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08화 (108/175)

# 108

화산천검 5권(8화)

3장 싸움의 끝을 향해(3)

캉!

한순간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제자리로 돌아간 탈백도.

웅웅∼

남궁강의 대검이 비명을 내지르며 흔들리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도술이로군.”

자세히 보니 남궁강의 대검은 이가 나가 있었다.

남궁가의 장로다.

평범한 고수조차도 검을 보호하려 무의식중에 기를 검으로 보내는데, 설마 남궁가의 장로가 그렇지 않을까.

그런 남궁강의 대검의 이를 나가게 했으니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경력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잘 막았군, 황보세가와는 달라. 역시 속가 천하제일세가라 불릴 만해.”

스르릉∼

탈백도가 왜도를 환집하며 말했다.

“황보세가? 설마 네놈이 황보가의 사람들을 물 먹였던 그놈이냐?”

“알아서 상상하도록. 내 도를 막은 대가로 한 가지 알려 주도록 하지. 내 이름은 갈천악(葛千惡), 별호는 그 쓰레기가 말했던 대로 탈백도다.”

갈천악, 탈백도.

그에게 크게 소리쳤다.

“회의 몇 사도지?”

“호오, 칠사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아, 네놈이 그 화산파의 골칫덩이로군. 하, 이곳에 있을 줄이야. 네놈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혁가 놈이 당했다는 건가?”

“물었다, 회의 몇 사도지?”

“곧 쓰러질 정도의 상처면서 뻣뻣하게 구는군. 맘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다만 그럴 수가 없어서 무척이나 안타깝구나.”

“뭐?”

초령에서부터 지금의 갈천악까지.

대체 회 안에서 나에 대해서 어떤 얘기가 나온 것인지.

어째서 나를 죽일 수가 없으며 또한 도움을 주는 것인가?

아니, 혁련월은 나를 죽이려 했는데 어째서 갈천악은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인가?

“내가 바로 칠사도 중 일사도(一使徒)다.”

갈천악의 말에 무의식중에 긍정했다.

저 정도 강함.

만일 일사도가 아니었다면 정말 거의 승산이 없다 할 수 있었다.

저 정도가 일사도 이하라면 그 위는 상상이 가지 않았기에.

“혈천회, 그리고 칠사도. 화산파의 애송아, 네 말이 맞았구나.”

남궁대한의 침중한 말.

내 말만으로는 혈천회의 힘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지금에서야 혈천회의 힘을 어느 정도 깨달았나 보다.

“남궁세가, 정말 대단하군. 천랑대도 만만치는 않은데 이놈들을 모두 막아 내다니 말이야. 게다가 저 쓰레기도 머리만 좋지 않다 뿐이지 실력 면에서는 쓸 만한데 말이야. 겨우 두 명의 장로와 한 명의 가신, 그리고 외성의 무사들만으로 막아 내다니. 판단이 틀렸어. 천랑대와 흑철인 다섯 기만 올 것이 아니라 칠사도 중 하나나 다른 대가 같이 왔으면 황보세가만큼의 피해를 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네놈,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무안방자하게도 못 하는 말이 없구나!”

“하,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말하며 죽립을 벗어 던진 갈천악.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무척이나 수려한데 반해 한 줄기 검상이 볼을 가로지르고 있어 조금은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덤비고 싶으면 덤벼라, 남궁대한. 창궁검이라 불리던데…… 그 실력을 보마.”

“애송아, 난 미련하게 싸움을 하지 않는다. 승산이 없는 싸움은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아.”

“호? 그렇다면 흑철방과의 싸움에서 있었던 일은 뭐지?”

“당연히 승산이 있어서 한 일이었다. 그런 사도의 잔당 정도, 내가 아니라 다른 장로가 갔어도 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거다.”

“평가를 좀 바꿔야겠군. 남궁가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한 것이 없어. 흑풍 놈들, 흑영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니 조금 놀라고 요즘 풀어 줬더니 제대로 정보도 가지고 오지 못하는군.”

“늦었다.”

갑작스런 남궁강의 말.

뒤를 돌아보자 남궁가 내원의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약 삼십 명.

남궁천과 남궁성을 비롯한 약관 정도의 청년이 스무 명.

남궁가의 가신으로 보이는 남자들 다섯 명, 장로로 보이는 자가 네 명.

그리고 나머지 하나.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기세를 줄기차게 뿌리는 한 명.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바로 현 남궁가의 가주, 검왕 남궁명헌이었다.

“일사도라…… 과연 오만하게 굴 자격이 있는 실력이로구나.”

남궁명헌의 말에 갈천악이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검왕 남궁명헌. 과연 별호에 왕이 들어갈 자격이 있구나. 이거 위험할 수도 있겠군.”

갈천악이 말하며 스산한 눈빛으로 남궁명헌을 노려보았다.

“그자는 누구지?”

남궁명헌이 갈천악의 눈빛을 무시하며 남궁대한에게 말했다.

“방금 제압한 이들의 수장이었던 자요.”

“어째서 제압한 것이지?”

“들을 이야기가 많소이다, 가주.”

“수장이었던 자에게 속해 있는 단체를 묻는다라…… 너무 세상을 물로 보는군.”

대답한 것은 갈천악이었다.

갈천악의 말에 남궁대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남궁대한이 뭐라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는 찰나에 남궁명헌이 말했다.

“강, 죽여라.”

