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82화 (82/175)

# 82

화산천검 4권(7화)

3장 인연과의 만남(2)

“어리석은.”

마진천이 검을 움직였다.

또다시 천하삼십육검을 펼치는 마진천.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의 실력이 달라졌다.

방금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막강한 위력.

천하도도의 초식을 순식간에 꿰뚫어 버리더니, 검첨이 마진천의 앞섶에 다다랐다.

한 치만 더 들어가도 목숨을 잃는 상황.

얼굴을 굳힌 마진천이 검을 수직으로 세우더니 수차례 흔들었다.

‘저건?’

예전 합동훈련 때에 봤던 기묘한 귀갑(龜甲)을 만들어 내는 초식.

마진천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귀갑을 만들어 내자 철검파 문주의 검이 그 귀갑에 막혔다.

꾸우웅!

마치 경력이 흡수되듯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철검파 문주의 검에 깃들어 있는 내력이 귀갑에 갇혔다.

“무슨…….”

마진천이 몸을 빙글 돌리더니 경력을 뿜어냈다.

바다에서 파도가 넘치는 듯한 비단폭과 같은 기의 파동.

쏴아아∼

파도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와 함께 철검파 문주의 검이 튕겨 나가고 가슴이 텅 비었다.

마진천이 가볍게 검을 회수하고 휘두르자 가슴에서 피가 솟구쳤다.

무척이나 깊어 보이는 가슴의 상처.

빛나는 궤적을 따라 붉은 핏물이 솟구쳤다.

“커헉!”

철검파 문주가 핏덩이를 토해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초점이 사라지더니 천천히 몸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쿵!

몸과 땅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철검파 문주가 땅에 몸을 눕혔다.

조금의 꿈틀거림도 없었다.

척 봐도 사망이었다.

“끝이군.”

마진천이 숨을 내쉬더니 볼에 난 상처를 집게손가락으로 쓸었다.

“또 상처군. 아직 먼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곤 마진천이 나에게 몸을 돌렸다.

“어때, 더 강해지지 않았나?”

장난스런 표정으로 묻는 마진천에 대한 놀라움도 잠시, 조그만 웃음이 감돌았다.

“철검파의 문주를 죽였다!”

마진천이 크게 소리치며 검을 치켜 올리자 종남파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철검파의 잔당들이 전의를 잃은 것인지 하나둘씩 검을 늘어뜨렸다.

“죽이진 말고 일단 붙잡고 있거라.”

내상을 조금은 치료를 했는지 처음보다는 좋아진 안색으로 광검 도오연 장로가 후기지수들에게 말했다.

“시체는 전부 모아서 한쪽에 파묻거라.”

하나둘씩 장내를 정리하더니 광검 도오연 장로가 나와 마진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진천, 조금 더 성장한 것 같구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렇게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절 꼬드기시려 해도 소용없으니 그렇게 아십시오.”

“사문의 존장에게 말하는 것 하고는…….”

도오연 장로가 혀를 쯧쯧 차더니 갑자기 휘청했다.

“아, 괜찮으십니까?”

놀라 순식간에 다가가 도오연 장로를 부축했다.

“쿨럭! 내상이 아직 다 치료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걱정은 하지 말게나.”

도오연 장로가 나의 몸을 부드럽게 밀치더니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건 그렇고 자네는 누군가? 무공을 보니 화산파 같기도 하다만…….”

“예, 맞습니다.”

소매를 걷어 매화 무늬를 보여 주었다.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라고 합니다.”

“화산파의 선검수라…… 그 실력에 걸맞지 않는 지위 같군. 아무튼 고맙네. 이렇게 우리 종남파를 도와줘서.”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그저 몇몇 비겁한 놈들이 합공을 하는 것을 막아 주었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종남파의 후기지수 분들이 한 일입니다.”

“허허, 그거 말뿐이라도 고맙군.”

도오연 장로가 소탈하게 웃고는 마진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뭐라 뭐라 귓속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듣자 마진천이 얼굴을 굳히더니, 도오연 장로가 떠나자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정말 어쩌자는 건지…….”

“왜 그래?”

“아니, 여기서 할 얘긴 아니다. 너도 종남파로 갈 건가?”

“당연한 말을.”

“그렇다면 가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내가 알려 주지 않아도 말이지.”

마진천이 그렇게 말하곤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검을 공중에 한 번 휙 털었다. 그러자 보검인 듯, 검에 묻어 있는 핏물이 순식간에 땅으로 날아갔다.

마진천이 검을 환집하고는 내 세 자루 검을 물끄러미 봤다.

“뭘 그렇게 보는 거지?”

“아니, 한 자루가 예전과는 다른 것 같아서 말이지. 뭐, 나랑 별 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마진천은 그렇게 말하곤 내 자하검을 툭 치고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탑희윤과 현파가 나의 앞으로 걸어왔다.

“몰라보게 변했군.”

“오랜만이야∼”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현파와 밝은 웃음을 짓는 탑희윤.

반가운 마음에 그들의 앞에 서서 밝게 웃었다.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때와는 다르게 무척이나 헤퍼졌군.”

현파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장난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말투이기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걸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방금 전의 싸움을 보니까 무척이나 강해졌던데.”

