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화산천검 4권(3화)
1장 협력의 가능성(3)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다짐을 받아 놨으니 만일 화산파가 무림맹을 발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 혼자 활동할 수 있다.
우승빈이 현재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으니(게다가 그 실력도 절정 고수와 별반 차이가 없다), 양지에선 내가 활동하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조력자, 마진천.
종남파에 묶여 있다고는 하나, 현재 철검파가 종남파와의 싸움을 위해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마진천은 분명히 유명세를 탈 것이다.
그렇다면 임무를 받을 일도 많을 테고, 또한 무림맹이 발동된다면 후기지수의 대표로서 자리에 설 것은 당연한 일.
그 정도 실력이라면 보통 문파의 장로들보다도 백배는 나은 실력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찌할 예정이지?”
“예?”
“이후의 일정 말이다. 나는 당풍을 남기고 이곳을 떠날 예정이다. 당가에 가서 화산파에서 전서가 오기 전에 미리 자세한 설명을 할 예정이다. 그리고 황보진군과 이 나머지 떨거지들은 전부 이곳에서 치료받을 테고, 황보악은 황보세가로 갈 테지. 너는 어찌할 예정이냐고 묻는 거다.”
“저는 일단 종남파 쪽으로 갈 예정입니다.”
“종남파? 왜지?”
“철검파의 싸울 수 있는 모든 무인들이 종남파로 향했습니다. 본래 화산파와의 싸움인 바, 제가 나서서 싸워야 합니다. 게다가 조금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서 말입니다.”
“개인적인 사정?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아무튼 그렇다면 알겠다. 나중에 무림맹이 발동되면 그때 만날 수 있겠지. 만일 발동되지 않는다면 그땐 소회표국(消悔?局)을 통해 연락을 하도록 하지.”
“소회표국?”
“우리 당가에서 은밀히 지원해 주는 표국이다. 믿을 만한 곳이니 괜찮을 것이다.”
“그 어느 곳도 믿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당가에서 지원해 주는 표국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히 조사하지 않으면 위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다 찾다가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네 친구는 물론이고 사형제나 사부조차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모르나?”
“그건…….”
“알았으면 억지 부리지 말도록 해라. 네 근처라고 안전할 줄 아는 거냐? 네 근처만 안전할 거라고 누가 그러더냐? 네놈이 비밀을 먼저 아니까 괜찮다? 네놈은 그 혈천회라는 곳에 깊숙이 관계되어 있어서 근처를 건들지 못한다? 착각도 유분수다. 멍청한 것 같으니라고. 그딴 생각을 할 시간에 좀 더 주변을 신경 써라. 그딴 사고방식으론 네놈은 천 번 만 번을 죽어도 이 무림에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당만형의 독설.
하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기에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전부 맞는 말밖에는 없다.
내 근처라고 누가 안전하다고 했던가?
사부님이 당했다, 유혁 사형과 장일 사형도 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바뀌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 누가 그러던가? 그들이 같은 사람이라고.
나는 그저 괜찮을 것이란 착각만을 한 것이다.
좀 더 주변을 신경 써야 된다, 라는 말에 사부님이 생각났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러 가야겠다.’
“알겠습니다. 무림의 대선배께서 말학 청우에게 조언을 해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알아들었으면 됐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하기나 해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나가 보겠습니다.”
“나가든지 말든지 신경은 쓰지 않는다. 다만 네놈, 죽지나 마라.”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미미하게 웃음을 짓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자 누군가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색 무복을 입고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
온몸에서 짙게 풍겨 나오는 날카로우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익숙하지만 무언가 달라. 적인가?’
발을 살짝 벌리며 오른손으로 청운검의 검병을 잡았다.
남자는 내 오른손과 청운검을 힐끗 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라졌다? 아니야!’
까아앙!
“크윽!”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순간적으로 몸과 기감이 반응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중에야 눈치채고 발검을 했지만 늦었다.
반쯤 빠져나온 청운검의 검신과 남자가 꺼낸 검의 검첨이 맞닿은 것이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나는 중심을 잠을 수가 없었다.
‘끝인가?’
죽음이 다가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남자가 검을 늘어뜨리고 복면을 살짝 들어 올려 입을 보이게 했다.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 아직은 약하군.”
약하다는 소리에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제압당한 것은 맞으니 별말은 할 수 없었다.
“당신은 누구요?”
“화산파 정검대(正劍隊) 소속이다.”
“정검대?”
정검대.
화산파 도문의 유일한 무력 부대이다.
그 이름대로 화산파의 정을 더럽히는 자들을 처단하는, 일개 부대원조차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는, 세상엔 별로 드러난 적이 없는 부대.
“정검대가 어찌 나를 공격한 것입니까?”
“화산파 도문의 청도 장로에게서 명을 받고 너에게 전언을 전하러 왔다.”
“청도 장로님 말씀이십니까?”
“전해 줄 테니 들어라. ‘청우야, 지금 당장 종남파로 가도록 하여라. 종남파와는 이미 얘기가 끝났다. 그쪽으로 가면 알아서 너의 행동을 도울 것이니 지금 당장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 전언이 빨리 도착한다면 철검파의 잔당들과 조우할 수도 있겠구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거라.’라고 하셨다. 알았으면 어서 가도록 하여라.”
