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73화 (73/175)

# 73

화산천검 3권(23화)

9장 대화(3)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설비연 사저도 밀리지 않았다.

“허, 거참. 알았다, 내 사과하지. 말이 지나쳤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슬리지만 참아 주지. 거기 청우라고 했던가? 안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만청풍 사형이 얘기한 대로 조금만 기다리시면 곧 이곳에 모인 세가들과 문파들은 물론, 다른 세가와 문파에도 전서가 갈 것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기다리기 싫다면?”

“그러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저희의 일입니다.”

“섬서성의 모든 세가의 인물들과 문파의 일이기도 하지. 화산파 혼자만의 일이 아니야.”

“철검파에 대한 얘기입니까?”

“그렇지.”

“죄송하지만 아닙니다. 철검파와는 관계가 없는 곳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듣고 판단할 얘기다.”

“맞소.”

“그렇소, 얘기해 주시오.”

“어째서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오?”

당만형의 말에 목소리를 높이는 뒤의 무인들.

“쓰레기들 같으니라고. 세력이 큰 사람이 앞에 나서서 떠드니 그에 맞춰 자신들도 그 세력이 된 것마냥 목소리를 높이는 것 봐라. 짜증 나서 견딜 수가 없군. 더 이상은 못 참을 것 같다.”

조용히 설비연 사저와 나에게만 중얼거리는 만청풍 사형.

청도 장로님이 바로 앞에서 독설을 퍼부었듯이 만청풍 사형도 그와 비슷한 성격이다.

지금까지 참아 왔던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을 정도의 지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듯 만청풍 사형이 검병에 손을 옮겨 갔다.

“참아, 사제. 그건 우리 화산파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저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야.”

설비연 사저는 말렸다.

검병으로 옮겨 가는 만청풍 사형의 손을 살짝 쥐어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은 뒤에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강경한 태도로 나오시면 저희도 더 이상은 뭐라 얘기를 드리지 못하겠군요. 만일 대답을 듣고 싶은 사람이 있으시다면 화산파로 오십시오. 저희는 말리지 않습니다. 각오만 하고 오시면 됩니다.”

설비연 사저가 기운을 뿜어냈다.

당가십걸과 십팔권사는 물론, 뒤의 무인들의 대부분이 몸을 움찔했다.

그만큼 설비연 사저의 기운은 대단했다. 다른 매화검수들보다 조금 뒤처질지는 몰라도.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는구나. 감히 내 앞에서 시비를 걸다니.”

당만형이 비웃으며 점점 기운을 끌어 올렸다.

설비연 사저의 기운과 맞부딪치는 당만형의 기운.

“큭.”

설비연 사저가 신음을 흘리더니 일보 뒤로 물러섰다.

당만형의 기운이 설비연 사저의 기운을 밀어내고 점점 공간을 잠식해 나간다.

그때, 당만형의 기분 나쁜 기운에 맞서는 또 다른 기운이 나타났다.

“흠?”

당만형의 기운과 맞부딪치며 폭풍을 일으키는 자.

황보세가의 장로, 의기통천 황보진군.

황보진군의 움직임에 당가십걸이 당만형의 뒤에 열을 맞춰 서고, 십팔권사가 그에 대립하였다.

그렇게 대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만형이 입을 열었다.

“이거 좋지 않군. 마음 같아서는 저 무례한 녀석들을 훈계하고 싶지만 이렇게 앞뒤로 맞으면 곤란하지.”

당만형이 얼굴을 굳히더니 기운을 조금씩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황보진군 또한 기운을 조금씩 거두어들였다.

“독살성, 머리는 있을 줄 알았는데 듣던 것보다 더욱 머리가 나쁘군.”

“시끄럽다, 황보진군. 저 아이들의 무례에 참을 수 없을 뿐이다.”

“저희 화산파는 어떤 무례도 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독살성께서 착각하셨을 뿐.”

만청풍 사형의 무심한 말에 독살성이 품속에 손을 넣고 꼼지락댔다.

“그 이상 움직이면 참지 않을 것이네.”

십팔권사와 황보진군이 다시 기세를 끌어 올리자 당만형이 다시 손을 뺐다.

