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27화 (127/175)

# 127

화산천검 6권(2화)

1장 신룡의 신위(2)

삐걱∼ 삐걱∼

반만이 남은 문짝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다.’

바깥은 장원 내원을 밝히는 횃불들과 달빛이 있어 앞을 식별하기가 수월했다.

하지만 이곳은 창문이 열려있는데도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진법, 아니면 환술.

끼이이∼ 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자 부쉈던 문이 다시 고쳐지기라도 한 듯 멀쩡한 모습으로 있었다.

‘파쇄할까?’

진과 사술이 겹쳐 있었다.

그것도 커다랗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이 건물에.

이것만으로도 초령의 사술 실력을 알 수 있었다.

‘아니, 낭비다.’

어차피 초령을 쓰러뜨리면 파쇄될 사술이다.

이것을 파괴하느라 내공을 낭비하는 것보다 한시라도 빨리 이 위에서 부딪치고 있는 강렬한 기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단은 앞이다.

팟! 터어엉!

앞으로 달려가 계단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이 층.

땀에 절어 있는 몸으로 검을 휘두르는 두 남자와 얼굴 가득 조소를 머금고 왜도를 휘두르는 남자가 있었다.

“갈천악!”

크게 소리치자 왜도를 휘두르던 갈천악이 나를 쳐다보았다.

동그랗게 뜨여지는 갈천악의 눈.

이내 갈천악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 죽인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더냐? 뭐, 상관없지. 구파의 신룡 둘과 화산파의 골칫덩이를 이곳에서 죽일 수 있다니 정말 기쁘구나!”

내 외침과 갈천악의 말에 북초이와 남문기가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왔군.”

“늦었소.”

피곤에 절은 얼굴.

몸 곳곳에 얕은 도상을 입은 북초이와 남문기였다.

“사사도는 어디 있소?”

이곳으로 들어온 두 신룡과 일사도는 보이는데 사사도는 보이지 않았다.

“위층에 있소. 우리가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 한 번 모습을 보이더니 저 일사도를 남겨 두고 위로 올라갔소.”

“하, 그년은 너희한테 관심이 없거든. 뒤의 골칫덩이라면 모르겠지만.”

“칠사도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대체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군.”

“궁금해해서 뭐하나? 어차피 이곳에서 죽을 터인데.”

갈천악은 전과는 달랐다.

짙은 눈썹과 그 아래의 섬뜩할 정도로 붉은 혈안(血眼).

고양이와 같이 세로로 길쭉한 눈동자가 불길함을 담고 있었다.

피부 또한 달랐다.

이전의 갈천악의 피부가 햇빛에 심하게 그을려 변한 색 같았다면, 지금은 흑철인들과 마찬가지로 피부가 묵철과 같은 검은색이었다.

혁련월과 마찬가지인 듯 찢긴 옷 사이로 보이는 검에 찔리고 베인 듯한 상처들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떻소?”

“칠사도의 말대로요. 몸은 금강불괴인지 베고 찔러도 소용도 없고, 벌써 몇 번을 맞부딪쳤는데도 처음과 마찬가지의 위력과 속도로 왜도를 휘두르니 강하게 한 방 먹이지 않으면 속수무책일 뿐이오.”

북초이가 인상을 찌푸리자, 은근히 보이던 흉터가 한 마리 뱀이 꿈틀거리듯 혐오스럽게 움직였다.

“승률은?”

“솔직히 말하자면 오할.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해룡과 같이 움직일 때 오 할이라는 얘기요.”

남문기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가 상대하겠소.”

앞으로 나서며 청운검을 사선으로 휘두르자 청운검이 발하는 은은한 청광이 눈을 어지럽혔다.

“그럴 수는 없소. 이왕 시작한 것, 끝내는 것도 우리여야 하오.”

지금까지 말이 없던 남문기가 앞으로 나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오 할.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

그런 도박을 하느니 차라리 내가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우는 것이 낫지 않은가?

“버러지들이 지금 나를 앞에 두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죽고 싶다면 셋 다 덤벼라. 전부 한꺼번에 죽여 주지.”

폭사되는 살기.

피부를 얇은 세침으로 찌르고 있기라도 한 듯 쿡쿡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크윽…….”

뿌드득!

갈천악의 말에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것인지.

북초이가 이를 갈며 기수식을 취했다.

“덤벼라, 점창의 신룡이여. 회풍무류사십팔검이나 유운검법은 통하지 않는다. 그래, 점창파의 사일검법이 일절이라 불리던데, 어디 보여 봐라.”

도발한다.

그것도 사문의 자랑스러운 무공을 들먹이며.

그 누가 화나지 않겠는가?

“…….”

북초이가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갈천악의 앞에 도달하는 북초이의 신형.

이어서 뻗어 나가는 것은 화살이다.

뒤로 잡아당겼던 팔은 끊어질 듯 한계까지 잡아당긴 활이고, 앞으로 튕기듯이 뻗는 손 안의 검은 화살이 된다.

그것이 바로 사일(射日).

전설 속 예가 아홉 개의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듯이 북초이의 검이 전설 속 화살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갈천악을 찔렀다.

자하십육검 일검으로도 따라잡기 버거울 정도의 속도다.

저것이야말로 가볍고 표홀한 점창파 비전(秘傳)의 비기(秘技).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저것이 나의 자하십육검과 같은 점창파 천 년의 무공, 사일검법이었다.

피슛!

“큭!”

그것에 반응한 갈천악도 대단하다.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지만, 갈천악의 어깨를 꿰뚫었어야 할 북초이의 검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금강불괴라 하던 갈천악의 몸에서 탁한 검은색의 피가 솟구쳤다.

“강시라고 했는데 피가 흐르나?”

강시는 죽은 자다.

