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화산천검 4권(23화)
9장 창렴표국(3)
‘어디로 간 것이오?’
주위를 둘러보며 재빨리 살피는데 그들이 눈치챘다.
“동료가 있었나 보지? 그렇게 허둥지둥 찾는 것을 보면.”
“도망칠 틈을 찾고 있었을 뿐이오.”
“보통 그런 상황에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지, 그렇게 허둥지둥 고개를 돌리진 않아. 변명도 통할 사람한테 해야지. 안 그래?”
중년인이 놀리듯이 말했다.
입술을 꽉 깨물며 남궁수련의 위치를 계속해서 살폈다.
그리고 결국 남궁수련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남궁수련은 어느새에 움직인 것인지 이미 건물의 꼭대기에서 나와 혈천회의 인물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살짝 고갯짓하며 피하라고 하자, 그것을 보고 중년인이 남궁수련이 어디 있는지 눈치챘다.
“거기냐!”
중년인이 허리춤에 매고 있던 전낭에서 순식간에 동전을 꺼내 남궁수련이 있는 곳으로 던졌다.
놀랐는지 남궁수련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 순식간에 동전이 남궁수련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안 돼!”
삽시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염력을 펼치지도 못했다.
“흥, 계집 주제에 같잖게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조용히 집 안에서 내조나 하면 될 것을.”
절망에 빠져들려 하는 때, 이마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지던 남궁수련의 몸이 흔들리며 공중으로 산화했다.
“헛소리를 하는군, 산적.”
“뭣?”
촤아악!
남자의 옆구리에서 피가 치솟았다.
“크윽!”
황급히 허리에 차고 있던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남궁수련은 이미 내 옆으로 이동한 후였다.
“나는 여자이기 전에 무인이다. 그런 모욕은 참아 줄 수가 없군.”
“감히!”
중년인이 분노한 듯 일갈했다.
‘설마 이형환위?’
그 정도로 상승의 신법을 익혔을 줄은 몰랐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남궁수련이 나의 눈빛을 보더니 콧방귀를 꼈다.
“거기 옆에 있는 두 남자는 뭐하는 거지? 지금 장난이라도 치자는 건가?”
도망가려고 했던 것인지 두 남자가 움찔했다. 그 사이에 있던 여자는 여전히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궁수련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제라도 건 건가?”
“그건 네년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
옆에 있던 두 남자가 말하며 검을 뽑아 들고 달려왔다.
“내가 막겠소.”
저 둘 정도는 붙잡아 둘 수 있기에 남궁수련의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다.
매화초개.
자하검이 뿜어내는 강렬한 일섬(一閃)에 두 남자의 검에서 불똥이 튀겼다.
“칫, 방해를 하는군.”
방금 전에 본 실력으로는 남궁수련은 나보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거나 조금 못 미치는 경지라고 평가되었다.
여자로서, 그것도 후기지수로서 무척이나 뛰어난 경지.
저 산적 같은 중년인을 붙잡아 둘 수 있을 만한 실력이기에 믿고 이 둘을 상대하기로 했다.
[틈을 봐서 빠져나가기로 하는 것이 어떻소?]
[그러든지요.]
남궁수련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곤 검을 비스듬히 쥐었다.
엄동설한과도 같은 차가운 살기가 남궁수련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계집, 강하긴 하구나.”
여자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중년인이 곤을 두 손으로 쥐며 날카로운 눈빛을 뿜어냈다.
“나는 혈천회 천랑대(千狼隊) 대주(隊主) 마철곤(魔鐵棍) 장철경(張哲鯨)이라고 한다.”
“고래가 육지에 올라와서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
화를 참는 것인지 장철경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림의 선배가 먼저 이름을 댔으면 후배로서 그 이름을 대는 것이 예의 아닌가?”
“무림을 장악하려는 썩어 빠진 생각을 하고 있는 무리의 인물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말하며 남궁수련이 장철경에게 달려들었다.
“이놈의 계집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지 장철경이 크게 소리치며 커다란 묵곤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커다란 파공성이 묵곤의 파괴력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남궁수련은 힘 대 힘으로 맞서지 않았다.
묵곤에 검을 비스듬히 대며 흘려보내고 검을 찔렀다.
“잔재주를!”
남궁수련의 기교도 만만치 않았지만 장철경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묵곤을 팽그르르 회전시키며 남궁수련의 검을 쳐 내고 반격을 한 것이다.
남궁수련은 받아치지 않고 적당히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일진일퇴의 공방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한눈을 팔 때가 아닐 텐데!”
남자가 크게 소리치며 나의 어깨로 검을 찔러 왔다.
피슉!
큰 상처가 아닌 피부를 베었을 뿐인 얕은 상처였지만,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므로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수련은 잘하고 있다. 문제는 나다.’
붙잡을 수는 있으나 쓰러뜨릴 순 없다.
그것은 저들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체력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짓는다.
그리고 그렇다면 불리한 것은 나다.
아직 완전히 몸을 치료한 것이 아닌지라 체력에서는 내가 월등히 달리는 것이다.
‘속전속결이 아니면 남궁수련이 내가 버틸 동안 승부를 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나?’
첫 번째는 성공할 가능성이 반반이다.
