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화산천검 4권(22화)
9장 창렴표국(2)
히히히힝∼
마부가 말을 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궁수련이 눈을 감고 마차의 벽에 머리를 기댔다.
나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을 것 같아 보이기에 안심하며 눈을 감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코와 입을 통해 흘러 들어온 자연의 진기를 구결에 따라 혈에서 혈로 인도하며 단전에 차곡차곡 진기를 쌓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쌓이는 진기이나 내 단전을 가득 채우려면 아직 멀었다.
무아지경의 상태로 운기를 계속하는데, 미약한 흔들림이 멈추었다.
‘다 온 건가?’
그런 느낌에 눈을 뜨고 남궁수련을 쳐다보았다.
남궁수련이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도 따라서 바깥으로 나오니 마부가 슬그머니 움직여 우리 앞에 섰다.
“지금부턴 두 분이서 행동하셔야 됩니다. 이 이후로는 마차를 타고 다니면 창렴표국의 인물들의 눈에 띕니다. 두 분 모두 뛰어난 실력자라 걸릴 일은 없을 테니 저는 안심하고 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아가씨.”
마부는 말하며 너털웃음을 짓곤 다시 마차를 몰아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공은 충분하다.’
잠입하여 정보를 빼내 올 정도라면 이 정도 진기만으로 충분하다.
혁련월과 같은 강자들을 상대할 정도라면 무리겠지만 말이다.
“가죠.”
남궁수련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벽에 등을 맞대고 창렴표국을 살폈다.
사실 잠입할 것이면 밤이 더욱 좋다.
아침에는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과 창렴표국 사람들의 시선을 모두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이 없다.
내일의 회담과 관련이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밤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이오.”
문지기와 창렴표국을 찾아온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며 사각지대를 만들었다.
암향표 신법을 극성으로 펼치며 담벼락을 뛰어넘어 커다란 나무의 나뭇가지에 안착했다.
잘 따라오나 뒤돌아보자 남궁수련은 어느새 나의 뒤에 밀착해 있었다.
‘대단한데?’
조금 뒤처질 줄 알았는데 나와 비슷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천의 말대로 방해될 일은 없겠군.’
이 정도라면 도움이 되면 되었지 방해를 할 리는 없었다.
그런데 들어오자 왠지 모르게 막막해졌다.
사실 비매각에서 온 전서에는 창렴표국이 이상하다고만 쓰여 있었다.
정확히 어디가 이상하고 어떤 곳에서 이상한 징조가 발견되었다고 말하질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직접 그 이상한 곳을 찾아야 된다는 소리.
비매각에서 말했으니 분명 이상한 곳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찾는 것은 나라는 소리다.
‘막막하군.’
만일 혁련월과 싸우지 않고 왔다면 먼저 한차례 훑어보고 계획을 짜서 잠입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불길한 느낌 때문에 이렇게 갑작스레 들어온 것이다.
막막함에 한숨만이 나왔다.
그런데 나의 기감에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얼마 전에 느껴 보았던 것만 같은 기운.
눈을 부릅뜨고 나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 세 남녀가 서 있었다.
청수한 인상에 남색 무복을 입은 두 남자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여자.
자세히 들여다보면 절세의 미인이라 칭할 정도로 아름다운 그 여자와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두 청수한 남자.
다시 말해, 나를 혁련월이 있는 곳으로 유인했던 그 세 남녀라는 소리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지?’
사실 저 세 남녀에게는 의문점이 있다.
나를 그곳으로 유인했다면 저 세 남녀는 분명히 혈천회의 일원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내가 살수들이랑 궁수들과 싸울 때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혁련월과 싸울 때도, 그리고 싸움이 끝나고 쓰러졌을 때에도 저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유인만 했다는 소리.
그렇다면 저들은 싸움을 할 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따라가 보자.’
혈천회에 관한 어떠한 징조.
그것은 창렴표국에서 나타났고, 저들은 나를 혈천회의 육사도인 혁련월이 있는 곳으로 유인한 자들이다.
저들을 따라가 보면 분명히 무언가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나의 불안감을 해결해 줄 것이고.
“저들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소.”
남궁수련은 나의 말에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세 남녀가 자리를 뜨려 하는 것을 보고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황급히 움직였다고 해도 내 몸은 기척을 지우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수련도 뒤처지지도 않고 잘 따르고 있었다.
세 남녀는 일정하게 배치되어 있는 건물들의 사이사이를 움직이며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건물들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되어 있기에 잘못하다가는 길을 잃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저들은 그 사이사이를 걷는 중인지라 똑같은 곳을 빙빙 도는 것만 같은 착각도 들고 있었다.
‘아, 멈췄다.’
설마 진에 갇힌 건가 하는 생각도 들 무렵에 세 남녀가 멈췄다.
그리고 어느 한 건물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몇 번 문을 두드리더니 안으로 들어가는 세 남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에 세 남녀가 들어간 건물 앞에서 기척을 죽이고 안의 소리를 들어 보았다.
“그…… 무… 파가 움직인다고?”
“예, 그것도 태…… 검을 얻은…… 입니다.”
“위…… 하겠군. 그건 그렇고 혁…… 나?”
