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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129화 (129/175)

# 129

화산천검 6권(4화)

2장 혈마강시(2)

피슛!

금강불괴이긴 하지만 구파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절기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사일검법과 남해삼십육검.

금강불괴를 꿰뚫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을 무공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것이 있었다.

상처에서 탁한 액체가 솟아오르지 않은 것이다.

자세히 보자, 상처에서 열기에 의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극쾌에 의해 생겨난 엄청난 열.

그 열로 상처를 내자마자 지져 버리는 것이다.

내가 예전 매화검로의 매화초개로 펼쳐 낸 것과 마찬가지인 열기.

지금의 나는 자하십육검 일 검으로 저런 상처를 낼 수 없다.

갈천악의 속도를 따라잡다 보니 화의 기운은 어느새인가 사라지고 벼려지고 벼려진 날카로운 예기만이 남았다.

그런데 북초이의 사일검법은 나의 자하십육검 일 검보다도 빠르면서 벼려진 예기가 있고, 열기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방법이 있는 것인가?’

자하십육검 일 검은 평소에도 많이 사용하는 초식인 만큼 많은 성취가 있었다.

이제는 노력해도 더 이상 늘지 않아 이 정도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천하는 넓었다.

내 일 검의 경지를 뛰어넘어 더욱 높은 곳에 도달한 자가 있는 것이다.

일단은 일 검을 더욱 뛰어나게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을 얻고, 계속해서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북초이가 남문기와 협공을 하고 나서부터 상황은 백중지세였다.

남문기의 파괴력 강하고 거센 공격에 의해 생겨난 틈을 북초이가 쾌검으로 보완하고 있었다.

갈천악은 속도도 있고 파괴력도 있으며 거칠기까지 하다.

하나의 몸에 남문기와 북초이의 무공을 담았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태다 보니 서로 치명적인 상처는 못 내고 간간이 피부에 상처만을 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백분지 백 갈천악이 이긴다.

백중지세라고는 하지만 지금도 갈천악이 더욱 많이 공격에 성공하고 있는 상황이다.

갈천악은 현재 강시.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죽었으나 되살아난 망자다.

그렇지만 남문기와 북초이는 살아 있는 육신을 가진 생자다.

피로를 느끼는 것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남문기와 북초이가 불리하다.

‘나서야 할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검에 망설임이 담기면 검객은 그것으로 끝이다.

자신을 믿고 검을 믿으며 검에 자신을 담는 것이 검객이다.

그런데 자신을 믿지 못하고 검에 자신을 담지 못하는 검객이 어찌 하나의 무인으로서 저들의 싸움에 도움을 줄 수 있으랴?

‘하지만…….’

상황은 점점 불리해져만 간다.

갈천악의 혈무, 독은 점점 짙어져만 가고 발군의 실력으로 맞상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남문기와 북초이는 피로가 쌓여만 간다.

끼어들지 않는 것은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안일한 방법밖에는 되지 않는다.

지금의 상태로는 완벽히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변수로 작용할 수는 있다.

특히나 나는 상단전의 힘, 염력이 있으니 말이다.

손을 내뻗는다.

왼손의 장심을 갈천악을 향하도록 한 뒤 정신을 집중한다.

기운은 하단전에서부터 솟구치며 상단전을 통해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 내는 강력한 염(念)이 되었다.

천천히 내뻗은 장을 손가락부터 천천히 접어 갔다.

우뚝!

순간 갈천악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문기와 북초이에게 기세를 타게 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파도가 노하여 달려들고 활시위가 끊어질 정도로 당긴 활이 강하게 화살을 튕겨 냈다.

콰드득! 콰아앙!

하지만 갈천악은 만만치 않았다.

그 순간에서도 기지를 발휘, 사일검법과 남해삼십육검의 틈으로 몸을 움직여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공격을 막아 내었다.

막아 낸 왜도는 이가 나갔고, 몸으로 막아 낸 경력은 옆구리의 살점을 한 움큼 집어삼켰으며, 부딪치지 못한 커다란 경력은 맞은편에 있는 벽을 부수었다.

옆구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물 같은 액체.

그 모습을 번들거리는 혈안으로 지켜보는 갈천악.

순간 혈무가 사라졌다.

그것을 기회라 보고 달려드는 남문기와 북초이.

“안 돼!”

머릿속에서 위험의 경고가 울린다.

저것은 상처를 입고 쓰러진 것이 아니다.

기운을 더욱 갈무리하고 갈무리해 한순간에 폭발시키려는 것이다!

푸하학!

땅에 떨어지고 몸에서 솟구치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둥둥 떠올라 남문기와 북초이에게 폭사되었다.

“뭣?!”

“엇!”

당황한 듯 검을 내치는 북초이와 남문기.

하지만 액체를 검으로 자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내 남문기와 북초이가 액체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치이이익!

“크으윽!”

“큭!”

불타오르듯 연기를 뿜어내며 녹아 들어가는 옷가지들.

그리고 그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서 붉은 반점들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커져 가고 있었다.

“독이군. 젠장, 방심했어.”

검을 늘어뜨리고 앞섶을 부여잡으며 헐떡이는 두 신룡.

갈천악은 그런 둘을 번들거리는 눈으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크하하하!”

커다랗게 광소를 내뱉는 갈천악.

콰직!

갈천악이 발을 굴리자 그가 있던 자리의 나무판자들이 부서지며 솟구쳤다.

‘위험!’

노리는 쪽은 북초이.

남문기보다 많은 상처를 입었었고, 그렇기에 독에도 더욱 심하게 중독되어 움직이기가 힘든 북초이를 노리는 것이다.

