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100화 (10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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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 4권(25화)

10장 남궁세가의 비밀(3)

“아, 오셨네요.”

내 시중을 들어주던 시녀가 다가와 인사했다.

“갑작스레 미안하지만, 남궁세가의 수뇌부들이 모여 있는 장소는 어디요?”

“아, 그거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세요.”

“……?”

시녀의 말에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하자 시녀가 살짝 웃으며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남궁천과 남궁대한, 그리고 남궁수련이 있었다.

“급하셨나 봅니다? 저희가 이곳에 이렇게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남궁천의 말에 얼굴이 살짝 뜨거워진 듯했다.

“얘기는 수련이한테 들었습니다. 구파의 회담에 놈들이 훼방을 놓으려고 한다면서요?”

“아!”

놀라움에 남궁수련을 바라보자 남궁수련은 그저 무표정하게 있을 뿐이었다.

“이미 진위는 파악했고, 남궁세가의 힘을 동원하여 화산파와 나머지 팔파일방에 모든 것을 알렸습니다. 더 이상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니 안심하세요.”

남궁천의 말에 안도감이 들어 다리가 풀릴 뻔하였다.

하지만 맥없이 쓰러지는 꼴을 보이고 싶진 않기에 다리에 힘을 주며 앞으로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짝!

남궁천이 박수를 치자 시녀가 차를 내어왔다.

“긴장을 풀고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효능이 있는 차입니다. 물론 독약 같은 것은 당연히 들어 있지 않으니 걱정 마시고 드세요.”

남궁천의 말에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셔 보았다.

씁쓸하지만 달콤한 맛과 함께 몸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 아이의 고집을 꺾고 먼저 몸을 치료하게 한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아닙니다, 제가 약하고 우둔하여 다치게 한 것인데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남궁대한의 말에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남궁대한이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수련이를 따라가게 한 것은 천이의 독단이고, 그것을 따른 것도 수련이의 의지다. 본래 자신이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해 버려서 다친 것일 뿐인데, 어째서 네가 약하고 우둔하다 하는 것이냐?”

“아, 그것이 독단이었습니까?”

남궁천을 바라보자 남궁천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그것이 남궁세가가 저를 믿고 맡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모두 제 잘못이라 생각한 것인데…….”

“그렇다면 넌 다시 그 상황이 되면 네 잘못이 아니니 이 아이의 고집을 꺾지 않았을 거란 얘기이냐?”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다시 그 상황이 되어도 그런 행동을 할 것입니다.”

독살성 당만형.

그가 말했었다.

내 주위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라고.

내 주위의 사람이고,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 그들이 혈천회의 수작에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고.

그때의 일을 곰곰이 곱씹으며 생각한 것이 있었다.

내 주위의 사람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지킬 수 있게 강해지자.

‘내 주위의 사람이라면 불문곡직하고 모두 지키자.’라고.

그것은 처음 만난 남궁수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하! 오지랖이 넓은 건지, 협사인 건지, 아니면 여자를 과잉보호하는 녀석인지 잘 모르겠군.”

“오지랖이 넓은 겁니다.”

싱긋 웃으며 차를 마시자 남궁수련이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그쪽이야말로 상처는 다 치료한 건지 모르겠군요.”

“전력을 다해서 누군가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 정도라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소.”

“남은 일도 못 보게 억지로 약을 먹여 놓고, 자신은 그 정도밖에는 치료하지 않는다고요? 어이가 없군요.”

남궁수련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사실 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수련이가 심통이 났나 봅니다. 사실 청우 소협이 한 일은 수련이에게 빚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수련이는 빚을 지고는 못 삽니다. 그리고 고집도 세고 자신의 마음을 잘 드러내지도 못하지요. 어떻게 보면 삐뚤어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남궁천의 말에 남궁수련이 남궁천을 흘겼다.

남궁천은 싱긋 웃으며 남궁수련의 눈초리를 받아 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냉랭하게 말하는 겁니다. 애교 같은 것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이것이 진짜로 저를 싫어해서 냉랭하게 대하는 것이라도 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제가 잘못한 일인데 좋다 싫다 말할 상황은 아니잖습니까?”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때의 마음은 나도 잘 안다.

지금 나보고 자하심법 말고 다른 심법을 배우라고 하면 난 죽어도 싫다고 할 것이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싫다고 하는 일을 시키는 것은 잘못이므로 이 정도는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하, 마음이 넓다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그런 성격의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라.”

남궁대한의 말에 살짝 긴장하며 입을 열었다.

“남궁수련 소저의 실력이 무척이나 뛰어나던데, 남궁세가에 이 정도 실력의 여류고수가 있다는 것은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나의 말에 남궁대한의 표정이 미미하게 굳어 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남궁대한이 차를 마시더니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곱씹는 듯이 침묵을 지켰다.

한 문파나 세가에서 뛰어난 실력의 신진고수가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의 큰 복이다.

물론 남자 고수가 태어난다면 더욱 좋겠지만, 여자 고수가 태어난다는 것은 그보다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그것이 후기지수의 실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신진고수라면 말이다.

그런데 남궁세가의 남궁수련은 그 어느 곳에도 별호나 그 이름이 드러나 있지 않다.

엄청난 실력의 고수가 있는 데도 숨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숨겨야 하는 어떤 사연이 있다는 얘기다.

