를 내뱉으며 남문기가 쓰러졌다.
움직이지 않는다.
검을 놓지는 않았지만 그 상태로 굳어 버리기라도 한 양 남문기는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