“칫. 수가 적은 것이 한스럽군. 더 데리고 올 걸 그랬나?”

“그랬으면 정말로 싸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시끄럽다, 당철영.”

“조금만 자제해 주십시오. 가주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귀찮은 소리를 하는구나. 아무튼, 알았다. 자제하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십걸 주제에 지나치지만 참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조금 늦은 것 같기는 하지만 독살성을 말리려는 듯 말하는 당철영.

당가십걸의 수장인 듯, 당가십걸이 은연중에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사람이 있어 다행이오. 당가십걸의 수장, 독수관산(毒手貫山) 당철영.”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무림공적이 되고도 남았을 장로님이오, 진산철권 황보준.”

“알고 있어서 기쁘오.”

“그 이상은 참지 않는다, 꼬맹이들.”

“알겠습니다, 장로님.”

“알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싸우는 것은 무산되었으니 입으로 하는 대화라는 것을 해 보도록 하지. 화산파.”

“알겠습니다.”

“그 옆의 검, 그곳에서 발견한 것이렷다?”

“그렇습니다.”

“무언가 있을 수도 있으니 잠시 보도록 하지.”

“죄송합니다만, 그렇겐 못하겠습니다.”

“빼앗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펴만 보고 돌려줄 것이니 걱정 말아라. 뭣하면 당가의 명예를 걸도록 하지.”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자하검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유심히 바라보며 여러 곳을 만지더니 당만형이 입술을 비틀었다.

“흠, 아무것도 없군. 하지만 무척이나 제대로 된 보검이로군. 되기만 한다면 갖고 싶을 정도야.”

“안 됩니다.”

“알고 있다, 꼬맹이. 당가의 명예를 저버릴 생각은 없으니.”

당만형이 다시 나에게 자하검을 돌려주었다.

빼앗듯 받아 들고 다시 허리춤에 찼다.

“거참, 예의라고는 모르는 녀석들이로군. 매화검수부터 선검수까지 모두 가관이야.”

“무림의 선배께서 먼저 저희 말학들에게 예의란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시지요.”

“그거 재밌군. 조금의 폭력은 가미되어도 상관없겠지?”

또다시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저 몇 마디 한 것밖에는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상황이 나빠지냐?’

독살성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자제하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화산파도 조금은 자제를 부탁드립니다.”

당철영이 분위기를 풀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당만형이 또다시 혀를 찼고, 설비연 사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장내가 조금 진정되어 갈 무렵, 바깥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냐!”

당만형의 신경질적인 말에 옆에 있는 한 무인이 당혹스런 얼굴로 답했다.

“그것이…….”

“어서 얘기 못할까!”

“당가의 사람과 황보세가의 사람이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뭐라고!”

“뭐라!”

“무슨!”

“어떻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어 크게 소리친 두 세가의 사람들.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이냐? 이곳에 온 당가의 사람은 우리가 전부다.”

“우리 황보세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전부다.”

“저희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압하려고 하는데 다들 수준이 뛰어나…….”

“할 수 없지. 우리가 가 보도록 하지.”

“우리도 가야겠구나. 화산파도 오는 것이 낫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갑작스런 혼란.

그 진상을 보러 두 세가와 화산파가 같이 움직였다.

10장 소란(1)

척! 척!

모여 있는 군중들의 사이로 당가와 황보세가, 그리고 우리 화산파의 사람들이 걸어가자 사람들이 길을 열기 시작했다.

소란의 중심지로 가기까지 아무도 우리의 앞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소란지.

“크악!”

“막아! 빨리!”

“젠장! 대체 당가랑 황보세가는 뭐하는 거야!”

캉! 따앙! 탱그랑!

커다란 고함 소리와 병장기 소리.

시끄러운 그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보았다.

“아니!”

“대체 무슨!”

놀랐는지 손을 들어 올리고 부들부들 떠는 두 장로. 그리고 눈을 부릅뜨는 당가십걸과 십팔권사.

어째서일까 소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았다.

‘옷이 같다.’

녹색과 검은색이 섞인 옷을 입은 채 독을 뿌리고 암기들을 던지는 한 남자. 그리고 커다란 주먹을 휘둘러 검을 부러뜨리고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남자.

