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13화 (113/175)

# 113

화산천검 5권(13화)

5장 회담(3)

“회의 칠사도, 추영살(追影殺) 희월(姬月)이라고 합니다.”

거북하지 않고 매력이 넘치는 콧소리와 함께 살짝 눈을 내리깐 칠사도 희월.

그녀의 모습에 불타승, 불염신니, 무상도와 천강복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섭혼술과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음공이 교묘히 섞인 목소리, 그리고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고혹적인 행동까지.

“허, 요희(妖姬)로다.”

“과찬이세요.”

무상도의 말에 정말로 고맙다는 듯 희월이 짝 박수를 치며 웃었다.

“가만히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군. 수양이 덜 된 녀석들은 잘못하면 넘어갈 수도 있겠어.”

“회의 삼사도, 신편송타(神鞭悚打) 역기륭(譯麒隆)이라고 하오.”

촤라락!

말하곤 채찍을 풀어 땅으로 휘두른 역기륭.

모래먼지가 피어올라 채찍을 휘감았다.

“상대하기 까다롭겠군.”

관일공의 말에 남해신검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기 중 하나라고 하는 채찍.

그것도 칠사도 중 하나인 삼사도 정도의 실력이니 얼마나 상대하기 까다롭겠는가?

“혈검대는 잠시 대기하라.”

“왜 그러는가? 그 뒤 아이들의 실력으로 보아 우리를 막을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천수신검의 말에 도소환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구파일방에 대한 정보를 수정해야 될 것 같아서 말이외다. 곤란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될 줄 알았는데 회에서 두 번째로 강한 혈검대라곤 하지만 한 명당 겨우 십오 초 정도 받아 낼 수 있을까? 식후 운동거리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찌하여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소.”

“이보게, 다른 자들은 몰라도 나는 나에게 덤벼 온 자를 아무런 상처 없이 돌려보낼 정도로 관대하지 않다네. 자네가 저들을 대기시켜도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네.”

“협을 중시한다는 구파에서 싸울 의지도 없는 자들을, 그것도 검을 들이대지 않은 자들에게 살수를 쓰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말이오.”

“흐음…….”

천수신검이 도소환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한다는 듯 턱수염을 매만지며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도소환은 식은땀을 흘렸다.

혈검대,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싸우러 온 것이니 죽을 각오를 하고 왔다.

하지만 어이없는 죽음은 사양하고 싶었다.

한 팔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거나 그 드높은 명성에 흠집을 낼 정도로 곤란하게 만들 작정으로 죽을 각오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면해 보니 혈검대가 아무리 강한 부대라고는 해도 상대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겨우 앞길을 막는 정도?

아무리 방심을 한다 해도 피륙의 상처 정도밖에는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혈검대의 보통 대원들과는 그 깨달음과 실력의 차이가 천지차이였다.

그렇기에 언젠가 혈천회가 직접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대비해 조금이라도 많은 부대원을 살려 돌려보내고 싶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미안하지만 안 되겠네.”

“……?”

살인멸구라도 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불타승과 불염신니가 있으니 그런 일은 절대 허락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지금은 전시네. 하나의 적을 죽일 때마다 하나의 아군이 산다고 할 수 있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도소환이 침울한 표정으로 다른 장문인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있어도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절망감에 도소환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능력이 되지 않더라도 몸을 돌보지 않고 상대에게 상처를 하나라도 입힐 각오로 싸워야 했다.

“들었는가? 싸워야 된다는군.”

혈검대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

“처음 계획대로 간다. 몸을 돌보지 말고 하나의 상처라도 내도록.”

혈검대원들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도록 하겠소.”

“너는 내가 상대하마.”

남해신검이 도소환의 앞에 대치했다.

“허허, 부족하지만 한 수 가르쳐 주도록 하겠소.”

불타승 혜각이 신편송타 역기륭의 앞에 대치했다.

“소저는 내가 상대해 주겠소.”

관일공이 추영살 희월의 앞에 대치했다.

“호호, 기대하겠어요.”

다른 자들과는 다르게 희월은 밝게 말하며 고혹적인 웃음을 지었다.

“거슬리는군.”

그렇게 말하며 관일공이 허리춤에서 단창을 뽑아 들었다.

녹색의 윤기가 나는 창대의 창.

평범한 병기는 아니었다.

“그것이 점창파의 이대신병(二代神兵) 중 하나인 관일창(貫日槍)인가요?”

“알 바 아니지.”

창을 빙빙 돌리곤 땅에 쿵 찍는 관일공.

커다란 충격파가 땅을 울렸다.

“어머, 과격하시네요. 저 같은 연약한 여인에게 그런 무기를 휘두를 생각을 하다니.”

연약하다는 말과는 달리 희월은 어느새 꺼냈는지 단도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싸늘한 눈빛으로 관일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불타승, 이 나를 상대로도 살계를 열지 않을지 기대해 보겠다.”

“허허,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에 살수는 필요가 없소이다.”

“그 말, 절대 후회하지 말도록.”

불타승이 장을 앞으로 내뻗듯이 자세를 잡았고, 역기륭이 채찍을 살짝 흔들었다.

“겨우 이 정도 인원으로 우리를 곤란하게 할 수는 없지.”

“그걸 이제야 알아채 무척이나 유감스럽소. 하지만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오.”

“그것참 만족스런 대답이로군.”

