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28화 (128/175)

# 128

화산천검 6권(3화)

1장 신룡의 신위(3)

캉!

갈천악의 요사스런 기운이 흐르는 왜도가 마지막 부딪침과 함께 이가 나갔다.

팅!

도의 조각이 땅에 부딪치고 금속성이 공간을 울렸다.

그것을 본 갈천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 탈백도(奪魄刀)를 부러뜨리다니. 그것도 신검도 아닌 아무 대장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싸구려 검으로.”

“실력은 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오.”

남문기는 그의 말대로 해남파의 힘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또한 신검과 같은 신병이기에 휘둘리지 않는 진정한 검객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이것, 애초부터 내가 관여할 싸움이 아니었다.

이들은 신룡이다.

구파가 몇 백 년이나 걸려서 만들고 또한 고쳐 나가 완성에 이른 진정한 무학의 계승자, 화신인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물러나라고, 대신 싸우겠다고 말한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그렇게도 공명을 탐하고 싶더냐?’

장문인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이것 또한 연장선상에 있는 행동이다.

그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으니 그들을 무시하고 나의 자존심을 드높이겠다는 하찮고 또한 비열한 마음.

‘정말로 나는 그저 공명을 탐하고 이름을 알리고 싶은 마음뿐인 건가?’

순수하게 분노하여 복수하겠다는 일념은 어디 가고 썩은 공명심만이 남은 것인가?

‘복수 또한 순수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자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대체 어디서, 대체 뭐가, 대체 어떤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가?

정말로 나의 행동에 어떤 순수한 가치가 있을까?

사부를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자신을 위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사문의 명령을 받고 행한다.

나의 의지로 행한다.

그러나 대체 그 행한 행동에 정의는 있던 것일까?

나는 이기적으로 남을 위한다곤 했지만 나만을 위했던 것은 아닐까?

‘아아, 어렵구나.’

무는 잡았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혼란한 마음은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이 혼란스럽고 혼탁하고 비틀어진 마음을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크…….”

그때, 내가 부축하고 있던 북초이가 나를 살짝 밀어내며 섰다.

“아, 괜찮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않소? 저런 모습을 보여 준다면.”

맞는 말이다.

지금의 내 혼란스런 마음을 떠나, 무의 길을 걷는 자라면 남문기의 모습에서 전율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해남파의 무공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점창파의 무공도 절대 뒤처지지 않소.”

북초이가 일어난 것은 사문의 무공에 대한 자존심 싸움도 미묘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북초이는 갈천악의 일 초에 패배하여 쓰러졌는데 남문기는 갈천악의 왜도의 이를 나가게 하지 않았는가?

“큭큭큭, 하하하하! 그래, 즐겁구나. 이렇게 발악까지 한다니. 죽일 맛이 나. 정말이야.”

갈천악의 혈안이 더욱 붉어졌다.

이제는 피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같이 보일 정도로 눈동자가 붉어졌다.

그 모습은 겨우 눈동자가 붉어진 것일 뿐인데도 혐오감을 일으키고 오한을 일게 할 정도였다.

강시가 되고 나서 더욱 비틀어져 버린 것만 같은 갈천악의 성격.

역시나 살아 있을 당시의 기억과 무공을 모두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강시술은 사법.

성격이 그대로일 리가 없었다.

혈광(血光)을 내뿜는 마안(魔眼).

갈천악의 발에서부터 핏빛 기운이 안개와도 같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뭐지?”

불안하다.

위험할 것이라는 예감이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이 머릿속을 강렬하게 꿰뚫었다.

“크크크, 혈마강시는 혈천회가 만들어 낸 최강이자 최악의 악마지. 그 미치광이 늙은이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강시. 이 세상에 사법을 쓰고 강시를 만들고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이 얼마나 될 것 같나? 아무리 적어도 두 개의 거대문파 정도는 될 거다. 숨어 있는 자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 중 그 미치광이 늙은이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이해하지 못하는 극악의 강시다. 그런 강시의 능력이 흑철인과 같을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사술이라고 해서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 같군.”

“그래서 할 말은 무엇이냐? 그냥 자기가 강해졌다고 자랑하겠다는 것이냐?”

북초이의 빈정대는 말에 갈천악의 얼굴이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졌다.

“크르르! 이건 이성을 잃고 피에 굶주리는 마물이 되는 상태인지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네놈들에게 고통을 주기에는 딱 좋겠지. 지금부터 지옥을 맛보도록 해라!”

괴상한 소리와 함께 갈천악이 고개를 숙였다.

폭사되는 살기와 날카로운 예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갈천악.

온몸이 빈틈이었지만 어떠한 불길한 느낌에 의해서 남문기와 북초이, 그리고 나 또한 움직이지 않고 견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천악이 고개를 들었다.

“크르르!”

입술을 타고 흐르는 끈적끈적한 타액.

붉게 번들거리는 눈과 점점 공간을 잠식해 가는 붉은 안개와도 같은 기운.

화아악∼

“큭!”

순간 갈천악의 몸에서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살기가 폭사되었다.

“크아아!”

파아앙!

엄청난 빠르기.

갈천악의 신형이 순식간에 북초이의 눈앞에 도달했다.

“위험……!”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 갈천악의 왜도가 엄청난 빠르기로 휘둘러졌다.

