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94화 (94/175)

# 94

화산천검 4권(19화)

8장 남궁세가(2)

“쯧, 아직 혈기에 몸을 맡길 나이로군. 배려를 해 줘도 받아들이지 못하니.”

혁련월이 나의 검을 튕겨 내며 발차기를 날렸다.

다리를 다쳤으니 손으로 막아야 하는데 검을 잡고 있으니 피하지 못할 공격.

하지만 그건 ‘검을 잡고 있다’라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는 얘기다.

검을 놓으며 상체를 꺾어 발차기를 피해 내며 양손으로 혁련월의 다리를 감쌌다.

“……!”

잡은 발목을 꺾고 잡아당기며 다치지 않은 발을 내밀어 혁련월의 다리를 끌어당겼다.

쿠당탕!

중심을 잡지 못한 혁련월이 쓰러지고 혁련월의 등이 무방비하게 드러났다.

매화검로 사 초 매화연혈.

사지에 피어나는 자색 매화꽃.

평소대로 피가 솟구치진 않았지만 낙인이 새겨지듯 그렇게 작은 매화 꽃잎이 혁련월의 사지에 새겨졌다.

“크으으!”

혁련월이 몸을 뒤집으며 착지하여 나와 대치했다.

“잔머리를 굴리는구나, 애송이. 더 이상 봐주면 안 되겠어.”

“봐 달라고 얘기한 적도 없소.”

검을 내밀고 혁련월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디 그럼 제대로 상대해 줘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보겠다.”

“뭣……?”

혁련월이 자세를 취하더니 나에게 주먹을 내찔렀다.

매화종지를 전개해 맞부딪치려 했다.

콰앙!

하나 부딪치자 매화종지는 혁련월의 주먹의 강기를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는 혁련월의 강기가 나의 몸을 격했다.

“커억!”

시야가 흐려지며 혁련월의 몸의 윤곽이 점점 멀어졌다.

콰앙!

그리고 벽에 부딪치며 앞과 뒤에 엄청난 타격이 왔다.

“커…….”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엄청난 타격에 폐에 구멍이 생긴 양 숨이 가슴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혁련월은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말이 진짜인 듯 나에게 다가와 가슴을 그 망치 같은 발로 찍었다.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에 기를 모아 타격을 줄이려 했지만, 혁련월은 장난하냐는 듯 기의 막을 부숴 버리고 나의 가슴을 격한 것이다.

그리고 주먹과 더불어 발차기도 맞아 버리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 왔다.

커다란 압력에 계속해서 짓눌려지는 것 같았다.

“하룻강아지 같은 것이, 봐주었더니 도를 넘어서는구나. 제대로 하기만 하면 한 주먹감인 것이 말이지.”

반박할 힘도 없었다.

“하아∼ 하아∼”

가슴이 뻥 뚫리는 듯 드디어 숨이 쉬어졌다.

“맘만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지만, 나에게 내려온 명령은 산 채로 잡아 버리라는 것인지라 죽일 수가 없구나. 하지만…….”

혁련월이 입술을 비틀었다.

“사지가 잘려 나가도 사람은 살 수 있으니. 뭐, 명령에 위배되지는 않겠지.”

그렇게 말하곤 정말로 내 사지를 찢어 버릴 양 혁련월이 빠른 속도로 나의 어깨를 잡았다.

“큭!”

하지만 사지가 찢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발로 혁련월의 신궐혈(神闕穴)을 치려 했다.

그러자 혁련월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

아무리 혈도를 치는 것이 치명적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황급히 도망칠 필요는 없었다.

‘설마……?’

철포삼과 같은 몸을 단단하게 하는 외문무공을 익힌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연문(軟門).

다른 부분이 비정상적으로 단단해지는 대신 한 곳은 비정상적으로 약해진다.

그리고 그 약해진 부분이 연문.

이런 종류의 무공을 익힌 자들의 단 하나뿐인, 치명적인 약점.

이곳은 어린아이가 쳐도 무척이나 아파할 정도로 약하다.

‘가능성은 있다.’

아니, 거의 확신이라 할 수도 있다.

움직이려 하지 않는 몸을 채찍질해 일어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혁련월의 신궐혈을 향해 주워 들은 세침을 던졌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혁련월이 몸을 비틀어 피하려는 순간, 재빨리 다른 세침을 던지며 매화분향을 전개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진한 매화 향기.

“검향……?”

혁련월이 놀란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매화검로 십사 초 매화난영.

머리를 아프게 만들 정도로 진한 매화향 사이에서 피어나는 매화꽃들의 그림자.

콰콰콰콰콰쾅!

하나하나 엄청난 경력을 품고 있는 검기 다발에 혁련월의 몸이 계속해서 튕겼다.

그리고 그중에 한 매화의 그림자가 신궐혈의 근처를 쳤다.

“커헉!”

계속해서 밀리며 튕기기만 했지 비명을 내지른 적이 없던 혁련월이 비명을 질렀다.

‘역시 연문이다!’

이젠 정말로 확신할 수 있었다.

혁련월의 연문은 신궐혈이었다.

‘저곳만 노린다.’

계속해서 매화의 그림자를 뽑아내며 혁련월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혁련월에게 가까워졌을 때 혁련월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발을 내찔렀다.

신류퇴 전추보다도 빠른 극쾌의 발차기.

다행히 낌새를 눈치채 피할 수 있었다.

뻐억!

하지만 이어지는 연격을 맞자 몸이 뒤로 이 장이나 밀렸다.

“크으…….”

