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화산천검 5권(22화)
9장 진격(2)
웅∼
“합!”
이제는 진동이 극에 이르러 검명이 울려 퍼지려 했을 때쯤, 남자가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수직으로 그어 내렸다.
파카카캉!
그와 함께 쪼개어지며 앞으로 날아가는 수백 조각의 파편.
콰콰콰쾅!
“뭐, 뭐냐!”
파검은 어둠 속을 날카롭게 유영하며 날아가 두꺼워 보이는 운가장의 남문을 먼지가 되도록 부숴 버렸다.
“간다!”
우와아아아∼!
커다란 기합성과 함께 숨어 있던 모두가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서 있던 두 명의 문지기는 쓰러진 지 오래였다.
태양을 꿰뚫는 극쾌의 검술.
미간의 구멍과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열기는 분명한 점창파 검수의 것이었다.
엄청난 함성과 함께 안으로 진입해 가는 많은 검수들.
그 중간에 껴서 나도 운가장의 안으로 진입했다.
우리와 동시에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보다 조금 느린 것인지.
모르겠다만 삼방에서 커다란 함성 소리와 함께 병장기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승빈의 말로는 기습을 예상했을 거라고 하던데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아무리 구파의 속가 문파들과 본산 제자들이라고는 하지만 혈천회가 만만한 곳은 아닌데 이렇게 쉽게 제압이 되다니.
‘설마 정보가 잘못된 건가?’
아니, 그럴 가능성은 없다.
개방은 천하제일방이다.
정보에 관해서는 따라올 문파라곤 그동안에 알려진 바로는 하오문밖에 없다.
암중에서 혈천회가 엄청난 세력을 불려 놓았다고는 해도 흑풍이 개방과 비견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보다 더 뛰어날 리는 없다.
‘그렇다는 것은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얘긴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으니까.
정말 그랬던 것인지 문 주변을 제압하고 더욱더 안으로 진입함과 동시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크아악!”
“으억!”
“커억!”
들리는 소리라고는 죄다 비명소리일 뿐 병장기 소리는 없다.
제일 앞에서 달려가고 있는 것은 대부분이 의기가 충천하는 젊은 무인들밖에는 없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막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가 나왔다는 소릴까?
아니면 기관이나 진식이 발동되었다는 뜻일까?
답은 얼마 있지 않아 나왔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가자 어찌 된 상황인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운가장의 중심부로 갈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담장 위로 까만 옷을 입고 있는 칠십여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인 듯 죽음의 기운을 싸늘하게 풍기며 주변을 관조하는 그들.
그들의 중심엔 어찌 된 일인지 공중에 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움찔!
몸이 반응한다.
뛰어난 미색임에도 불구하고 피곤해 보이는 듯한 어두운 얼굴.
날렵해 보이는 몸과 풍겨 나오는 싸늘한 기운.
강자.
“저 여자가 칠사도인가?”
옆에 있는 우승빈이 말했다.
‘칠사도?’
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칠사도는 흑영의 지주.
쓰러져 있는 많은 검수들은 모두 반응하지 못하고 죽은 듯 사혈에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철검파의 흑영.
천풍걸개의 말로는 그자는 혈천회의 많은 흑영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뛰어난 살수로서의 능력과 정보를 다룰 줄도 아는 능력의 그들.
그리고 저들이야말로 흑영의 진정한 전력.
특급살수라 불릴 만한 자들인 것이다.
“좋아, 좋아. 이거 재밌겠어.”
우승빈이 웃으며 싸늘한 안광을 발했다.
칠사도 희월과 우승빈.
서로를 알아본 것일까?
어느샌가 희월도 우승빈을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꼬맹이가 있구나.”
희월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술이군.’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고혹적인 몸짓.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몇몇을 빼고는, 아니 거의 다가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월의 사술은 만만치가 않아 경지가 높지 않은 젊은 무인들은 섭혼술에 당해 버릴 가능성이 컸다.
“시끄럽다!”
언보고 장로가 엄청난 내력이 담긴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할 정도로 강력한 목소리.
모든 사술을 파훼하는 소림의 사자후와 같았다.
“사자후라, 점창파에 그런 기술은 없었던 것 같았는데요?”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건 그렇고, 네년이 장문인에게 상처를 입힌 요녀더냐?”
“어머, 그럼요. 한 번도 살계를 연 적이 없다는 소림의 불타승도 아니고 겨우 점창의 관일공이 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려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
소림과 비교하면서 점창을 깎아내리고, 또한 여기서 감정에 따라 반발하면 소림의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고는 하나 소림을 자신의 아래로 여기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린다.
교묘한 화술.
하지만 언보고는 당하지 않았다.
“그딴 말에 현혹될 줄 아는 것이냐? 내 장문인을 대신해 친히 네년의 목을 따 주마!”
굉장히 분개한 듯 언보고가 말하며 검을 빼 들고 돌진했다.
빛을 가르고, 그림자를 쫓는 신법.
점창의 신법인 분광착영(分光捉影)이었다.
그런 언보고 장로의 앞을 다섯 흑영이 가로막았다.
싸늘한 안광을 발하는 다섯 흑영이 언보고 장로를 포위하듯 방위를 잡으며 유엽비도를 던져 내고 비수를 빼 들었다.
“어딜!”
언보고 장로의 검이 움직였다.
독특하다.