그리고 남궁수련이 이길 가능성은 반반인지 아닌지 점칠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는 것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어, 그런데 목적은 이게 아니지.’
내가 해야 할 일은 틈을 봐서 도망치는 일이다.
싸움이라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보니, 어느샌가 내가 원래 어째서 버티고 있던 것인지 까먹은 것이다.
‘틈은 어떻게 만들어야 될까?’
첫 번째, 내가 이들을 쓰러뜨려서 커다란 틈을 만드는 것.
두 번째, 남궁수련이 장철경을 쓰러뜨려서 틈을 만드는 것.
세 번째, 싸우는 중에 방심을 유도해서 틈을 만드는 것.
그런데 틈을 만들 궁리를 하는 그때, 남궁수련과 장철경이 싸우는 옆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뭣?”
놀라움에 생겨난 조그마한 틈.
‘남궁수련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니 도망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세 번째 계획에서 첫 번째 계획으로.
틈이 생겼으니 공격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된다면 이들은 쓰러질 것이다.
생겨난 틈을 놓치지 않고 독사처럼 달려들었다.
10장 남궁세가의 비밀(1)
스걱!
“크윽!”
조그만 방심이었지만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사실 보통의 무인들이었다면 공격하기도 전에 상대가 방심했단 것을 눈치채고 방어를 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을 테지만, 나같이 쾌검술을 쓰는 무인들은 속도가 있기에 방어를 할 시간을 주지 않고 커다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손끝에서 무언가가 잘리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오른손의 힘줄일 것이다.
한 남자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같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내가 힘줄을 자른 것 때문인지 남자의 오른손은 힘없이 장검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크으…….”
육체의 고통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욱 클 것이다.
무인으로서, 그것도 검사로서 팔을 잃는다는 것은 검을 더 이상 들지 못한다는 소리로, 다시 말해서 더 이상 검사가 아니라는 소리다.
평생 동안 검을 들어 왔던 자로서는 죽는 것보다 더욱 심한 고통.
남자의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백운(白雲)!”
‘백운? 이름인가 보군.’
백운이라 불린 남자가 입술을 꽉 깨물며 숨을 몰아쉬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시끄러, 백승(白承).”
백운은 결의에 찬 얼굴로 왼손으로 검을 들어 오른쪽 어깨를 내리쳤다.
“뭣……?”
설마 그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저절로 몸이 굳어졌다.
“힘도 주지 못하는 팔은 싸우는 데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백운의 전신에서 끈적한 살기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은 악귀와도 같이 일그러져 있고, 살기는 줄기차게 몸을 압박한다.
‘후우∼ 겁먹을 필요 없다.’
아무리 내가 지금 상처를 입었다지만 나는 저들보다 강한 강자를 숱하게 보아 왔다.
그리고 그들과도 싸워 왔다.
이 정도에 겁먹으면 혈천회와 싸우겠다는 나의 결의는 산산조각 날 뿐이다.
“덤비시오.”
말하며 검을 고쳐 잡자 백운이 날렵하게 다가왔다.
까앙! 따다당!
힘껏 밀어내고 짧게 단타.
왼손과 오른손의 대결이라고 하면, 보통 둘 모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같은 방향으로 검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쌍검술을 익혔고, 저자 또한 쌍검술을 익혔는지 우리 둘 모두 싸우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따아앙!
힘껏 밀어내며 매화작보와 장천수.
매화작보로 사각을 점하며 장천수 삼 초로 발차기를 날렸다.
퍼버벅!
이마, 쇄골, 복부.
뻗고 접고 뻗고 접고 뻗고 접는 여섯 번의 동작이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백운이 입가로 피를 뿜어내며 뒤로 밀렸다.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려 주먹을 뻗으려 하는 순간, 뒤쪽으로 날아오는 커다란 경기를 느꼈다.
할 수 없이 뻗으려던 손을 뒤로 돌리며 구루의 형을 취했다.
따아앙!
손 전체에 강력한 내기를 실었기에 손에 상처는 없었다.
백승은 백운이 당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인지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
구루로 잘 튕겨 내긴 했지만 깃들어 있는 경력이 만만치 않았다.
몇 가닥의 실과 같은 경기가 나의 내기의 보호막을 뚫고 몸으로 들어와 내기를 진탕시키고 있었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속으로는 몸으로 파고 들어온 경기를 진압하려 애쓰고 있었다.
“백운을 쓰러뜨리다니, 가만히 있지 않겠다.”
“크윽.”
아직 완벽히 치료된 것이 아닌 내상에 지금 몸 안을 휘젓고 있는 경기.
게다가 백승이 전력으로 기운을 뿜어내고 있어 버티기가 힘겨웠다.
“단 한 초로 끝내 주마.”
지금까지와는 다른 제대로 된 초식을 보여 주겠다고 백승이 말했다.
‘받아 내기 힘겨울 것 같다.’
저렇게 필살의 기세로 초식을 펼친다고 한다면, 그것은 만에 하나 자신의 초식이 상대를 해하는 데 실패한다면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뜻이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초식을 받아 낼 수는 있어도 동귀어진까지 막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저자의 일 초를 피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자신의 초식을 받아 내라는 듯이 말하는데 내가 어찌 피하겠는가?
그렇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아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갈등했다.
그때, 옆에서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인영이 나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