사천당가와 황보세가의 복장이었다.

“당의걸(唐毅杰)! 네가 어찌 그곳에 있는 것이냐!”

“관아야! 어째서 네가 그곳에 있는 것이냐!”

말은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의미가 다른 것 같았다.

표정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당가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도 저 녀석이!”

당만형이 분을 못 참고 뛰쳐나가려 하자, 옆에서 당민이 당만형의 소맷자락을 붙잡으며 말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후우∼ 그래라. 지금 내가 나가면 실수해서 정말로 살수를 쓸 것 같구나.”

당만형이 분을 삭이려는지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었다.

“가겠습니다.”

피잉∼ 따다당!

당민의 암기에 당의걸이라 불린 소란을 일으킨 남자가 찔러 들어가던 비수를 멈추고 몸을 돌리며 암기를 막아 갔다.

“당의걸! 당가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같은 당가십걸인데 내가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네놈은 끝까지…….”

“시끄럽다. 덤비려면 덤벼라. 상대해 주지.”

“오냐, 그거 좋구나.”

“반경 십오 장 정도는 물러나라. 독에 중독되어 죽고 싶지 않으면.”

당만형의 말에 근처에 있던 무인들이 모두 물러났다.

사천당가의 독에 관한 소문은 사천은 물론이고 전국에 자자하니까.

“관! 어째서…… 분명히 맥이 끊긴 것을 확인했는데…….”

“내가 죽는 것을 바랐다는 거야, 문청?”

“그런 뜻이 아니잖아! 분명히 습격자들과 싸우다 숨이 끊어졌었잖아!”

“세상엔 불가사의한 일이 참 많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어째서 이렇게 소란을 일으키는 거야!”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덤비려면 덤벼라. 상대해 주지.”

“크윽…….”

“싸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저 당가 녀석들을 보아라.”

당가의 사람들은 마치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적수를 만난 듯이 살기를 내뿜으며 위험한 독이나 암기들을 서로에게 뿌리거나 던지고 있었다.

“저렇게 심하게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적당히 제압을 할 필요가 있다. 같은 십팔권사끼리 오랜만에 서열을 정리할 때가 온 것 같구나. 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결국 황보세가도 싸울 수밖에 없는지.

황보문청이 입술을 깨물며 앞으로 나섰다.

“결심을 했으면 덤벼라, 문청.”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빠져나간 정신을 다시 그 머리에 박아 주마, 관.”

팡! 쿵! 쿠웅!

빛살과도 같이 움직이는 황보문청. 그리고 그에 맞춰 둔중하게 움직이는 황보관의 주먹.

주먹과 주먹이 맞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을 만들어 냈다.

둔중하면서도 막강하고, 유연하면서도 패도적인 힘.

황보세가의 권법.

그리고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중독되어 죽는 살벌함을 주(主)로 하는 독술. 기묘막측한 궤도로 꼬아지고 비틀어지는 무시무시한 암기술.

사천당가의 자랑인 용독술과 암기술이다.

“끼어들진 않습니까?”

“나도 궁금한 것이 많다. 하지만 애들의 일은 애들이 해결하는 법이야. 늙은 노물들은 그저 주변을 정리하고 지켜볼 뿐. 정말로 위험할 때나 나서야지. 먼저 끼어드는 것은 그저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것밖에는 안 되니라.”

그렇게 말하곤 황보진군이 군중들의 시선을 모았다.

“모두 일단 조금씩 더 물러나 주시오. 피해를 입은 세가와 문파는 당가와 황보세가에 얘기하시오. 알아서 잘 조치를 취해 줄 터이니.”

그리고 잠시 후.

“아, 거의 끝나가는군요.”

설비연 사저의 말.

당가의 사람들은 그 살벌함 때문인지 빠르게 승부가 끝이 나려 하고 있었다.

당의걸이라는 소란을 일으킨 무인이 독에 중독이 되었는지 푸르죽죽한 얼굴로 다급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 대비되게 당민은 여유 있는 얼굴로 상대하고 있었다.

“끝인가, 당의걸? 상대가 되질 않는군.”

“칫. 시끄럽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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