“치잇!”

화살을 튕기듯 검을 내뻗으려 하지만 전과 같은 속도는 나오지 않는다.

갈천악의 왜도를 막아 내기에는 속도도, 힘도, 기운도, 기세도 모두 달린다.

나서야 할 때이다.

혼란스런 마음에 도움이 될까 모르겠지만 지금 나서지 않으면 북초이는 백분지 백 죽는다!

쐐애애액∼ 촤아악∼ 캉!

비검(飛劍).

공기를 가르고 날아드는 검에 갈천악이 심장을 노리던 왜도의 궤도를 비틀어 북초이의 옆구리를 베어 버리고 나의 비검을 막았다.

튕겨 나가는 청운검.

터엉!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뛰어올라 튕겨 나온 청운검을 양손으로 잡고 내려쳤다.

콰아앙!

아무런 초식도 아니지만 오 할의 공력을 집어넣어 내려친 검이다.

어중간한 초식보다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갈천악의 왜도가 경력을 해소하려는 것인지 계속해서 흔들렸다.

이어 갈천악이 왼발을 뒤로 빼며 도를 횡으로 그었다.

파아아∼

도신을 타고 흘러나오는 강력한 경력이 형상화되어 날아들었다.

‘맞받아친다!’

자하십육검 칠 검(七劍).

뇌의 기운이 깃들은 양단(兩斷)의 참(斬).

콰아아앙!

갈천악과 마찬가지로 무형의 기운이 유형으로 형상화되어 날아가 갈천악의 기운과 상쇄되었다.

“운기조식을 취하시오! 잠시 동안 막아 주겠소.”

북초이와 남문기에게 말하곤 자하검으로 자하십육검 일 검을 펼쳤다.

따앙!

기운을 집중시킨 것인지 자하십육검 일 검을 막아 내는 장에는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

도리어 생겨난 엄청난 반탄력 때문에 손아귀가 저려 왔다.

“칫!”

처음보다 더 치밀해지고 강력해졌다.

임기응변도 더욱 더 뛰어나진다.

분명 이 괴상한 상태로 변하기 전에 이성을 잃는다고 했건만 어째서 점점 더 싸움을 잘하게 되는 것인지.

이것이 최강이자 최악의 강시, 혈마강시의 능력인 것인가?

‘아니, 어차피 강시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죽일 순 있다.’

힘들긴 하더라도 만들어 낸 것이 인간인 이상 죽일 수도 있다.

청운검과 자하검을 교차시키며 동시에 자하십육검 칠 검을 전개했다.

콰아아앙!

유형화된 경기와 맞부딪친 갈천악의 왜도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폭음과 함께 갈천악의 주변의 나무판자들이 날아다녔다.

“캬아아아!”

치이익!

“윽!”

독이다.

갈천악의 몸에서 흐르고 있는 것은 피가 아니라 독이다.

독을 피처럼 흘리며 적을 공격하는 혈마강시.

갈천악이 입안에 고인 독을 뱉어 냈다.

피했지만 옷이 까맣게 변색되며 녹아 들어갔다.

스스스!

전환.

흐르는 피는 더 이상 독으로서 작용하지 않고 혈무가 되었다.

닿는 자들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독.

그리고 이어서 갈천악의 도가 천천히 움직이고, 도의 궤도를 따라 잔영이 남았다.

북초이에게 썼던 초식.

경시할 수 있을 만한 초식이 아니다.

우우웅∼ 키이이잉∼

울부짖고 공명한다.

자하검과 청운검이 기운을 받아들이며 울음을 내뱉고, 교차하자 공명하며 울부짖었다.

화아아∼

자하검을 비틀자 머리를 혼란스럽게 할 정도로 짙은 매화향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매화검로와 별 차이가 없다.

검향지경(劍香之境)의 자하십육검 십삼 검(十三劍).

이어서 울부짖는 청운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촤아악! 촤아아악!

혈무를 찢고 공간을 가르며 날아드는 청색 검기.

자하십육검 십사 검(十四劍).

콰아아아아앙!

갈천악의 주위를 난무하는 유형화된 기운.

붉은 안개를 갑옷처럼 둘러싸고 갈천악이 그 사이를 뚫고 나왔다.

몸에 기운을 집중해도 소용없다.

강력한 절삭력(切削力)의 십사 검은 금강불괴에서 기운을 집중해 더욱 단단해진 갈천악의 몸을 가볍게 베어 내고 있었다.

독이 튀고 혈무는 점점 짙어져만 간다.

“크아아아!”

건물이 흔들린다.

갈천악의 사자후와 같은 고함에 건물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어느새인가 가까이 다가온 갈천악의 일참!

“크윽!”

콰아앙!

자하검으로 막아 냈다만, 깃들어 있는 경력이 무척이나 거대했다.

경력은 해소하지 못할 정도로 날뛰고, 내공이 요동쳤다.

“커억!”

이어서 벽에 부딪치며 통증에 정신이 흐트러지자 경력과 내공이 더욱 심하게 난리를 쳤다.

하지만 고통에 겨워할 시간이 없다.

갈천악은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양 벌써 땅을 박차고 있었다.

눈 깜빡하기도 전에 도착한다.

그 안에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시간이 느려진다.

날아다니는 먼지와 나무판자들이 정지된 듯 멈춰 서고, 갈천악의 몸놀림과 기운들이 요동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시간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상승의 영역.

갈천악의 도가 또다시 움직인다.

궤도를 따라 생겨나는 도의 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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