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26화 (126/175)

# 126

화산천검 6권(1화)

1장 신룡의 신위(1)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가듯 비명을 지르고, 몸이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극성으로 펼쳐 낸 암향표.

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귓가에 병장기 소리와 비명 소리, 기합 소리 등이 들리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드문드문 보이는 시체들.

목이 부러지고, 사지가 잘리고, 가슴에 구멍이 뚫린 시체 등.

하나같이 점창파와 해남파 무인들의 시신들이었다.

다른 무복을 입은 무인들의 시신도 보이긴 했으나 그건 정말로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점창파와 해남파 무인이 일곱 명 정도 쓰러져 있으면 하나가 쓰러져 있을까 말까 한 정도?

하지만 그건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젠 시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해남파와 점창파 무인들의 시체와 적들의 시체의 비가 거의 같았다.

콰직!

밟은 땅이 균열을 일으키며 솟구쳤다.

크게 땅을 밟고 담을 넘었다.

파라라락∼

장포 자락이 휘날리며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도착이다.

점창파와 해남파의 무인들과 혈천회 칠사도 중 일사도와 사사도의 전쟁.

건물이 있었다.

그렇게 높지는 않고 평균적인 정도랄까?

낡아 보이는데 그 세월의 깊이만큼 고풍스러움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세월의 풍파에 휩쓸려 먼지만이 남은 듯 어두움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었다.

화려했을 붉은 기와는 풍파에 휩쓸려 색이 바랬고, 벽마다 그려져 있는 벽화는 신수의 머리가 없거나 다리가 없는 등 한 가지씩이 사라져 있었다.

버려진 건물이라 하여도 별반 하자가 없을 듯한 건물.

하지만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그 건물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저곳이다.

저곳이 바로 일사도 탈백도 갈천악과 사사도 요희 초령이 있는 곳이다.

나의 매화만천에 패배를 안겨 준 탈백도 갈천악과 나에게 자하검을 건네준 의문의 여자, 요희 초령.

두 사도는 누군가를 부르기라도 하는 양 계속해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름을 받아들이는 강자는 없었다.

갈색의 경장을 입고 왜도를 휘두르는, 건물을 원 모양으로 빙 둘러싼 자들.

그들에 의해서 길이 막혔던 것이다.

숫자의 차이로 조금씩 밀어붙이려 하는 점창파와 해남파의 무인들.

하지만 수준의 차이가 존재했다.

속가의 장문인들과 장로들이 있거나 본산 문도들이 있는 곳은 조금씩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다른 쪽은 아니었다.

숫자의 차이가 있는데도 밀리는 것이다.

바깥에 있던 무인들보다 한 수에서 두 수 정도 높은 수준의 무인들.

상처를 입고 쓰러지는 것은 대부분 점창파와 해남파의 사람들이었다.

‘북초이와 남문기는 어디 있지?’

사문의 사람들 한 명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북초이와 남문기다.

그런 그들이 어째서 없는 것일까?

건물이 마음에 걸렸다.

강시가 되어 되살아난 일사도와 사술에 능한 사사도가 있는 건물.

묘하게도 바깥에서는 계속해서 크고 작은 기파가 충돌하고 있는데 건물은 커다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빼고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일사도는 강하다.

그런데 어째서 바깥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을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일까?

‘환술!’

알았다.

칠사도 희월은 흑영을 만든 자, 철검파의 흑영대조차 흑영의 일개 조원이다.

그런 자들을 만들고 수족처럼 부리는 자들이 희월이다.

살수의 정점이라 불릴 수도 있을 정도.

세간에 알려져 있기는 그렇게 알려져 있는데, 희월은 환술을 썼다.

분명히 환술은 사사도 초령이 잘 쓴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는 것은, 초령의 환술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인가?’

아니면 희월이 실력을 속이고 있던 것처럼 환술을 쓴다는 것조차 속이고 있었다는 것.

‘가 보면 알겠지.’

밀리고 있다만 그래도 아직은 잘 버티고 있다.

장로들과 속가 장문인들이 있기에 백중지세가 된 것이다.

‘사기를 떨어뜨리려면 수뇌부를, 그리고 만일 사도들이 나오기라도 하면 곤란해.’

사도들이 나오기 전에도 백중지세다.

이때 사사도나 일사도 중 하나라도 나오기만 한다면 압도적으로 밀릴 것이 분명했다.

터엉!

담벼락을 박차고 전장 사이로 난입했다.

“엇?”

한 해남파 무사의 목소리를 기점으로 청운검을 뽑아 들며 수직으로 내려쳤다.

“하앗!”

카앙!

막아 내는 갈색 무복의 무인.

맞부딪치는 검 사이로 튕기는 불꽃.

그 사이로 남자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후웅∼ 빠악!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실력이 나보다 뛰어나단 것은 아니다.

상대의 검을 발로 박차고 살짝 뛰어올라 신류퇴 낙추로 어깨를 내리찍었다.

“큭!”

신음과 함께 몸을 뒤로 빼는 남자.

