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75화 (75/175)

# 75

화산천검 3권(25화)

10장 소란(3)

화아악∼!

공간을 잠식해 가는 당만형의 기세.

괜히 당가의 장로는 아닌 듯, 두려움이 일 듯한 기세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당만형의 기세가 사라졌다.

기세를 느낀 것이 착각이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어디 버텨 보거라.”

“……?”

당만형은 그렇게 말하곤 몸을 돌렸다.

“뭐하는 거지?”

“잘 봐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사제. 저것이 당가의 진정한 용독술(用毒術)이니까.”

“…….”

만청풍 사형이 처음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갑자기 황보관의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무슨…… 커억!”

“만일 일각이라도 버티면 내 특별히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도록 하마.”

이미 고통을 받고 있으니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만, 당만형은 정말로 ‘특별히’라는 말을 알기는 하는 것일까?

“대체 언제 독을 푼 겁니까?”

놀란 듯 만청풍 사형이 조금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보지 못했다면 네 수준이 낮을 뿐이다. 네 수준을 탓해라.”

말해 줄 생각은 없는 듯 당만형은 그저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듯 만청풍 사형의 냉랭한 얼굴에 순식간에 불쾌하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사라졌다.

‘말하는 도중이다.’

당만형이 독을 뿌린 것은 분명히 말하는 도중이었다.

황보악에게 살벌한 말을 하는 그 순간에, 모두가 잠시 움찔한 그 순간에 순식간에 공기 중에 분(粉)을 뿌린 것이다.

‘바람은 물론이고 시간의 계산까지.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계산할 수가 있는 거지?’

역시나 독에 관해서는 천하제일, 당가의 장로였다.

“크…… 욱!”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떨면서도 몸을 일으키는 황보관.

“호오∼ 대단한 꼬맹이로군. 맘에 들어. 특별히 지금 바로 죽여 주마.”

픽∼ 푸욱!

“크르륵…….”

목에 박힌 비수에 괴상한 소리를 내며 황보관이 쓰러졌다.

“자, 됐다. 저 쓰레기는 이제 가져가라.”

“……감사합니다.”

“쯧. 어쩔 수 없군. 같은 오대세가의 사람으로서 무시할 수 없으니. 비켜라, 응급처치 정도는 해 주마.”

“아…….”

“비켜라, 마음 변하기 전에.”

당만형이 황보악을 밀치며 황보진군의 앞에 앉아 상세를 살폈다.

“쯧. 장로라는 사람이 검에 찔렸다고는 하나 어째서 일어나지 못하나 했더니 독이 발라져있었나 보군. 게다가 폐까지 찔렸으니 엄청난 치명상이로군.”

“그렇다면 설마…….”

“그럴 일은 없다. 독에 관한한 천하제일이라 자부하는 당가의 장로다. 독이라고 하면 내가 해독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리고 상처에 관해서는 나의 의술을 믿어라. 독과 약은 단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독을 잘 사용하여 배합하기만 한다면 약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러니 걱정은 말아라.”

“다행이로군요.”

“알았으면 저 쓰레기나 치워라. 그리고 아무나 한 명 근처에서 의원을 불러 한화객잔(寒花客棧)의 별채에 대기시켜라. 그쪽으로 갈 터이니. 거기 너! 어서 가 봐! 돈은 나중에 얼마든지 줄 터이니.”

“아…… 알겠습니다!”

당만형이 옆에 서 있던 한 무인을 가리키며 말하자, 당황한 듯 말을 더듬더니 재빨리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그건 그렇고, 황보세가는 그 명성에 많은 흠이 남겠군요.”

“예, 하지만 일단은 모두가 정신을 차리는 것이 우선입니다.”

황보악은 사저의 물음에 대충 답하고는 숨까지 죽이며 황보진군의 치료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이런 일이 일어나 모두 놀랐을 텐데, 다들 일단 돌아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만청풍 사형이 말하자 모두들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러는 것이 너희들의 신상에 좋을 것이다. 신경이 쓰이니 잘못하면 치료에 실패할 수도 있다.”

독의 배합은 무척이나 신중한 작업이다.

쌀 한 톨 정도의 크기가 잘못 배합되기만 해도 바로 극독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신경을 쓰이게 해서 황보세가의 장로가 죽었다.

잘못은 자신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황보세가의 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어쩔 수 없이 하나둘씩 다들 자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많던 무인들이 사라지고, 썰렁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휑해졌다.

“후우∼ 끝났다. 하필이면 내 앞에서 칼을 맞아 쓰러지다니. 귀찮게 하는군.”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귀찮은 황보세가에게 은을 하나 만들어 두면 나중에 귀찮게 굴진 않겠지. 그렇게 알고 어서 떠나기나 해라. 당철영, 당민, 당풍!”

“네, 장로님.”

“각자 한 명씩 들쳐 메고 한화객잔으로 떠나라. 난 이곳에서 주변을 정리하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당의걸은 놔둬라. 내 직접 문책할 것이니.”

“알겠습니다.”

“어서 가라.”

다들 목례를 하곤 황보세가의 사람들을 하나씩 들쳐 메고 떠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구파의 앞에서 이런 실례를 보일 줄은 몰랐군. 알아서 잘 처신해 주기를 바란다.”

“당가와 황보세가의 명성에 흠이 될 만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가로 더 이상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기로 해 주지. 이 정도면 되나?”

“이미 약속했던…… 읍!”

“알겠습니다.”

설비연 사저가 만청풍 사형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역시 매화검수로군. 처신에 능해. 저놈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말이야.”