이미 심장이 멈추어 피가 흐르지 않는 시체를 되살리는 사법일진데 어째서 피가 솟구치는가?

“하,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말하며 갈천악이 왜도를 살짝 들어 올렸다.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가 천천히 내려온다.

하지만 피하지 못한다.

온몸을 찌르는 거대한 살기와 날카로운 예기가 어디로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을 터였다.

도가 내려오는 궤적을 따라 천천히 도의 잔영이 남았다.

북초이가 얼굴을 굳히더니 다시 사일검법을 펼쳤다.

갈천악의 도가 북초이의 검과 맞부딪치자 도의 잔영이 갈천악의 도와 합쳐지며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퍼엉!

“커억!”

뒤로 튕겨지며 날아오는 북초이.

“이런!”

남문기가 황급히 북초이를 받아 냈다.

“쿨럭! 쿨럭! 크으…….”

북초이가 괴롭다는 듯 얼굴을 크게 찌푸리며 피를 토해 냈다.

피에 절어 있던 무복이 더욱 붉고 탁한 피로 진하게 물들었다.

북초이의 오른손에 꽉 잡혀 있는 검은 고통스럽다는 듯 계속해서 웅웅웅 울고 있었다.

“호오∼ 부러지지 않는 건가? 신병이로군. 점창파의 이대병기 중 하나인 사일검인 건가?”

사일검.

점창파 장문인인 관일공이 쓰는 관일창과 더불어 점창파의 이대병기 중 하나이다.

‘그런 것을 북초이가 갖고 있다고?’

“그 더러운 입으로 부를 수 있는 검이 아니다.”

남문기에게 부축을 받고 일어나 짧은 간격으로 숨을 내쉬며 북초이가 말했다.

“어때, 이제 세 명이 한꺼번에 덤빌 마음이 드나?”

갈천악이 북초이의 말을 깨끗하게 무시하며 말했다.

“나 혼자 상대하겠소.”

“아니, 이번엔 내가 상대하겠소.”

남문기가 내 가슴을 살짝 막으며 북초이의 팔을 내 어깨에 걸치고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잖소?”

“실력이 미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족하오. 이런 모욕을 받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소.”

이건 내가 관여할 수가 없다.

무인의 자존심을 걸고 하는 말.

무시하기에는 담겨 있는 무게가 너무나 무거운 말이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군. 세 명이서 한꺼번에 덤비라고 했는데.”

“우리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소? 쉽게 죽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오?”

“어리석은.”

갈천악이 인상을 찌푸리며 도를 정수리 위로 올렸다.

남문기는 왼손으로 검을 들고 검날을 비틀었다.

좌수검(左手劍).

남문기가 검을 쥐는 방법은 정상적인 검을 쥐는 방법이 아니었다.

상대하기 까다롭고, 또한 상대에게 반드시 상처를 입히고야 마는 수법.

이것이 바로 해남파(海南派)였다.

해남도에 머물며 그 비정상으로 인해 사마외도에게 공포로 군림하는 해남파의 진수였다.

“반수검(半手劍)을 쓸 작정인가? 아니면 남해검(南海劍)?”

“해남파의 무학은 일반상리에서 벗어난 기이함, 그리고 또한 검날을 기울여 번개같이 빠르고 지극히 날카롭게 상대를 상처 입히는 것에 있지.”

“그게 어쨌다는 거지?”

갈천악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굳어 버리고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양 절대 흔들리지 않는 거목과도 같았다.

갈천악의 몸에서 점점 뻗어 나오는 비수로 몸을 쿡쿡 찌르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예기와 살기, 그리고 남문기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넓은 대해(大海)와도 같은 기세.

맞부딪치자 둘 사이에서 폭풍이 일었다.

“해남파는 구파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백에서 오백 년 정도? 다른 구파에 비하자면 반 정도밖엔 되지 않지.”

“그만큼 역사가 짧고 약하다는 소리도 되지.”

“하지만 해남파는 구파가 된 이후로 다른 팔파와 비교되어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지. 그것은 왜였을까?”

“내가 알 바 아니지.”

“지금, 어째서 해남파가 다른 팔파에게 밀리지 않는 것인지 보여 주겠다.”

차오른다.

바다에서 밀물이 시작되는 양 남문기의 몸에서 기가 점점 차오르고 있었다.

“해남파 장문인이라면 모를까, 너 정도로는 안 돼.”

갈천악이 비웃으며 말하곤 이내 도를 내려쳤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뻗어 나오는 경력.

도신이 늘어나기라도 한 양 무형의 기운이 점점 도의 날을 늘였다.

후우웅∼ 콰지지직!

회오리바람이 무형의 날을 휘감아 돌고, 터져 나갈 듯한 압도적인 경력이 도의 날이 땅에 닿기도 전에 그 궤도에 있는 바닥을 산산조각 냈다.

그에 맞춰 남문기가 검을 움직였다.

일반 무인과는 다르게 왼쪽에서부터 내리쳐오는 검.

촤아아악∼

바다가 갈라진다.

갈천악에 의해 공간 안에 꽉 차 있던 기의 바다가 남문기의 검에 의해 갈라졌다.

“뭣……?”

“남해삼십육검(南海三十六劍) 대해참경(大海斬驚).”

기의 바다를 가르고 그 사이를 뛰어넘어 남문기가 검을 강하게 내려쳤다.

카가가각!

남문기의 검과 갈천악의 왜도가 맞부딪쳤다.

밀린다.

힘과 힘으로 맞부딪쳐 갈천악의 왜도가 불꽃을 튀기고 흔들리며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남해삼십육검 해랑격암(海浪擊岩).”

해안가의 절벽과 바위들은 파도에 의해 점점 그 원형을 잃어 가며 닳는다.

파도는 그만큼 끈질기고, 그만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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