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화산천검 4권(24화)
10장 남궁세가의 비밀(2)
“뭣?”
백승은 무척이나 놀란 듯 멍하니 나와 나를 잡아간 인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궁 소저?”
“틈을 봐서 도망치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렇게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건…….”
남궁수련의 질타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상대는 어떻게 되었소?”
나의 물음에 남궁수련이 뒤로 고개를 까딱였다.
뒤돌아보자 장철경이 보였다.
“그 계집을 어서 잡아!”
얕은 검상과 깊은 검상을 몇 군데에 입은 장철경이 백승에게 크게 소리쳤다.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남궁수련을 노려보고 있었다.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고래는 육지에서 파닥거리는 것 이외에는 못한다고.”
장철경과 대화할 때 보았듯이 남궁수련은 무척이나 고집이 센 여자였다.
한 마디도 지지를 않는다.
“네년이!”
무척이나 화가 났는지 장철경이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하지만 장철경이 우리를 잡을 가능성은 없었다.
이미 우리는 장철경과 백승에게서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남궁수련이 안도의 숨을 내쉬더니 나의 옷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엇!”
갑작스런 중심의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며 몸의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저 멀리 떨어지려 하는 남궁수련을 암향표 신법으로 재빠르게 다가갔다.
‘치잇.’
갑작스레 내공을 쓰자 속이 울렁거리고 배가 콕콕 쑤셔 왔다.
남궁수련이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내상이라도 입은 건가요? 뭐, 원래부터 심한 내상이었으니 싸우는 도중에 더욱 심해진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남의 일이라고 마음대로 말하더니 남궁수련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한숨을 내쉬며 나도 남궁수련을 따라 속도를 높여 달려갔다.
“잘 따라오는군요.”
남궁수련의 말은 분명히 감탄이었건만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마치 그냥 예의상 얘기해 준 것 같았다.
살짝 울컥하려는데 자세히 보니 남궁수련의 얼굴이 창백했다.
‘얼굴은 창백한데 외상은 없으니, 내상을 입은 건가?’
육사도, 칠사도와 동급이라는 천랑대 대주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상처가 있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 정도 실력의 상대라면 심한 내상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소저야말로 내상을 입은 것 같은데, 괜찮으시오?”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분위기로는 단 한 마디도 대꾸해 주지 않을 것 같았는데 잘 대꾸해 준다.
대신 무표정하고 한 마디도 지지를 않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내가 신경 쓸 것은 아니기에 한숨을 작게 내쉬고 남궁세가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달려가던 중, 남궁수련이 갑자기 비틀거렸다.
“아!”
“남궁 소저!”
재빨리 다가가 몸을 부축해 주었다.
“괜찮으시오?”
괴로운 듯 미간을 찡그린 남궁수련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내 몸을 살짝 밀었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본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빨리 달려갈 생각이나 하세요.”
말하곤 남궁수련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오? 내상을 입은 상태로 그렇게 전속력으로 계속 달리면 내상이 더욱 심해지오.”
“상대가 누군지 생각하고 말하세요. 여자라고 너무 걱정하는 것 아닌가요?”
상대가 누군지 생각하라.
만전의 상태에서 겨우겨우 이겼던 상대, 육사도 혁련월.
그런 자와 동급이라고 하는 장철경.
생각해 보니, 남궁수련이 여자라는 생각에 너무 과민반응을 한 것 같았다.
지금은 어서 남궁세가로 돌아갈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남궁수련의 질책에 잠시 깊이 생각하고 잘못을 인정했다.
남궁수련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상을 치료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지 알기에,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 알기에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다.
‘아직도 멀었구나.’
실전도 많이 겪어 보았고, 위험한 상황에도 처해 보았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아직도 잘못을 저지른다.
‘대체 언제쯤이면 나도 강해졌다 할 수 있을까?’
일신의 무력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과 정신이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굳건한 정신으로 상황을 헤쳐 가려는 그런 강함.
언제쯤이면 나도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다 왔으니 그만 멈추세요.”
“아, 알겠소.”
남궁수련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멈춰 섰다.
커다란 대문과 앞에 서 있는 두 문지기.
남궁세가의 무복을 입고 있는 두 문지기에게 남궁수련과 함께 걸어갔다.
“아, 아가씨.”
두 문지기는 누굴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남궁수련이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놀란 것 같았다.
“어서 문을 열어 주세요.”
“다치신 겁니까? 대체 누가…….”
“괜찮으니 어서요.”
“아, 네!”
자신들이 참견할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았는지 두 문지기가 크게 말하곤 문을 열었다.
남궁수련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일단 먼저 대충 내상을 치료하고 알아낸 것이 있으면 장로님들께 얘기해 주세요.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면 화산파에 얘기하는 것보단 이곳에 있는 남궁세가의 수뇌부에 얘기하는 것이 더 편할 거예요. 전 일이 있어서 같이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일이라니, 내상이 심각한데 일단 어느 건물에라도 들어가서 운기를 하시오.”
“신경 쓰지 마세요. 말했잖아요?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 그 누가 신경 쓰지 않겠는가?
“내상을 치료하는 약은 있소?”