타닥! 팡!

땅에 착지하는 순간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어서 자하십육검 일 검.

땅! 스거걱!

극에 이른 쾌의 일섬이 남자의 검과 함께 가슴을 베어 버렸다.

건물까지는 앞으로 십여 장.

내 앞에 있는 적의 수는 여섯.

뒤에서 주춤주춤하고 있는 해남파 무인에게 소리쳤다.

“뭐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서 싸우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정신을 차렸는지 해남파 무인이 황급히 대답하며 땅을 박찼다.

내가 남자를 순식간에 쓰러뜨린 것을 봤는지 세 명의 무인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점창파와 해남파는 아닌 것 같은데. 어디지? 화산파? 종남파?”

가운데에 서 있는, 도와 검을 양손에 쥐고 있는 자가 말했다.

“대답할 이유는 없다.”

어서 빨리 안으로 진입해야 한다.

육감이, 상단전이 그렇게 고하고 있었다.

말과 동시에 일보 앞으로 내디디며 검을 내찔렀다.

찌르기는 일격필살과 마찬가지다.

성공한다면 커다란 타격을 줄 수 있지만, 피하고 반격을 가해 온다면 피하기도 힘들 뿐더러 싸움의 기세를 빼앗기게 된다.

내가 지금 찌르기를 한 것은 사실 나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때의 얘기다.

자하십육검 칠 검(七劍).

푹! 푸확!

중검(重劍)의 묘를 담은 찌르기.

검에 담겨 있는 기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피하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검과 함께 뻗어 나가는, 중의 기운이 담긴 기의 그물이 상대를 포박하는 것이다.

이내 검을 빼내며 자하십육검 사 검.

푸푸푸푹!

양어깨와 양 허벅지.

터져 나오는 핏줄기가 월광과 횃불의 불빛 아래에서 탁한 빛을 뿜었다.

동시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찌르고 왼쪽으로 신류퇴 전추.

까앙!

순간적으로 반응해 나를 공격해 오던 남자의 검의 검신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빙글! 쐐애액∼!

그 상태에서 몸을 돌리며 검을 던졌다.

까앙!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남자가 도를 올려치며 막았다.

튕겨 오르는 검을 잡으며 자하십육검 육 검.

콰콰콰쾅!

피어오르는 모래들과 먼지구름.

‘왼쪽!’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살짝 틀었다.

사라락!

아슬아슬하게 피해 낸 검에 앞머리가 살짝 잘려 나갔다.

검을 내친 자는, 신류퇴 전추로 검을 튕겨 냈던 자.

파아앙!

고막이 터질 듯 귀가 멍멍하다.

뒤에서 연속적으로 도를 휘두르는 나머지 하나.

피잉!

오른쪽 다리로 땅을 박차고 왼쪽으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검을 내려쳤다.

스거걱!

‘피하지 않는다?’

동귀어진이라도 할 결심인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벅지까지 길게 난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는데도 입술을 깨물고 앞으로 달려들어 검을 찌른다.

‘이런!’

피슛!

다리에 힘을 빼 빠르게 주저앉았지만 완벽히 피하지는 못했다.

등 쪽에서 뜨거운 인두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윽!’

빠악!

무릎을 쳐 쓰러뜨리고 청운검을 왼손으로 넘기며 올려쳤다.

카앙!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해 도와 부딪친 청운검이 튕겨 나갔다.

할 수 없이 튕겨 나가는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몸을 뺐다.

대치.

하지만 이내 입술을 깨물고 도를 든 남자가 달려들었다.

자하십육검 팔 검.

사라지고 분열한다.

휘고 꺾이다 곧게 뻗어진다.

기묘막측한 환검.

남자가 눈을 빛내더니 도를 후려쳤다.

까앙!

부딪쳤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자 남자가 일보 앞으로 나서며 연이어 도를 휘둘렀다.

우우웅∼

맞으면 몸이 부서져 나갈 만큼의 무지막지한 경력이 깃들어 있는 도.

푸하학!

도를 잡고 있는 남자의 손과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남자의 눈이 의문스럽다는 듯 멍해졌다.

환검을 파훼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조차 함정이다.

그것은 내가 일부러 겉으로 드러낸 허점.

남자가 함정에 걸린 순간 이미 자하십육검 일 검의 묘리로 청운검을 휘둘렀었다.

팅!

도를 살짝 튕겨 내고 또다시 앞으로 달려갔다.

남은 것은 둘.

막아 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는지 두 무인은 나를 막지 않고 각자 왼쪽과 오른쪽으로 피했다.

‘칫, 잡을 시간이 없어.’

앞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더 드러나는 불길한 예감.

그 예감에 피한 두 무인을 따라가지 않고 건물의 문 앞에 섰다.

이잉∼

울부짖는다.

문에 손을 대자 괴롭다는 듯 건물이 울부짖었다.

‘환술이군.’

쨍그랑! 콰아앙!

발에 강하게 내력을 주입하고 걷어차자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부서지며 건물의 안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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