남해신검이 검을 뽑아 들어 기수식을 취했고, 도소환도 검을 뽑아 들고 검면에 손을 대며 커다란 기세를 뿜어냈다.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군.”

“가겠소.”

콰아앙!

한 손으론 검면을 쓸어내리며 검을 내치는 도소환.

옅은 푸른색 기가 깃들어 있는 남해신검의 검에 부딪치자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호∼ 제법.”

하지만 구파의 장문인은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계, 무력, 평판 등 모든 것이 극에 달했을 시에 될 수 있는 것이 구파의 장문인.

도소환의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나다고는 하나 남해신검은 여유롭게 상대하고 있었다.

“채찍은 고래로 다루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했지.”

“맞는 말이오, 시주.”

“하지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기 중의 하나로 변하지.”

“그것도 맞는 말이오, 시주.”

“그렇다면 그 채찍을 상대로 얼마나 잘 싸워 줄지 기대하며 먼저 공격하겠소.”

파아앙! 팡! 팡!

공간을 울리는 파공음.

역기륭의 갈색 채찍이 불타승과 역기륭 사이의 공간을 쳐 내며 순속으로 나아갔다.

“빠르구려.”

팡!

하지만 불타승은 가만히 있는 것으로 피해 냈다.

“흠,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건가?”

“시험을 당할 정도로 약하진 않다오.”

말하곤 불타승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싸움터엔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걸음걸이.

하지만 달랐다.

천천히 걸어오는 것뿐인데도 역기륭은 온몸을 짓누르는 커다란 압박을 느꼈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도 힘들 정도의 커다란 압박.

‘크윽! 이것이 소림인가…….’

구파의 태산, 소림.

중원 무림의 총본산이라는 소림 장문인의 절기이니 이 정도는 해 줘야 마땅하다.

“어디, 시주의 실력을 다시 한 번 보겠소.”

척!

약 일 장 거리.

고수들에겐 눈 깜빡하기도 전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서서 불타승은 역기륭에게 말했다.

불타승의 움직임이 멈추자 역기륭을 짓누르는 압박감도 사라졌다.

‘무슨 보법이길래…….’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그리고 흑풍들이 알려온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

새로 무공을 창시라도 한 것일까?

‘상관은 없지.’

어차피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호쾌하게 싸워 보고 싶었을 뿐.

그렇다면 이 얼마나 좋은 경험이자 싸움터인가?

“하, 다시 가겠소.”

파라라라락!

갈색 채찍이 뱀과도 같이 움직이며 불타승에게 날아갔다.

“저는 정면에서 싸우기엔 너무 여려서 일대일로 싸워 주기엔 어렵겠네요.”

“상관은 없다, 그래도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

오만하지만 자격이 있는 관일공의 말에 희월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싸움이 끝나고 나서도 그 말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점창파 관일창 앞에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광오하시군요. 뭐, 이젠 다신 할 수 없는 얘기가 될 테지만.”

계속해서 비꼬는 희월의 말에 관일공이 다시 한 번 창으로 땅을 찍었다.

쿠웅!

땅을 울리는 진동.

“아까부터 대체 무슨 짓을……. 설마!”

“쥐새끼들은 방해만 될 뿐이지. 네년이 일대일로 싸워 줄 수 없다 하여 도와줄 방수들이 이놈들이라면 정말 실망이다.”

땅속에 있는 흑영들.

관일공의 진각과도 같은 내리찍음에 아마 내공의 수위가 약한 흑영들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내공의 수위가 높은 흑영들도 아마 작은 내상에서부터 큰 내상까지 골고루 입었을 것이다.

‘치이…….’

요즘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창파.

약해졌을 줄 알았는데 내신을 다듬었던 것일까?

“어쩔 수가 없네요. 아이들을 낭비할 뿐일 것 같으니, 부족하지만 저 혼자 싸워 주겠어요.”

“거 좋은 생각이로군.”

관일공이 관일창을 붕붕 돌리며 대답했다.

후우웅∼

관일공의 몸을 타고 흐르는 회오리바람.

“그것, 무식한 어떤 바보한테서 본 무공과 비슷해 별로 기분이 좋진 않군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희월이 손가락 사이에서 움직이던 단도를 빛살과도 같이 던져 냈다.

땅! 따당!

어느새 내려쳤는지 관일창은 희월이 던져 낸 단도와 부딪쳤다.

스스슥!

“방심은 좋지 않아요.”

그리고 어느새 움직였는지 희월이 관일공의 뒤에 나타나 유엽비도를 횡으로 그었다.

“고수들의 싸움에선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승패가 결정되는 법이지.”

관일공이 몸을 빙글 돌리자 유엽비도가 빨려 들듯 관일공의 손에 붙잡혔다.

“치!”

희월이 재빨리 유엽비도를 놓고 뒤로 피하려 했지만 관일창은 무척이나 빨랐다.

태양을 꿰뚫는 창이라 할 정도로 빠르고 위협적인 무공.

피핏!

희월의 어깻죽지의 옷이 갈라졌다.

“크으…….”

관일창이 스쳐 간 희월의 어깨에서 이글이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피조차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에 의해서 지혈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가 나는 것보다 고역이다.

계속해서 고통이 남아 있는 것이다.

“네년의 말대로 방심은 금물이다.”

관일공이 관일창을 다시 겨누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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