“칭찬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네놈들도 와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밌는 것을 발견해서 말이야.”

당만형이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

모두들 궁금함에 당만형을 따라가 구경했다.

“잘 봐라.”

찌이익∼

“헛!”

“……!”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당의걸의 얼굴이 벗겨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 생전 처음 보는 다른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인피면구로군요.”

“잘 알아보는구나. 그래, 인피면구다. 저 황보관이라는 녀석을 보면서 알아낸 것이지. 독에 중독되면 고통스러움에 전신에 땀이 흐르며 얼굴이 온통 일그러지거나 창백해지거나 변화가 일어나야 정상인데, 저 녀석은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럽더군. 그래서 알아본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의 당가의 용독술은 비슷하지만 무언가 어설픈 점이 한몫했지. 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니 놀랍구나. 이래 보여도 당가십걸로 이름을 알리던 녀석인데 이렇게 죽어 인피면구로 변하다니 말이다.”

당만형이 인피면구를 살피더니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 녀석은 당가 본가로 압송할 것이다. 황보세가에는 내가 알아서 잘 일러 둘 터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청우라고 했나?”

“아, 예.”

“네놈이 안에서 본 것과 조금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군. 그리고 이 철검파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아, 철검파의 성장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튼 화산파에서 올 전서를 기대하겠다.”

그렇게 말하곤 당만형이 남자를 들쳐 메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인피면구…… 우가장과 같다.’

다만 그것이 오대세가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래, 구파에까지 파고들었던 혈천회인데 오대세가라고 못 파고들까? 십걸 한 명 정도는 무리를 해서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당만형이었다.

“청우 사제, 청우 사제!”

“아, 예!”

만청풍 사형의 호통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것이 독살성의 말대로 사제가 말한 것과 관련이 있나?”

“아마도…….”

“확신하나?”

“확신합니다. 분명할 겁니다.”

“오대세가까지 파고들었나…… 구파만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나 보군. 그렇다면 정말로 혈천의 부활인가?”

“모든 것은 본산에 계신 장로님들이 판단하실 일이야. 지금으로서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나은 선택이지.”

“아, 그건 그렇고, 대체 사저는 어째서 저의 입을 막으신 것입니까?”

“당가는 은원 관계가 무척이나 뚜렷하지. 그리고 두 번 말하지도 않아. 저렇게 말하신 것은 그 성격상 뭐라 할 말이 없어서일 거다. 분명히 언젠간 화산파에 한 번쯤은 개인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청우 사제? 독에 대한 내성은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런 훈련은 화산파에서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아, 그것은 예전 합동훈련 때 우연한 기회로 독에 대한 내성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그저 기연인 것이지요.”

“그래?”

“그건 그렇고, 일은 끝났는데 사저와 사형은 어찌하실 예정입니까?”

저들을 따라 같이 행동하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화산파의 명을 받기는 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황신과의 생사결의 대결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본산으로 돌아가야지. 사제는 어찌할 생각이지?”

“저는 비매각으로 가 다음 임무를 하달받을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헤어지겠군요.”

“임무를 하달? 선검수가 이곳에서 임무까지 하달받나?”

“개인적인 임무입니다.”

“그런가? 성공하기를 빌어 주마. 그럼.”

휙 몸을 돌리고 사형과 사저가 떠났다.

“후∼”

구파만의 위험이 아니다.

황보세가는 초령의 얘기로 예상했었지만, 당가까지 포함되었으니 아마 오대세가 전체라 해도 옳을 것이다.

‘어디까지 파고든 것이지? 설마 구파에도 저런 자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후기지수가 바뀌었고, 우가장의 경우에는 총관과 장주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구파도 그럴 위험이 컸다.

‘아니겠지. 오대세가와 구파는 상황이 다르니까.’

불길한 상상이긴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황보관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그 무공을 알고 있는 거지? 설마 우가장의 장주 때와 마찬가지로 무공이 빼돌려지고 있는 건가?’

알면 알수록 점점 더 혈천회라는 집단이 거대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알아낸 것을 정리해 보자. 일단 칠사도, 초령이 사사도라고 했으니 숫자에 따라 그 무공 수위가 다른 것 같다. 다른 어떠한 기준이 있을 테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은 이것뿐이니……. 그리고 흑풍, 정보를 수집하는 자들이지. 우가장에서의 자들은 우승빈 덕분에 눈치채기가 쉬웠지만, 나 혼자일 때는 만만치 않았을 거야. 게다가 흑풍 일 조 같은 경우에는 소림사에까지 파고들었다고 하니 더욱 쉽지 않을 테고. 그리고 오대세가, 황보세가는 분명히 어떠한 공작에 당했어. 그것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당한 것은 확실하고, 그로 인해 황보관이라는 자가, 아니 황보관의 인피면구를 쓴 자가 있는 것이고. 당가는 분명히 당의걸이라는 십걸이 당가에 있다고 했었어. 그렇다면 바뀐 지 오래되었거나 아니면 당가에서 노려서 인피면구로 바꾸었다는 거야. 그렇다면 오대세가에 아예 진입했다는 소리니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이지. 하아∼ 점점 그 실체가 드러나는데, 그 규모가 나 혼자서는 어찌할 정도가 아니게 되는구나. 나는 단지 황신만을 쓰러뜨리고 나머지는 다른 자들에게 맡겨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직접 나서서 모든 것을 끝내야 하는가?’

하늘을 쳐다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일단은 걱정하지 말자. 먼저 황신부터!’

하늘 위로 주먹을 꽉 쥐며 고민을 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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