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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천검 4권(16화)
6장 마진천과의 싸움(4)
혈천회라는 곳, 그런 괴물들이 열 명이나 있다.
내가 건드리는 것은 무리이기에 나는 그저 잔당들이나 처치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
상처를 입거나 막상막하로 싸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강하지도 않은 주제에 헛된 망상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알았으면 정신 차리고 더욱더 정진해. 네가 강해졌다는 생각은 버려. 그저 앞으로 전진하고 전진하다 보면 언젠가 강해져 있는 것이 진짜 강한 것이다. 자신이 자각하고 있는 강함 따위, 그런 강함보다 한참이나 뒤처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진천에게 포권을 취하며 감사를 표했다.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군. 고마우면 더욱더 강해져서 나에게 그 강함을 표출해라.”
마진천이 말하며 웃고는 자리에서 떠났다.
7장 육사도 혁련월(1)
“비매각에서 온 연락이다. 받거라.”
종남파에서 생활한 지 나흘이 지났다.
갑작스런 천수신검의 부름.
전각에 들어서자 천수신검은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한 장의 전서를 건넸다.
전서에는 비매각 특유의 인과 함께 선검수 청우에게 보낸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펼쳐서 내용을 살펴보니, 이상한 움직임이 발견되었다는 말과 함께 그곳으로 향하라는 명령이었다.
“네가 원하던 소식이더냐?”
“예, 맞습니다. 이제 종남파에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노자는 괜찮은 것이냐?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으니 필요하면 말하거라.”
“아닙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를 표하고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현파와 탑희윤, 그리고 마진천이 나를 반겨 주었다.
“왜 부르신 거야?”
“내가 원하던 소식이야. 떠나야겠어.”
탑희윤의 질문에 답하자 현파와 탑희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마진천은 특유의 능청스럽고도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내 말만 잊지 말고 행동하면 될 거다.”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탑희윤은 연화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며 얼굴을 붉혔고, 현파는 시원스럽게 미소 지으며 나를 보내 주었고, 마진천은 전의 한마디를 빼고는 그냥 손을 흔들며 나를 보내 주었다.
그렇게 떠나온 종남파.
왠지 모르게 시원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강서의 안휘성 남창이다.
남궁세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남창.
제갈세가가 문으로서 으뜸이라면, 남궁세가는 무로서 으뜸인 실질적인 오대세가의 수장이다.
구파조차 인정할 정도의 검술을 가지고 있는 무학세가.
하지만 일단 내가 가야 하는 곳은 남창이 맞기는 하지만 남궁세가는 아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그곳에 있는 창렴표국(蒼廉쨝局)이다.
그 이름대로 깨끗하고 절대 신의를 저버리지 않기로 유명한 표국이지만 비매각의 정보력에 무언가가 잡혔다.
어떤 것인지는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지만, 어떤 위험한 징조가 있다는 것.
조금 멀긴 하지만 그래도 명령이기에, 나의 의지에 따라서 간다.
그곳 창렴표국으로.
***
“으음…….”
백발이 희끗희끗 보이고 흰 수염이 조금 자라난 노인.
몸에 힘이 없지만 노인은 어떻게든 힘을 주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 누워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누구시오?”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까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것인가.’
노인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태연히 옆의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나는 성의라고 불리는 의원입니다. 이름은 가르쳐 줄 수 없으니 용서하길 바랍니다.”
공손한 성의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무진 진인은 다리를 움직여 침상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다리는 물론이고 가슴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완벽히 치료된 것이 아니니 누워 있으라 얘기드린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된 것이오?”
왠지 모를 극심한 통증과 함께 자신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무진 진인이 성의에게 물었다.
“화산파의 말로는 어떤 자들에게 습격을 받아 쓰러졌다고 하더군요.”
“아!”
성의의 말과 함께 무진 진인은 모든 것이 생각났다.
황신이라고 불리던, 마병을 들고 있던 무인과 그 일당과의 싸움, 장일과 유혁을 지키려다 결국은 가슴에 일격을 맞고 쓰러져 버린 일이 말이다.
“장일과 유혁은 어찌 되었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온 건지.
무진 진인은 고통도 잊고 성의의 옷깃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심하게 상처를 입지 않아 얼마 동안 치료를 받다가 화산파로 귀환하였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는 것이 치료에 좋을 것입니다. 일단 이것을.”
성의가 들고 있던 탕약을 무진 진인에게 건넸다.
무진 진인은 잠시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탕약을 꿀꺽하고 삼켰다.
