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화산천검 4권(10화)
4장 종남파 장문인과 개방(3)
“…….”
천수신검이 인상을 찌푸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알겠소, 나는 어찌하면 좋겠소?”
“이미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놓았소. 듣고 싶소?”
천풍걸개가 장난을 치듯이 히죽였다.
“어서 말이나 하시오. 장난은 그만 치고.”
“허, 재미도 없는 늙은이 같으니라고. 알겠소, 얘기하지. 내가 지금부터 혈천회에 어떠한 정보를 뿌릴 것이오.”
“어떤 정보요? 게다가 혈천회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어떤 정본지는 가르쳐 줄 수 없고, 뒤의 질문에는 답해 주겠소. 같은 정보 조직끼리는 어떻게든 한 번쯤은 부딪치게 되고, 상대방에 대해서 어떻게든 알게 되어 있소. 그냥 이 직업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오. 아무튼 그렇게 그쪽에 어떠한 정보를 흘리면 그쪽은 당연히 움직일 것이오. 그것도 긴급히 말이오.”
“긴급히?”
“그쪽의 골칫덩이가 가까운 곳에서 편안히 쉬고 있는데 움직이지 않게 생겼소? 게다가 그것이 그동안과는 달리 편하게 움직여도 누구도 모를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바에야.”
말을 끝내고 천풍걸개가 나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수고를 좀 해 줘야겠어.”
“네?”
“미끼는 자네야. 골칫덩이라 했던 것도 자네고.”
“제가 말입니까?”
생각해 보니 골칫덩이라 할 만했다.
지금까지 나는 혈천회와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만 했다.
합동훈련 때의 문제, 철검파와의 문제, 무진 사부와의 문제, 우가장과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보세가와 사천당가와의 문제.
나를 미끼로 쓴다면 거의 백분지 백 나를 잡으러 올 것이다.
‘그런데 누구도 모를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는 뜻은 뭐지?’
“종남파에 객(客)들이 묵는 곳은 종남파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군.”
천수신검의 말에 천풍걸개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방법은 이렇게 하도록 하지.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정보를 흘릴 것이고, 그러면 그들은 종남파의 객으로 들어온 청우를 건드릴 것이오. 그들은 청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를 들일 것이오. 그렇다면 그것은 아마도 야명 장로이거나 다른 장로겠지. 그때 그놈들을 잡는 것이오. 나야 원래 은둔술(隱遁術)에 뛰어나 별 문제 없지만, 천수신검은 어떻게 할 것이오?”
“야명 사제는 원래부터 정보 조직에 있었으니 그쪽 방면으로는 무척이나 뛰어날 텐데…….”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나는 숨어 있다가 바깥에 어떠한 신호를 보낼 것이니 그때 들어와 그들을 잡으시오.”
“그런데 그 이후로는 어떻게 할 것이오?”
“내 예상대로라면, 그놈들을 잡아들이기만 한다면 모두에게 설명할 방법이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것이 맞다면 종남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놈들에게 종남파가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인상도 심어 줄 수가 있겠지. 이것이 바로 일석이조(一石二鳥)이지.”
천풍걸개가 또다시 누런 이를 보이며 히죽였다.
왠지 구취(口臭)가 나는 것 같아서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언제 실행할 것이오, 방주?”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오늘로 하지. 그쪽도 상관은 없겠지?”
천풍걸개의 눈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혈천회의 인물들과 싸우는 것은 황신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이익이 있으면 있지 해가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구파의 장문인들과 방주가 모이는 날짜는 이 주 후이니, 이런 일을 일으켜도 상관은 없지. 우리 종남파에 좋은 일이니 말이오.”
천수신검이 만족스러운 듯 잠시 입술에 미소를 머금었으나 이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한데 우리 종남파의 장로 중에 그런 파렴치한 집단의 인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정말로 상심이 크오.”
“다른 곳도 별반 차이는 없으니 그렇게 상심할 필요는 없소. 우리 개방도 마찬가지니 말이오.”
“개방도?”
천수신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중원 무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다란 문파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상황일 것이오. 우리 개방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말이지. 화산파는 왠지 모르게 아니지만 말이야.”
천풍걸개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짚이는 것이 없기에 고개를 저었다.
“뭐, 검선이 잘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겠지. 그런 점에서는 화산파를 칭찬해 줘도 되겠소.”
“그럼 이 일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다른 얘기를 하도록 하지. 방주는 들어도 되나 별 흥미는 없을 것이오.”
“아니,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듣겠소.”
방주가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청우, 아까 십검수가 갔을 때 마진천을 같이 불렀던 것 같은데 말이지.”
“아, 마진천 말이군요.”
“그래, 이곳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히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은데, 들려줄 수 없겠나?”
“그런 일은 성격상 맞지 않다고 했습니다.”
“겨우 그 정도 말에 끝날 성격의 아이가 아닐 텐데?”
천수신검의 말에 한숨을 쉬며 뒷말도 얘기해 주었다.
“무당파의 태극검사와 같은 직위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그 정도면 자신도 할 수 있다고…….”
“태극……검사?”
천수신검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천풍걸개는 나의 말을 듣자마자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하! 그 대답 참 맘에 드는구나. 무당파의 태극검사라니. 그것도 종남파에서.”
“후우∼ 그만 웃으시오. 그 아이는 언제쯤 철이 들는지…….”
“부르러 갈까요?”
“아니, 그냥 내버려 두게. 지금 상태에서 재촉하면 더욱 삐뚤어질 테니까.”
