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화산천검 5권(7화)
3장 싸움의 끝을 향해(2)
피슛!
“큭!”
흔들렸다는 것을 아는지 남궁수련이 빈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사용하는 무공을 전환하는 것은 틈이 생기기 때문에 상대에게 빈틈이 생기지 않는 이상 비슷한 실력의 상대와 싸울 때는 거의 무공을 전환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틈이 생겼을 때.
창궁무애검법보다 더욱 더 날카롭고, 파괴력이 있는 무공이 필요했다.
바뀐 것은 순식간이다.
푸른 하늘의 의지를 담았던 검이 마치 제왕의 일검과도 같이 내려쳐졌다.
콰앙!
장철경이 처음으로 다급하게 묵곤을 휘둘렀다.
따아앙!
“큭! 제왕검형?”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세가 최고의 절기이자 제왕검 남궁무백의 성명절기이다.
남궁수련의 검에서 그것이 발현되었다.
캉! 따다당! 피슛!
아무리 제왕검 남궁무백과 같은 위력을 내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그 형을 따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장철경에게 크나큰 위협을 느끼게 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작은 피륙의 상처.
내상을 입은 남궁수련보다는 못해도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크아아!”
분노한 것인지 장철경이 뒤로 물러나며 묵곤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돌렸다.
후우우웅∼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묵곤과 그에 맞춰 생겨나는 회오리.
장철경의 몸을 타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치잇…….”
휘몰아치는 회오리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위협이다.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만 같은 느낌.
남궁수련은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이상 초식을 펼치도록 해서는 안 되었다.
“카아아!”
회오리바람이 절정에 오른 그때, 장철경이 달려들며 묵곤을 내려쳤다.
장철경의 몸을 따라 회전하던 회오리바람이 이번엔 묵곤을 타고 휘몰아쳤다.
파카카캉!
남궁수련이 제왕검형을 펼쳤지만 무리였다.
묵곤의 바람과 부딪친 남궁수련의 검이 불꽃을 튀긴 후 공중으로 날아갔다.
“아!”
묵곤이 남궁수련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려는 때에 재빨리 염력을 발하며 달려가던 속도를 배로 늘렸다.
우우우웅!
상단전에서 치고 나와 묵곤을 방해하는 기이한 힘.
조금 느려진 것뿐이지만 그것이면 충분하다.
남궁수련이 무의식중에 한 발 뒤로 물러서려 살짝 허리를 뒤로 굽혔고, 그렇게 생겨난 묵곤과 남궁수련의 틈 사이로 중강검을 내찔렀다.
쩌어엉!
중강검의 검신이 반으로 부러졌다.
부러진 반쪽의 검신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검병에 붙어 있는 나머지 검신으로는 몸을 빙글 돌리며 장철경에게 날렸다.
피슛!
“크윽!”
회오리를 뚫고 들어가 장철경의 볼에 상처를 입힌 중강검.
“카아악!”
콰앙!
그 정도로 큰 기술을 쓰고도 아직도 여력이 남았는지.
장철경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묵곤을 계속해서 휘둘렀다.
부딪친 땅은 파이고, 묵곤이 휘돌려지며 공기가 요동쳤다.
보통 무술은 평정심에 가까운 마음가짐으로 휘두를수록 더욱더 강한 위력을 내보인다.
그런데 평정심이 깨지고 분노하였는데도 방금 전보다 더욱더 강해진 듯한 느낌.
역시나 절대로 정종무술은 아니었다.
남궁수련을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장철경은 조금씩 평정심을 되찾는 것인지 숨을 몰아쉬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이 온몸을 녹여 버릴 듯 강렬했다.
“어째서…….”
“죽기를 바랐다는 소리요?”
“그건…….”
“소저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이 많소. 아무리 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죽을 이유가 되지는 않소.”
“검사에게 그 정도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오, 세상을 살 것이면.”
“역시나…… 구파의 제자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니에요. 당신, 이미 벗어났어요.”
“상관없소.”
구파, 협이자 정도 무림의 지주.
구파의 명예와 명성은 무척이나 거대하다.
그 제자 하나하나가 구파의 명예와 명성을 지키려, 최하급 제자들조차도 노력할 만큼.
하지만 그렇다고 제자 하나의 목숨이 구파의 명예와 명성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제자 하나의 목숨이 구파의 명예와 명성보다 귀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지만, 이것이 또한 나의 사고방식이다.
울컥!
피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넘쳤다.
뚝! 뚝!
입술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재빨리 닦아 냈다.
“아…… 많이 다쳤잖아요. 저리 비켜요.”
나를 밀치려는 남궁수련의 손을 막아 내고 고개를 흔들었다.
“저놈은 내가 쓰러뜨리겠소.”
황신을 쓰러뜨리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겨우 저런 놈 하나에 이렇게 고전을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목숨이 더 소중하다고 하면서 어째서 그렇게 죽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길 것이오.”
단호히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크크, 애송이. 혁련월 따위를 이겼다고 그 몸으로 내게 시비를 거는 것이냐!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니냐?”
“그렇게 무시하던 계집에게 지고 있었으면서 말이 많군.”
“이…….”
할 말이 없는지 장철경이 묵곤을 잡고 있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어디, 네놈이 죽고 난 후에도 그렇게 까불 수 있는지 보겠다. 계집, 이 꼬맹이 다음엔 네년이다. 각오해라.”
붕붕붕붕∼
아까의 기술을 또다시 쓰려는 것인지.
머리 위로 휘돌려지는 묵봉과 장철경의 몸을 타고 흐르는 회오리바람.
