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화산천검 5권(17화)
7장 네 신룡(2)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무심한 듯한 명도의 말에 우승빈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북초이와 남문기는 물론 따라왔다.
호기심과 더불어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비무하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비무를 보는 것도 정진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 걸어 도착한 커다란 공터.
“조용히 비무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맹의 비무장이 아니라 내가 평소 연무를 하는 장소를 비무장으로 쓴다. 괜찮지?”
고개를 끄덕이고 유룡과 삼 장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북초이와 남문기는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관찰했다.
가까이 있으면 경력에 휘말려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그런 것이다.
뭐, 그들의 실력이라면 절대 다칠 일은 없긴 하지만 말이다.
“심판은 내가 하도록 하지. 나의 안법을 따라올 만한 사람은 없으니 말이야.”
우승빈의 재능은 살수로서의 재능이다.
오감과 육감을 극대화하고 기척을 숨기고 빠르게 다녀야 하므로 경공과 신법, 보법과 은신술, 안법과 같은 것들의 성취는 아마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날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는지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승빈이 멀리 떨어져 섰다.
“다시 한 번 소개하지, 무당의 유룡 명도라고 한다.”
편안히 말하는 것 같은데도 묵직한 중압감을 느끼게 하는 명도.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라고 하오.”
마주 포권을 취하고 기수식을 취했다.
명도는 그런 것도 없는지 그저 검을 뽑아 들고 팔을 늘어뜨렸을 뿐이었다.
명도의 검은 무당의 많은 도사들이 쓰는 송문고검.
약간 뭉툭한 모습이면서도 길고 사납게 날이 서 있어 느림을 근간으로 하는 무당파의 무공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검이다.
나의 검은 청운검과 자하검 두 자루.
중강검은 남궁세가에서 싸울 때 부서졌으므로 없었다.
“발검인가?”
천천히 입을 여는 명도.
“그렇소. 그러니 내가 먼저 가도록 하겠소.”
“오라.”
유룡의 말에 강하게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파앙!
삼 장 거리란 고수의 싸움에 있어서 가까이 붙어 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거리다.
순식간에 명도의 앞에 도달하여 검을 내쳤다.
자하십육검(紫霞十六劍) 일 검(一劍).
검집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자색 검광이 공간을 갈랐다.
극쾌.
원하던 쾌의 극, 극한의 빠름이 이 일 검에 담겨 있었다.
“…….”
하지만 명도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런 말없이 무심한 표정으로 송문고검을 들어 올렸을 뿐이었다.
카앙!
그것뿐인데, 막혔다.
반년 전의 일사도에게서 얻었던 영감과 공천패에게서 받은 깨달음으로 무지막지한 빠르기를 얻었건만 무당의 초식도 아닌, 그저 검을 들어 올린 것으로 막혔다.
“빠르긴 하군.”
감상평은 그것뿐이었다.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나게 하진 않았다.
“더 가겠소.”
명도가 고개를 끄덕이고 연이어 검을 휘둘렀다.
자하십육검 이 검(二劍).
카카카카카캉!
명도의 송문고검을 부숴 나갈 듯 계속해서 맞부딪치는 자하검.
강력한 폭발력은 갖고 있지 않지만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는, 연이어 내치는 검이다.
게다가 평범한 빠르기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유변이다.
겉으론 무변, 속은 유변.
철저하게 상대를 속이고 기만하는 환초이기도 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로 상대하기 까다로운 검초.
하지만 명도는 역시나 간단한 움직임으로 막아 냈다.
원을 그린다.
하늘을, 모든 것을 포용할 듯한 커다란 원을.
자하십육검 이 검의 경력은 원안에 빨려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소용돌이쳤다.
“합!”
간단한 기합성과 함께 명도가 원을 그리던 것을 멈추고 검을 살짝 비틀며 나에게 내쳤다.
“웃!”
사량발천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적은 힘으로 큰 반격을 하는 무당파의 가장 기초적인 무리.
기초라고 해도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절정의 고수도 간단하게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무진 사부가 나에게 가르쳐 준 화와 비슷한 무리였다.
매화작보의 보로를 밟으며 몸을 피했다.
피이이잉!
전사까지 담았다.
회오리치는 경력의 소용돌이가 명도의 검을 타고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송문고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커다란 음파가 귀를 멀게 할 듯 머리를 울렸다.
“하앗!”
머리를 울리는 음파를 떨치려 커다랗게 기합을 내지르며 삼검을 준비했다.
경력을 끌어 올리자 고통스럽다는 듯 울음을 터뜨리는 자하검.
검명이 귓속을 파고듦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공천패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매화검로라?’
공천패의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
‘왜 그러십니까?’
‘거참 어이없게도 바꾸어 놓았구나. 뭐, 매화의 이름을 넣은 것은 화산의 자부심이었겠지만 말이지.’
마지막에 담긴 감정은 흥미다.
그렇지만 감정은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졌다 할 수 있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졌다.
‘매화검로는 잘못된 이름이다.’
공천패는 선고하듯이 말했다.
‘잘못되었다니요?’
‘형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었다. 아마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기본공으로 접촉하여 재능이 있거나 기연을 만남으로써 알아서 깨우치라는 얘기였겠지.’
‘……?’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매화검로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끌렸던 매화검로.
검로의 살기를 제어하지 못해 봉인을 하자 생각했을 만큼 강력했던 무공.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하여 나만의 무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변형된 무공.
