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95화 (95/175)

# 95

화산천검 4권(20화)

8장 남궁세가(3)

쿵!

일대의 거인이 쓰러지는 소리는 건물을 울렸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흐려지던 시야가 검게 먹을 칠한 듯 까매지고, 몸의 균형 감각이 사라진 듯 기괴한 감각과 함께 안면에 커다란 충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신을 잃으려던 때에, 한 가닥 남은 기감에 낯선 기가 잡혔다.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적이라면 이곳에서 내가 뼈를 묻을 것이고, 아군이라면 나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한 가닥 남은 정신마저 툭 끊겼다.

“정신이 드세요?”

들려오는 목소리.

분명 그 뜻은 분명하게 전달되나 들리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흐릿했다.

눈을 깜빡이자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맑아졌다.

그리고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생전 처음 보는 곳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자신이 침상에 누워 있다는 것도.

“여기는 어디요? 그리고 당신은?”

일단 몸을 묶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신을 치료해 준 것 같았기에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는 경계심 어린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이곳은 남궁세가예요. 그리고 저는 공자님의 수발을 드는 시녀고요. 정신이 드신 것 같은데, 몸은 어떠신 것 같으세요?”

“남궁세가…… 라. 아니, 남궁세가?”

놀라움에 몸을 번쩍 일으키자 가슴에서 커다란 고통이 사지백해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크으으…….”

“아, 무리하지 마세요. 그 상태로 보니까 아직 한 달 정도는 더 요양해야 될 듯싶은데, 더 누워 계시는 것이 어떠세요?”

“아니오, 무례하게 그렇게 있을 수는 없소.”

입술을 깨물어 고통을 참아 내며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댔다.

그러자 힘을 들일 필요가 없어 고통이 한층 덜어졌다.

“고집이 세시네요. 일단 바깥에서 사람을 불러올게요.”

시녀가 말하며 나에게 고개를 숙이곤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시녀인데도 무척이나 기품 있는 걸음걸이였다.

그렇게 시녀가 나가며 문이 닫히고 적막이 흘렀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분명히 혁련월과 결전을 하여 이겼지만 중상을 입고 쓰러졌었는데?’

혁련월의 연문을 꿰뚫었지만 그 대가로 혁련월의 주먹을 가슴에 허용했다.

분명히 그 상태로 있으면 죽을 상세였는데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인가?

‘아, 마지막에 어떤 자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었지.’

그때 모든 것을 운명에 맡겼다.

아군이라면 살 수 있을 것이고, 적이라면 그곳에서 뼈를 묻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는데, 이곳에 있다는 것은 기감에 걸렸던 그자가 아군이었다는 얘기겠지?

‘그렇다면 그자가 남궁세가의 사람이었던 걸까?’

아무리 이곳 남창이 남궁세가의 앞마당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은 분명히 이상한 기운이 풍기는 건물 안에서 쓰러져 있었다.

게다가 가는 길도 제대로 봐 두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그런 곳을 남궁세가의 인물이 찾아와서 보는 확률은 무척이나 희박했다.

‘나를 따라다녔던 건가? 아니면 우연히 찾아왔던 건가? 아니면 혁련월과 원한이 있던 것일까?’

가능성은 세 가지이지만 내가 밝힐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를 구해 준 장본인이 오지 않는 이상에야.

그렇게 생각에 잠기던 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념에서 깨어나 문 쪽을 돌아보았다.

나의 시중을 든다던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향해 공손히 인사했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귀한 가문의 공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듯한 깔끔한 얼굴에 반해 보통 무사들이 입는 간편한 무복을 입은 청년이 하나.

그리고 부리부리한 눈썹과 조금 튀어나온 광대뼈와 사각턱 때문에 무척이나 강인한 인상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하나.

마지막으로 평범해 보이나 손에 굳은살이 무척이나 많이 박혀 있고, 은근히 보이는 근육들로 보아 상당한 훈련을 거쳤을 것 같은 청년이 하나.

