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화산천검 4권(4화)
2장 종남파와 철검파(2)
‘현파! 그리고 탑희윤!’
그때 보여 주었던 대천강검법.
그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거대한 압력이 눈에 보일 정도의 검법이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적검대 무인을 옭아매며 압박한다.
그리고 탑희윤은 그때 보여 주었던 호접연환검무를 펼치며 적들의 사이에서 종횡무진 휘젓고 있었다.
작은 몸집과 키.
패검으로는 어울리지 않지만 쾌검과 검의 기(技) 면으로는 매우 알맞은 몸체다.
파고 들어오는 검들을 조그만 틈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비가 날아가듯 부드럽게 연환하며 적검대 무인들의 공격의 맥을 끊고 있었다.
“적검대주!”
마치 작은 동굴 안에서 소리를 지를 때와 같이 커다란 목소리가 공터에서 메아리쳤다.
“알았다.”
그러자 이곳까지 들릴 정도로 커다랗지만 왠지 모르게 나른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검대주?”
흑검대주와 마찬가지로 철검파 무력 부대의 대주.
가장 약하다는 흑검대의 대주조차 초풍도객과 맞먹을 정도였으니 적검대주는 더 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지.’
종남파에서 자랑하는 쾌검의 달인, 광검 도오연 장로가 있으니 밀리고 있는 기세를 철검파로 돌려놓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 남아 있는 여섯 명의 고수.
‘적검대의 두 부대주, 비검대의 대주와 두 부대주, 그리고 철검파의 문주.’
종남파의 후기지수들에게 밀리는 적검대의 무인들 가운데 단 두 남자만이 종남파의 후기지수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수는 둘.
그자들이 적검대의 두 부대주다.
‘하지만 적검대의 두 부대주도 전황을 바꿀 정도는 되지 않는군.’
그렇다면 철검파에 남아 있는 비장의 무기는 비검대와 문주뿐이다.
적검대주를 광검 도오연 장로가 맡는다고 하면, 비검대의 대주와 두 부대주는 아마도 종남파의 후기지수들 중 가장 강한 사람들이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강한 자는 아마도 환공과 탑희윤, 현파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문주가 남는다. 그렇지만 상대할 자는 있지, 마진천.’
그렇지만 보이지가 않았다.
열 명 정도 무척이나 뛰어나 보이는 후기지수가 있지만 마진천은 어쩐 일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나오지 않은 건가?’
하지만 철검파에 있는 구파의 정보 수집 공간에선 창마가 인정한 후기지수가 나온다고 했었다.
‘설마 창마가 인정한 후기지수가 다른 사람인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일은 없었다.
‘이렇게 쭉 훑어봐도 보이질 않는데…….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어차피 마진천은 처음 만날 때부터 종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으니 극적일 때 나타난다 하더라도 신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 저게 적검대주?’
종남파 후기지수들과의 싸움을 멈추고 뒤로 물러난 적검대의 무인들.
그리고 그 앞에서 한 손으론 하품을 하는 입을 가리고, 한 손은 뒷짐을 지듯이 하여 검첨을 하늘을 향하도록 든 남자.
뭐라뭐라 말을 하는 듯 도오연 장로와 적검대주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내공을 사용한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귀에 내공을 집중해 청력을 증폭시켜 대화를 엿들었다.
“적검대주다.”
누군지를 물었던 듯 적검대주가 그렇게 말했다.
“자네의 본명을 말하라는 뜻이네.”
“별호는 혈풍견(血風犬), 이름은 위소응(蔿素鷹)이다.”
“쓸데없는 싸움인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자네라도 그만 물러나지 않겠는가?”
“미안하지만 내게 그런 권한은 없다. 그저 위에서 명령한 대로 행할 뿐.”
“위? 문주가 아니고?”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싸움에 말은 필요 없지. 간다!”
적검대주 혈풍견 위소응이 앞으로 달려 나가자 뒤에 정렬하여 숨을 고르던 적검대의 무인들도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리석은!”
도오연 장로가 노한 듯 크게 소리치며 다시 검광을 뿌렸다.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다섯 줄기 검광이 적검대주의 몸을 휘감았다.
카아앙!
하지만 적검대주에겐 통하지 않았다.
상처 하나 없이 검광을 방어하고 도오연 장로의 앞에 도달했다.
쾅!
적검대주의 적색 검과 도오연 장로의 시리도록 하얀 검이 맞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을 퍼뜨렸다.
두 사람의 싸움은 무척이나 격렬했다.
도오연 장로의 쾌검이 적검대주를 공격하고, 적검대주는 또 힘으로 짓누르며 전진하고 공격을 한다.
그렇게 순식간에 이십여 합이 흘렀다.
그리고 이십일 합째에 드디어 한 사람의 몸에 상처가 생겨났다.
뒤로 물러나는 적검대주.
적검대주가 움직인 궤적을 따라 생긴 족적에 피가 뚝뚝 떨어졌다.
“한 방 먹었군.”
팔뚝에 생긴 검상에서 흐르는 혈류를 핥으며 적검대주가 입술을 비틀었다.
“봐줄 생각은 없다, 혈풍견.”
