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화산천검 4권(11화)
5장 어둠 속의 소란(1)
“여기다.”
조금 멀리 떨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천풍걸개를 따라 일다경 정도를 걸어서야 객이 묵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별 특이한 점은 없었다.
그저 저잣거리에서 볼 수 있는 조그마한 객잔 같아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것조차도 주변의 풍경에 어우러져 무언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호화롭게 치장하지 않고 검박하고 소박하게 꾸며진 자연 그대로의 건물이었다.
“조금 먼 정도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요?”
“뭐, 조그마한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인성을 시험한다고 해야 할까?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뒤따라오거나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고 할 테지만, 조급한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불평을 하게 되어 있지. 그렇게 사람을 평가하는 거다.”
“…….”
뭐, 그렇다니 인정할 수밖에.
천풍걸개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겉과 마찬가지로 안도 무척이나 소박한 장식밖엔 없었다.
조그마한 탁자,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조그마한 의자.
탁자 위에는 조그마한 단지가 있었고 그 안에 있는 향이 회색 연기를 내뿜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 붙어 있는 침상도 무척이나 평범했다.
다른 것이라면,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종남산의 무척이나 신비로운 풍경이라는 것뿐이다.
“어때, 좋아 보이느냐?”
“화려하진 않군요.”
“뭐, 그거야 그렇지.”
천풍걸개가 호리병의 뚜껑을 딴 다음 독한 화주를 단숨에 삼켰다.
“크으∼ 내려가서 다시 사 와야겠구먼. 이렇게 양이 적어서야 원.”
입맛을 다시며 천풍걸개가 호리병을 허리춤에 다시 찼다.
그런데 호리병의 아래, 매듭이 보였다.
‘……?’
매듭이야 자신이 원하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심하다 할 정도로 매듭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매듭이 아홉 개나 된 것이다.
“이게 궁금하느냐?”
천풍걸개가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매듭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이건 개방의 표식이다. 자신이 어느 계급의 인간인지 알려 주는 것이지. 아홉 개는 바로 개방의 방주, 용두방주를 뜻한다. 대부분은 알고 있는데, 너는 왜 모르는 것이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개방에 대해서는 천하제일방이라는 것만 알고 있지 그 이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거지들의 집단이라 생각해서 그런 거겠지?”
직설적으로 말하는 천풍걸개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
“거지라고 무시하지 말거라. 너는 거지가 천박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요, 그렇지…….”
“솔직히 말해 보거라. 천박하다고 생각하지?”
“……예.”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나도 이해는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너와 같은 경우에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
“세상에는 말이다, 기인이사라 불리는 자들이 있다. 기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이상한 성격의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는 우리처럼 거지같이 생활하는 자들도 있고, 그 성격을 숨기고 선비같이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 그거야 그렇겠지요.”
“너는 만일 엄청난 고수가 나처럼 거지같이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거라. 너는 선입견 때문에 그자가 약하고, 천박하다고 생각하겠지?”
반박하고 싶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렇다고 얘기하고 있어 고개를 숙였다.
“상승으로 올라가기 위한 첫 번째 마음가짐, 선입견을 버려라. 너도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음가짐의 달라짐이 무를 달라지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예.”
대표적으로 금정일과의 만남이 있다.
마음가짐이 조금 변한 것이지만, 그것에 반하여 무척이나 커다란 무의 변화가 있었다.
“사물을 보는 것은 겉이 아니다. 보아야 할 것은 마음뿐. 사람을 결정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과 재능과 마음이다. 사도라고 사한 법 없으며, 마도라고 악한 법 없고, 정도라고 정한 법 없다. 잘 기억해 두거라. 겉모습이 번지르르하다고 속까지 번지르르하진 않다. 진정한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그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법이다.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수긍을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반영을 할 순 있다.
아주 조금, 모든 사물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할 수는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거지를 만나도 추잡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거지이기는 해도 이자에게도 어떠한 재능이 있으니 무시하자 말자.’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정도?
“말이 많았군. 네놈의 잘못된 생각에 조금 심통이 나서 그런 것뿐이다.”
“아닙니다. 가르침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군. 해시까진 아직 조금 시간이 있다. 잠들지 않게 명상이라도 하고 있거라. 제일 좋은 행동은 상대방이 방심하도록 운기를 하는 척하면서 주변을 탐색하는 거다. 뭐,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잘할 테지만.”
“알겠습니다.”
“그럼, 난 가 보마.”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의자에 앉았다.
조그마한 단지 안에 있는 향.