이것이 들어온 사람들의 첫인상과 감상평이었다.

“남궁세가의 남궁성(南宮聖)이라고 합니다.”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이 자신을 남궁성이라고 밝혔다.

“남궁세가의 남궁천(南宮天)이라 합니다.”

이어서 귀공자와 같은 청년이 말했다.

“남궁세가의 장로인 남궁대한(南宮大韓)이라고 하네.”

마지막으로 중년인이 이름을 밝혔다.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라고 합니다. 일단 저를 이렇게 치료해 주신 것에 무척이나 감사를 드립니다.”

“됐네.”

남궁대한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창궁검(蒼穹劍) 남궁대한.

오대세가의 수좌인 남궁세가에서 배출한 절정 고수.

창궁무애검법(蒼穹无涯劍法)을 극성으로 익힌 그는 예전 남궁세가와 흑철방(黑鐵幇)이라는 한 사도 문파와 갈등이 있었을 때, 흑철방에 쳐들어가 단신으로 백여 명의 적들을 처치한 무척이나 강한 검객으로 손꼽힌다.

“우리가 봐준 것은 거의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우린 그저 그곳에 쓰러져 있던 자네를 남궁세가로 데려와 눕혀 놓고 있었던 것밖에는 없으니까.”

“아닙니다. 그 상태로 있었으면 분명히 죽었을 저를 이런 곳에까지 데려와 주신 것에 저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자네, 이상한 말을 하는군. 나는 말 그대로 그저 자네를 이곳까지 데려왔을 뿐이야. 옆에 쓰러져 있던 노인과 함께. 우린 자네를 죽은 자로 간주하고 있었네. 그런데 몸 안에 있던 내공이 혼자 움직여 자네를 치료했을 뿐이니 우린 정말로 한 것이 없네.”

남궁대한의 말에 얼굴을 굳혔다.

저들은 정말로 그저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던 것뿐이라고 한다.

분명 나는 그 상태로 있었으면 죽었다.

하지만 치료를 하지 않았으면 이곳에서 있었든, 그곳에서 있었든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거다.

한데 나는 살아남았다.

그것도 남궁대한의 말로는 내 내공이 홀로 움직여 내 몸을 치료했다고 한다.

‘또 무슨 기연이 있었던 건가? 아니면 이게 자하심법의 진정한 공능인 것일까?’

모르는 일이기에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털어 버렸다.

“아무튼 자네의 옷을 살펴보니 매화 무늬가 있더군. 화산파라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자네가 그렇게 되살아난 것에 기뻐하고 있네. 자네가 이런 곳에서 죽으면 곤란을 겪는 것은 우리 남궁세가니까 말이야.”

남궁대한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자는 내가 죽든 말든 상관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내가 죽으면 화산파와 문제가 발생할 테니 성가시다고 생각했을 뿐.

“장로님, 말씀이 심하신 것 같군요.”

옆에 있는 남궁천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자 남궁대한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성격이 이런 것을 어쩌란 말이냐?”

“그러니 조용히 있으란 거죠.”

“이것이, 키워 놨더니 이젠 장로를 이겨 먹으려 드는구나.”

“호랑이를 키우신 것은 장로님이시죠.”

남궁천의 말에 남궁대한이 변 씹은 표정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둘이 무척이나 친한 사이인가 보군.’

남궁대한은 강인한 인상에 반해 남궁천에게는 부드럽게 말하며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둘의 사이가 장로와 후기지수라는 것을 떠나 남궁천이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둘의 대화 내용도 그런 느낌을 뒷받침해 주고 있고.

“아,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온 것은 얼마나 치료가 되었는지 보러 온 이유도 있긴 하지만, 어째서 그곳에서 그런 엄청난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설마 저와 혁련월이 싸우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저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던 것을 보고 격렬한 싸움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했을 뿐이지요. 어떻습니까? 지금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좀 더 시간을 드릴까요?”

