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화산천검 3권(24화)
10장 소란(2)
잠시의 소강상태.
당의걸이 보라색의 침을 뱉고는 소맷자락으로 입술을 훔쳤다.
“여유를 부리는군, 당의걸. 세가에서 처음으로 무공을 배울 때 듣는 얘기가 있을 텐데?”
“방심하면 죽는다. 상대가 쓰러졌더라도 손속에 정을 두지 마라. 적으로 판명되었을 시, 단 한 시라도 손을 멈추지 마라.”
“그렇다면 지금 죽어도 할 말은 없겠군.”
“무슨…… 커억!”
“당가의 싸움에 조금이라도 쉴 틈이 있다고 생각한 네 그 안일함이 패배의 원인이다.”
“눈치채지…… 못했는데.”
“같은 당가십걸이라 해도 너와 나는 수준이 다르지.”
철벅!
당의걸이 자신이 만든 피 웅덩이에 몸을 눕혔다.
“퉤! 치…… 당의걸도 많이 늘었군.”
당민도 성치만은 않은지 푸르스름한 침을 뱉었다.
“위험한 것 아닙니까?”
“상관없소. 당가십걸이오. 독에 대한 내성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소. 그리고 만일 이겨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가십걸로서 수치일 뿐이오.”
“그래도 저렇게 쓰러졌는데…….”
“당가의 일은 당가의 사람들이 알아서 하오. 신경 쓰지 마시오, 매화검수.”
“…….”
당철영의 냉랭한 말에 설비연 사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것보다 현재 위험한 자들은 다른 자들이오. 그리고 당신들도.”
“우리들도?”
“당가의 독은 만만하지 않소. 겨우 십오 장 정도를 물러난 것으로 아무도 중독되지 않을 거라 보시오?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당철영이 손가락으로 다섯을 만들고 하나하나 접었다.
마지막 손가락까지 접혔을 때, 군중들 사이로 하나하나 커다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으으윽!”
“웁!”
“보시오, 중독되지 않았소? 당가십걸보다는 저들을 챙겨야 옳은 일이지.”
그렇게 말하곤 당철영과 당풍이 비명이 들리는 곳으로 뛰쳐나갔다.
“네놈들도 봐주지. 이건 우리 가문의 일 때문에 피해를 입은 것이니.”
당만형이 만청풍 사형의 맥을 짚었다.
“괜찮습니다.”
“쯧. 호의로 말하면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라 할지라도.”
간단히 무시하곤 당만형이 계속해서 만청풍 사형의 몸을 살폈다.
“것 봐라, 뭐가 괜찮다는 것이냐? 자신의 몸 상태도 모르면서 그딴 식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화산파의 상태도 알 만하군.”
“더 이상의 모욕은 나도 참을 수 없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꼬맹이. 무슨 조언을 해 줘도 이 모양이니…….”
만청풍 사형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지만 더 뭐라 말은 하지 않았다.
“가벼운 중독이다. 먹어라, 해독단(解毒丹)이다.”
“정말입니까?”
“내가 거짓말을 할 이유라도 있나? 잔말 말고 먹어.”
만청풍 사형이 의심스런 얼굴로 해독단을 삼켰다.
“많이 쓸 텐데 잘 참는군.”
당만형이 이번엔 설비연 사저의 맥을 짚었다.
만청풍 사형이 중독되었다는 것에 자신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설비연 사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놈도 가벼운 중독이다. 쯧. 매화검수라는 놈이 독에 대한 내성도 없나?”
“그것은 매화검수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봐도 되는 것입니까?”
“이놈이나 저놈이나 하나같이 버릇없는 놈들이로군. 화산파만 아니었다면 손 좀 봐주었을 텐데.”
당만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설비연 사저에게도 해독단을 넘겨주었다.
설비연 사저는 해독단을 삼키자마자 무척이나 쓰다는 표정을 내보였다.
“이번엔 네놈이다.”
당만형이 나의 맥을 짚었다.