나의 매화초개로도 겨우 막아 낼 수 있을 법한, 이전에 비해서도 엄청나게 빨라진 쾌도.

하지만 쾌에 있어서는 비견될 수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점창파를 이겨 낼 수는 없다.

사일검법은 쾌의 정점을 찍는 무공이다.

자하십육검과 마찬가지로 점창파 천 년의 비기.

그 시간 동안 쾌만을 목적으로 발전해 온 무공일진대 그 누가 따라올 수 있겠는가?

비견될 수 있는 무공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카앙!

북초이의 검첨이 갈천악의 도날과 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피슛! 피피핏!

연이어 쾌와 쾌의 정면대결.

사일검법의 점을 찌르는 직선과 갈천악의 선을 가르는 곡선이 비슷한 빠르기로 계속해서 격돌하며 상대의 몸에 상처를 냈다.

북초이의 몸에서 솟구치는 핏줄기와 갈천악의 몸에서 솟구치는 피라고 하기에는 이질적인 액체.

소모전이 계속되고, 갈천악의 상처에서 끈적끈적한 액체가 솟구칠수록 붉은 안개는 점점 짙어져만 가고 갈천악의 혈안의 안광도 점점 서늘해져 갔다.

뻐억! 콰앙!

그리고 이내 기분 나쁜 붉은 안개에 주춤한 북초이에게 갈천악의 발차기가 날아갔다.

“컥!”

‘변칙적인 무공? 아니야, 달라.’

내가 보기엔 북초이 정도라면 피해를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최소화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북초이는 붉은 안개에 닿자 그 시간 안에 피해 내지 못하고 갈천악의 발차기에 그대로 직격당했다.

‘저 안개에 대체 어떤 공능이 있는 것이지?’

갈천악에게서 솟구치는 끈적끈적한 기분 나쁜 액체와 더불어서 점점 짙어지고 넓어져 가는 혈무(血舞)의 반경.

후두두둑 떨어지는 건물의 잔해.

벽에 박혀 죽은피를 토해 내는 북초이.

“쿨럭! 크윽…….”

이내 고개를 털며 정신을 가다듬곤 북초이가 땅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몸을 마비시키는 무공…… 아니, 사술이로군.”

북초이가 힘겹게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사술이라고 했소?”

“제대로 따지자면 독에 사술이 집합된 거라 할 수 있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으니…… 말이오.”

삐걱삐걱, 북초이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크르르…….”

팡!

갈천악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북초이에게 달려갔다.

그 앞을 대해와도 같은 기상의 남문기가 막아섰다.

“혼자서는 절대 무리일 것 같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같이 싸우자.”

콰아앙!

폭음과 함께 북초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별수 없지.”

2장 혈마강시(1)

남해삼십육검.

해남도는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남쪽 바다에 있는 섬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폐쇄적으로 바뀌고 성격이 거칠어졌으며 바다를 통한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무공들이 많았다.

그리고 해남도의 패자로서 많은 협행과 뛰어난 무공, 그리고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해남파는 구파가 되었다.

해남파는 다른 해남도 문파들의 무공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닮은 무공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점에 이른 것이 바로 해남파의 남해삼십육검.

바다는 푸르고, 자애롭고, 거칠고, 크고, 깊다.

그리고 그 바다의 모든 특징은 남해삼십육검의 일 초 일 초가 되어 남문기의 검에서 발현되고 있었다.

카가가각! 콰아앙! 스걱!

“큭!”

하지만 남해삼십육검을 펼치는 남문기로서도 혼자서 이성을 잃은 갈천악을 상대하기는 무리였다.

이성을 잃는다면 분명히 본능에 따르고, 상황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진대 갈천악은 그렇지 않았다.

무공의 위력은 더욱 강해졌고,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임기응변은 더욱 치밀해졌으며, 혈무의 독까지 갖춘 갈천악은 이성을 잃기 전보다 더욱 상대하기 버거워졌다.

또다시 펼쳐지는 대해참경.

갈천악은 저번과 같이 당하지 않았다.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도 같이 갈천악의 왜도는 파도에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기운을 거슬러 올라가 근원에 도달하였다.

콰아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남문기가 뒤로 열 걸음이나 물러섰다.

남문기의 걸음을 따라 새겨진 족적은 바닥을 부수고 일층으로 통하는 구멍을 뚫을 정도였다.

경력을 해소하질 못한다.

남문기가 완벽히 밀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북초이는?’

남문기는 같이 싸우자고 말했다.

분명 문파의 규율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지만 마땅한 방도가 없다.

이런 곳에서 죽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내가 합동훈련 때 마진천과 함께 왕정치를 상대했던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북초이는 벽에 파묻혔던 곳에서 몸을 일으킨 그 상태 그대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땅바닥에 붙어 있는 탁한 검은색의 핏덩이.

내상으로 인해 생겨난 응혈과 사혈들을 대부분 뱉어 낸 것이다.

운기도 대충이나마 끝냈는지 눈에 전과 같은 정광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부터가 제대로다, 일사도.”

“크르르!”

남문기를 공격하던 상태에서 빠르게 몸을 돌리며 극에 이른 쾌도를 휘두르는 갈천악.

하지만 비슷한 속도로 싸운다면 먼저 검을 휘두른 자가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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