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23화 (123/175)

# 123

화산천검 5권(23화)

9장 진격(3)

카칵!

검을 살짝 비틀어 청운검과 맞닿은 비수를 틀어 버리고 신류퇴 회추를 먹였다.

빠각!

피하려 했지만 내 다리가 더 빨랐다.

그래도 목을 노렸던 발차기에 어깨가 맞았으니 즉사하지는 않았다.

“…….”

흑영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길로 나를 쳐다본 뒤 이내 모습을 감추었을 뿐이다.

“어서 몸을 추스르십시오.”

“아, 감사합니다.”

나에게 도움을 받은 점창파 속가제자가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꽉 쥐었다.

‘여기구나!’

이미 기감에 있어서는 발군이라 할 수 있는 나다.

화산에서 하산하기 전에 이미 매영들의 기척을 눈치챈 내가 아닌가?

매영들과 이들을 비교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실력이라면 정신을 집중하면 힘들긴 하지만 저들이 어디서 어디로 움직이는지, 어디에 숨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팍!

자리를 박차며 앞으로 뛰쳐나가 땅에서부터 솟아나듯 나타나는 흑영의 머리를 짓밟고 검을 휘둘렀다.

스걱!

피가 솟구치고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목표가 되었던 해남파 속가 문파의 장문인 중 하나인 경혼권(驚魂拳) 구처이(丘處邇)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심하십시오!”

말하곤 이내 다시 옆으로 몸을 움직이며 검을 내리그었다.

그렇게 장포를 휘날리며 움직이기를 십여 차례건만 쓰러지는 자들은 계속해서 나왔다.

고수들은 정신을 집중하여 치명상을 피하고 있어 죽지는 않았지만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고수들이 그러하니 하수들의 상황은 상상한 대로일 것이다.

막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채 부지불식간에 사혈을 꿰뚫리고 계속해서 쓰러져 가는 속가 문파의 문하들.

본산제자들은 정예들 중에서도 정예들이기에 몇몇을 빼고는 공격을 잘 피하고 있었다.

흑영들도 이제 고수를 노리는 것은 무리란 것을 알았는지 계속해서 속가 문파의 문하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치잇!’

줄이고 줄여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고수들의 기감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흑영들의 은신술.

흑영들의 수는 벌써 반이 줄어들었건만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쪽 사람들의 수 또한 반 이하가 될 판이다.

빠각! 퍼억!

장천수로 늑골과 목을 부러뜨려 또 한 명의 흑영을 죽였다.

“흩어지지 말고 우리들의 근처로 오거라!”

흑영들의 공격을 피하고, 이제는 반격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적응이 된 장로들과 속가 문파의 장문인들이 크게 소리쳤다.

산발적으로 서 있던 본산제자들과 속가 문파의 문하들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스물 정도가 남은 흑영들.

하수들이 고수의 근처로 모이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공격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피해는 더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흑영들이 다급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비수를 휘두르고 암기를 던져 댔다.

“어?”

흑영의 수가 너무나 적다.

스물 정도가 남은 흑영일 텐데 어째서 여섯 명밖에 없는 것일까?

“제대로 지키지도 못해?”

한심하다는 듯한 말투와 함께 우승빈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의가 피로 젖어 있었다.

왼쪽 팔뚝과 오른쪽 손목은 베여 피가 흐르고, 가슴의 의복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난도질이라도 된 듯 해져 있었다.

하반신도 오른쪽 무릎 부분에서 의복이 찢어져 있어 종아리가 드러났고, 왼쪽 허벅지에는 다섯 개 정도의 세침이 꽂혀 있었다.

과히 좋지 않은 모습.

숨을 헐떡이며 정색을 하고 있는 우승빈은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그것은 칠사도 희월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려하지 않은 궁장의 왼쪽 허벅지 부분이 찢겨져 새하얗지만 피에 젖은 다리가 드러났고, 상의 부분도 찢겨져 있어 야릇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사지 곳곳의 옷이 피에 물들어 있었고, 몇몇 부분에는 암기가 꽂혀 있었다.

