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화산천검 4권(1화)
1장 협력의 가능성(1)
‘한화객잔이라고 했지?’
당만형이 한화객잔의 별채를 빌려 놓으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곳에 황보세가의 사람들과 당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황보세가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얘기가 있지.’
혈천회의 공작.
황보세가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하고 그 배후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황보준과의 대화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화산파에는 청도 장로님이 가셨으니 얘기가 될 거야. 혈천회라는 세력, 엄청난 능력이 있는 세력이야. 화산파 하나로는 안 돼. 구파는 속세에서 완벽히 활동하지 못해. 그것은 무당파나 소림사, 아미파 등과 같은 불문과 도문이 있어서 그렇지. 옛날 혈천과의 싸움에서 이기긴 했지만, 초반에 밀렸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지. 속세에서의 구파는 오대세가라 할 수 있다. 정신적인 지주가 구파라면 그 바로 아래가 바로 오대세가지. 오대세가는 서로 간의 교류가 있을 터이니, 하나의 세가라도 끌어들이면 모두를 끌어들일 수가 있어. 그러니 황보세가와 얘기를 해 보고 된다면 혈천회와의 싸움에 끌어들여야 돼.’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던 중, 한 가지가 생각났다.
한화객잔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길을 가던 행인들에게 물어보니 쉽게 해결되었다.
그렇게 도착한 한화객잔.
문을 열고 주렴을 걷고 들어가자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됨과 동시에 어린 점소이가 쪼르르 다가와 나에게 인사했다.
“헤헤, 어서 오십시오.”
살짝 고개를 숙이자 다들 나에게 향하던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런 것이고, 행동이 조금씩 조심스러워지는 것이 나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별채로 안내해 주시오.”
“별채요? 거긴 안 되는데요?”
점소이가 비밀을 얘기하려는 듯이 나를 잡아당기더니 귀에 소곤거렸다.
“사천당가와 황보세가 아시죠? 오대세가 중에서 두 세가가 이곳에 있어요. 이곳의 별채에 말이에요. 게다가 분위기도 사나워 보이니까 잘못해서 실수라도 하면 죽을 수 있어요.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니까 손님도 무림인이신 것 같은데,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예요. 죄송하지만 다른 곳을 찾아 주세요.”
“말은 고맙지만 그쪽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 그러오. 안내해 줄 수 있겠소?”
“에이, 제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서 그러시죠? 진짜니까 죄송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세요.”
어린 점소이가 큭큭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미안하지만 정말로 인연이 있소. 가서 청우가 왔다고만 일러 주시오.”
“에이, 거짓말 치지 마시라니까요?”
“속는 셈 치고 얘기해 보시오. 내가 그냥 직접 찾아가는 수도 있으니, 그래 보는 것이 나을 것이오.”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내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았는지 점소이가 웃음을 멈추고 안으로 달려갔다.
잠시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전부 다 무림인들인가?’
보통의 행인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많은 무림인 중에서도 기척을 감출 줄 아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림인들이 모두 모여 있었으니, 당연히 무림인들이 많겠지. 게다가 당만형이 으름장을 놓았으니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만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 어떻게 진행되나 상황을 보러 온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벌써 다녀온 것인지 어린 점소이가 쪼르르 다가와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몰라 뵙고 실례를 범했네요. 얘기하니까 얼른 들이라고 그러던데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를 따라 일어나자 모두가 나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무시하고 조금 걷자 정원에 둘러싸여 있는 한 건물이 보였다.
당가의 사람이 알고 있는 객잔의 별채인 만큼 고풍스럽고 으리으리했다.
“데려왔습니다.”
점소이가 크게 소리치고 뒤로 물러나며 나에게 말했다.
“무례는 죄송했습니다. 그럼.”
손을 흔들어 주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내가 문을 여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왔군.”
당만형이 일어나 내게 눈길을 주었다.
방금 전에 헤어졌지만 다시 포권을 취하고 옆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황보악.
의기통천 황보진군이 황보세가의, 같은 십팔권사의 기습에 쓰러지는 것을 본 후기지수.
그리고 황보세가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남자.
이번엔 반대편을 쳐다보았다.
안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당철영, 당민, 당풍.
당가의 후기지수들은 황보세가와는 달리 손쉽게는 아니지만 수월하게 이겨 피해가 없었다.
단 하나, 인피면구를 쓰고 당가십걸 중 하나인 당의걸이라 모두를 속였던 남자를 빼고는.
