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화산천검 5권(19화)
8장 화산파(2)
“화산파의 선검수인 청우라는 아이입니다.”
공손한 청도 장로님의 말.
장문인들.
구파의 최고라는 자들 앞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라고 합니다.”
고개를 깊이 숙이며 포권을 취하자 노승과 비슷한 인상의 비구니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단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몸.
하지만 염력과는 달랐다.
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여 염력과 비슷한 공능을 낼 정도의 능력이었다.
“이름은 많이 들어왔는데 이렇게 젊을 줄은 몰랐구나. 다른 신룡들과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 활약만은 누구보다 두드러지던데 말이야.”
도인이 말하였다.
분위기, 얼굴에 걸맞게 말의 억양도 억셌다.
“반년 전에 사라져 골치를 썩이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강해져서 왔구나.”
검선께서 말하셨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었기에…….”
“그것은 나중에 본문의 사람들끼리 있을 때 말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애송아, 일사도와 일 검을 나누고 쓰러졌다고 했는데 잘도 살아 있구나.”
천풍걸개의 말이다.
말만 들으면 비꼬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칭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살짝 웃으며 말하자 천풍걸개가 고개를 돌리며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노승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는 소림의 불타승 혜각 대사이시다. 그리고 그 옆의 비구니가 아미파의 장문인인 불염신니 혜선 사태이시고, 종남파의 장문인과 개방의 용두방주, 그리고 본 파의 장문인은 당연히 알고 있을 테니 넘어가겠다. 나머지 하나의 강인한 인상의 도인이 바로 공동파의 천강복마 소평군이다.]
청도 장로님이 전음으로 한 분 한 분 설명해 주셨다.
‘저분이 불타승…….’
단 한 번도 살계를 연 적이 없을 정도로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일선에서는 최고의 연배인 불타승 혜각 대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물론 무당의 현 태극검사인 허정 진인과 적수로 비견되고 있는 분이셨다.
아미파의 불염신니는 물론 무척이나 고강하고 불법에 뛰어나 보였지만 불타승에 비해서는 조금 달리는 정도여서 그런지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공동파의 천강복마…….’
달리 복마(伏魔)의 천장(天將)이라고도 불리는 도인이다.
현재는 도문에서는 무당, 불문에서는 소림이라고 칭해져 많이 쇠퇴했다고 알려진 공동파이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도문의 일인자였다.
그런 공동파의 모든 도술과 무공을 이어받은 자가 바로 공동파의 현 장문인인 소평군.
섭혼술과 같은 사술을 쓰는 자와 강시들과 싸울 때는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허허, 반년 전의 회담 때 용두방주께서 말하셨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져 무척이나 안타까웠었단다.”
“많은 분들께 염려를 끼쳐 드려 무척이나 죄송합니다.”
“살아 있으면 그것으로 다행이니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다.”
천풍걸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반년 동안 깨달음을 얻은 것이더냐?”
장문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뭐지?’
뱀이 발끝에서부터 스르륵 올라와 몸을 휘감는 듯한 기분 나쁜 느낌.
예전, 장문인의 눈에서 느낀 기이한 열망.
불길한 느낌이 다시 느껴졌다.
“예.”
파문당한 공동파의 절대자, 공천패에게 수련을 받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말하면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머리를 때렸다.
“흐음∼”
나의 말에 기이한 열망을 다시 감추는 장문인.
“마진천이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많이 걱정을 했었다.”
“마진천이 걱정을 하다니, 정말 놀랄 일이로군요.”
“나도 그런 모습은 처음 봐서 무척이나 놀랐었다.”
천수신검의 말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인 것 같았다.
‘마진천이 걱정을 한다니, 정말 믿기지가 않네.’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말하게.”
“사부님께서는 현재 어디 계십니까?”
나의 말에 장문인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른다.”
“예?”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사문의 장문인이 장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니, 그게 대체 무슨 농담이란 말인가?
“성의가 말하길 몸이 거의 다 치료되었을 무렵 네 소식을 듣고 그날 밤에 사라졌다고 하더구나.”
“그렇다면 이사도를 패퇴시켰다는 그 소문은 무엇입니까?”
“독자적으로 행동하다가 만난 것이겠지. 그리고 그 건으로 할 말이 있다.”
“……?”
“늘그막에 얻은 하나뿐인 제자가 사라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수는 있다. 이해는 하지.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큰 죄다. 특히나 보평제자들도 아닌 장로가 그런다는 것은 특히 더. 혈천회와의 싸움에서 이사도를 패퇴시켰다니 그 공을 감안해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무진 진인을 화산파의 장로로 인정하겠다.”
“그…… 말은.”
“그래, 이 전쟁이 끝나는 동시에 무진 진인은 화산파의 장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무진도 각오를 하고 행동한 것일 테니 아마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
사부, 무진 진인.
한평생 살아온 화산.
그곳의 장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니, 그것도 나로 인해서.
‘사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셨을까?
후회가 된다.
내가 사부에게만이라도 얘기를 했었다면.
아니, 다른 누군가에게, 어느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얘기를 했었다면 사부에게 내 말이 전해졌을 텐데.
그렇다면 사부가 장로직에서 물러날 이유가 없었을 텐데.
물론 화산파에서 사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로였던 자가 장로의 직위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원로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다.
원로가 되지 못한 채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
나도 모르는 새 주먹에 힘이 들어가며 손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그렇지만 무진이 그렇게 된 것은 나의 책임도 있다.”
“예?”
갑작스런 말.
“너를 남궁세가로 보낸 것은 내 판단이다. 그곳에서 네가 그렇게 사라질 줄은 나도 예상을 하지 못했지. 그러니 내 잘못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그러므로 기회를 주도록 하지. 네 강함을 증명해라.”