“예, 있어요.”
계속 말을 거는 것이 짜증이 났는지 남궁수련이 대충 답했다.
“꺼내 보시오.”
“하아, 왜 계속 귀찮게 하는지 모르겠군요. 여기 있…… 웁!”
약을 꺼내자마자 재빨리 손을 움직여 약을 빼앗아 남궁수련의 벌어진 입에 집어넣었다.
내상을 치료하는 약이란 것은 그냥 먹기만 하면 알아서 약 기운이 돌아 몸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운기로 약 기운을 사지백해로 움직여야 비로소 약 기운이 퍼지며 내상이 치료가 되는 것이다.
만일 운기를 하지 않는다면, 내상을 치료하긴 하겠지만 약 기운이 한 곳에 뭉쳐 조금 고통스럽다.
남궁수련이 얼굴을 굳히곤 내게 쏘아붙였다.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약 기운이 뭉치기 전에 어서 운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내 말에 남궁수련이 입술을 깨물더니 숨을 내쉬곤 말했다.
“좋아요, 대신 제가 운기를 하는 동안 호법을 서 줘요.”
“알겠소.”
자신이 운기를 하는 동안 내상을 치료하지 못하게 하려는 소리인 것 같았지만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하아∼”
남궁수련이 한숨을 내쉬곤 조금 떨어진 한 건물에 들어가 운기조식을 취했다.
“후∼ 고집이 센 소저로군.”
사실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일이 있다고 하는데 억지로 약을 먹여 운기를 할 수 밖에 없도록 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내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남궁천이 억지로 딸려서 보낸 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상처 입게 된 것에는 내 잘못이 크다.
내상을 다 치료하고 갔으면 장철경은 내가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 그들에게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남궁수련에게 다른 곳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나 혼자 갔다면 남궁수련이 이렇게 다치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다치게 한 것은 모두 다 내 잘못이기에 이렇게 속죄라도 하려는 것이다.
백승의 은밀한 경력은 아직도 내 몸을 휘젓고 있었다.
그에 맞춰 날뛰는 진기들은 나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궁수련은 그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울 것이기에 꾹 참으며 남궁수련의 운기조식이 끝나길 기다렸다.
백승의 경력에 맞춰 날뛰던 나의 진기가 거의 진정되었을 무렵에 남궁수련이 운기조식을 끝냈다.
“후우∼”
남궁수련이 탁한 기운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그러곤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내상은 다 치료했소?”
“덕분에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네요. 고마워요.”
비꼬는 것 같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며 싱긋 웃었다.
“그것참, 다행이오. 그럼 이제 그만 일을 보러 가시오.”
“그럴 예정이었어요.”
냉랭하게 말하곤 남궁수련이 나를 지나쳐 문 앞으로 걸어갔다.
“아, 여긴 어차피 아무도 쓰지 않는 건물이니까 여기서 저처럼 운기조식을 해도 괜찮을 거예요.”
말하곤 남궁수련이 바깥으로 나갔다.
사실 여자이기 전에 남궁수련은 무인이다.
이렇게 챙겨 주는 것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정도 냉대는 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후∼”
이제 내가 운기조식을 할 차례다.
몸에 숨어 들어간 백승의 경력을 해소하고, 진정되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꿈틀거리려 하는 진기를 진정시켜야 할 때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고 몸의 내부를 관조하였다.
백승의 진기는 할 일을 다했다는 양 몸의 구석에서 틀어박혀 있었고, 그 근처에 있는 진기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싶다는 양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 근처의 진기를 제외한 다른 진기들은 사지백해로 파고들며 내 몸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내장과 혈도를 상하게 하지 않겠다는 양 말이다.
‘이것이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내 몸을 치료했다는 그건가?’
자하심법.
보평제자들이 배우는 기본공이건만 점점 성취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욱 새롭고 신기한 공능을 보이고 있었다.
절세의 심법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진화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자하심법, 선택하길 잘했다.’
내가 다른 심법을 배우지 않도록 자하심법을 계속 가꾸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사부의 조언도 무척이나 고마웠다.
‘일단은 몸을 치료하는 데 집중하자.’
백승의 은밀한 경력을 그 주위에 날뛰는 진기로 재빨리 진압하여 해소하고, 내장과 혈도를 감싸고 있는 다른 진기들을 대주천시키며 내상을 치료해 갔다.
그렇게 싸우면서 얻은 내상을 거의 다 치료하고, 혁련월과의 싸움으로 얻은 내상을 반 정도 치료했을 무렵에 몸을 일으켰다.
이 정도면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없고, 또한 남궁수련이 말한 대로 남궁세가의 수뇌부에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회담에 관한 일.
내가 비매각에 말하면 진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비매각 지단의 주(主)도 만나 봐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하면, 반나절밖에 시간이 남지 않게 된다.
그럴 바에야 남궁세가에 말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나은 일이다.
이미 무림맹을 도울 것이라 얘기한 이상 남궁세가에서도 내 요청을 거절하진 않을 것이다.
바깥으로 나오자 이미 해가 지려 하고 있었다.
“이런!”
재빨리 달려가 내가 누워 있었던 건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