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화산천검 3권(22화)
9장 대화(2)
‘아, 그러고 보니…….’
청도 장로님은 정도에 어긋나는 무언가를 싫어하셨다.
그리고 그 정도라는 것에는 자신만의 어떤 주관적인 평가도 있기에 이런 사람들을 보며 독설을 퍼부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 나이를 드시고도 이렇게 바로 앞에서 독설을 퍼부으시다니…….’
만청풍 사형도 그런 성정을 물려받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있었다.
결국 옆에 서 있던 금정일이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섰다.
“하하. 거참, 곤란하게 되었군요. 일단 저희 화산파는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청우에 관한 일은 나중에 모두에게 설명드리지요. 한 시진 정도 뒤에 철검파의 대문이었던 곳에 다시 나오겠습니다. 그럼…….”
금정일이 순식간에 차가운 분위기의 장내를 정리하고 앞장서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 여자와 청도 장로님, 만청풍 사형과 같이 금정일을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장내에서 벗어나, 한 전각의 안으로 들어가 별채를 빌렸다.
금가장의 장자, 금정일이 조그마한 금덩어리를 넘겨 빌려 버린 것이다.
청도 장로님이 혀를 차셨지만, 일단 얘기하기에는 이런 공간이 더없이 좋기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별채의 안에서 탁자에 둘러앉자, 청도 장로님이 입을 여셨다.
“물어볼 것이 많구나. 일단은 어째서 그곳에 있던 것이냐?”
“비매각을 통해 명령을 하달받고 그곳에 갔던 것일 뿐입니다. 철검파와 무슨 관계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러면 안에는 어떤 것이 있더냐?”
“일단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 말은 모두 진짜입니다. 믿어 주시고 받아들여 주십시오.”
“알았다. 어서 말해 보거라.”
안에서 봤던 구파의 정보 수집 공간, 그리고 초령이라는 사도와 자하검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가 알고 있는 혈천회에 대해서도.
“……청우, 정말이냐?”
“예, 사실입니다.”
만청풍 사형의 믿기 어렵다는 얼굴. 그리고 금정일과 이제야 기억난 설비연 사저도 그런 얼굴이었다.
청도 장로님은 의외로 담담한 얼굴이셨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실로 심각한 문제구나. 일단 이 일은 내가 직접 본파에 전하겠다. 금정일은 나와 같이 돌아간다. 그리고 청풍과 비연, 청우는 일단은 이곳에 남아 무인들에게 구파의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을 빼고 다른 설명과 더불어 잘 돌려 보내도록 조치를 취하거라. 알았느냐?”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별채를 빌린 보람이 없는데요? 이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거면 말이죠.”
금정일이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시끄럽다, 금정일.”
“예, 예. 냉혈철심께서 그러시다면 당연히 다물어야지요.”
금정일이 싱긋 웃으며 말을 내뱉자 냉혈철심 만청풍 사형이 인상을 찌푸렸다.
“네 그 성격은 잘 알고 있다만 무례한 말이구나, 금정일.”
이번엔 설비연 사저가 따지고 들었다.
“이러다 미움받겠군요. 알겠습니다, 다물지요. 옥화녀(玉花女)께서 그러시다는데.”
설비연 사저의 별호는 옥화녀였나 보다.
아니, 이게 아니지.
금정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불꽃이 튀는 듯한 긴장감은 청도 장로님에 의해 정리되었다.
“셋 다 시끄럽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어서 빨리 오거라.”
“알겠습니다.”
금정일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청도 장로님을 따라 바깥으로 나갔다.
“건방지군.”
“사제도 조금 성급했어. 저런 일은 그런 말투로 얘기하면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뿐이야.”
“알고 있지만 이 성격상 어쩔 수 없습니다, 사저.”
만청풍 사형의 말에 설비연 사저가 싱긋 웃었다.
왠지 모르게 주변이 화사해지는 것 같았다.
“아! 그건 그렇고, 그 검은 어떻게 할 거지, 청우 사제?”
“일단은 청도 장로님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이상 제가 지니고 다닐 생각입니다. 왠지 검도 그러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 같고요.”
검집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부님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면 암묵적인 동의겠지. 일단은 네가 지니고 다녀라.”
“예.”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조금 더 걸어 철검파였던 곳에 도착하였다.
무인들은 아직도 남아 그곳에서 서로 말싸움을 하거나 조사를 하고 있었다.
“아, 왔다! 화산파다!”
한 무인의 말에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척!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만청풍 사형이 입을 열었다.
“화산파의 평검수, 만청풍이라고 하오.”
“아, 냉혈철심이로군.”
“그 피도 눈물도 없다는 그 냉혈철심?”
“그렇소.”
웅성대는 사람들.
서서히 잦아들 무렵 만청풍 사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서로 얘기는 끝났을 것으로 보고 입을 여는 것이오. 화산파에 묻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시오.”
화산파에 대한 언급.
잘못하면 문파끼리의 은원 관계가 얽힐 수 있는 일이라 사람들이 주저하며 앞으로 나서기를 꺼려했다.
그 사이로 황보세가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당당히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하는 황보준과 그 옆의 세 남자와 한 초로의 노인.
“황보세가의 십팔권사인 황보윤(皇甫鈗)이라고 하오.”
“황보세가의 십팔권사인 황보문청(皇甫雯靑)이라고 하오.”
“황보세가의 십팔권사인 황보악(皇甫鍔)이라고 하오.”
“노부는 황보세가의 황보진군(皇甫振群)이라고 하네.”
