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화산천검 4권(5화)
2장 종남파와 철검파(3)
후두둑!
도오연 장로가 기침을 하자 피가 땅바닥에 쏟아졌다.
“크윽…….”
커다란 내상을 입은 것인지 얼굴이 창백하고,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부님!”
환공이 순식간에 달려와 도오연 장로의 옆에 서 그를 부축했다.
“마지막에 방심을 해 버렸구나. 마지막 공격을 할 기운을 남기고 있을 줄이야…….”
“말씀 마십시오. 어서 장로님을 모셔라!”
환공이 소리치자 뒤에 있던 두 후기지수가 달려와 도오연 장로를 부축하며 종남파 사람들의 안으로 들어갔다.
환공이 몸을 돌리고 분노한 얼굴로 적검대주의 시체와 철검파의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흐음, 마지막에 큰일을 했군. 대단해.”
짝짝 박수를 치며 철검파의 문주로 보이는 중년인이 말했다.
“네 이놈!”
환공이 달려들려는 것을 옆에 있던 몇몇 후기지수가 막았다.
아무리 그 사부가 당했다고 하지만, 그 혼자 달려들려고 하는 것은 죽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흠, 우릴 너무 얕봤나 보군. 겨우 장로 하나를 보낸 것을 보면.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 장로가 당했으니 자네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지. 십검수도 없고 말이야.”
“아니다! 장로님이 없으셔도 너희 정도는 우리가 처리할 수 있다!”
철검파 문주의 조롱에 한 후기지수가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그거야 자네들 착각이지. 우린 아직 비검대의 대주와 두 부대주, 그리고 나와 다른 문도들이 남아 있는데, 자네들이 나와 비검대를 막을 수 있겠나?”
“크윽…….”
반박을 할 말이 없었다.
이미 적검대주와 도오연 장로의 싸움을 본 바, 절대 보통 후기지수들의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같은 수준인 종남파의 십검수라면 가능성이 있겠지만…….
‘내가 나서야 할 차례인가?’
적검대와의 싸움이 끝나고 도오연 장로가 쓰러질 때쯤에 이미 내공이 거의 다 회복되어 있었다.
이제 싸우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
하지만 지금 나가 봤자 철검파, 적들에게 경계심만 심어 줄 뿐 혼란을 줄 수는 없다.
나가기 적절한 때는 종남파와 철검파의 본격적인 격돌이 진행될 때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
“종남파,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
“이곳에서 비켜라. 종남파까지 가는 길만 얌전히 비켜 준다면 내 특별히 너희들의 목숨을 조금 더 연장시켜 주지. 어떤가?”
“이…… 네놈들!”
분노한 듯 환공이 부들부들 떨었다.
“싫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이곳에서 죽여 주는 수밖에.”
철검파의 문주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그를 제외한 철검파의 사람들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저 무뢰배들에게 종남파의 힘을 보여 줘라!”
커다란 외침에 종남파의 후기지수들이 커다랗게 기합을 넣고는 철검파의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싸움은 구파인 종남파가 조금 더 위였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엄청난 고수들이 끼어 있기에 사실상 종남파가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회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비검대의 부대주로 보이는 두 남자에게 한 후기지수가 달려들었다.
카카캉!
순식간에 비검대 두 부대주의 검을 튕겨 내고 몸을 회전시키는 후기지수.
그와 함께 엄청난 검풍이 두 부대주를 휘감고 돌았다.
카가각!
방어해 내기는 했지만 검풍의 위력에 상처를 입은 두 부대주.
주춤하는 그때, 또다시 후기지수가 기묘한 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빈틈을 파고들고 날렵하게 일격.
순식간에 비검대의 한 부대주가 가슴에 커다란 검상을 입고 쓰러졌다.
쿠웅!
크게 울리는 진각음.
엄청난 전사와 함께 회전하는 검이 또 다른 부대주의 검을 튕겨 내고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두 부대주를 처치한 후기지수가 내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반갑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무척이나 놀라웠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지금 이렇게 나타난 것인지.
종남파 최고의 후기지수.
창마가 인정한 후기지수.
그리고 나의 목표가 되었던 후기지수.
종남파의 반룡, 마진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재밌게 놀아 보도록 하지.”
크게 소리치고는 마진천이 비검대 무인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놓치지 않으려 그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청력을 높였다.
한 후기지수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가던 비검대 무인.
콰아앙!
마진천의 검과 비검대 무인의 검이 부딪치자 비검대 무인의 검이 날아갔다.
퍼어억!
그리고 동시에 마진천이 발을 내찌르자 비검대 무인이 피를 토하며 뒤로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순식간에 하나를 해치우고 이번엔 조금 강한 자에게 다가가는 마진천.
바로 비검대의 대주로 보이는 자였다.
잘 다듬어진 몸매와 단정한 회색 무복. 그리고 기다란 턱수염과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중년인이었다.
카앙!
한 후기지수의 목을 막 날리고 다른 자를 쓰러뜨리려 하던 비검대 대주의 눈썹이 꿈틀거림과 동시에 비검대주가 손을 뒤로 돌리며 마진천의 검을 막았다.