“감히…….”

화가 난 것인지, 희월이 미소를 지운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것조차도 매혹적인 모습.

움직임 하나하나가 섭혼술이요, 사술이었다.

우승빈이 능글맞게 웃었다.

“부하를 챙기고 싶으면 제대로 챙기던가, 싸움에 집중해서 부하들을 몰래 공격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수장으로서는 실격이라고? 아줌마.”

“반반하게 생겼다고 봐줬더니 너무 기어오르는구나, 꼬마야.”

“늙어서 화내면 주름살 생겨. 아무리 주안술이라는 사술이 있다지만 그건 자신의 진짜 미모가 아니잖아? 그니까 지금부터 관리를 해 두라고.”

우승빈이 숨을 몰아쉬며 빈정대듯 말했다.

“네가 쓰러뜨린 거냐?”

“대신에 이런 훈장을 얻었지만 말이야.”

우승빈이 손에 들고 있던 비수로 다리를 가리켰다.

빠른 속도로 검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상대의 뒤를 잡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다리놀림이야말로 살수의 기본이다.

희월도 마찬가지기는 하지만 우승빈의 다리 쪽에 있는 상처는 희월보다 심했다.

“치잇, 전멸도 각오해야겠군.”

“그 정도면 어차피 전멸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냥 다 죽어 주지 그래?”

우승빈의 말에 희월의 몸에서 살기가 폭사되었다.

“하하, 화났구먼?”

희월과 싸우며 흑영들의 수를 줄이려 해서겠지만 그래도 우승빈의 상처는 희월보다 많다.

제대로 싸웠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희월이 이기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저들을 화나게 해서 어쩌자는 건지…….

[이러면 도망치지 않을 거야. 나중에 더 많은 수가 죽느니 지금 몇 명 죽어서 저들을 막는 것이 낫지 않겠어?]

나중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지금 희생한다.

별로 마음에 드는 생각은 아니지만 미래를 보자면 확실히 지금 우승빈만큼 냉철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희월과의 싸움을 끝낼 거냐?]

[아니, 내가 왜?]

전음으로 우승빈의 어이가 없다는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뭐냐, 이건?’

나 또한 어이가 없어서 우승빈을 쳐다보았다.

[저 여자, 칠사도라고 했지?]

[그래.]

[뻥이야.]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희월이 칠사도라는 것은 현 무림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사실인데.

[대외적으로야 칠사도겠지만 실제 실력은 아니야. 나 옛날에 오사도를 암살하려고 훔쳐본 적이 있거든? 그자와 비슷한 실력이야. 저 여자, 나랑 싸우면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어.]

그건 놀랄 만한 일이다.

가끔 보여 주었던 나조차 눈치를 못 챌 정도의 움직임과 은신술.

그런 우승빈이 이렇게 상처를 입었는데 칠사도 희월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고?

[갖고 논 정도는 아니지만 탐색하는 정도랄까? 물론 너무 나를 무시해서 저렇게 상처를 입었다곤 하지만 말이야. 점창파의 관일공과 싸우면서 선천진기까지 소모했다고 하는데 그러고도 저 정도라니 사기 아니야? 반년이나 지났긴 하지만 선천진기의 소모니까 내공의 소실, 즉 실력의 하향이라고 봐도 아무 하자도 없는데 말이야. 아니, 점창파의 관일공은 그럼 얼마나 강하다는 거야?]

우승빈이 투덜거렸다.

[실력의 반 정도는 발휘했나?]

[육 할 정도.]

반을 조금 넘은 숫자다.

[물론 나도 전력을 다하진 않았지만 잘해야 양패구상이야. 아니면 내가 지고.]