남궁명헌의 명령이 떨어지고, 남궁강이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푸욱!

“커…….”

놀란 듯 장철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음을 내뱉었다.

“갈천악이라 했나? 저자의 말대로다. 보아하니 불을 위인도 아니거니와 쓸데없는 심력을 낭비하게 할 뿐인 포로다.”

냉정한 남궁명헌의 말.

“호∼ 냉정하구나. 과연 현재의 성세를 만들어 낸 가주야. 냉철한 판단력이로군.”

“말장난을 할 기분이 아니다.”

남궁명헌의 살기가 짙게 깔린 말.

그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 설마 분노한 것인가?’

옛날에 어린 딸을 잃고 남궁수련을 양녀로 들였다.

남궁세가의 가주로서 양녀를 들인다.

아니, 양녀를 들였다는 것 자체가 마음속에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저런 냉철한 판단과 결단력.

분명히 분노한 것이 아니고서는 나올 리가 없는 행동이다.

“하, 천하의 남궁가주께서 분노한 것인가?”

눈치챘는지 갈천악이 입술을 비틀었다.

“양(洋), 묵(墨), 형(瑩), 인(刃), 죽여라.”

남궁명헌이 더 이상은 할 말도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네 장로가 순식간에 검을 뽑아 들고 갈천악에게 달려들었다.

“칫.”

남궁양, 남궁묵, 남궁형, 남궁인.

남궁세가의 네 장로가 갈천악의 사방을 에워싸고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진인가? 사정도 봐주지 않는군.”

갈천악이 불평을 하는 듯 말하며 왜도를 다시 뽑아 들었다.

저물어 가는 노을빛을 받고 사이한 느낌의 검광을 뿌리는 갈천악의 왜도.

평범한 무기가 아닌 신병이기였다.

기합성도 없이 갈천악이 왜도를 휘둘렀다.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른 쾌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극쾌다.

전율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저것이다.

매화초개를 수련할 때부터 목표로 했던 쾌의 극.

그 경지를 눈앞에서 직접 보았다.

뭔가 알 것만도 같았다.

아직 멀리 있는 경지이지만,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극의였다.

콰아앙!

남궁세가의 네 장로.

그들은 하나같이 손목을 부여잡고 웅웅웅 검명을 토하는 검과 함께 뒤로 밀려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남궁대한이 경악한 듯 말했다.

남궁세가의 네 장로의 합공이 순식간에 깨어져 버린 것이다.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장본인이 바로 눈앞에, 그 광경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후우∼”

하지만 갈천악도 조금은 무리를 한 듯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한 수는 있다 이 말이로군.”

남궁명헌이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가주가 나설 필요는 없소이다. 우리가 막겠소.”

뒤에 서 있던 다섯 명의 가신 중 하나가 말하며 남궁명헌을 막았다.

“필요 없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남궁세가의 수치이니 현 가주로서 직접 징벌하겠소.”

남궁명헌의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과 스산한 목소리.

막아섰던 가신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흥, 상대도 되지 않는 하찮은 것들이 입만 살았구나.”

“인정하지, 자넨 강하네. 하지만 이 세상에 독불장군으로서 천하를 누볐던 자들 중에 편안히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네. 왜냐하면 그것은 혼자서 커다란 단체에 도전을 했기 때문이지.”

“흥, 웃기는군.”

“자네도 마찬가지지. 대 남궁세가에 싸움을 건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하도록.”

말하며 남궁명헌이 검을 뽑아 들고 갈천악과 대치했다.

“잠시 피해요, 그리고 운기조식도 좀 하고요.”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싸움을 지켜보고 싶다만 남궁수련의 말이 들렸다.

‘윽!’

상처를 생각하자 갑작스레 온몸이 쑤시고 아파 왔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지금까지 서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어서요.”

남궁수련이 나를 부축하며 다른 자들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빨리 먹어요.”

저번에 남궁수련이 먹었던 내상을 치료하는 단약이다.

하지만 먹지 않았다.

“지켜볼 것이오.”

“고집부리는군요.”

“그건…… 웁!”

입안으로 들어와 순식간에 녹아드는 단약.

뜨거운 무언가가 식도를 타고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복수예요. 어서 운기를 하세요.”

남궁수련의 말에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절세의 고수들의 싸움을 보고 싶다만 상처가 심각했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4장 공천패(1)

눈을 감고 기운의 움직임을 살폈다.

약의 기운, 약기(藥氣).

희대의 환약, 단약은 하나의 생명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다쳤으며 어디가 뒤틀렸고 어디를 먼저 치료해야 되는지, 상처를 입고 약을 먹은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이런 약을 먹은 사람은 절대 처음에 자신이 그 약기운을 움직이려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약을 만든 자의 실력을 믿지 않는다는 얘기이며, 또한 현재 눈에 보이는 위급함만을 보고 안에 숨겨진 위험함을 보지 못하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란 얘기다.

식도를 타고 넘어간 뜨거운 느낌의 약.

마진천이 주었던 약선의 선단과는 반대되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약기는 잠시 중단전 부근에서 멈추었다.

뜨거운 기운이 중단전에 멈추자 고통이 몰려왔다.

하지만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약기운이 언제 움직이나 하염없이 관조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일 수도 있고,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약기운이 천천히, 그러나 조금씩 속도를 올려 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단전에서 빠져나와 혈도와 혈도를 타고 움직이는 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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