지금 내가 한 이야기는 처음 만난 누군가가 자신에게 어떤 비밀을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실 궁금해서 물어보기는 했지만 답해 주지 않아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남궁수련이 벌떡 일어났다.

“전 잠시 나가 볼게요. 조금 더 얘기 나누세요.”

그렇게 말하곤 남궁수련이 재빨리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잡을 새도 없었고, 뭐라 할 말도 없었다.

“후우∼”

남궁대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恨)이 담겨 있는 듯한 그런 깊은 한숨이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얘기라면 얘기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제 질문이 무례라는 것은 잘 압니다.”

내 말에 남궁대한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에게 질문을 한 것이더냐?”

“예?”

“설령 그것이 궁금하더라도 이렇게 본인 앞에서 해야 되는 얘기였더냐? 그렇게 궁금하면 수련이가 없는 나중에 물어봐도 되었지 않느냐?”

“그만하세요. 궁금해서 물어보았을 뿐, 악의는 없었잖습니까?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그래, 내가 조금 흥분했구나. 하지만 무례를 저지른 것은 자네이니 이해해 줄 것이라 믿네.”

이것이 남궁세가의 어떤 비밀이라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남궁수련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만일 이것이 그녀에 관련된 어떠한 비밀이라고 한다면 남궁수련에게는 상처일 것인데 그녀를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정말 멍청하게 행동했구나.’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답답함은 점점 가중되고 가중되어 온몸을 짓눌렀다.

고개를 떨구자 남궁천이 밝게 웃으려 노력하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렇게 괴로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수련이도 악의가 있진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남궁천조차도 밝게 말하려는 듯한 어두운 말투였다.

자신의 모순을 느낀 것인지 남궁천이 한숨을 내쉬자 남궁대한이 일어섰다.

“이만 가 봐야겠다. 피곤할 테니 쉬고 있어라.”

남궁대한이 말하곤 순식간에 바깥으로 나갔다.

“그저 한순간의 실수이니 이해합니다. 너무 괴로워 마시길 빕니다.”

남궁천도 바깥으로 나가자 시녀가 안으로 들어와 찻잔을 치우기 시작했다.

시녀가 찻잔을 치우고 잠시 나의 옆에 서 있더니 입을 열었다.

“수련 아가씨의 일이 궁금하셨어요?”

“아, 그렇소.”

시녀가 웃고는 얘기를 해 주려는 듯 숨을 들이마셨다.

“아, 잠시 기다리시오. 저들도 얘기해 주지 않았는데 얘기해 줘도 되는 것이오?”

“괜찮아요, 어차피 내성에 있는 모든 시녀들이나 남궁세가의 직계들도 모두 아는 얘기니까요. 수련 아가씨와 같이 붙어서 주변을 돌아다녀보면 어차피 알게 될 얘기인데요. 나중에 충격받아서 수련 아가씨에게 상처 주지 말고, 지금 듣고 그런 행동하지 마세요.”

시녀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는요, 오대세가의 수좌예요. 그것은 다시 말해서 그 직계혈족에 엄청난 권위와 힘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뜻이에요. 그것이 과해서 어떤 분들은 직계혈족만을 존중하고 방계혈족의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해요. 그래서 이 남궁세가는 내성과 외성, 둘로 나뉘어져 있는데, 내성에는 직계혈족의 사람들이 살고, 외성에는 방계혈족의 사람들과 시중, 시녀들과 다른 식객들이 묵지요. 방계혈족의 사람들이 내성에 들어온 적은 옛날에 단 한 번, 남궁국(南宮國)이라는 분 외에는 없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 또 한 번 일어났어요.”

시녀가 잠시 숨을 고를 때 마른침을 삼켰다.

“수련 아저씨가 내성에 들어온 거예요. 그것도 남궁국이라는 분께서는 그래도 남궁세가의 피가 섞여 있었지만, 수련 아가씨는 방계혈족도 아니에요. 주워온 아이이지요.”

‘주워 온 아이?’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가씨는 예전에 한 도사님께서 이곳에 데리고 온 아이래요. 게다가 그 도사님이 그 당시에는 근방에서 무척이나 유명했던지라 가주님께서는 무시하지 못하고 안으로 들였어요. 게다가 가주님께는 따님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약했던지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어요.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일인지라 아직 가주님께서 상심이 클 때였는데 도사님이 마침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가주님께서 그 당시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사님에게 그 여자아이를 양녀로 들이겠다고 말씀하셨고, 도사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그때의 그 아이가 바로 수련 아가씨지요. 그래서 수련 아가씨는 뛰어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없었던 거예요. 직계혈족이라고 남들을 속이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직계혈족의 다른 사람들조차 수련 아가씨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들을 속이겠어요? 게다가 직계혈족의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양녀라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지요.”

‘그런 사정이었군.’

시녀의 얘기를 들어 보니 남궁대한이 왜 나를 쏘아붙였는지 알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쉬자 시녀가 싱긋 웃고는 일어섰다.

“수련 아가씨에게 잘못을 하셨으면 수련 아가씨에게 사과하셔야죠. 그렇게 한숨만 내쉰다고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말하곤 시녀가 총총걸음으로 바깥으로 나갔다.

‘그래, 한숨만 내쉰다고 마음의 짐이 덜어지진 않지.’

마음을 정리하고 일어섰다.

‘가서 사과라도 하자.’

남궁수련을 찾으러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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