궁금했었던 진실이 절대자의 입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매화는 화산의 상징이자 표식. 그렇기에 매화의 형을 집어넣어 일부러 위력을 약화시키고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이십사수매화검법처럼 매화라는 이름을 단 무공은 화산파를 상징하는 무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 너희 화산파에 있어서는 중요한 이름을 기본공에 집어넣고 어째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이냐?’
‘…….’
‘완벽하게 바뀐 것이 아닌,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을 만들어 놓은 무공. 그 틈을 파고들어 형을 바꾸면 이제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제 너는 두 번째 시험을 만날 것이다.’
‘두 번째 시험?’
매화검로는 대체 어떤 무공인가?
조금씩 진실에 다가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모호했다.
‘버려라.’
‘예?’
‘형을 버려라. 매화를 버리고 본질을 추구해라. 그것이 이 무공을 남긴 자의 두 번째 시험일 것이다.’
‘형을…… 버려라? 그것은 무공을 새롭게 바꾸라는 말입니까?’
‘말 그대로 형을 버리라는 뜻이다. 다른 뜻이 담겨 있는 선문답도 아니다. 그저 말 그대로 행해라.’
‘말 그대로…….’
그것으로 말하는 것은 끝.
공천패는 무심한 눈으로 나를 계속해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매화검로의 또 다른 변화.
아니, 이젠 ‘매화’가 들어가지 않는다.
화산파 천년의 절기이자 혈천의 겁난 이후로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절전무공.
달마가 남긴 삼검보다도, 장삼풍이 남긴 혜검의 심득보다도 실전적이고 광폭한 무공.
능력이 되는 자에겐 복, 되지 않는 자에겐 흉.
그것이 바로 매화검로, 자하십육검의 진실이었다.
현실로의 회귀는 순식간이다.
과거의 편린을 머릿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검을 내쳤다.
자하의 삼 검(三劍).
쿠아아아아!
땅을 뒤집고, 바람을 휘몰아치며 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커다란 경력.
지극히 실전적이고, 지극히 파괴적인 초식.
이것이 바로 매화검로였을 때의 형을 버린, 진정한 자하십육검이었다.
명도가 얼굴을 굳히고 싸늘한 안광을 발했다.
다시 한 번 그리는 것은 역시나 원이다.
하지만 달랐다.
조그마한 원에서부터 커다란 원으로.
조약돌을 물속에 던지면 파문이 이는 것처럼 계속해서 원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모자랄 것이다.
매화검로였을 때부터 살상력으론 최강을 논하던 초식을 간단히 막을 순 없을 것이다.
‘……!’
그걸 느꼈는지 명도가 다시 검을 움직였다.
꺾인다.
원의 중심을 가르는 물결과도 같은 곡선.
태극(太極).
무당파의 모든 무공은 태극을 토대로 만들어져있다.
태극을 이루는 모든 점이 시작이고 또한 끝인 절대 끝나지 않는, 아니 끝나 있는 원.
유한이나 무한이고, 시작이나 끝이다.
삼라만상의 조화.
치우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의 법.
그것이 바로 무당이다.
내가 화산 천년의 절기를 이어받은 화산 무공의 화신이라면, 명도 또한 태극의 이치를 깨달은 무당 무공의 화신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의 자하십육검과 마찬가지로 무당 무공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고 하는 태극혜검.
명도는 그것을 익힌 것이다.
삼 검의 경력과 태극혜검이 맞부딪쳤다.
슈우우!
커다란 폭음도 없었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중용의 법도, 태극은 내 자하십육검의 경력을 품 안에 받아들이고 흩어 놓았다.
“큭!”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한계였는지 명도는 아까처럼 사량발천근으로 반격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다.
만일 맞부딪쳤다면 온몸이 터져 나갔을 살상만을 위한 초식.
그것을 받아들이고 흩어 놓은 것이었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가!
“후우∼ 대단하오.”
엄청난 경력을 뿜어내는 삼검.
맞부딪친 것이 아니기에 반탄지력은 없지만 펼친 것만으로도 호흡이 흐트러졌다.
“그쪽이야말로. 태극혜검의 오의를 풀어내고도 흩어 내는 것이 한계라니 말이지.”
명도가 긴 말을 토해 냈다.
필요할 때 빼고는 짧게 말하던 명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정말로 놀랐다는 뜻일 것이다.
“사량발천근으로 반격했다면 이쪽이야말로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오.”
피식 웃으며 말하자 명도가 아직도 미미하게 진동하는 송문고검을 늘어뜨렸다.
“이번엔 이쪽에서 가도록 하겠다. 우위를 가리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견식을 하고자 함이니 이번 공격으로 끝을 내도록 하지.”
명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늘어뜨렸던 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 명도.
검첨을 나에게 겨누고 살짝살짝 검을 흔들었다.
‘뭘 하는 거지?’
무척이나 미미해서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의 진동.
명도가 일보를 내디뎠다.
턱! 쿠우웅!
온몸을 내리누르는 커다란 압박.
‘뭐, 뭐지?’
천수신검에게서 느꼈던 것과 같은 압박.
‘대체…….’
이 정도 압박이라니, 설마 종남파의 장문인과 같은 수준이란 말인가?
‘물론 나도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장문인과 비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구파 장로들보다 조금은 강한 정도일 것이다.
공천패에게서 수련받은 반년은 절대자에게 수련을 받은 만큼 어느 때보다 대단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