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화산천검 5권(14화)
6장 발동된 무림맹(1)
“이봐, 그것 들었어?”
“무슨 얘기이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건가?”
한적한 시골의 한 음식점.
그곳의 한 탁자에 앉아 있는 두 남자가 조용히 말한답시고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무림맹이 발동된 것은 알고 있나?”
“그건 벌써 반년도 더 된 얘기잖나? 아무리 나라도 그런 것은 알고 있다네.”
‘무림맹 발동, 그리고 반년이라…….’
흥미로운 이야기이기에 찻잔에 손을 대고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무림맹 발동의 이유는 알고 있나?”
“당연히 알고 있지. 혈천회라는 어떤 나쁜 놈들이 있어서 그놈들을 처치하기 위해서 발동시킨 것 아닌가?”
“그래, 맞네. 그런데 지금까지 싸움은 거의 없었지 않나?”
“얘길 들어 보니 상대의 본거지를 정확히 몰라서 그런 것이라던데?”
“그것도 맞긴 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그 무림맹에서 가장 강한 열 명 중 세 명 정도가 부상을 입어 치료를 하기 위해서라고 하네.”
“호? 그런가?”
“그렇다네. 게다가 오대세가라고 하는 무림에서 가장 강한 다섯 세가 중 두 세가는 무림맹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말했고, 당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 두 세가가 협력을 하긴 한다만 지원이 지지부진하여 무림맹의 내신이 엉망진창이어서 그랬던 것이네.”
“그것참 안타까운 얘기구먼.”
“그런데 이번에 그 모든 것이 끝이 났는지 무림맹 쪽에서 혈천회에 일전을 하자고 했다네.”
“허, 정말인가?”
“이미 호북에 있는 많은 무가들과 상단들이 사라졌네. 무림맹에서 말하길 혈천회를 돕고 있던 악한 무리들이라고 하더구만.”
“그럼 무림맹 쪽은?”
“중소 문파들의 피해는 거의 없네. 하지만 가장 강한 수뇌부 측인 구파일방만 노리기라도 한 듯 그쪽의 제자들만 피해를 입고 있네.”
“그런가?”
얘기를 하고 있는 남자와는 달리 옆에 있는 남자는 흥미가 없다는 듯 그저 그런 반응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도 얘기를 하는 남자는 흥분이라도 한 듯 계속해서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많은 신룡(新龍)들이네.”
“신룡?”
이 이야기에는 관심이 있는지 그저 그런 반응만을 보이던 남자가 귀를 쫑긋했다.
“종남에는 반룡이 웅크리고, 무당에는 유룡(流龍)이 구름 사이를 유영하고, 점창에는 태양을 쏘는 신검(神劍)이 탄생하고, 해남에는 해룡(海龍)이 바다를 헤엄치며, 화산에는 세 송이 매화꽃이 피어났다고 하더구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네.”
“종남파에 반룡 마진천, 무당파에 유룡 명도(明道), 점창파에 사일신검(射日神劍) 북초이(北貂利), 해남파에 해룡 남문기(南雯祺), 화산파에 낙화검협(落花劍俠) 유혁, 조화검협(造化劍俠) 장일, 홍화(紅花) 홍연화. 이렇게 일곱 명이 무림맹이 발동되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린 일곱 신룡들일세.”
“흐음∼ 다들 강한가?”
“그럼, 그거야 당연하지. 그중에서도 종남의 반룡과 무당의 유룡은 가장 특출하다고 알려져 있네. 점창의 사일신검과 해남의 해룡은 단 세 번밖에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어 실력을 측정하기가 어렵네. 화산의 세 매화는 뛰어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낙화와 조화는 별호에 협이 들어갈 만큼 성격이 좋다고 알려져 있고, 홍화는 미모가 아주 출중하다고 하네.”
‘다들 강해졌구나, 그리고 역시나 이름을 날리고 있었구나……. 하지만 장일 사형과 유혁 사형이 검협이라고? 예전에 어떤 행실을 하고 다녔는지 알려 주면 다들 깜짝 놀라려나?’
기쁜 마음과 반가움, 그리고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하나의 혼돈을 만들고 있었다.