“어째서 이곳에 계신 것입니까?”
“기분 나쁘긴 해도 같은 오대세가의 장로로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게다가 멀쩡한 황보세가의 녀석은 이놈뿐이니 우리 당가가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네놈은 왜 온 것이냐? 다른 화산파의 놈들은 다들 돌아간 것 같은데.”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직 황보세가와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닌지라…….”
“흠, 무슨 얘기지?”
“황보진군 장로님께서 일어나시면 그때 같이 들으시지요. 이렇게 바로 얘기할 수 있을 정도의 사안이 아닙니다.”
“호오, 그렇다면 그것이 너희 화산파에서 전서로 얘기해 준다던 것이더냐?”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화산파보다 먼저 제가 얘기해 드릴 것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기다리지. 며칠 기다리는 것보다는 몇 시진 기다리는 것이 더 빠르니 말이다.”
“몇 시진 말입니까?”
“그래, 몇 시진. 방심해서 저렇게 칼에 맞긴 했지만 그래도 오대세가의 장로다. 일어나서 얘기를 듣는 정도야 몇 시진이면 된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모두들 처음과 마찬가지로 다들 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거나 문을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감고 얘기할 것을 정리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방의 문이 열리고 조금 구역질 나는 냄새와 함께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치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황보악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의원으로 보이는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가의 장로님께서 응급처치를 잘해 주셔서 생명에 지장은 없었습니다. 제가 한 것이야 뭐,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수저를 올렸을 뿐이지요.”
“그렇게 겸손을 떨 필요는 없다. 아무튼 고맙다, 늙은이. 은을 만들어 둔 보람이 있군.”
“허허허, 별말씀을.”
“돈은 대륙전장(大陸錢場)을 통해 보내 주마.”
“감사합니다, 그럼.”
노인이 인사하곤 바깥으로 나갔다.
“어떤 분이시기에 겸손을 떤다 하신 것입니까?”
“내가 예전 혈기왕성할 때 뭣도 모르고 협(俠)이라는 그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아 협행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협행을 하여 도와준 인물이 저 늙은이지. 약선이나 성의에 비길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손꼽힐 정도의 실력자다.”
“그렇군요.”
“잡담은 됐고, 안에 들어가 보자. 황보세가의 애송이는 먼저 들어갔으니.”
“예.”
당가의 네 인물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구역질 나는 냄새의 원인은 한 약초였다.
아니, 약초라기보다는 독초로 보이는 풀이었다.
“저 늙은이가 다른 의원보다 나은 점은 독초를 의술에 이용하는 방법에서는 당가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독초가 대부분 그렇듯이 역겨운 냄새가 나는데, 지금의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알았으면 궁금하다는 표정이나 지워라.”
당만형의 말에 궁금해하는 것이 티가 난 듯싶어 얼굴을 매만지며 시선을 거두고 황보세가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황보준과 황보문청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다.’
황보윤, 십팔권사 중 한 남자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랬군.’
황보윤은 얘기하던 중에 은밀히 군중 속으로 사라졌었다.
그때 황보진군이 잠시 입술을 들썩이는 듯했으니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던 것일 것이다.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는 황보진군과 그 옆에서 붉어진 눈시울로 쳐다보고 있는 황보악만이 황보세가의 사람들 중에서 현재 깨어 있는 사람이었다.
“일어났으면 정신 차려라, 황보진군. 옆에서 울려고 하는 애송이가 보이지 않느냐?”
“후우∼ 알았다. 추태를 보여서 미안하군.”
“알았으면 몸이나 일으켜. 그 정도로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당만형의 재촉에 황보진군이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으∼”
상처가 쑤시는 것인지 황보진군이 왼쪽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심장은 아니었으니 죽지는 않았지. 황보관이라는 녀석도 너의 천왕삼권에 맞은 것 때문인지 제대로 노리질 못했다. 천운이 따라 준 일이지.”
“천운이 따라 줬다고? 오대세가 중 유일하게 협을 중시하는 황보세가의 자랑인 십팔권사가 그런 행동을 했는데, 천운이 따라 줬다는 망언이 나오나?”
“일단은 살았다는 것에 감사해. 살고 싶어도 돈이 없고 사정이 안 되어 죽는 놈들도 많다. 협을 중시한다더니 황보세가도 썩었군. 그딴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할 말이 없는 것인지 황보진군이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