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화산천검 5권(16화)
6장 발동된 무림맹(3)
“이제 의문은 풀렸소?”
“저같이 질문을 했던 사람이 많이 있나 봅니다.”
“처음엔 엄청나게 물어 댔었소. 구파일방이 원래부터 이렇게 준비를 했다니 놀랍다, 이건 무림을 일통하기 위한 구파일방의 계획이다 등등.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일 뿐인데, 그리고 보호해 주겠다는 것인데 뭐가 그리 불평불만이 많은 것인지……. 요즘은 다들 설명을 듣고 이해해서 질문을 하는 사람이 몇 없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질문에 똑같은 답을 하다 보니 조금 짜증이 났었을 뿐이오.”
오칠의 말에 살짝 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제 곧 도착하오.”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고,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마다 엄청난 기도를 뿜어내고 있는 이곳.
바로 무림맹의 심처.
저 멀리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한 보통의 건물이 목적지인가 보다.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소.”
‘기다리고 있는 사람?’
누군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는 사람일 거라는 오칠의 말투에서 아마도 화산파의 사람일 것이라는 것만 살짝 추측할 수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요. 그럼…….”
오칠이 포권을 취하고 길을 따라 어딘가로 향했다.
‘안에 있단 말이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문을 열었다.
7장 네 신룡(1)
문을 열자 안의 모습이 보였다.
소박하다고 할까? 아니면 검박하다고 할까?
별 장식품도, 가구도 없는 건물의 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한 햇살 가운데에 커다란 탁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서 많이 작은 건물이지만 그래도 탁자 하나만이 있는지라 공간이 많이 남아 조금은 황량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안에 사람들이 있으니 달라졌다.
합쳐서 셋.
한 명, 한 명.
절대 평범하지 않은 기도를 가지고 있는 세 명의 고수들이 있었다.
그들의 존재감으로 인해 본래 너무나 커다래 보였던 이곳이 꽉 찬 느낌이었다.
화산파의 사람들일 것이라 추측했던 것이 틀렸다.
‘강하구나.’
느끼자 끓어오르는 호승심.
하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호승심을 억눌렀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각자 이채를 발하는 눈빛들.
모두들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인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하, 초면에 뭣들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들리는, 조금은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목소리.
위를 쳐다보자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어느 한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우승빈!”
우가장의 참화에서 살아남은 한 명의 신룡.
세간엔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신룡이었다.
“오랜만이군.”
우승빈이 나를 보며 살짝 웃곤 아래로 내려왔다.
착지하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땅으로 내려온 우승빈.
‘우승빈도 엄청나게 강해졌군.’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데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듯한 존재감.
내가 발전한 것처럼 어느새 이 정도로 발전해 있었다.
“아는 사이냐?”
바다와도 같은 푸른색의 시원한 무복을 입은 강인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의 말에 우승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내가 얘기한 적이 있을 거요. 화산파의 선검수 나으리에 대해서.”
그 말을 듣자 남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나를 쳐다보며 불같은 안광을 내뿜는 남자.
투기(鬪氣).
한판 싸워 보자는 얘기였다.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해룡?”
눈 밑에서부터 볼을 따라 입술까지 커다란 흉터가 나 있는 남자의 말에 해룡이라 불린, 나에게 투기를 내뿜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잠시 주체하지 못했을 뿐.”
말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투기가 잠잠해졌다.
‘잠깐, 해룡?’
나의 모습에 뭔가를 눈치챈 것인지 우승빈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세 명 모두 구파의 신룡이지.”
“아!”
그렇다면 이렇게 강해 보이는 것도 납득할 수 있었다.
순풍이 무소에게 들었던 일곱 신룡.
그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하지만 화산파와 종남파의 사람들이 없군.’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 연화와 마진천.
이렇게 나와 인연이 있는 네 사람만이 이곳에 없었다.
“화산파의 세 꽃과 종남의 반룡은 지금 임무 때문에 이곳에 없어. 빠르면 내일, 늦으면 사흘 후 정도에 도착할 거야.”
우승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로 끊긴 대화.
어색한 침묵이 이곳에 자리 잡았다.
“아, 그리고 이곳에서 너와 인연이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 내가 소개를 하지.”
어색한 침묵 속을 우승빈이 비집고 들어왔다.
“먼저 이쪽은 전에 얘기했던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요.”
포권을 취하자 세 신룡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쪽은 무당파의 유룡 명도.”
하얀색의 도복, 그리고 무심한 듯하지만 타오르는 검은 겁화의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유룡 명도였다.
“무당파의 유룡 명도라고 하오.”
명도가 마주 포권을 취했다.
“이쪽이 해남파의 해룡 남문기.”
“해남파의 해룡 남문기라고 하오.”
남문기가 포권을 취했다.
“마지막으로 이쪽이 점창파의 사일신검 북초이.”
“점창파의 사일신검 북초이라고 하오.”
마지막으로 북초이가 마주 포권을 취했다.
인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았다.