“호오∼ 네놈은 괜찮군. 독에 대한 내성이 많이 뛰어난 편이야. 신기한 일이로군. 선검수 주제에 매화검수보다 독에 대한 내성이 뛰어나다니. 게다가 허접한 문파의 독도 아닌 우리 당가의 독을 버텨 내다니 말이야.”
독에 대한 내성.
마인과의 싸움에서 마진천이 준 선단의 영향이다.
당가의 독도 버틸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한 영약이었던 것 같다.
만청풍 사형과 설비연 사저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같은 문파의 사람이 아는 것도 없군. 거참, 가지가지야.”
당만형이 툭 내뱉곤 당의걸과 당민이 싸운 곳으로 걸어갔다.
당민이 의외로 아직도 해독을 시키지 못했기에 그런 것 같았다.
‘황보세가는 아직인가?’
당가가 일찍 끝난 것에 비해 황보세가는 아직도 백중지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째서 오행권(五行拳)만을 펼치는 거야!”
“그렇다면 문청, 너는 어째서 나와 똑같이 오행권을 펼치는 것이냐.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벽력신권(霹靂神拳)을 펼치면 될 것 아니냐?”
“호협한 황보세가의 같은 십팔권사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것은 너도 잘 알고 있는 일이잖아!”
“그렇지, 그것이 황보세가지. 호협한 태산의 기운을 이어받은 무학세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너는 패배하게 될 것이다.”
“뭐?”
황보관의 주먹과 황보문청의 주먹이 맞부딪치기 직전, 황보관의 주먹이 순식간에 변화하였다.
오행권의 투로에서 금나수의 수법으로.
“태산중수(泰山重手)?”
수법의 이름은 태산중수인가 보다.
황보관의 손이 황보문청의 손을 붙잡았다.
“크윽!”
고통스러워하는 황보문청.
황보관이 황보문청이 내뻗은 다른 주먹을 비껴 내고 보법을 밟으며 장을 내뻗었다.
“태산중수에 이어 천왕보(天王步), 그리고 벽력신장(霹靂神掌)이라…… 위험하겠군.”
황보진군이 나섰다.
쓰러지는 황보문청과 그 앞에 꼿꼿이 선 황보관.
그 사이로 황보진군의 주먹이 나타났다.
뻐어억!
“크윽!”
강력한 일 권.
특별한 초식을 펼친 것도 아닌, 그저 주먹을 내뻗었을 뿐인데도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커다란 덩치의 황보관이 오 장 정도를 밀려난 것이다.
“장로님…….”
“일단 쉬거라, 상처가 중해 보이니.”
“알겠습니다.”
마다하지 않고 황보문청이 물러나 운기조식을 했다.
“먼저 물어보마. 어떻게 살아난 것이냐?”
“장로님은 알 것 없습니다.”
“거참, 죽다 살아나니 예의도 없어진 것이더냐?”
“그런 것 같습니다. 말은 필요 없겠지요.”
얼굴을 문지르던 손을 내리며 황보관이 주먹을 쥐었다.
“그래, 사정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늦지 않는다. 오랜만에 실력을 보자꾸나, 관아야.”
“먼저 가겠습니다.”
황보관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팡! 파앙! 팡!
무서운 경력이 실린 주먹을 황보진군은 그저 몇 보 움직인 것만으로 모두 피해 냈다.
‘무진 사부 같네.’
보법에 대한 훈련을 할 때의 무진 사부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벼운 움직임만으로 황보진군이 황보관의 모든 공격을 피해 내고 장을 뻗었다.
빠악!
황보관의 얼굴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하지만 두 다리만은 그 자리에 뿌리라도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황보진군이 이번엔 주먹을 말아 쥔 후 크게 휘둘렀다.
콰아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황보관이 날아가듯 뒤로 밀려났다.
쿠당탕!
몇 바퀴나 구르고 멈춰 선 황보관.
척 봐도 기절이었다.
“오랜만에 써 봤더니 힘 조절이 잘 안 되는군.”