“흐음∼ 그중 홍화라는 여자가 가장 보고 싶구먼.”
“하하, 남자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일세. 그건 그렇고…… 자네 괜찮겠는가?”
“음? 뭐가 괜찮겠냐는 건가?”
“자네 옆을 보게.”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옆을 쳐다본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옆에서 한 여인이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호호호, 잠깐 나와 주실래요?”
“아니, 잠깐만 기다려 줘. 소매, 우리 말로 하면 안 될까?”
소매라 불린 여자가 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호호호, 잠깐 나와 주실래요?”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계속 얘기를 하던 남자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차를 홀짝였다.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호호, 어서 안 나오실래요?”
여자가 다시 웃음 짓자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여자의 뒤를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남자와 여자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자가 이내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제 얘기에 많은 관심이 있으신 듯한데, 어떻습니까? 합석하시겠습니까?”
놀랐다.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얘기를 엿듣는 것을 눈치챘고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합석을 제안한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악의는 없어 보이기에 가까이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이미 앉았는데 허락을 맡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미소 지으며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이봐, 점소이. 차 좀 줄 수 있겠나?”
“아, 예.”
멍하니 있던 점소이가 당황한 듯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묘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남자는 탁자 위에 올린 내 손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무소(無騷)입니다. 화산의 고절한 매화에게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별호는 순풍이(順風耳)입니다. 순풍이 무소, 제 이름입니다.”
“화산의 매화……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이래 보여도 정보로 먹고사는 놈입니다. 화산의 매화향에 대해선 익숙히 들어왔고, 또 우연한 기회로 접해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못 알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매화향이라니요?”
“사람마다 각자 뿜어내는 기세가 다릅니다. 하지만 같은 문파, 같은 가문의 사람들이라면 각자 어딘가 비슷한 곳이 있지요. 그것이 바로 그 문파나 가문의 특징입니다. 그 특징은 잡아내기 힘들지만 조금만 눈치가 좋다면 알아챌 수 있지요. 그렇게 알아본 것이니 별로 신기한 것은 아닙니다.”
“흐음…….”
“그건 그렇고, 제 얘기에 그렇게 귀를 기울인 것을 보니 묻고 싶은 것이 많으신가 보군요. 요즘의 정보를 듣지 못한 것입니까?”
“예, 따로 사문의 명을 받아 다른 곳에 있었던지라 요즘 무림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그러셨군요. 그렇다면야 이해는 갑니다.”
이해가 간다고 하지만 순풍이의 눈은 미심쩍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묻고 싶은 것을 물으십시오.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한도 내에서는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지요.”
“그럼 실례되지만 몇 가지 묻겠습니다.”
“실례라니, 당치도 않지요.”
“혈천회와 무림맹의 싸움, 어디까지 진척되었습니까?”
“아까 들으셨던 대로 이제야 혈천회와 일전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진짜 싸운 지는 이 개월 정도. 그사이에 무림맹은 혈천회의 본거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호북의 많은 가문과 문파들, 그리고 상단들을 봉문시키거나 파괴했습니다.”
“파괴했다라…….”
“아, 무고한 사람의 피해는 얼마 없었습니다. 단지 덤볐던 사람들만이 목숨을 잃었을 뿐.”
“그래도 다행이군요. 무고한 사람의 피해가 없다니…….”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탄생한 것이 무림맹, 절대 그 본분을 잊을 리가 없지요.”
“혈천회의 칠사도나 세 호법에 대해서는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아, 세 호법은 모르겠지만 칠사도는 무척이나 유명하지요. 남궁세가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끝내 죽었던 일사도, 그리고 화산파의 어떤 신진고수에게 죽임을 당한 육사도, 소림의 장문인인 불타승이 직접 가르침을 내려 소림의 나한전에 가두고 감시를 하고 있다는 삼사도, 흑영이라고 불리는 살수들을 이끄는 칠사도,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엄청난 실력과 사술로 전장을 압도하는 사사도, 철부로 전장을 휘젓고 다닌다는 이사도, 판관필로 일격일살, 급소만을 꿰뚫고 다닌다는 오사도. 네 명밖엔 남지 않았지만 모두 엄청난 일들을 저지르는 뛰어난 실력자들이지요. 특히나 남궁세가와 황보세가를 건드려 무림맹을 도와줄 여력을 거의 남기지 않은 일사도는 음지에 있는 문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남궁세가와 황보세가가 무림맹을 돕지 못하고 있다고요?”
