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화산천검 5권(1화)
1장 남궁수련(1)
‘어디에 있을까?’
문을 나왔지만 찾기가 막막했다.
사과를 하려고 찾는 것이지만, 나와 남궁수련은 만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다.
그녀가 보통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남궁세가의 지리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기감.
기감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것도 같은 내공심법을 배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만을 찾기는 매우 힘든 일이다.
나의 실력이라도 그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후우∼ 일단 살펴보자.’
이렇게 가만히 있어 봐야 방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남궁대한이나 남궁천에게 물어보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염치라는 것이 있다.
남궁수련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들에게 마음의 무거운 짐을 다시 떠올리게 했는데 내가 지금 가서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방법이 없구나.’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주변을 둘러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찬찬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궁세가라는 커다란 내성 안에 있는 수많은 고루거각들.
그리고 그 사이로 트여진 길들과 돌아다니는 몇몇의 사람들.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보이지가 않는 것일까?’
만일 마음이 심란하다면 방 안에 박혀 있지 않고 바깥을 돌아다니며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할 것이다.
그런데도 없으니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뭔가를 잘못 생각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밝은 곳으로 돌아다닐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궁수련은 직계가 아닌데 내성에 있다.
게다가 방계도 아닌데도 내성에 있다는 이유도 있다.
이렇게 대놓고 돌아다니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이다.
‘조금 으슥한 곳으로 돌아다녀야겠다.’
바보 같음에 머리를 살짝 한 번 툭 치고 가던 발을 멈추고 방향을 바꾸었다.
아무리 오대세가의 수좌라는 남궁세가라고 해도, 그 안의 중심인 내성이라고 해도 으슥한 곳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곳이다.
그곳을 따라 걷던 중 하나의 작은 정원을 발견했다.
아니, 정원이라고 하기엔 뭐하고 나무 몇 그루가 작은 호수를 감싸고 있는 것이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폭이 좁지만 운치가 있게 만들어진 작은 다리 위에 한 사람이 있었다.
‘아! 찾았다.’
남궁수련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요상해 앞으로 내디디려던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남궁수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온 것도 느끼지 못한 듯 슬픈 눈으로 다리 아래의 호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호수에 비친 달을 보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자 새삼 미안함을 느꼈다.
물어보았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내가 말한 것의 파장이 심각하단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상처였던 것인가?’
이십여 년 동안 가족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사실 이렇게 감정 없이 말하면 감흥이 있긴 하지만 마음을 울리진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그녀의 감정이 나의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와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후우∼’
이렇게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미안함만 더해질 뿐이다.
차라리 앞으로 다가가서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탁!
일부러 소리를 내어 발을 구르자 남궁수련이 고개를 돌렸다.
눈물은 흘리지 않고 있지만 그 표정만으로도 충분했다.
새삼 더욱 미안함을 느끼는데 남궁수련이 못 볼 것을 보여 줬다는 듯 눈을 비비며 고개를 돌렸다.
“왜 오신 건지 모르겠군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들었던 냉랭한 말투.
하지만 이렇게 미안함을 느끼고 듣다 보니 그것 또한 마음을 후비는 비수가 되었다.
말없이 걸어갔다.
남궁수련 또한 별 할 말은 없다는 듯 그 말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내가 다가서는 것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척!
남궁수련의 옆에 섰다.
남궁수련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내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의 애잔함과 슬픔은 온데간데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왜 오신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미안하오.”
지금까진 느낀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내 감정을 담아 말한 것인데 남궁수련은 듣더니 피식 웃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저 궁금했던 것뿐인데 제가 과민반응을 했을 뿐이지요.”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의 잘못일 뿐이오. 슬픈데 슬프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숨기는 것이 이상한 것이오.”
“하긴, 그렇지요.”
“지금 내가 뭐라고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제가 그만 가라고 말 안 해도 될 듯하니까요.”
“그렇지만 나의 이 미안함을 속죄하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한 가지 할 생각이오.”
“필요 없어요. 그건 저의 슬픔을 대가로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잖아요. 그런 것은 필요 없어요.”
남궁수련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소. 그저 남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 둬서 나중에 보답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될 뿐이오.”
“말실수가 빚인가요?”
“나에겐 빚이오.”
남궁수련은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직시했다.
“진심인 것 같네요. 하지만 어떤 말로도 나를 위로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말로도 그 일을 없던 것으로 할 순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만 알아 둘게요.”
피곤한 듯 남궁수련은 말하더니 고개를 흔들며 돌아섰다.