“호오∼”
마진천이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나면서 한 비검대 무인의 목을 날렸다.
“네놈은 누구냐?”
그와 마진천의 주변만이 시간이 정지된 듯 아무도 근처로 다가오지 않았다.
싸움터에 조그마한 공터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네놈이 비검대의 대주, 비풍검(飛風劍) 가금서(賈金瑞)인가?”
“그렇다. 네놈은 누구냐?”
“알 것 없어. 비풍검. 아니, 환영각(幻影脚) 묘수(猫秀).”
“……!”
‘무슨 소리지?’
분명 처음엔 비검대의 대주라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환영각 묘수라고 하는 것이지?
“저∼기 적검대의 대주는 혈풍견 위소응이라고 했지? 이름은 맞지만 별호가 다르지. 혈천회 혈검대 부대주 광견(狂犬). 보통은 혈검대의 검법을 쓰나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무공은 열화장(熱火掌). 맞지?”
“네놈이 그걸 어떻게…….”
‘혈천회 혈검대?’
비검대의 대주가 놀라워하는 것을 보니 마진천의 말이 모두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철검파의 대주들은 혈천회의 사람들이라는 얘기군. 마진천은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몇 년의 시간 동안 어떤 것을 알아낸 것인지.
이제 갓 무림에서 활동을 시작한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뭐, 개인적으로 조금 인연이 있어서 말이지. 이봐, 환영각. 대체 종남파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건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네놈이 누구인지는 알 필요가 없겠군. 이곳에서 죽어 줘야겠어.”
“헛소리 하나는 잘하는군. 죽는 것은 네놈일 거다, 환영각.”
비검대의 대주가 검을 마진천에게 던졌다.
엄청난 위력이 담겨져 있는 듯한 검.
마진천이 고개를 꺾어 피하려다가 생각을 고쳤는지 굳은 얼굴로 검을 올려쳤다.
잘 보니 뒤에 종남파의 후기지수가 비검대의 인물과 싸우고 있던 것이다.
콰아앙!
엄청난 굉음.
역시나 커다란 내공이 담겨져 있는 검이었다.
마진천이 검을 튕겨 내긴 했지만 그 반탄력에 의해 마진천의 몸이 조금씩 뒤로 꺾이며 밀리고 있었다.
환영각 묘수가 입술을 비틀며 발차기를 했다.
발이 땅에서 미끄러지듯 빠른 속도로 위로 차올라졌다.
마진천의 얼굴이 묘수의 발에 닿기 직전 마진천이 몸을 비틀며 묘수의 발차기를 피하고 자신이 발을 내찔렀다.
신류퇴 회(廻)와 무척이나 닮은 움직임이었다.
묘수가 마진천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묘수의 발과 마진천의 발이 부딪치자 묘수의 발이 흐트러지며 사라져 버렸다.
빠아악!
마진천의 얼굴이 옆으로 밀리며 타격음이 울렸다.
그리고 묘수의 발이 마진천의 얼굴 옆에 나타났다.
“퉤! 그게 환영각인가?”
마진천이 고인 피를 뱉고 묘수에게 물었다.
“내 무공은 별호대로 환영각이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감을 못 잡고 있었는데 이제 알겠군. 그런 무공인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그건 네가 잘 생각해 보도록.”
묘수가 말하며 또다시 마진천에게 달려들어 발차기를 날렸다.
후우웅∼
이번엔 세 개의 발의 환영이 마진천의 인중, 낭심, 명치를 노렸다.
마진천이 검을 크게 휘두르자 세 개의 발의 환영이 갈라졌다.
하지만 진짜는 없었다.
마진천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더니 검을 어깨 위로 날렸다.
그러자 묘수의 발이 어깨 위에 나타나며 마진천의 검에 꽂혀 버렸다.
하지만 그것 또한 환영이었는지 마진천의 검에 꽂히자 순식간에 흐트러지며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묘수의 발이 마진천의 왼쪽에서 나타났다.
빠아악!
또다시 얼굴을 맞아 버린 마진천.
게다가 관자놀이를 맞아서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의 중심을 잡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묘수의 환영각이 마진천의 곡지혈과 장태혈(將台穴)을 노리고 들었다.
‘위험해!’
암향표 신법을 극성으로 전개하며 묘수와 마진천이 싸우는 곳으로 달려갔다.
‘안 돼, 느려!’
내가 도착하는 것보다 마진천이 묘수의 공격을 받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그때 나의 귀에 머리를 울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나설 일은 없을 거다, 청우.]
‘이 목소리는…….’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마진천의 몸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더니, 왼손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묘수의 발의 환영이 사라지며 마진천의 왼손에 묘수의 발이 잡히고, 묘수의 얼굴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이 묻어났다.
마진천이 다시 고개를 돌려 씨익 웃고는 묘수의 발을 놓고 빠르게 검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양수검.
한 손으로 검을 잡는 것보다 배는 더 뛰어난 위력을 내게 하는 검을 잡는 방법.
마진천이 입을 열며 조그맣게 말했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육 초 천하일단(天下一斷).”
푸른 광영이 번쩍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마진천이 피를 머금고 있는 검을 늘어뜨리고 나에게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