모두가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황보세가의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나다는 십팔권사의 으뜸인 황보준과 또 다른 세 십팔권사인 황보윤, 황보문청, 황보악. 그리고 우리로서는 가장 만만치 않은 황보세가의 장로, 황보진군.
“화산파의 평검수, 만청풍이라고 합니다. 의기통천(義氣洞天)의 명성은 자주 들어 보았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산파의 설비연이라고 합니다.”
“설비연? 설마 옥화녀?”
“아, 설마 매화검수 옥화녀 설비연이라는 얘기야?”
“이곳에 매화검수를 남겨 둘 만큼 그렇게 전력이 남아돈다는 소린가?”
“뭐, 요즘 성세라고들 하니 그럴 수도 있지.”
설비연 사저의 얘기가 나오자 더욱더 웅성대는 사람들.
‘매화검수? 사저가 매화검수였구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유혁 사형이나 장일 사형보다 나이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다.
내가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선검수였던 사저이니.
각설하고, 사저가 매화검수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만나 본 매화검수들에 비해선 수준이 좀 떨어지네.’
옛날 합동훈련 이후로 다시 화산파로 돌아왔을 때 만나 봤던 매화검수들에 비해 조금 수준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매화검수라는 것을 예상치 못했었다.
‘아니, 이게 아니지.’
나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그것도 내가 논란의 중심인 바에야.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라고 합니다.”
“화산파는 이 군중들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합니까?”
갑작스런 황보준의 말.
설비연 사저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매화검수의 이름과 이 검을 걸고 맹세합니다.”
허리춤에서 검을 풀어내는 사저.
검집에 붙어 있는 동그란 패와 그 안에 그려진 매화.
매화검수의 증거이자 자존심, 매화검(梅花劍)이었다.
“알겠습니다.”
다짐을 받은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황보준이 싱긋 웃곤 뒤로 일보 물러났다.
“그 안에 대체 무엇이 있었는가?”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맹세하지 않았는가?”
“감추지 않겠다고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잘못 말했군. 그렇다면 화산파는 진실을 감추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나?”
“그건 맹세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대상을 바꾸지. 자네, 안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이번엔 나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자세히 보니 청도 장로가 보이지 않는구나. 어디로 가셨느냐?”
“본파로 돌아가셨습니다.”
“책임을 아래의 아이들에게만 맡기고 무책임하게 떠난 것이로구나.”
황보진군의 말에 만청풍 사형이 울컥했는지 손을 검병의 위에 얹어놓았다가 떨어뜨렸다.
그것을 보았는지 황보진군이 눈썹을 꿈틀했지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얘기드릴 수 없습니다. 너무 중대한 일인지라…… 곧 청도 장로님이 각 문파에 전서를 보내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것을 화산파가 보낸다는 얘긴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일인가 보군…… 알았다, 화산파의 명성을 생각해서 이 일은 일보 물러나 주지.”
“감사합니다.”
오대세가 중 황보세가가 물러났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세가도 더 이상 이 일을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얘기로 직결된다. 황보세가와 같은 오대세가나 그에 준하는 다른 문파가 아닌 이상에야.
‘설마 있지는 않겠지.’
하지만 불길한 생각은 현실화되었다.
웅성대는 사람들 사이로 한 무리의 녹색과 검은색이 섞인 옷을 입은 무인들이 앞으로 나섰다.
“흠? 어째서 저들이…….”
당혹스러워하는 황보진군.
저 정도의 사람이 어째서 당혹스러워할까 궁금해졌다.
다가온 무인들은 모두 어째선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분명 정도의 인물인 것 같은데 사도의 느낌이 나는 듯했다.
“황보세가는 인정했지만 우리들은 인정 못한다.”
‘야단났네.’
황보세가가 뭐라 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그에 준하는 위치의 세가였다.
“사천당가…….”
설비연 사저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천……당가?’
생각해 보니, 흑풍과 초령과의 대화에서 사천당가도 온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이제야 나타났거나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둘 다 상관없다.
지금은 그저 곤란할 뿐이었다.
“웬만하면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당가가 이곳엔 무슨 일입니까?”
인상을 찌푸릴 만도 하건만 만청풍 사형은 끝까지 무표정이었다.
“알아보아서 기쁘오, 화산파. 사천의 당가십걸(唐家十傑)인 당철영(唐哲英)이라고 하오.”
“마찬가지로 당가십걸인 당민(唐珉)이오.”
“마찬가지로 당가십걸인 당풍(唐馮)이오.”
“당가의 장로인 당만형(唐萬邢)이다.”
“당가십걸과 독살성(毒殺星)이 이곳엔 대체 어인 일이오?”
독살성 당만형.
은원 관계가 가장 확실하다는 지독한 당가의 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손속이 지독하다고 하여 독살성으로 불리는 당가의 장로이다.
‘꼬여도 제대로 꼬였군.’
의기통천 황보진군은 그래도 말이 통하는 상대이다.
하지만 폐쇄적인 당가와 그중에서도 가장 독한 독살성이 있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을 확률이 컸다.
게다가 우리는 장로가 없기에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조금은 있었다.
“이곳에서 재밌는 냄새를 맡아서 말이다.”
“그게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에서 무례를 범하지는 않겠지?”
“그 정도 생각은 있다, 황보진군.”
“그거 다행이로군. 그 성급한 성격 때문에 싸움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신경전이 거셌다.
같은 오대세가인데 서로 사이는 별로 좋지 않은 듯 둘 사이에서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황보세가와의 대화는 나중으로 미루지. 일단 자네들부터네, 화산파.”
당만형이 우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불어라, 화산파.”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설비연 사저가 나섰다.
“매화검수 주제에 감히 나를 훈계하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