종남파로 가야 한다.
사부를 만나는 것을 조금 미루게 되었지만 어차피 내가 원래 하려고 했었던 일이니 상관은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를 공격하신 것입니까?”
“그저 일개 선검수를 장로가 신경 쓴다는 것이 궁금해서 그랬다. 일단 한마디 해 주자면 기본은 좋지만 아직은 미숙해.”
“무엇이 미숙하다는 얘기입니까?”
“감이 부족해. 육감이라고 하지. 그것이 아직 순간적으로 발휘가 되지 않는군. 아니, 발휘는 되어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가? 아무튼 상관없지. 그렇게 알고, 그 육감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가르침에 포권을 취하여 고마움을 전하고 종남파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종남파로 간다.’
2장 종남파와 철검파(1)
“후우∼ 후우∼”
전속력으로 달려온지라 점점 숨이 차고 있었다.
철검파의 잔당들, 빨리 가면 갈수록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라 전속력으로 달린 것이다.
‘거의 다 왔다.’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를 등지고 더욱 높이 뛰어오르고, 진기를 안구에 집중해 시력을 높이자 저 멀리에서 커다란 공터에 모여 있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파란 무복, 그리고 이 근처. 종남파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앞에 있는 무리는 철검파일 것이다.
아직 싸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내기를 바닥내면서까지 빨리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반각 정도는 더 달려야 할 거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가가는 중에 왠지 모르게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나무에 커다란 손자국과 함께 주변이 타들어 간 듯한 흔적이 있던 것이다.
타닥!
일단 멈추고 내기를 회복시키려 기를 운기하며 흔적을 확인했다.
‘아직 조금 뜨거워. 이 정도의 온기면 이 흔적이 생겨났을 때에는 심한 화상을 입을 정도의 열기였을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이런 흔적이 생겨날 수가 있는 거지?’
일단 내가 아는 것 중에는 이런 흔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던지라 머리에 새기듯 각인시키고 다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도착한 공터.
내가 딱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철검파의 짙은 핏빛의 무복을 입은 자들이 종남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빠른 속도에 풍겨 나오는 기이한 기운.
게다가 느낌상으로는 하나하나의 무공이 모두 일류 고수급이었다.
‘붉은색 무복의 철검파 무력 부대, 적검댄가?’
적검대가 아니라 혈검대라 불려도 될 정도의 짙은 핏빛의 무복. 그리고 그와 함께 잔영이 남을 정도의 빠른 속도는 혈풍이 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혈검대의 맨 앞에 있던 남자가 순식간에 검을 뽑으며 앞의 장로로 보이는 노인의 허리를 갈라 갔다.
‘……!’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순간을 나누고 나눠 막 검이 허리에 닿으려 할 때 종남파의 장로가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막 검이 허리춤에 닿기 바로 직전, 종남파 장로가 뽑은 검이 적검대 무인의 검을 베어 냄과 동시에 그 검을 들고 있던 적검대 무인의 허리까지 갈라 버렸다.
후두둑!
내장이 쏟아지는 소리가 이곳까지 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빛과 같은 속도…… 그래! 광검이다!’
광검 도오연.
합동훈련 때 봤던 환공의 스승이며, 종남파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분광참검을 창시한 장로.
빛과 같은 속도에 대부분은 그의 검을 보지도 못하고 쓰러진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빠른 쾌검을 구사하는 장로이다.
“무뢰배들 같으니라고. 대화로 잘 해결될 수 있는 일이거늘, 굳이 손을 쓰게 만드느냐!”
도오연 장로의 외침에 철검파의 무리들 중 제일 앞에 서 있는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물러나라는 얘기일 것이 훤히 보이는데 내가 들을 것 같나? 시끄러우니 그냥 죽어라.”
“저놈이!”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중년인이 무례하게 굴자 도오연 장로가 손을 부르르 떨더니 잠시 후 심호흡을 하며 숨을 가다듬었다.
“이 나이에 흥분이라니, 아직 멀었군. 그래,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그대들이 자초한 화이니 원망은 하지 말도록.”
도오연 장로가 검을 앞으로 겨누자 철검파의 문주로 보이는 자가 손짓을 했다.
“와아아!”
그러자 철검파의 무리들이 앞으로 내달리고,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적검대 무인들도 다시 달려들었다.
광검 도오연 장로가 앞에 나서며 순식간에 적 두 명을 두 동강내 버렸고, 옆에 있던 한 후기지수가 순식간에 달려들어 똑같이 빛과 같은 속도로 한 명의 검을 잘라 버렸다.
‘환공!’
옛날에 보아 희미한 기억이지만, 도오연 장로와 똑같은 검법을 쓰는 자는 저자 하나뿐이다.
그리고 앞에 정렬해 있던 후기지수들 중 맨 앞줄의 후기지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각자 종남파의 절기들을 내보이며 적검대를 몰아치는 후기지수들.
우가장의 무인들이 철검파의 흑검대와 싸웠을 때와는 무척이나 비교되는 광경이었다.
우가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구파는 구파인가 보다.
그리고 그중에서 눈에 띄는, 커다란 대검을 휘두르는 남자와 흐늘거리는 연검을 쓰는 자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