[그럼 어쩌자는 거지? 칠사도 희월이 암습을 가한다면 아무리 장로님들이라도 백분지 백 당할 텐데.]

[그니까 네가 나서.]

[뭐?]

[어차피 사도들을 상대하기 위해 온 거 아냐? 그리고 내가 조금 상처를 내 놨으니까 상대하기 수월할 거야.]

[그건 차륜전이잖아?]

[지금이 그런 거 따질 때냐? 아니면 다 죽을 때까지 방관하다가 마지막에 나서게?]

우승빈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래, 내 말은 공명심을 탐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차피 내 목적은 혈천회에 대한 복수와 사도들의 저지.

아무리 사문의 규율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규율은 몇 번이고 깨 왔다.

지금 한 번 더 깬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나머지 놈들은 내가 알아서 상대할게. 그 정도의 체력은 남아 있으니까.]

[알았어.]

칠사도 희월은 우승빈을 찢어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잡담은 끝났느냐, 꼬맹아?”

“잡담은 한 적 없는데? 그리고 나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도 나는 지금 아줌마랑 싸울 생각 없어.”

“그게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내 몸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뭔 상관이야, 아줌마.”

우승빈이 싱긋 웃으며 땅으로 스며들듯 모습을 감췄다.

[이쪽은 저와 우승빈이 맡겠습니다. 더 이상 피해를 보기 전에 안으로 진입하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예상하지 못한 말인지 언보고 장로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더 뭐라 말할 시간이 없다.

파앙!

암향표 신법을 극성으로 전개하며 우승빈을 따라 몸을 숨기려 하는 희월의 허리로 검을 휘둘렀다.

까앙!

“큭!”

극성으로 펼친 암향표와 자하십육검 일 검이다.

평범한 충격일 리가 없다.

‘쓰러뜨린다!’

몸 구석구석으로 내공을 돌리며 검을 더욱 밀어붙였다.

10장 칠사도 희월(1)

“하앗!”

챙!

검을 밀어 청운검을 막은 비수를 튕겨 내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카카캉!

하지만 기습이건 뭐건 사도를 당황시킬 순 있어도 치명적인 빈틈을 만들진 못한다.

싸우면서 갈고닦인 육감,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몸, 그리고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초식을 따라 움직이는 병장기까지.

우세를 점할 순 있어도 치명적인 빈틈을 만들기란 요원했다.

“큭, 어디서 이런…….”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눈을 가릴 만큼 기른 앞머리.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다면 내 얼굴을 알아보기는 힘들 것이다.

아니, 칠사도 희월 정도라면 한눈에 알아보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우승빈과의 대화로 생긴 화와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 쪽 무인들을 막으려 하는 다급함 때문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카각! 펑!

가죽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장천수에 얻어맞은 희월이 뒤로 밀려났다.

“이미 늦었소.”

흑영들과는 우승빈이 접전을 하고 있고, 우리 쪽 무인들은 이미 안으로 진입했다.

희월이 나를 쓰러뜨려 뿌리치지 못하는 이상 저들을 쫓아가 막는 것은 불가능이라 할 수 있다.

“응? 설마…… 화산파?”

“이제 알았소?”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며 검을 늘어뜨렸다.

“어머, 이거 실수했는 걸? 너무 잘생겨져서 못 알아봤어.”

우승빈을 대할 때와는 다른 태도.

선천진기를 반년 전에 소모했다고는 하지만 몸을 구성하는 생기를 쓴 것이기에 얼굴에 어두움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뛰어났던 미색은 그 어두움을 이기고 빛을 발했다.

“안 통하니 섭혼술에 내공을 낭비할 필요는 없소.”

“이거 섭섭한 걸? 이렇게 예쁜 미인에게 그런 소리라니.”

“적일 뿐이오.”

팽팽한 대치 상태.

희월은 무방비하게 서 있는 듯했지만 빈틈이 없었다.

어디를 공격해도 피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는 자세.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빈틈을 찾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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