“견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묘하군. 뭐, 개인적으로 맘에 들긴 하지만.”
‘큭큭’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적검대주가 팔을 늘어뜨렸다.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그래도 그동안 증진된 무공에 대한 보답은 해야 하지 않겠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군.”
광검 도오연 장로가 다시 검을 겨누었다.
“내가 왜 혈풍견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는지 알려 주지, 종남파의 장로.”
파앙!
적검대주가 상처를 싸맬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상태로 광검 도오연 장로에게 달려들었다.
“어리석은!”
콰아앙!
도오연 장로의 쾌검과 적검대주의 혈검이 맞부딪치자 커다란 굉음과 함께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듯한 기의 파동이 줄기차게 뻗어 나왔다.
주변에 있던 적검대 무인들과 종남파 후기지수들의 싸움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커다란 파동이었다.
적검대주의 엄청난 쾌검이 또다시 적검대주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이번엔 오른쪽 허벅지였다.
하지만 적검대주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해서 줄기차게 공격일변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동귀어진이라도 할 셈이더냐?”
동귀어진이라 생각한 것인지 광검 도오연 장로가 조금씩 공격을 줄이고 수비를 높였다.
“큭큭.”
음산하게 웃으며 적검대주가 계속해서 살기 짙은 초식을 선보였다.
요혈과 사혈만을 노리고, 허초가 없고 실초만이 있는 단순하나 위력적인 검법.
처음엔 도오연 장로가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수비로 점점 초식을 전환하다 보니까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상처가 생기는 것은 적검대주뿐이었다.
방어를 도외시하고 있다 보니 조그만 공격에도 계속해서 상처를 입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 있지 않아 적검대주의 몸이 점점 붉게 변해 갔다.
피가 온몸을 적시며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적검대주의 공격은 점점 빨라지고 강력해지고 있었다.
처음과는 거의 두 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의 속도와 위력.
카아앙!
처음으로 도오연 장로의 검이 빛을 뿌리기 전에 적검대주의 검에 막혔다.
“아닛!”
놀란 듯 도오연 장로가 잠시 움찔한 사이, 적검대주의 검이 붉은빛을 뿌렸다.
촤아악!
배를 노리는 일격.
도오연 장로가 순식간에 피해 냈지만 얕지 않은 상처를 입어 버렸다.
도오연 장로가 종남파의 고절한 신법으로 순식간에 뒤로 몸을 빼고 대치했다.
말이 필요 없는 상황.
승부에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검대주는 상처가 날수록 점점 강해지긴 했으나, 그만큼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정신도 흐려졌다.
하지만 도오연 장로는 배에 얕지 않은 상처를 입었지만 방어를 주(主)로 한지라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고, 더 이상 방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위험해.’
이상한 느낌.
상단전에서 기이한 느낌을 보내기 시작했다.
도오연 장로가 질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멀쩡할 거란 느낌도 들지 않았다.
최소 중상, 평생 불구로 살 위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까 본 흔적이 떠올랐다.
조금 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도 뜨겁다고 느낄 정도의 열기.
만일 그것이 적검대주의 흔적이라면?
‘아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아직 내공이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저런 괴물들과 싸울 것이면 최상의 몸 상태로도 모자란다.
조금이라도 더 기운을 회복시키도록 노력해야 했다.
그때, 두 무인이 또다시 격돌했다.
촤아악!
분노한 듯 광검 도오연 장로의 검은 무척이나 매서웠다.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예리한 기운이 느껴졌다.
가슴에 일격.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적검대주의 검이 그 사이로 빠르게 움직였다.
촤아악!
오른쪽 어깨 근처.
쾌검을 사용하는데 치명적인 상처가 생겨났다.
적검대주가 상처를 보고 살짝 입술을 비틀더니 상처를 살피지도 않고 또다시 전진했다.
캉! 콰아앙! 까앙!
빛과 같은 속도의 검과 적검대주의 매서운 검이 계속해서 굉음을 퍼뜨렸다.
어느덧 적검대 무인들도 거의 다 죽어 나갔건만, 적검대주와 광검 도오연 장로의 싸움은 끝이 날 듯 끝이 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나 많은 상처를 입고도 아직도 처음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매섭게 검을 휘두르는 적검대주.
출혈과다로 죽지나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그만하지 못할까!”
도오연 장로의 검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한순간에 열 개의 잔영을 만들어 냈다.
땡그랑! 푸하하학!
그와 함께 적검대주의 검이 두 동강이 나고 적검대주의 몸에 무척이나 깊은 상처가 여러 개 생겨났다.
이번엔 정말로 끝일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적검대주는 마지막에 어떤 힘이 났는지 입술을 비틀며 한마디 내뱉었다.
“마지막 선물이다.”
콰아앙!
‘……!’
이곳까지 덮쳐 올 정도의 화끈한 열기.
그리고 불타고 있는 듯 보이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적검대주의 오른손.
마지막 공격에 타격을 입은 것인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날아가 멈춘 광검 도오연 장로의 앞섶이 까맣게 변해 있었고, 입술에선 피를 줄기차게 흘리고 있었다.
“방……심했군.”
“큭큭.”
마지막까지도 음산하게 웃으며 적검대주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