조금씩, 조금씩 붉게 변하며 연기를 만들어 내고, 다 탄 재는 단지 안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재는 떨어짐과 동시에 바스러지는 것이 있지만, 어떤 것은 바스러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똑같은 타 버린 향의 잔해이건만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기에 저렇게 형태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저것이 바로 선택받은 것과 선택받지 못한 것의 차이인 걸까?
그렇다면 무척이나 덧없는 일이다.
똑같이 타 버린 것이건만 어떤 것은 선택받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어떤 것은 선택받지 않아 그 형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선택받지 못한 것은 얼마나 비참할까?
‘아니, 이렇게 생각할 때가 아니지.’
너무 깊이 들어갔다.
쓸데없는 상념일 뿐인데 그것에 감정을 이입해 심화에 걸릴 뻔하였다.
이런 것은 뭐라 내가 단정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생각을 접는다.
‘정신 차리자!’
볼을 짝! 소리가 나게 치자 볼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정신이 맑아졌다.
“운기라도 하고 있자.”
할 일도 없는데 천풍걸개가 말한 대로 운기라도 하고 있어야겠다.
침상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양 손바닥과 양 발바닥을 위로 하여 천(天)의 기를 받는다.
땅에 붙어 있는 다리와 엉덩이로 지(地)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그것을 인(人), 나의 몸으로 하여금 단전으로 끌어들여 융화시킨다.
그것이 천과 인, 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운기법.
그런데 그렇게 운기를 하던 어느 순간, 무언가가 감은 눈 앞에 나타났다.
눈을 감았으니 보이는 것은 눈꺼풀의 어두움이어야 할 텐데, 어째선지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는 나를 희롱하듯 다가왔다 멀어졌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잡힐 듯 말 듯 하던 빛은 어느 순간 나의 손 안에 들어왔다.
그것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커다란 방망이에 머리라도 찍힌 듯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크윽!”
상단전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가부좌를 풀고 두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으으윽!”
아픔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통이 더 심해지진 않았지만 그건 그것대로 고역이다.
하단전에서 꿈틀대며 맥동하는 기를 중단전을 통하여 상단전으로 솟구치게 했다.
용이 솟구치듯 순식간에 상단전에 다다른 진기.
상단전은 진기를 마치 양분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흡수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미세하게 고통이 줄어들고 있었다.
무척이나 미미하여 거의 아니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 정도 희망에 매달려야 했다.
내기가 바닥날 때까지 계속해서 상단전에 내기를 불어넣자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져 버렸다.
“하아∼ 하아∼”
하지만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져 버린 것 때문에 머리 한쪽이 무척이나 공허했다.
“후우∼”
미약한 내기로 중단전에 진기를 휘돌리자 점점 공허한 느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
심호흡을 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체 뭐지?”
그 빛은 무엇이고 또 이 아픔은 무엇인가?
“깨달음? 아니면 주화입마의 초기 증상?”
모를 일이다.
깨달음이라면 무엇인가가 변했어야 하는데 변한 것은 없었다.
내기를 양분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빨아들이고 흡수하던 상단전조차 말이다.
그리고 주화입마의 초기 증상이라면 내기가 들끓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게다가 머리 한쪽의 공허함마저 이젠 사라졌으니 절대 주화입마는 아니었다.
“후우∼ 이상한 상념과 이상한 경험이라니…….”
싸움을 앞두고 이런 기괴한 경험을 하자 무척이나 불안해졌다.
하지만 싸움을 앞둔 시간에 불안해한다니, 안될 일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젠 공허해진 하단전에 자연에서 끌어들인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은 어두컴컴해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만이 주변을 밝혀 주고, 내기마저 거의 다 회복되었을 무렵.
귓가에 무언가가 끌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쥐새끼가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소리.
그러나 내 귓가에는 천둥이라도 치듯 무척이나 크게 울렸다.
‘온 건가?’
시간도 얼추 해시가 맞을 것이다.
마음도 정리가 되었으니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조금씩 기운을 끌어 올리며 온몸을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내려오지 않고 뭐하는 거지?’
정확히 나의 정수리 위, 나무판자를 사이에 두고 무언가가 가만히 누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내 빈틈을 찾는 건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난 지금 겉으로 보면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사방이 빈틈으로 보일 텐데 내 빈틈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뭐지?’
그런데 갑자기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조용히 머리 위로 기감을 집중하자 조그마한 어떤 것이 기감에 걸려들었다.
‘위험!’
갑작스레 온몸을 타고 도는 오한에 소름이 돋아 재빨리 앞으로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