“파천풍(破天風)이라는 초식이다. 이걸 받아 낸다면 특별히 죽지는 않게 해 주마. 큭큭큭, 죽지만 않게 말이다.”
점점 힘을 올려 가는 파천풍 초식.
이를 악물며 검을 앞으로 내밀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바람이 불었다.
“비켜라, 화산파의 제자.”
퉁!
갑작스레 나타나 옆으로 강하게 밀치는 힘에 기를 모으고 있던 중인지라 내상이 다시 도졌다.
“컥!”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날뛰어 대는 진기들.
나를 밀친 자는 남궁대한이었다.
“제압이 먼저다. 안 된다면 죽이도록 하지.”
그 옆에 나타나는 이자경과 남궁강.
이미 흑철인 다섯 기는 모두 끝장난 상태였다.
가슴이 터진 것들, 꿰뚫리거나 잘린 놈들.
그렇게 흑철인 다섯 기를 모두 쓰러뜨리고 이곳에 나타난 남궁세가의 세 고수.
“카아앗!”
온 힘을 다해 휘두르는 묵곤을 향해 세 고수가 달려들었다.
먼저 폭뢰권.
퍼어어엉!
장철경의 묵곤과 부딪친 주먹에서 커다란 폭음이 울렸다.
이격.
퍼어엉!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는 묵곤과 부딪치는 두 번째 주먹.
다음은 남궁강.
따앙!
회오리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묵곤을 밀치는 남궁강의 대검.
장철경의 전신이 흔들렸다.
마지막은 남궁대한.
창궁의 의지를 담은 검이 회오리바람을 뚫고 장철경의 어깨를 꿰뚫었다.
“크아악!”
스걱!
위로 휘두르자 잘려 나가는 장철경의 오른팔.
남궁대한이 연이어 몸을 돌리며 오른발로 장철경의 어깨를 내려쳤다.
쿠웅!
장철경은 남궁대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쓰러졌다.
“끝이다, 무뢰배.”
남궁강이 대도를 장철경의 목에 겨누자 싸움이 순식간에 끝났다.
남아 있는 천랑대의 숫자라고 해 봐야 겨우 백 명 정도.
남궁세가도 반 수 이상의 무인들이 죽었다.
“크으…… 정파의 고수라고 하는 것들이 협공을 하다니…….”
“마두에게 지켜 줄 법도 따위는 없다.”
아무리 장철경이 상처를 입었고, 남궁수련과 싸우고 난 뒤이며 강력한 초식을 두 번째 발현하는 것이라고 해도 너무나 대단했다.
남궁세가 세 고수의 자로 잰 듯한 깔끔한 움직임과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적당한 공격.
진기가 아직도 들끓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나머지는 모두 제압해라.”
아직도 반항하려는 나머지 천랑대에게 한 명당 두세 명의 남궁세가 무인들이 달려가 혈도를 짚거나 쓰러뜨렸다.
그렇게 싸움은 정리되는 듯,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듯 했다.
또 한 명의 고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멍청한 놈 같으니.”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무지막지한 위압감.
나와 남궁수련, 그리고 남궁세가의 세 고수 모두가 재빨리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립을 눌러쓰고 가벼운 경장을 입었다.
드러난 피부는 무척이나 까맸고, 옆에 차여져 있는 도는 기이하게도 무척이나 길었으며 또한 완만하게 휘어져 있었다.
왜도를 찬 도객이였다.
‘설마…….’
황보진군이 알려 준 황보세가의 참사.
황보진군이 알려 주었던 그 적의 특징과 똑같았다.
분명하다.
황보진군이 알려 주었던 그 남자다.
‘하필 지금……!’
보통의 무사들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 벌기조차 되지 않는 그저 무의미한 희생일 뿐이다.
나서야 되는 것은 고수들.
하지만 남궁수련과 나는 지금 싸울 상황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서야 되는 것은 남궁대한과 남궁강, 그리고 이자경.
이자경은 내색하진 않았지만 장철경의 묵곤과 부딪친 양주먹이 부어오르고 피륙이 찢어져 피가 줄줄줄 흐르고 있었다.
권의 고수로서 권의 상처는 싸움이 힘들다는 소리다.
남궁대한과 남궁강이 있지만 만일 황보진군이 말한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둘로는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니, 이자경이 같이 합공을 해도 무리일 것이다.
무의식중에 그것을 느꼈는지 남궁대한과 남궁강, 그리고 이자경은 장철경 때처럼 섣불리 도발하지 않고 남자를 살펴보고 있었다.
“탈백도(奪魄刀)……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냐?”
장철경의 말에 남자, 탈백도가 죽립을 조금 더 내리며 드러난 입술로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장철경, 천랑대로 남궁세가를 치라는 얘기는 있었지만 분명히 어느 때에 쳐야 된다고 얘기했었을 텐데?”
“그딴 것, 어차피 피해만 주는 것이니 어느 때이건 상관이 없잖나!”
지금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장철경이 크게 소리쳤다.
“그 꼴이 되었으면서도 그딴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 혼이 덜 난 모양이로군.”
“뭣?!”
“필요 없다. 죽어라.”
죽립의 남자, 탈백도가 말하며 왜도를 뽑아 들었다.
탈백도의 신형이 갑작스레 사라지더니 장철경의 앞에 나타났다.
“…….”
하지만 남궁강과 남궁대한은 놀라지 않고 침착히 대응했다.
남궁대한의 검이 장철경의 목에 겨누어지고, 남궁강의 대검이 탈백도의 신형을 가르려 횡으로 그어졌다.
“하!”
유쾌한 듯 탈백도가 소리치더니 왜도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