“죽었습니다. 화산파의 녀…… 더군요.”
“우리 회의 골…… 이라고 이미 소문이 나지 않았나? 사실 그…… 놀라워해야 마땅…… 데.”
“그렇지만 이젠 재…… 있다고…… 없습니다. 칠사도의 부재는 치명…… 입니다.”
“상관없어…… 놈들은 아직 우리를 제대로…… 니까.”
“그렇지만…….”
“시끄럽다. 다음 얘기는 뭐지?”
“내일의 회…… 말입니다.”
‘제대로 들리지가 않잖아.’
띄엄띄엄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대충의 내용만 유추할 수 있을 뿐, 제대로 된 내용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미 준비는…… 다. 놈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만 즐기면 돼.”
“그렇…… 까? 하지만 만만치…… 텐데요.”
“우린 그저 상처만…… 돼. 놈들을 죽일 생각…… 버려. 썩어도…… 의 장문인들이다. 칠사도가 모두…… 힘들다.”
‘장문인들?’
게다가 내일의 회라는 말.
아마도 내일의 회담이라는 얘기일 거다.
지금부터가 중요한 얘기.
더욱더 조심을 해야 하기에 더욱 기운을 갈무리하며 얘기에 집중했다.
“보내는 것은…… 까?”
“흑영…… 조와…… 조, 흑철인…… 기, 삼사도와 칠사도, 그리고 혈검대가 가기로 했다.”
‘흑영 두 개 조와 흑철인들, 삼사도와 칠사도, 그리고 혈검대라고?’
흑영은 정보를 수집하기는 하지만 살수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리고 흑철인은 혁련월의 무공을 기본으로 한 가짜 금강불괴의 몸을 가지고 있는 괴물들이다.
삼사도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무척이나 강할 것이고, 칠사도 중 마지막이긴 하지만 칠사도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혈검대는 적검대주가 부대주로 있던 혈천회의 무력 부대라고 마진천에게 들었다.
‘모두들 쟁쟁하잖아.’
당연히 구파일방의 수뇌들이니 무척이나 강하겠지만 저 정도라면 두세 명 정도는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컸다.
‘알려야 돼.’
습격이 있을 것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회담이 있을 장소를 모른다.
지금 당장 화산파로 전서를 날려도 하루 안에 장문인께 도착할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나는 회담이 열릴 곳을 모르는 것에 반해 저들은 흑영이라는 정보 집단을 가지고 있기에 회담이 열릴 곳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움직…… 까?”
“그래, 이미 그곳에…… 중이다. 아마 알아서 잘 움직이겠지.”
‘아마 그곳에 대기 중이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위험한데…….’
그렇지만 내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일단 창렴표국에서 혈천회의 인물을 발견했고, 회담에 어떠한 공작이 있을 것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으니 성과는 무척이나 컸다.
이제 막 돌아가려는 찰나에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거기 누구야?”
‘젠장, 걸렸다.’
이곳이 창렴표국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분위기도 음침하기에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도 어김없이 창렴표국에서 순찰을 나오고 있었다.
“못 들은 거…… 윽!”
안의 사람들이 듣지 못하길 바라며 재빨리 달려가 남자의 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남자가 쓰러지면서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쓰러지는 남자의 몸을 재빨리 잡고 한쪽에 눕혀 놓았다.
‘어서 도망쳐야…….’
“호오∼ 쥐새끼가 있었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남자의 목소리.
‘칫, 늦었다.’
창렴표국 인물의 몸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나를 혁련월에게 유인했던 세 남녀와 한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산발한 머리와 부스스한 수염.
그리고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것만 같은 이글거리는 눈동자.
마치 혈호를 보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의 중년인이었다.
“아, 저자는 설마?”
세 남녀가 나를 알아보며 경악을 했다.
“왜 그러지?”
“저자는 우리가 육사도님께 유인해 갔던 화산파의 골칫덩이입니다.”
“육사도에게 유인했는데 살아서 우리의 얘기를 엿듣고 있었다라……. 그렇다면 육사도는 죽은 건가?”
“말조심하십시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아닐 가능성도 있잖습니까? 육사도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크나큰 무례입니다.”
“오사도 이상이라면 모를까 육사도와 칠사도는 나와 동급일 텐데?”
“칫, 여전히 제멋대로시군요.”
아까까지 얘기하던 것과는 달리 둘은 바깥으로 나오자 아옹다옹하고 있었다.
‘어째서 저들이 말싸움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다.’
관심이 나에게서 사라진 지금이야말로 도망치기엔 적시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누군가 한 사람이 보이지가 않고 있었다.
‘남궁수련!’
남궁천이 나에게 딸려 보낸, 방해는 되지 않을 거라고 했던 그 소저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때에!’
만일 그녀가 먼저 도망친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이 근처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면 위험하다.
저런 고위급 정보를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저들은 매우 높은 직위에 있는 자임에 틀림없고, 게다가 저 중년인은 육사도와 칠사도와는 동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모든 힘을 다해도 같이 죽지나 않으면 다행일 그런 강자가 남궁수련을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게다가 그녀는 남궁세가의 여식이므로 혈천회에는 남궁세가에 또 하나의 공작을 펼칠 여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