“크으∼”
무척이나 쓴맛에 무진 진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몸의 상태에 맞게 조리한 탕약이니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드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 그건 그렇고…… 내가 이곳에 누워 있은 지 얼마나 되었소?”
“일 년이 넘었소이다.”
“일…… 년이라 하였소?”
“예, 일 년하고도 몇 개월이 지난 시간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것이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치료를 받고도 상처를 모두 치료하지 못했고?”
“몸 안에 있는 탁기와 독기, 그리고 단전에 침입한 이상한 모양의 고와 더불어 외상은 물론이고 상한 내장까지 모두 정상으로 되돌려야 했기에 오래 걸린 것입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죽어도 별 이상이 없는 몸이었지만, 그 엄청난 내공 덕분에 살아남으셨더군요. 그리고 저에게 온 환자들 중 한 명도 죽게 할 수 없다는 각오도 지킬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성의가 포근하게 웃었다.
무진 진인은 그 모습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렇게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화산파로부터 돈도 받았고, 이 모든 약들도 화산파에서 지급해 준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오, 아무리 화산파의 지원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의원이었으면 이 몸을 치료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것은 확신에 가까웠다.
무진 진인이 진기를 휘돌려 보니 끊이지 않고 솟아나오는 대해와도 같던 내력이 반 이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내 제자는 들르지 않았었소?”
“제자라고 한다면, 청우라고 하는 젊은이를 말하는 것입니까?”
“맞소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조금이지만 인연이 있어서 알고 있던 젊은이이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 할 수 있지요.”
“청우는 어떠했었소?”
무진 진인의 간절한 물음에 성의가 옅은 웃음을 지었다.
“소리 없이 오열했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보니 강렬한 의지가 담겨 있더군요. 강한 젊은이인 것 같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으실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일단 자신의 몸 건강부터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성의는 인사를 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아아, 무력하구나.’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이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자신과 싸웠던 자, 분명히 자신이 강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지 청우나 다른 장로들이 싸웠었더라면 분명히 백분지 백 졌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강한 자라는 소리다.
그런데 청우가 의지를 갖고 움직였다면 분명히 그 황신이라는 자와 싸우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막아야 한다.’
하지만 무진 진인은 이미 힘이 없는 늙은이일 뿐이었다.
손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뻐근해지고 아파 오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내공을 복구하고 하루라도 빨리 몸을 회복시키는 것뿐.
“하지만 일단은…… 피곤하구나.”
눈꺼풀을 짓누르는 거대한 압력에 무진 진인은 패배를 선언하며 깊은 잠에 빠져 들어갔다.
***
안휘성의 남창.
오대세가의 수좌인 남궁세가가 본가를 이곳에 세웠을 만큼 엄청나게 번화한 도시이다.
발걸음을 하나 옮기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몸에 치이는 그런 길거리의 정오.
‘답답해.’
길가는 행인들이 방해된다고 무공을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신법을 쓰기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일단 아무 데나 들어가 볼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줄어들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지붕을 타고 움직이면 된다.
길을 가던 중 어느 한 객잔에 들어갔다.
들어가자 바깥보다는 그래도 괜찮은 공기였기에 가볍게 숨을 내쉬며 점소이에게 말했다.
“간단히 식사라도 하려 그러니, 자리를 안내해 다오.”
“네.”
예전에 들렀던 객잔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어린아이가 점소이를 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점소이와는 달리 철저하게 예절을 교육받은 듯 방정맞게 굴지도 않고, 어떤 음식을 고를 것인지,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해 달라는 둥 그런 얘기를 하였다.
‘애답지 않게 너무 성숙하군. 저것도 안 좋은데.’
뭐, 쓸데없는 걱정일 뿐이기에 입을 다물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러던 중, 나에게 꽂힌 두 시선이 느껴졌다.
‘적인가?’
하지만 적의는 물론 살의도 없었다.
그냥 길 가던 사람을 쳐다보는 양 착각하게 만드는 시선이지만 그래도 내 감각에는 탐색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객잔 안의 사람들을 한차례 훑어보는 척하며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두 남자와 한 여자였다.
두 남자는 청수한 인상에 남색의 무복을 입고 있었으며, 검을 허리에 찬 것으로 보아 무림인 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 앉아 있는 한 여자.
면사로 얼굴을 가렸지만 풍기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눈에 기를 집중하여 면사 사이로 얼굴을 보자 왜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수줍은 듯 내리깔고 있는 봉목과 긴 속눈썹.
그리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붉은, 앵두 같은 입술.
가히 절세미인(絶世美人)이라 칭할 정도의 미모였다.
하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예쁘다.’라고 생각은 하긴 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