“아니요, 그건 아니고 일사도라는 자가 활개를 치고 다녔기에 많은 피해를 입어 그 피해를 복구하고, 이권을 노리고 달려드는 다른 상단들이나 무림세가들로 인해 무림맹을 거의 도울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그러더군요. 뭐, 그래도 원한이 있는지라 조금씩은 지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시 그런 건가…….’
혈천회에 가장 먼저 피해를 입은 것이 황보세가다.
그다음이 남궁세가이고.
남궁세가는 일사도에게 거의 질 뻔했고, 황보세가는 철검파에서의 사건 때 장로와 십팔권사들이 상처를 입었었다.
아무리 여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무림맹을 돕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정말 그런가요?”
“예,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내막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무소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눈치도 좋군.’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니 눈치가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려나?
“아니요, 그냥 실감이 잘 나지 않아서 그럽니다. 천하제일세가인 남궁세가는 물론이요 황보세가조차도 한 명 때문에 무림맹에 힘을 거의 실어 주지 못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아, 한 명은 아닙니다. 황보세가 때는 혼자였지만 남궁세가 때는 혼자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요.”
“그건 그렇지요. 그만큼 혈천회라는 곳의 전력이 대단하다는 뜻이지요.”
“무림맹은 어디에 있습니까? 악양입니까, 숭산입니까?”
“무림맹을 발동할 때마다 오대세가의 변덕이 심했던지라,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참여하게 만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숭산에 무림맹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제 화산파에 대한 소문을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내가 가장 듣고 싶던 얘기다.
“그건 화산파의 비매각에 가서 물어보면 되는 일 아닙니까? 화산에서 시킨 일이 끝나셨다면 비매각에 보고하고 소문을 들으면 될 일인데 어찌하여 제게 듣고 싶어 하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의심스럽다는 듯 말하는 무소.
“그거야 그렇지만 세간의 소문 또한 듣고 싶어서 그럽니다. 두 가지 소문을 비교하고 싶다고 할까요?”
“흠……. 일단 알겠습니다. 알려 드리지요.”
일단이라는 말이 붙었다.
보류하겠다는 뜻.
하지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화산파는 일곱 신룡 중에서 세 신룡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유혁, 장일, 홍연화란 세 꽃이지요. 세 사람은 알고 있겠지요?”
고개를 끄덕이자 무소가 말을 이었다.
“매화검수는 고래로 실전에선 가장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요. 다른 구파와는 달리 산에서 내려와 활동하는 실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현재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모두가 떠들고 있습니다. 구파일방 중 가장 많은 공적을 올린 것이 화산파이죠.”
“세 신룡 말고 유명한 다른 장로님들이나 후기지수는 없습니까?”
“음……. 신룡의 명성이 무척이나 뛰어나다 보니 다른 후기지수의 이름은 잘 들리지가 않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 습니까.”
무진 사부의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만일 다 치료가 되었다면 큰 활약을 하셨을 텐데.
“아, 하나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혈천회의 칠사도 중 이사도는, 일사도가 없으니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영악하기까지 해서 승산이 없는 싸움은 피하니 그가 나타난 곳의 피해는 다른 곳보다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사도가 처음으로 후퇴를 한 사건이 있었지요. 그때 열 명 정도의 중소 문파 무인들과 화산파의 한 장로만이 남았다고 하는데, 그때 이사도가 처음으로 패해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 그렇다면 그분의 이름도 알려져 있습니까?”
“그것이 말입니다. 사실 그곳에 간 인원이 약 백 명입니다. 구파의 인물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많은 숫자지요. 상대는 이사도를 비롯한 그의 친위대 열다섯 명. 이사도가 물러난 것이 차륜전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지라 그분에 대한 소문은 바로 묻혀 버렸습니다.
“아…….”
“하지만 저는 다르지요. 괜히 순풍이겠습니까? 소문이 들리자마자 바로 이 머리에 기억해 두었지요. 그분의 이름은 화산파의 무진 진인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