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89화 (89/175)

# 89

화산천검 4권(14화)

6장 마진천과의 싸움(2)

“예, 있습니다.”

전에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젠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황신이 불구대천지수이기 전에, 혈천회는 하나의 커다란 적이다.

그저 그 안에 황신이 있었기에 싸우는 것이 아닌, 나의 적이기에 망설이지 않고 싸울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황신과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망설이지 않고 혈천회와의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개방 방주와 같이 가는 것이 낫지 않았는가? 그는 혈천회와의 싸움을 개방 본타에 도착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할 텐데.”

“개방은 무림 문파이기 전에 정보 수집 문파라는 기질이 무척이나 큽니다. 그곳에 제가 끼어든다면 저는 장기판 속의 말이 되겠지요. 제가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의지라는 것을 배제하고 명령에 의해 행동하게 될 겁니다. 그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커다란 목적을 정해 주는 것은 좋으나, 그 세부적인 일까지 하나하나 지정해 주는 것은 제가 원하지 않습니다.”

화산파 비매각의 일은 사문의 명령이니 예외로 친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의 명을 그렇게 따르라고 하면 나는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구파의 장문인과 개방 방주와 만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해 주지. 그 정도야 간단한 일이니 말이다.”

천수신검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말에 고마움을 표시하려 포권을 취했다.

천수신검이 손을 휘휘 젓더니 이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마진천 그놈은 아직도 싫다고 하더냐?”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어제 물어봤는데 같은 대답을 반복하더군요. 태극검사와 같은 일을 시켜 주면 하겠지만 장문인은 싫다고.”

“허, 것 참. 요즘 같은 때에는 문파 운영력과 머리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 강대한 무력이 필요할 때인데…….”

“그것도 얘기해 보았다만, 그건 장로가 되어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반박할 말을 없게 만드는구나. 알았다, 오늘은 물어보지 말거라.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인사를 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묵는, 종남파에 객으로 온 사람들이 묵는 곳으로 향했다.

약 일각 정도를 걸어 방 안에 들어가자 싸움에 의해 망가졌었던, 하지만 지금은 말끔히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진 방 안이 보였다.

침상은 독에 녹아내렸기 때문에 종남파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 새것으로 가져다주었고, 부서진 지붕의 나무판자들은 알아서 다른 나무판자와 맞추어 마치 부서지지 않은 것처럼 고쳤다.

하지만 땅이 부서진 것만은 예외였다. 나와 야명 장로의 싸움, 그리고 천풍걸개와 야명 장로의 싸움 때문에 거의 난장판이 되다시피 한 방바닥은 새로 다시 만들어야 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일단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금밖엔 청소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 방바닥이 그런 것은 별 상관이 없으니 난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쓰이는 것은 나에게로 모인 여러 종남파 제자들의 시선이었다.

마진천과 현파, 탑희윤이야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제자들은 내 진정한 실력을 몰랐기에 내가 야명 장로와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알자 모두들 나를 경외, 아니면 질투가 가득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중에는 도를 넘은 선망 같은 것도 있어서 무척이나 괴로웠다.

어째서 자파의 장로를 쓰러뜨렸는데도 도를 넘은 선망이 존재할 수 있냐며 마진천에게 묻자, 마진천이 얘기하기를 네 얼굴을 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 했는데,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각설하고, 방 안에 들어와서 침상에 몸을 눕혔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잠시 폭신한 침상의 느낌에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궁상을 떠는구나. 겨우 얼마 전에 장로와 일전을 벌인 것 가지고 그렇게 피곤해하다니.”

“장로와 싸웠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란 것은 알고 있을 텐데, 마진천.”

“미안하지만 난 상관하지 않아. 덤비는 자는 전력을 다해 쓰러뜨릴 뿐이지.”

“갖고 노는 것이 아니고?”

“하, 그것도 맞는 말이군.”

마진천이 방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으며 섭선을 부드럽게 부쳤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 되다니. 솔직히 실망했다.”

“뭘 말이지?”

갑자기 뭘 실망했다는 말인가?

몸을 일으켜 마진천을 쳐다보았다.

“네 실력에 대해서 말이다. 그 무공 실력.”

“내 무공 실력? 어째서지?”

내가 생각하기엔 분명히 엄청나게 강해졌다.

예전에는 매화검수의 기파에도 몸을 떨었는데 종남파 장문인의 압박에도 기죽지 않고, 종남파의 장로와 대등하게 싸웠다.

후기지수가 이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를 이뤘다는 것은 가히 천재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것인데, 어째서 실망했다는 것인지.

“어째서 내가 실망했는지 보여 줄까?”

마진천이 피식 웃으며 섭선을 나에게 내밀었다.

섭선의 끝부분을 쳐다보자 무척이나 거대한 압박감이 몸을 짓눌렀다.

‘크윽!’

마치 그 한 점에 모든 기를 집중시킨 듯한 느낌이었다.

몸을 압박하는 거대한 기운을 해소하려 단전에서 기를 끌어 올렸다.