“강함을 증명?”
“아마 곧 전면전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소규모의 뒷공작과도 같다 할 수 있겠지. 이미 표면에 드러난 것들은 모두 제거가 된 이상, 혈천회에서도 더 이상 몸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수면 아래에 잠자고 있던 많은 것들이 들고 일어나겠지.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아미타불…….”
“허어…….”
장문인의 말에 불염신니가 염불을 외우고 불타승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그곳에서 공을 세워라. 네 잘못은 네 선에서 해결해라. 무진이 그렇게 된 것은 네 잘못도 있으니까 말이지.”
채찍과 당근.
그것은 나를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혈천회와는 죽을 때까지 싸우리라 결심을 하였으니 나에겐 아무런 해도 없다.
사부가 장로직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점도 있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포권을 취하며 승낙했다.
어차피 결정권도 없었다.
그럴 바에야 자기위안밖에 되지는 않지만 나의 의지로 행하리라.
“그런데, 비무라도 한 것이더냐?”
천강복마가 눈을 빛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상처를 입은 것도 없고, 먼지 같은 것들도 모두 털어 버렸다.
흔적은 없을 텐데 천강복마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렇게 흥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더냐?”
“그럴 리가…….”
그 순간 흥분을 하긴 했지만 지금은 비무를 끝낸 지 이각 정도가 지난 시간이다.
흥분이 남아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흥, 건방진 꼬맹이들과 싸움을 한 모양이구나.”
“건방진 꼬맹이라니요?”
“뭣도 모르는 놈들이 신룡이라고 부르는 자식들 말이다.”
“허허, 그 실력만큼은 제대로지 않습니까?”
“에잉, 좀 잘났다고 어깨 쫙 펴고 다니는 것이 맘에 들어야 말이지요.”
“질투, 시기, 미움과 같은 번뇌는 즉시 버리는 것이 좋소이다.”
“거지라 그런지 불법에 대해선 얘기해 봐야 별반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한번 제대로 불법을 설파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거 이제부턴 불타승께서 앞에 계시면 매일 도망쳐야 될 것 같습니다?”
“허허허허.”
정다운 분위기.
그것이 거지와 노승이라는 것이 그저 조금 안 어울릴 뿐이었다.
“저는 이만 일어나야겠습니다.”
검선 장문인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반년이나 행방불명이 되었던 아이가 돌아왔으니 들을 이야기가 많겠지요. 괜찮으니 가서 해후를 나누시지요.”
“고맙소이다.”
장문인이 불염신니께 포권을 취하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따라오너라.”
고개를 끄덕이고 장문인을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너에겐 할 말도 많고, 들을 이야기도 많다. 저곳에선 얘기를 나누기 힘드니 내 거처로 가자꾸나.”
“거처로 가잔 말씀이십니까?”
“얘기를 나누기엔 가장 좋은 곳이다. 매영들을 빼고는 그 어떤 사람도 무단으로 들어올 수는 없는 곳이니 말이다.”
“그런데 장문인의 거처가 있다면, 다른 화산파의 사람들도 거처가 있다는 것입니까?”
“그래, 있다.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비매각의 분타로 쓸 겸 새로 지은 건물과 모든 무인들이 공동으로 쓰는 연무장이 하나 있다.”
제자들과 장로들의 거처.
두 개의 건물이라고 했는데, 그 두 건물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것이니 분명히 무척이나 커다란 건물일 것이다.
“금정일이나 육언과 같은 제자들도 모두 이곳으로 나왔습니까?”
“선검수들 중에서 도문과 검문을 표방하던 아이들 말이더냐? 도문과 검문. 고래로부터 도문은 제자들을 키우거나 화산의 깊은 곳에 은거를 하여 적도들에 의하여 화산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들을 쓰러뜨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검문은 그와 반대로 화산에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비무를 하거나 사마외도와의 싸움에 선봉을 서며 화산의 건재함을 과시하곤 했지. 그 아이들도 그 선례에 맞게 도문의 육언과 같은 아이들은 화산에 남았고, 금정일과 같은 아이들은 화산에 남지 않고 이곳으로 같이 왔다.”
“그렇다면 지금 제자들이 묵는 건물에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현재 무림맹에 있는 화산파의 사람은 매화검수 네 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 온 제자들과 장로님들의 수는 몇입니까?”
“속가제자들을 포함해 팔백이다.”
“팔백…….”
팔백이라는 숫자는 싸움의 규모로 보았을 때 무척이나 적은 숫자다.
천랑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이백이나 되는 숫자가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무인들에게 통용되는 일.
구파의 제자들과 장로들 팔백이면 일개 문파가 아니라 한 성(省)의 반 정도는 순식간에 초토화시켜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전력이다.
“다행히 모두들 뛰어나 화산의 성세를 무림 전체에 알리고 명예를 드높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예전 성세였을 때와 맞먹거나 더 높은 명예를 얻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거야 호사가들이 원래부터 떠들어 대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말한 지 벌써 몇 년째다.
그동안 계속해서 축적한 화산파의 힘은 그들의 예상을 간단히 뛰어넘을 것이다.
‘그런데…….’
장문인의 말은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무림맹을 발동한 명분, 이유는 바로 혈천회의 궤멸이다.
현재의 평화를 위협하고,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악마들.
그들을 쓰러뜨리고 현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발동한 것이 지금의 무림맹이다.
그런데 장문인의 말은 그 명분에서 어긋나 있었다.
명예와 자존심.
아무리 화산파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그런 호사가들의 말에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단 한 명의 화산파 제자의 피해라도 줄이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아무리 현재 잘하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많은 자들이 피해를 입고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장문인은 현재의 일이 기쁘다는 듯 웃고 있을까?
‘어긋났다.’
공천패의 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