“이 정도에서 더 삐뚤어지면 대체 무슨 발언을 할지 모르겠군. 푸하하!”
천풍걸개가 크게 웃더니 옆구리에 차고 있던 호리병의 뚜껑을 땄다.
뽕!
그러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독한 주향이 느껴졌다.
“읏!”
맡고 있기만 해도 취할 것만 같은 독한 주향이었다.
“아, 도문의 녀석인가? 뭐, 이게 독하긴 하지만 말이야. 화주(火酒)라고 불리지.”
꿀꺽! 꿀꺽!
천풍걸개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곤 독한 화주를 단숨에 마셨다.
“크아∼ 역시 이 맛이지.”
경박한 추임새에 천수신검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 어때서 그러오? 이게 바로 거지지.”
툭 내뱉곤 천풍걸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만 가겠소. 물론 알아서 잘 조치를 취할 터이니 해시(亥時) 말까지 너는 방으로 들어가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천풍걸개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자네도 그만 나가 보게. 더 이상 전할 말은 없으니.”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 인사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천풍걸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바위 위에 걸터앉아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어디서 묵어야 하는지 설명이라도 해 주려 기다리신 겁니까?”
“아니, 다른 얘기를 할 것이 있어서 말이다.”
개방 방주가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키가 조그마한지라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는데도 나의 이마 정도의 키였다.
하지만 천풍걸개가 옆에 놓여 있던 청록색 봉을 집어 들자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
“네놈이 창마와 반룡, 그리고 초령과 관계가 있는 놈이렸다?”
“……!”
아무리 천하제일방인 개방의 방주라 그래도 그런 것을 어찌 알고 있는지.
무척이나 놀라 버렸다.
“뭐, 그렇게 놀라지 않아도 된다. 땅으로 내려와 뒹굴뒹굴 놀고 있는 용 놈이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나? 혈천회와 원한 관계가 있는 정보 조직과 관련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아, 그럼 그분이 방주님이십니까?”
“그래, 그게 나다.”
천풍걸개가 청록색 봉을 지팡이로 쓰듯 땅을 탁탁 치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에 보니 네놈, 철검파가 있던 곳에서 구파의 정보 수집 공간을 찾아냈다면서?”
“마진천이 말했습니까?”
“그건 관계없지. 아무튼 그게 사실이냐?”
“예, 사실입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것참, 곤란하게 되었군. 그렇다면 구파 전체에 혈천회의 놈들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 아니야?”
“소림사는 아닙니다. 제가 보니 이제야 흑풍 일 조를 잠입시켰다고 했습니다.”
“흑풍? 아니, 정보를 수집하는 놈들이겠지. 그렇다면 소림사는 그놈들을 빼고는 안전하다는 건가?”
“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일단 한마디 하자면, 화산파는 괜찮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화산파에는 그 어떤 수상한 기미도 보이질 않아. 마치 모든 사건의 중심 같아 보인단 말이지…….”
“그런 것이 가능하리라 보십니까? 정도 무림의 지주, 구파인 화산파가 모든 사건의 중심이라니.”
“그래, 나도 그냥 해 본 소리다. 아무튼 그렇다면 오늘 종남파에 대한 일을 끝내면 다른 곳으로 떠나 봐야겠군. 구파의 장문인들과 내가 회담을 갖기 전에 목에 비수를 들이댈 쥐새끼들을 제거해야겠어.”
“그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난 천하제일방 개방의 방주다. 의심스러운 놈들 정도는 반나절도 되기 전에 모두 추려 낼 수 있지.”
“비매각도 그 정도는 하지 못할 텐데…….”
“헛소릴 하는군. 비매각은 그저 정보를 전문적으로 수집하지 않는 문파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곳일 뿐이야. 정보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정보 수집 문파 가운데서는 중상위 정도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정보 수집 문파들 가운데 으뜸은 누구입니까?”
“그거야 당연히 우리 개방이지. 물론 세간의 녀석들은 하오문(下午門)을 우리와 동급으로 치기는 하지만, 뭣도 모르는 소리. 그런 사도(邪道)의 잔당보다는 우리 정도의 개방이 으뜸이지 않겠느냐?”
“예.”
일단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개방이 천풍걸개가 말한 대로 정말 대단하다면, 나에게나 정도 무림에게나 큰 도움이 될 테니까.
“늙은이의 비위를 맞춰 줄 줄 아는군. 기분도 좋은 김에 내가 뭐 하나 가르쳐 줄까?”
“예?”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청록색의 봉이야말로 천하제일방 개방의 신물(神物) 타구봉(打狗棒)이다. 어때, 탐나지 않느냐?”
‘저 볼품없어 보이는 봉이 개방의 신물이라고?’
청록색이라는 것을 빼고는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데, 그것이 개방의 신물이라니.
무척이나 놀라웠다.
“이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개방의 방주라는 뜻이지. 그건 바깥 놈이라도 상관없다. 만일 개방의 방주를 암살해 자신이 타구봉을 가지고 있다면, 그 녀석은 곧바로 개방의 방주가 된다. 물론 그게 싫어 아랫놈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거다. 개방의 방주는 뛰어난 무공 실력도 겸비해야 하니까 말이지.”
‘……?’
왠지 모르게 천풍걸개는 누군가에게 설명이라도 해 주듯 친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는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
역시나 천풍걸개는 다른 의도가 있었나 보다.
말을 끝내자마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등을 돌렸다.
“따라와라, 방이 어딘지 알려 주지.”
왠지 모르게 뒤쪽에서 커다란 바람 소리가 울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