하단전에 기운을 뭉쳐 몸의 속박을 줄이고, 중단전으로 기운을 통과시켜 마음의 안정을 찾으며, 상단전으로 기운을 발출해 염(念)을 힘으로 바꾼다.

파캉!

마치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진천의 섭선이 마진천의 몸 뒤로 튕겨 나갔다.

“이 정도 장난에 그렇게 긴장하면 곤란하지.”

마진천이 능글맞게 웃었다.

턱 선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훔치며 신류퇴 전추를 전개했다.

그러자 튕겨 나간 섭선이 마치 마진천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오듯이 하여 나의 발차기를 막아 냈다.

“……?”

“상단전의 타통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상단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긴 하지만, 그것이 너 혼자만의 전유물이라 착각하는 것은 곤란하지.”

마진천이 상단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나와 같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렇기에 긴장하며 다시 기운을 끌어 올려 장천수 일 초를 전개했다.

“똑같은 수법은 안 통하지. 그게 몇 년 전의 일이라곤 해도 말이야.”

마진천이 부드럽게 발을 움직이며 내가 밟을 방위를 막아섰다.

그러자 균형이 비틀렸지만 일단 팔을 뻗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마진천은 진각을 밟고 전사를 최대한으로 하여 공격하여도 상처를 낼까 말까 한 상대다.

이렇게 균형이 비틀린 상태에서는 통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

마진천이 팔을 탁 하고 쳐 버리며 나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렸다.

탁!

하지만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방어할 수 있었다.

반대쪽 손으로 마진천의 발목을 잡으며 비틀자 마진천이 몸을 띄우며 반대쪽 발로 나의 얼굴을 쳤다.

빠악!

“크윽!”

두개골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에 마진천의 발을 놓쳐 버렸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뒤로 물러났다.

“장천수 정도로는 안 돼. 검을 뽑지 않으면 아마 위험할 거다.”

마진천이 장난치듯이 말하고는 섭선을 나에게 던졌다.

휘리리릭∼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섭선을 피하자 섭선이 옆의 탁자를 스치며 마진천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섭선이 스친 탁자는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칫!”

또다시 방을 부수기에는, 그것도 또 종남파의 사람과 싸우며 방을 부수기에는 내가 미안하여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마진천은 느긋하게 나를 따라 걸어 나왔다.

바깥에 서서 마진천을 노려보자 마진천이 섭선을 품속에 넣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위험할 거다. 죽진 않겠지만 팔 한쪽 정도는 날아갈 수도 있을 거다.”

실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 어느새 생사결의 대결과 같아져 버렸는지.

하지만 나는 그것에 어떠한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나의 실력을 보여 주고, 인정을 받으려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검병의 바로 앞에 손을 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발검, 매화초개.

카카칵!

분광참검보다도 빠른 발검이건만 마진천은 손쉽게 막아 냈다.

칼을 검집에서 다 뽑아내지도 않고 나의 매화초개를 막아 낸 것이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경력에 마진천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호∼ 이건 인정할 만하군. 마치 점창파의 관일창(貫日槍), 아니 사일검법(射日劍法)을 보는 듯했어.”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매화연혈을 전개했다.

그러자 마진천이 검을 강렬하게 움직였다.

파도가 넘치는 듯한 초식.

천하삼십육검 일 초 천하도도였다.

천하도도의 비단폭과도 같은 경력에 부딪친 매화연혈 초식은 부서지듯이 사라져 갔다.

“칫!”

분명히 위력은 비슷하나 그 내공의 깊이가 달랐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오성도 뛰어난 마진천이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는 매화검로의 뛰어난 기술과 기교뿐이다.

마진천이 눈을 빛내며 검을 움직였다.

천하삼십육검의 초식이 아닌, 그저 둥그런 원을 그리는 검이었지만 막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모든 깨달음의 정수를 그 검에 담은 것만 같았다.

‘치잇!’

이것은 어떻게 기술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파괴력 있는 초식만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매화검로 삼 초 매화번복.

땅을 뒤집는 강렬한 위력의 검이 마진천의 검과 맞부딪쳤다.

쿠콰콰콰쾅!

커다란 기와 기의 충돌에 모래먼지가 솟구쳤다.

“큭!”

손아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커다란 반탄력에 검을 놓칠 뻔하였다.

‘마진천은 어떻게 되었지?’

몸을 가다듬으며 모래먼지 속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안은 보이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검을 휘둘러 검풍으로 모래먼지를 날려 버렸다.

검풍이 지나간 자리에만 솟구쳤던 모래먼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앞으로 마진천이 보였다.

마진천 또한 만만치 않은 반탄력을 느꼈던 것인지 손목을 매만지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 내가 원하던 만큼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은 되는군. 나야말로 방심하다간 당하고 말겠어.”

마진천이 자조하듯이 웃으며 검을 늘어뜨렸다.

“어디, 이제 즐겨 볼까?”

처음의 목적은 잊어 먹었는지 마진천이 즐겁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천하를 일단할 듯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검에 매화검로 오 초 매화요요를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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