연문을 맞아도 그 공격력만은 그대로였다.

이번엔 뼈가 부러진 듯 왼쪽 팔이 무척이나 아파 왔다.

“네놈이 내 연문을 알아챈 이상 조금의 방심도 할 수 없겠구나.”

“끝이다, 혁련월.”

숨을 가다듬으며 선고했다.

혁련월은 내 말에 피식 웃더니 아무 말 없이 주먹을 내찔렀다.

전면을 가득 뒤덮는 권영.

만일 이것이 실초를 감추려는 허초라면 나는 잘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실초였다.

하나같이 모두 일정량 이상의 공력을 담고 있는 살초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 초식이라도 파훼한다면 실제 주먹에 피해가 간다는 소리다.

‘맞받아친다!’

우우웅∼

검에 기를 불어넣자 검이 부르르 떨며 커다란 검명을 토해 냈다.

매화검로 삼 초 매화번복.

매화검로 중 두 번째로 강한 강력한 초식이 발현되었다.

콰드드득!

땅을 뒤엎으며 나아가는 기의 파동.

콰아아아아앙!

혁련월의 주먹과 맞부딪치며 커다란 폭풍을 만들었다.

모든 창이 깨지고 문이 활짝 열렸다.

폭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혁련월의 모습이 보였다.

오른쪽 주먹이 칼에 난도질이라도 당한 양 피가 줄기차게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상처를 보이고 있었다.

“내 주먹을 이렇게 만들다니…….”

혁련월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 무공을 배우고 나서 피를 본 것은 이것이 처음이로군. 감회가 새로워.”

혁련월이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며 말했다.

“더 이상 볼 일도 없을 것이오.”

“그래, 네놈이 죽으면 이런 상처를 아마 볼 일도 없겠지.”

“잘못 이해한 것 같군. 당신이 죽는다는 얘기요.”

매화번복이 통했다는 것을 안 이상 나에게는 엄청난 승산이 있다.

매화유향에 이은 매화만천.

마진천의 귀갑조차 꿰뚫은 그 초식이 있다면 혁련월을 쓰러뜨리는 것도 가능성이 있다.

“좋아,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네놈, 아직 마지막 초식을 전개하진 않았을 테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판 승부를 하자. 나도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초식을 전개할 테니, 네놈도 마지막 초식을 전개해라. 만일 네놈이 내 연문을 꿰뚫는다면 네놈은 살아남을 것이고, 만일 내 몸을 난도질했어도 연문을 꿰뚫지 못했다면 네놈은 죽을 것이다.”

말하곤 혁련월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쿠쿠쿠쿵!

천수신검을 만났던 때와 같은 엄청난 압박감.

온몸을 짓누르는 혁련월의 기운에 맞서 나도 온몸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혁련월의 기운과 나의 기운이 맞부딪친 곳에서 세찬 바람이 생겨났다.

먼저 매화검로 십오 초 매화유향을 펼쳤다.

공간을 점해 가는 그윽한 매화향.

매화 향기 만천에 가득할 때, 매화가 만천에 개화할 준비를 시작한다.

혁련월이 달려들음과 동시에 나도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매화검로의 마지막 초식인 십육 초 매화만천.

만천에 개화하는 매화에 맞서 혁련월이 주먹을 내찔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떠한 변화도 없는, 마치 처음 주먹을 내찌르는 법을 배우던 때의 주먹과 같은 무척이나 기본에 충실한 찌르기.

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만큼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고 빈틈도 없는 정권이었다.

전과 달리 굉음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아니, 귀가 먼 것인가?

혁련월의 주먹과 매화만천은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뿜어낸 강기 다발이 아닌 나의 청운검과 혁련월의 주먹이 부딪쳤다.

그리고 그 순간, 피를 뿜어내던 혁련월의 주먹이 폭발하듯 으스러졌다.

혁련월은 무척이나 괴로울 텐데도 얼굴을 일그러뜨리지 않고 또다시 반대쪽 손으로 일 권을 날렸다.

‘아직도 여력이 있단 말인가?’

절망적일 정도의 상황.

이미 나의 매화만개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혁련월은 다시 초식을 전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황.

시간이 점점 느려지고 느려지며 거의 정지된 것같이 보이고, 종국에는 혁련월의 주먹이 멈추며 의식 세계의 사고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잠깐, 내 청운검은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지?’

혁련월의 주먹은 혁련월의 어깨에서부터 직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다.

하지만 나의 청운검은 혁련월의 주먹을 꿰뚫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길이도 내 청운검이 길고, 속도도 내 청운검이 빠르다.

‘연문!’

이대로 심장을 찔러도 한 치 내지 두 치밖엔 찌르지 못하겠지만 연문이라면 다르다.

일격에 즉사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가자!’

기와 기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상승의 영역.

기의 파동과 기의 파동이 섞이는 격류를 역류하며 혁련월의 연문을 찔렀다.

‘성…….’

하지만 혁련월의 연문을 꿰뚫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했다.

혁련월의 마지막 힘이 담긴 일 권을 가슴에 정확히 맞은 것이다.

“커허…….”

허파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며 정신이 점점 흐려졌다.

그리고 그 흐려진 시야 사이로 혁련월과 혁련월의 연문을 꿰뚫은 내 검이 보였다.

“아아…… 꼬맹이 주제에 잘도 내 연문을 찔렀구나. 뭐, 살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여한은 없다마는.”

홀로 중얼거리며 혁련월이 입으로 핏덩어리를 토해 냈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감더니 뒤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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