“사과를 하러 온 것이었다면 그만 가 보셔도 좋아요. 전 용서했으니까요.”
용서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이렇게 기회를 줄 때 돌아서는 것밖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다리에서 내려왔다.
뒤에서 남궁수련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감정을 다스리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떠한 감정을 내뱉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어 길을 따라 방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자 시비가 다가왔다.
“사과는 하셨나요?”
“했소.”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것 같네요. 그 표정을 보니.”
“용서는 받았소.”
“진짜 용서는 아니겠지요.”
시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숙녀의 치부를 건드렸으니 쉽게 용서받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차근차근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풀어지게 되어 있답니다. 그게 여자예요.”
“고맙소.”
“별말씀을 다 하세요. 솔직히 말하자면 수련 아가씨를 위해서 말하는 것일 뿐이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답니다.”
시비가 쿡쿡 웃더니 바깥으로 나갔다.
“하아∼”
초식을 하루 종일 수련한 것보다 지금의 이 한 시진 정도가 더욱 힘들었다.
‘경솔한 언행은 몸과 마음을 좀먹는 종양이니 말을 할 때에는 만 번을 더 심사숙고해도 모자란다.’
사부가 평소에 강조했던 말이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후회하고 사부의 말을 떠올려 봐야 뭐하겠는가?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가져 봐야 더욱 아쉬워질 뿐이다.
생각을 접고 침상에 드러누웠다.
심란한 마음으로는 운기조식도 힘들다.
머리를 무념무상으로 만들도록 노력하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되면 저절로 떠지는 눈.
바깥을 보니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이었다.
머리가 멍한 것이 아직 잠에서 제대로 깨지 않은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고 운기를 시작했다.
청량한 기운이 몸속을 파고 들어와 휘돌며 시원한 느낌과 함께 정신을 일깨웠다.
“하아∼”
탁기를 내뱉고 눈을 떴다.
운기를 끝내고 창문을 열었다.
해는 이미 거의 다 떴고, 아침의 차가우면서도 청량한 바람이 몸을 휘감아 돌았다.
무가라 역시 다들 일찍 일어나는 것인지.
밤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있거나, 바깥에 있다가 내성으로 들어오는 시비들과 식솔들임에도 불구하고 남궁세가 내성의 아침은 무척이나 활기찼다.
그렇게 멍하니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한 젊은 남궁세가 무인의 무리가 친하게 농을 건네며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갑작스레 남궁수련이 생각났다.
‘후우∼’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만이 나오는 일이다.
경솔한 언행 때문에 헤어날 수 없는 덫에 걸려 버렸다.
진정한 무인이란 무공만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 심계도 뛰어나야 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면 안 된다.
대협이 아니더라도 이것은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다.
이미 틀어져 버린 마음가짐.
되돌리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차근차근해 나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가 봐야 할까?’
생각하는 사이 문이 열리며 시비가 들어왔다.
“어머, 일어나셨네요?”
고개를 끄덕이자 시비가 조찬을 놓고 바깥으로 나갔다.
간단히 식사를 끝내자 시비가 다시 들어와 식기들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시비가 나감과 동시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남궁천이었다.
“편안히 주무셨는지 모르겠군요.”
언중유골(言中有骨).
왠지 모르게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은 착각일까?
아니, 착각이 아니다.
겉으론 드러나지 않지만 남궁천은 어제의 일을 두고 나에게 물어본 것이라는 것을,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아실 거라 믿소.”
나의 말에 남궁천이 미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군요. 저희가 언제까지나 호의적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
‘후우∼’
마음속으로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수련 소저는 어떻습니까?”
나의 말에 남궁천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그 아이가 언제 저에게 아픔을 드러낸 적이 있어야 말이지요. 언제까지나 두고두고 쌓아만 갈 아이입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독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착한 심성 때문에 어찌하질 못하는 아이이지요.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지는 모릅니다. 하루 안에 치료가 될 만큼 무뎌졌을지, 아니면 그 아픔을 가슴에 묻어 두고 있을지는 그 아이만이 알겠지요.”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천은 남궁수련을 마치 꼬마아이라도 되는 양 말하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남궁수련을 보며, 옆에서 굳건히 버텨 주려 점점 어른스러워진 것일까?
“궁금하면 물어보십시오.”
남궁천의 말에 짧게 목례를 하며 방을 나서려 했다.
문손잡이를 잡는데 남궁천이 까먹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는 양 말했다.
“아, 장로님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어젯밤에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계시던 몸을 움직일 정도로 화가 나셨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