커다란 위력의 일 권.
“그 초식은 무엇입니까?”
궁금했는지 설비연 사저가 물었다.
“천왕삼권(天王三拳)이라는 것이다. 보았듯이 위력은 좋지만 남에게 쓰기에는 부담스러운 무공이지. 쯧. 아직 훈련이 덜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기반성을 한 황보진군이 황보관에게 다가가 황보관을 어깨에 들쳐 메었다.
“관아야, 남아의 기상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구나. 이런 꼴이라니.”
마침내 모든 싸움이 끝나고 장내가 정리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소란스러움은 남아 있었다.
어째서 황보세가와 당가의 사람이 싸움을 걸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각 세가의 인물들끼리 싸움을 벌였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아직은 우리도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일이니 추측성의 말들은 하지 말아라. 내가 화가 나서 모두 죽여 버릴 수도 있으니.”
꿀꺽!
독살성의 말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누군가의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거참, 당가라고는 하지만 군중들에게 너무하는군. 저들이 반발할 것은 생각지 않는가?”
“시끄럽다, 황보진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네놈들이 생각하는 그런 방법으로는 정리가 되지 않아.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거참,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군중심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천에서 우리가 군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살벌하겠군.”
“시끄럽다.”
티격태격하더니 두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꼬맹이들의 반항으로 잠시 늦었군. 자, 이제 다시 얘기를 시작해 보자, 화산파.”
“알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얘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당만형은 막무가내였다.
“안에서 본 것은 얘기하지 않을 건가?”
“몇 번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더 이상은 설득하기도 귀찮군. 알았다, 기다려 주지.”
다행히 당가도 입장을 정리했다. 기다려 주기로.
“감사합니다.”
한시름을 돌렸다.
당가와 황보세가가 물러났으니 더 이상은 우리에게 뭐라고 할 문파는 없다.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다 같이 포권을 취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황보진군의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심하시면 곤란합니다, 장로님.”
푸욱!
“무……슨…….”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황보관이 쓰러지는 황보진군의 옆에 섰다.
“큭, 역시 장로님의 천왕삼권은 대단하군.”
황보관이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핏덩어리를 뱉어 냈다.
“네…… 네놈!”
황보준이 커다란 고함을 터뜨리며 황보관에게 달려들었다.
퍼억! 빡!
하지만 주먹을 허용한 것은 황보준이었다.
‘분명히 십팔권사의 수장은 황보준인데?’
황보관은 그저 같은 십팔권사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십팔권사의 수장인 황보준의 공격을 피해 내고 반격을 하고 있었다.
퍽!
얼굴에 일격을 더 허용하고 뒤로 쓰러질듯 날아가는 황보준.
“큭!”
황보문청이 그런 황보준을 받아냈다.
“꼬맹이, 버릇이 없군.”
당만형이 나섰다.
같은 오대세가로서 봐줄 수가 없는지 티격태격하던 것과는 달리 황보세가의 일에 직접 나선 것이다.
까앙! 땡강!
그런데 당만형이 던진 암기를 황보관이 손쉽게 방어했다.
황보관이 당만형의 암기를 수도로 치자 암기가 부러졌다.
“호오∼ 부러뜨리기까지 하나?”
“이건 황보세가의 문제지 당가의 문제가 아니다.”
“세가의 장로를 검으로 찌르더니, 이젠 다른 세가의 장로에게 평대까지 하는군.”
“장로님, 저 녀석은 제가 쓰러뜨리겠습니다.”
황보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황보준의 앞에 섰다.
“쯧. 네놈이야말로 비켜라. 난 이런 무례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성격이 좋진 못하다. 뭣하면 네놈도 죽여 주랴?”
“크윽…….”
당만형의 살기 어린 말에 무시할 수 없는지 황보악이 더욱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네 녀석은 황보진군과 다른 아이들을 챙겨라. 그렇게 분하다면 특별히 시체는 남겨 주마.”
섬뜩한 말에 황보관이 움찔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오냐, 내 특별히 그래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