빠르면서도 거칠었다.
부드러운 검세 속에 숨어 있는 강렬한 폭풍.
빠르게 휘몰아치는 기운 속에 무류의 바람이 숨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동(動)이자 정(靜), 점창파의 회풍무류사십팔검(回風無流四十八劍)이었다.
사일검법과 관일창법이 없었다면 능히 점창파의 얼굴을 자처할 신공이라 불릴 만한 검공.
카앙!
하지만 흑영들은 수많은 자들 중에서도 정예인 바, 유엽비도가 튕겨 나가고 부딪힌 비수가 부서지더라도 절대 자리를 비켜 주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제가 상대할 남자는 장로님같이 쭈글쭈글한 늙은이가 아니라 탱글탱글한 젊은이에요.”
피곤해 보이는 듯한 어두운 얼굴 위로 차가운 미소가 떠오른다.
고혹적인 몸짓과 심령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또다시 앞에 선 젊은 무인들의 몸이 경직되고 그 틈을 타 절정의 특급살수들, 흑영의 진정한 정예가 실력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촤악!
일순간이다.
서른 명의 목이 동시에 공중으로 치솟았다.
텅!
그것을 기점으로 속가 장문인들과 본산 장로들, 그리고 우승빈이 몸을 날렸다.
“쓰러뜨려라! 점창의 힘을 보여 주거라!”
“해남도 밀려서는 안 된다!”
또다시 발해지는 충천의 기세.
그것에 맞서는 흑영들은 수에 있어서 무척이나 달리지만 수준에서는 절대 달리지 않았다.
“칠사도는 내가 맡는다. 피해가 없도록 잘 보조해 줘.”
우승빈이 말하곤 땅으로 스며들듯 그렇게 사라졌다.
칠사도도 그것을 보고 차가운 미소를 짓더니 이내 똑같이 땅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살수 대 살수.
만일 칠사도가 우리들 사이로 스며들어 암살을 시도한다면 수뇌부들로서는 밀리는 젊은 무인들 쪽을 도와줄 수가 없다.
우승빈이 칠사도와 싸우는 것은 점창파엔 미안하지만 차라리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기길 빈다.’
우승빈이 예전에 비해 무척이나 강해졌다고는 하나 정확한 실력은 모른다.
혈천회의 일곱 사도들 중 가장 약한 칠사도라고 하니 그녀보다 강하길 비는 수밖에.
내가 할 일은 보조다.
이들의 싸움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는 그런 단발적인 것이 아니다.
이후로도 계속해서 싸워 나가야 하는 바, 내가 앞서 나가서 모두를 쓰러뜨리는 것은 초령을 상대하기 전에 힘을 빼는 미련한 짓이기도 하거니와 저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모르고 적을 향해 달려드는 만용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장문인께서 나에게 내린 명령과도 반대된다.
지금은 적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눈치채도록 자신을 감춰야 하는 때이다.
‘되도록이면 우리 쪽 무인들의 피해가 적고, 눈에 띄지 않도록.’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적들보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서며 난전 아닌 난전에 끼어들었다.
칠사도가 사라지고 사술이 깨어짐과 더불어 우리 쪽 무인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조금씩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리 쪽 무인들의 숫자는 흑영들의 약 세 배.
아무리 저들보다 평균적인 실력이 달린다고는 해도 인해전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인해전술을 속수무책으로 만드는 것이 무공수위, 즉 실력이다.
하지만 흑영들의 실력은 이쪽 무인들보다 반 수에서 한 수 위 정도.
인해전술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한 문파의 장문인들과 구파의 장로들도 끼어 있는 적들에게서.
“사도의 잔당들이 감히!”
“죗값을 치르도록 해라!”
퍼어억! 스거걱!
크게 고함치며 적수공권을 휘두르고 병장기를 휘두르는 점창파와 해남파의 속가 장문인들.
과연 한 문파의 장문인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해남파와 점창파 본산의 절기를 쓰지 않는 것은 자신 문파에 대한 자신감일까?
각자 문파의 절기를 내보이며 적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 해남파와 점창파의 장로들은 극도로 잔잔하거나 거칠었다.
흐르듯 떠다니는 구름[流雲]과, 평소에는 모든 것을 포용할 듯 부드럽지만 분노하면 모든 것을 부숴 버릴 듯 격렬히 분노하는 바다[怒海].
상반되는 성질의 두 검법과 도법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적들을 베어 나가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서 쓰러지는 적들의 수만 해도 우리가 해치운 적들의 반이다.
지주, 구파의 장로는 도박으로 따 먹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면으로 맞부딪쳤을 때의 얘기.
저들은 검사나 도객이 아니다.
살수다.
스스슥!
열다섯 명 정도를 제외하고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흑영들.
“엇!”
“아니!”
놀란 듯 휘두르던 병장기를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무인들.
“피하거라!”
눈치를 챈 듯 덤벼들었던 다섯 흑영을 모두 쓰러뜨린 언보고 장로가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늦었다.
스스슥! 핏!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와 동시에 삼십여 명의 무인들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 위에 나타냈던 흑영들이 순식간에 다시 모습을 감췄다.
“아!”
하지만 경지에 오른 기감에 걸린 한 흑영은 몸을 빼지 못했다.
아무리 흑영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라 하더라도 기감에 걸린 이상 빠져나가기는 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