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화산천검 5권(25화)
10장 칠사도 희월(3)
“들어 보니까 안쪽엔 우리 문파의 사람들이 들어갔고, 또 거기에 일사도와 사사도가 있다는 말이렷다?”
언제 온 것인지.
북초이와 남문기가 이곳에 온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할 일도 없는데 승빈이가 여기가 위험할 것 같다고 해서 말이오. 전시라 가면 처벌 좀 받겠지만 그래도 그게 우리 문파 사람들 목숨보다 더 무겁겠소?”
북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만일 처벌이 무겁다 해도 그것이 자문파의 사람들의 목숨보다 더 무겁겠는가?
“우리는 안에서 사도들을 막을 테니 이 여인을 쓰러뜨려 주시오.”
“알겠소.”
이젠 괜찮다.
안의 사람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칠사도 희월, 쓰러뜨리고 안으로 진입하겠소.”
“아아, 정말이지.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어서 아쉬운데.”
희월이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자세를 잡으시오.”
북초이와 남문기는 이미 안으로 진입했다.
나는 희월을 쓰러뜨리면 될 뿐.
“걱정해 주는 거야? 미안하지만 별로 안 고마운데.”
말이 끝남과 동시에 희월이 비수를 던졌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
몸을 살짝 틀어 피하고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진각.
콰직!
왼발과 맞닿은 땅바닥이 갈라지며 솟아올랐다.
이어서 정권.
장천수 일 초.
콰아앙!
희월의 어두운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장과 맞닿은 주먹.
오른팔이 경련이 일어나듯 뚜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떨렸다.
“귀원장(鬼怨掌)이야. 미안하지만 네 장천수 아닌 장천수는 통하지 않아.”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진각을 밟은 왼발을 축으로 발검하듯 오른발을 차올렸다.
턱!
하지만 이번에도 희월의 장이 막았다.
뚜둑!
발을 꺾음과 동시에 왼발의 뒷무릎을 갈고리와 같이 자신의 발로 잡아 끌어당기는 희월.
“웃!”
균형이 무너짐과 동시에 희월의 장이 바로 앞에 보였다.
콰아앙!
교차하여 막은 왼손과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상처를 타고 비집고 들어오는 어두운 기운.
마치 나에게 원한이라도 있다는 양 기운을 끌어 올려 막아도 악착같이 밀고 들어온다.
“크윽!”
울컥!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피가 입안에 고인다.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위험할 거야. 가급적이면 죽이지 말라고 부탁받았는데 쉽게 죽어 버리면 곤란해.”
싸늘히 말한다.
희월은 유부의 귀령이 현신한 듯이 귀기를 내뿜고 있었다.
‘맞는 말이지.’
어두운 기운이 아지랑이와 같이 솟아오르는 희월의 장.
귀원장이라고 했던가?
그 위력을 알아보려 장천수를 썼던 것인데 역시나 강력했다.
검을 뽑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자만한 건가?’
상대는 혈천회의 사도다.
검을 뽑지 않고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르릉∼
달빛 아래 자색 검광을 흘리는 자하검.
그 신비로운 빛에 홀리듯 두 손으로 검병을 잡고 기를 끌어모았다.
“일 초로 끝내려는 거야? 너무 성급하네. 난 더 놀고 싶은데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술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를 핥고 기를 폭발시키듯 방출하는 희월.
기세와 기세가 맞부딪치며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십육 검을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삼 검.
지금의 상황에 가장 알맞은 검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검초.
이번에도 절대 내 기대를 저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어머, 뭔데?”
밝고도 쾌활하게 대답하는 희월.
“어째서 혈천회에는 예전의 마뇌(魔腦)와 같은 자가 없는 것이오?”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지금까지 무림을 일통하려는 세력들은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두뇌를 가진 군사들을 대동하고 신산귀계로 모두를 곤혹스럽게 했다.
진법에 걸려 진격이 멈추고, 기관에 걸려 전력을 잃고, 기습을 받아 전멸한다.
다행히 그때마다 제갈세가(諸葛世家)에서 지원을 해 주거나 계책이 통하지 않는 절대의 무를 가진 절대자들이 나타나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무척이나 무섭다.
그런데 지금까지 무림을 일통하려는 목적으로 나타난 많은 세력들 중에서 가장 커다란 세력을 가진 지금의 혈천회가 어째서 계책을 짜내는 그런 군사들이 없는 것인가?
혈천회의 지금까지의 모든 행보를 볼 때 그들은 모두 압도적인 힘으로 밀어붙였지 하늘이 놀랄 만한 그런 계책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었다.
“아아, 그건 말이지.”
희월이 싱긋 웃었다.
어두운 밤을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내가 죽였어.”
“에?”
이게 무슨 황당한 대답이란 말인가?
죽였다니?
“말 그대로야, 죽였어. 머리만 써 대고 앞에서 싸우지도 않는 그런 짜증 나는 놈들은 내가 전부 죽여 버렸어.”
“혈천회의 행보에 많은 도움이 될 터인데?”
“그래 봤자야. 지금의 혈천회는 어차피 세력 면에서는 누구한테도 안 져. 어차피 이길 싸움인데 조금 더 피해를 봐도 상관은 없지.”
“지금은 지고 있잖소?”
“어머, 누가 그래? 누구한테 물어봐도 지금의 싸움은 혈천회가 이기고 있다고 할 텐데?”
사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아직 혈천회의 호법들과 회주는 나오지도 않았고, 사도들이 나왔을 뿐인데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니까.