남궁천이 부드럽게 말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무척이나 피곤하다.

아직 내상이 다 치료되지 않은 것도 있고, 깬 지 얼마 되지 않은지라 정신이 멍한 것이다.

‘그리고 싸운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고…… 응?’

“저기, 잠깐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남궁천은 갑작스런 나의 말에도 당황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

“제가 이곳에 누워 있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여기 있는 남궁성이 당신과 혁련월이라는 당신의 상대를 이곳 남궁세가로 데려온 지 아마 오 일 정도가 되었지요.”

“오 일이나 말입니까?”

“예, 오 일입니다.”

‘내가 그렇게나 오래 누워 있었다니.’

새삼 칠사도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를 쓰러뜨리긴 했지만 단 일 권을 허용한 것 때문에 오 일이나, 그것도 내상도 치료를 못한 채로 꼼짝없이 누워 있었던 것이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 버린 것 같은데, 제 질문에 대한 답은 하셔야죠. 장로님이 못 참겠다는 듯이 있는데요?”

남궁천이 고갯짓으로 남궁대한을 가리켰다.

남궁대한은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괴팍하신 분이군.’

하긴, 단신으로 적진에 쳐들어간 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성급한 성격이라는 것은 누구나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다.

“얘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피곤하긴 하지만 어차피 저들이 나가 봐야 잠밖에 자지 않을 테니 일단 얘기를 하고 편안히 누워 쉬기로 결정했다.

“이곳 남궁세가는 구파일방이나 다른 오대세가에서 온 전서를 받았습니까?”

“구파일방은 모르겠지만 사천당가와 황보세가에서 전서가 온 것은 받았네. 하지만 이것은 오대세가의 사람들끼리만 알고 있는 내용인데 자네는 어떻게 안 것인가?”

“사실 그 전서에 쓰여져 있는 내용은 전부 제가 사천당가와 황보세가에 알려 준 것입니다.”

“호오∼ 그런가?”

남궁대한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예. 그 전서를 받으셨다면 창궁검께서는 그 안의 내용을 알고 계시겠죠?”

“그래, 혈천회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집단이 이 무림을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남궁대한의 말에 남궁천과 남궁성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직도 무림을 일통하려는 허황된 꿈을 꾸는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런 멍청한 놈들이 아직도 있더구나. 하지만 그 활약상들을 보니 만만치가 않아. 문파 하나하나로서는 솔직히 말하자면 참패다.”

“그렇다면 마교(魔敎)와 비슷하다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래,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의 세력이지. 하지만 현재 침묵을 지키고 있는 마교와는 달리 이 혈천회는 예전 혈천과 연관이 있는 듯이 보이고, 또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만만히 보면 안 되는 놈들이지.”

“그렇기에 구파일방은 무림맹을 발동할 생각입니다.”

“호오∼ 무림맹을? 삼백 년 전에 혈천과의 싸움 후에는 단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다는 걸로 아는데.”

“예, 하지만 만전을 기해야 하죠. 그리고 이미 구파일방도 그들에게 피해를 본 상태이기에 명분도 있습니다.”

“그래, 이번에 연락을 해 온 세가들도 모두 피해를 보았다고 들었다. 구파일방이라고 다를 리는 없겠지.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나머지 삼 세가가 유일한가?”

“아니요. 저희 화산파와 소림사, 무당파, 이렇게 약 세 문파가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렇군. 그런데 얘기가 새어 버린 것 같은데, 다시 설명해 주겠나?”

“아, 죄송합니다. 그자는 그 혈천회라는 곳의 칠사도 직위에 있는 자입니다.”

“칠사도는 무엇인가?”

“혈천회에서 세 호법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일곱 명을 칠사도라고 한다고 그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자는 죽어 있었으니, 자네가 쓰러뜨린 것이겠지?”

“예, 마지막에 겨우 연문을 꿰뚫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몸이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말이지요.”

나의 말에 세 남자가 묘한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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