“서로 해후를 푸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지.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우승빈의 말에 물어볼 것이 많지만 가슴속에 묻어 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 사람을 무시하고 우리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니까.
“그런데 세 분은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
의문.
나랑 세 명의 신룡은 이전에 아무런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질문엔 북초이가 대답했다.
“아, 그건 승빈이가 재밌는 사람이 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오. 그 말대로 재미있는 기운의 남자가 왔으니 별 불만도 없고.”
우승빈을 쳐다보자 우승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속셈인지.’
먼저 화산파의 사람들을 만나서 사정을 얘기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신룡들과 먼저 만나게 해서 뭘 하자는 건지.
‘그건 그렇고…….’
생각해 보니 말투에서 드러나는 친근함.
우승빈과 어느 정도의 우정을 쌓은 듯해 보였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겠소?”
“아, 괜찮소.”
남문기가 눈을 빛냈다.
“드러난 기도로 보건대 수준급인 것 같은데 어째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오?”
“아, 그건…….”
생각해 보니 어째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내가 처음 두각을 드러낸 것은 화산파와 종남파의 합동훈련.
그 당시에 황신에게 지긴 했지만 복면인의 수장을 쓰러뜨릴 뻔했던 경력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가장.
하지만 그때 내 실력을 본 것은 우승빈과 혈호밖엔 없다.
세 번째는 종남파와 철검파의 싸움.
하지만 이때 내가 쓰러뜨린 것은 마진천처럼 문주와 같은 수뇌부가 아니고 일반 무인들을 많이 쓰러뜨린 것에 불과하기에 이름을 날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남궁세가와 천랑대의 싸움.
초반에 천랑대의 진격을 막아섰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수뇌부를 친 것은 다른 사람, 남궁세가의 사람이다.
마지막에 일사도 갈천악이 도망치려 할 때 맞서긴 했지만 져 버렸었다.
‘내가 싸운 것은 전부 다 이름이 알려지기엔 무리가 있는 싸움이었군.’
사람들이 없는 곳에선 육사도 혁련월도 쓰러뜨렸고, 종남파의 야명 장로와 같은 고수들도 많이 쓰러뜨렸건만…….
‘뭐, 이름을 날리는 것에 별 흥미는 없지만.’
내 목적은 황신을 쓰러뜨리고 혈천회를 무너뜨리는 것.
이름이 알려지든 알려지지 않든 별 상관은 없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오.”
짧지만 긴 생각을 마치고 대답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뭐, 그것도 괜찮은 답이긴 하지.”
납득한 것인지 남문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가 질문하도록 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무당의 유룡 명도가 입을 열었다.
본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무림의 태산과 북두, 그중 북두인 무당의 신룡.
소림과 더불어 최강 문파의 문하이자 그중 최고로 손꼽히는 후기지수.
옆의 해룡과 사일신검도 무척이나 강하긴 했지만 이자와 비교하자면 조금 꿇렸다.
그저 쳐다보는 것뿐인데도 긴장을 해야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마진천과 비교할 수 있을지도…….’
아니, 더 강할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추측하기엔 그 정도였다.
“현재 구파가 보유한 후기지수들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인 칠룡. 아미와 소림은 나한전의 소림승들을 대거 교체하였기 때문에 후기지수들의 수양이 완벽하지 않아 아직 감정을 제대로 조절할 수 없어 마(魔)에 현혹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에 사대금강(四代金剛)이나 복호승(伏虎僧)을 투입하고 있어서 후기지수들이 신룡에 포함되지 않았고, 공동과 곤륜은 나의 사문인 무당처럼 도와 무를 각자 나누어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이 나이 대에는 뛰어난 후기지수가 없다. 그렇게 구파에는 칠룡이 있다. 일방인 개방의 후개(後짵)는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에 알 수 없고 말이지. 그런 구파의 칠룡에 화산파의 후기지수가 셋이나 있다. 이것은 화산파가 무척이나 뛰어나다는 얘기이기도 하지.”
장황한 서두.
대체 무엇을 물어보고자 하는 것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화산의 세 꽃은 모두 만나 보았다. 다른 이들도 그렇고 말이지.”
동의하는 것인지 옆의 두 신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화는 여인의 몸으로 수준급의 실력이었고, 낙화와 조화는 절제와 절도가 있어 진정 화산 무의 화신이라 해도 무방했었다.”
“…….”
“하나 너에게는 못 미쳐 보이는군.”
무당 유룡 명도의 말에 놀란 것인지 북초이와 남문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승빈은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 실력을 보고 싶다. 화산파 선검수 청우, 비무를 신청한다.”
갑작스런 비무 신청.
아직 여독이 다 풀리지도 않은 상태이지만…….
‘상관없다.’
그 정도야 반각쯤 운기면 다 풀린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호승심에 손을 꼼지락대지 않았던가?
이렇게 상대 쪽에서 먼저 하자고 하는데 어찌 거절할 수 있으랴?
“알겠소.”
나의 대답에 우승빈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비무 장소는 내가 안내하지. 좋은 장소를 알고 있는데 거기가 좋을 것 같으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