물론 그중 반은 쓰러뜨렸지만 아직 반이 남았다.
그들을 모두 쓰러뜨리기 전까지는 무림맹은 절대 이기고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모두 쓰러뜨리면 끝이다.’
이사도와 오사도를 빼고는 지금 모두 여기 있다.
이곳에 있는 세 사도를 쓰러뜨리면 그다음부터는 신룡들과 구파의 장로들의 압도적인 진격뿐이다.
싸움은 고수의 보유수에서 결정되니까.
“과연 그게 될까?”
“물론.”
“어머, 광오하네. 마음에 들긴 하지만 기분은 나뻐.”
희월의 장심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피어오르는 어두운 기운.
귀신의 원한[鬼怨]을 담은 장이 불길하게 공간을 잠식해 갔다.
그에 비해 내 검은 조용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검명도 일으키지 않고 떨리지도 않는 자하검.
비정상적일 정도로 조용한 나의 검에 희월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뭐야, 안 싸울 거야?”
희월의 기세는 이미 내 주변까지 잠식했다.
“아니, 준비 끝이오.”
내 기세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갈무리하고 갈무리해 내 몸속 깊이 파고든 것일 뿐이다.
“뭐, 그럼!”
팡!
크게 기합을 넣듯 소리치며 희월이 땅을 박차고 날아왔다.
일보에 십여 장 간격을 압축하는 희월의 신법.
그리고 그 신법에 힘을 받은 희월의 장이 내 명치를 노리고 쏘아졌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고 날아든다.
집중하지 않고는 볼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와 강맹한 기운.
그에 비해 내 검은 천천히 움직였다.
희월의 장이 내 명치에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눈 깜빡하는 것보다 빠르다.
빛살과도 같은 빠르기.
그런데 나는 희월의 장이 쏘아진 다음에야 검을 움직인 것이다.
그 누가 봐도 내 패배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
마음이 일면 몸이 움직인다.
마음이 희월의 장에 도달한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자하검.
그렇지만 빛살과도 같은 빠르기의 희월의 장이 내 명치에 도달하기 전에 내 자하검이 먼저 희월의 장에 도달한다.
후발선착(後發先着)의 묘리(妙理).
발출한다.
신체의 강인함을 담아 용이 승천하듯 하단전에서 빠져나와 중단전을 거치며 마음을 담고, 상단전을 거치며 염(念)을 담아 팔을 통하고 검을 통해 발출한다.
삼단전의 공명을 이루어 내고 신검합일을 이룬 상태에서의 힘의 방출.
이것이 바로 자하십육검 삼 검의 극.
그 무엇도 막지 못하는, 파괴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강인한 신장의 망치가 희월의 장과 맞부딪쳤다.
슈우욱∼
부딪치면서 난 소리라기보다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숨이 막혀 온다.
공간이 압축되고 압축되어 공기가 빠져나가 숨이 막힌다.
희월의 장은 아직까지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어두운 기운이 이글거리고, 내 검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퍼석!
소리와 함께 결과가 드러났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산산조각 나 부서져 흩어지는 귀원장의 기운.
푸화화화확!
희월의 장심을 기점으로 피부를 따라 혈선이 생겨나고, 그 혈선이 터져 나가며 피가 분수와도 같이 솟아올랐다.
“뭐야? 문서로 보았던 위력과는 다르…… 잖아?”
“이것이 매화검로의 진정한 모습, 자하십육검이오.”
“자하십육검이라…… 삼백 년 전 혈천회의 겁난 때 마지막 전인이 죽어 사라진 절기라고 알고 있는데?”
“안배요.”
“아아…… 그래. 그 악착같은 구파가 그런 절기를 버릴 리가 없지.”
푸화확!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피.
이미 희월의 아래에는 피로 만들어진 작은 웅덩이가 생길 정도였다.
“뭐, 그런 절기에 죽은 것이니 그래도 무인으로서는 괜찮은 죽음인가?”
허무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곤 희월이 눈을 감았다.
쿵!
중심을 잃은 몸이 쓰러진다.
자신의 피가 만들어 낸 웅덩이에 파묻혀 쓰러진 희월의 몸.
이것이 혈천회의 칠사도로서 흑영들을 조직하고 관리하였고, 점창의 장문인에게까지 상처를 입힌 희대의 여류고수의 마지막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자의 신분이 높든 안 높든, 명성이 하늘을 찌르든, 그 누구도 모르든 간에 죽음은 평등하게 찾아와 안식을 준다.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요녀치고는 그래도 평범한 죽음이었다.
무림에 발을 담근 사람들의 죽음은 거의 다가 싸움에 의한 죽음이니까.
“후우∼”
숨을 내쉬어 탁기를 내뿜는다.
삼 검의 압도적인 힘으로 쓰러뜨렸다고는 하나 귀원장은 간단한 무공이 아니었다.
삼 검의 경력을 발출하면서 생긴 그 조그만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혈도를 타고 몸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공을 끌어 올려 귀원장의 내공을 뒤덮어 밀어붙이자 이내 힘에 부친 듯 손가락 끝에 모아져 모공을 통해 흘러내렸다.
사르륵∼
어두운 기운이 월광 아래 춤춘다.
‘안으로 가자.’
운가장에 남은 것은 강시로 변한 일사도와 나에게 자하검을 건넨 사사도.
‘쓰러뜨린다.’
내공을 전신에 퍼뜨려 내상을 치료하며 안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