“이래 봬도 십검수에 다가간 십팔검수로 유명한 둘이라고. 일장일단(一長一短)이라고 불린다고.”

일장일단은, 원래 하나의 단점도 있고 하나의 장점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파는 그 성어를 하나의 키가 큰 남자와 하나의 짧은 남자로 쓰고 있었다.

큭큭 웃자 자신을 놀리는 것을 알았는지 탑희윤이 얼굴을 붉히며 현파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봐봐, 이렇게 작잖아?”

“그건 네가 큰 거라고!”

탑희윤은 솔직히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는 후기지수들이 대부분 건장한 편이라는 이유 때문에 작아 보이는 것이다.

키로 따지자면 보통의 민초들과 비슷하다고나 해야 할까?

“그게 그거지. 그렇다면, 네가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면 더 작았을 것 아니야? 그러니까 작은 거지. 안 그래?”

“이이…….”

탑희윤이 더욱 얼굴을 붉히며 성을 내려 하자 현파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봐, 이봐. 그렇게 행동하면 네 일편단심 매화꽃이 싫어한다고?”

‘일편단심 매화꽃?’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하는데, 탑희윤이 이번엔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화산파의 친구 앞에서 얘기하면 어쩌자는 거야…….”

매화꽃은 화산파의 상징.

그리고 탑희윤과 현파가 알고 있는 여자라면 당연히 연화.

현파가 예전에도 말했듯이 탑희윤은 연화를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그때 이후로 본 적이 없을 텐데도 탑희윤은 일편단심으로 연화를 좋아하고 있던 것이다.

“뭐가 어때서 그래. 화산파의 친구인데다 그 매화꽃의 친구이니 조언을 구할 수도 있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는 건데.”

“…….”

그렇게 생각하자면 또 할 말이 없다.

탑희윤이 검으로 땅을 탁탁 치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침울해지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무안해지잖아. 만날 듣는 농이면서 왜 갑자기 그렇게 침울해해?”

탑희윤이 발끈했는지 이번엔 현파에게 검을 휘둘렀다.

“어이쿠야, 위험하다고!”

하지만 정말로 몸을 상하게 하려고 휘두른 것이 아니라 장난을 치듯이 휘두른 것이라 현파가 손쉽게 피하며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냈다.

큭큭 웃자 탑희윤이 조심스럽게 검을 거두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런데 물어볼 것이 있는데…….”

“말해. 중요한 것을 빼고는 전부 대답해 줄게.”

“연…… 는…… 어때?”

“뭐라고?”

너무나 조그맣게 중얼거린 것이라 집중해서 듣지 않으니 잘 들리지가 않았다.

탑희윤이 얼굴을 잘 익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이고는 나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연화 소저는 요즘 어때?”

탑희윤의 말에 큭큭 웃었다.

그러자 탑희윤이 더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아. 무공 실력도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고, 성격도 예전과 비슷하게 쾌활해. 점점 더 말괄량이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마지막 말에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짓자 탑희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언제 한 번 만나 봐야겠다.”

탑희윤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봐, 우린 그렇게 연애질을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고.어서 가서 정리하지 못해?”

“엇!”

언제 다가온 것인지 마진천이 탑희윤과 현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또 그렇게 기척 없이 다가오는군요, 사형.”

“이봐, 사제. 너희들이 약한 것일 뿐이야.”

“이래 보여도 범재(凡才) 중에는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천재(天才) 사형.”

마진천이 탑희윤과 현파의 어깨에서 손을 떼더니 섭선을 품속에서 꺼내 부치기 시작했다.

“또 그 섭선입니까?”

질렸다는 듯 현파가 고개를 저었다.

“섭선과 빼어난 용모야말로 풍류를 즐기는 고귀한 공자님의 보편적인 모습이지. 안 그런가?”

“사형은 문학적 재능이 없잖습니까?”

“뭐, 그 정도야 내 뛰어난 오성과 용모에 가려지니 상관없어.”

“것 참, 자화자찬하고는…….”

“아무튼 빨리 장로님에게 가서 지시를 들어. 다들 움직이고 있는 것 안 보여?”

“사형은요?”

탑희윤이 말하자 마진천이 피식 웃었다.

“나야 원래부터 특별 대우라는 것 모르나?”

“하하, 것 참.”

현파가 허탈한 듯 웃자 마진천이 섭선으로 현파의 입을 가로막았다.

“어서 가지 못해?”

마진천의 재촉에 현파와 탑희윤이 나에게 인사하고는 도오연 장로에게 달려갔다.

“알고 있었나?”

“저들을?”

“당연한 말을.”

“그냥 합동훈련 때에 너와의 인연이라는 연관 관계로 친해졌을 뿐이야. 그전에는 알고 있지 않았어.”

“그게 그거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생각해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본론으로 들어갈 예정인지.

마진천이 얼굴을 굳히며 전음으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동안 혈천회에 대해선 많이 알아냈나?]

[너보다 많이 알아낸 것 같진 않군.]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수뇌부 쪽으로는 상황이 다르지. 너의 행적을 보면 거의 대부분 혈천회의 수뇌부들과 맞닥뜨렸으니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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