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화산천검 3권(21화)
8장 구파의 정보, 의문의 여자(3)
탁!
어깨를 밀치며 초령이 크게 외쳤다.
“흑풍 칠 조!”
스스슥!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복면인들이 솟아나듯 나타났다.
“바깥의 상황은?”
“현재 관가와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상태입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무림인들이 모여드는 속도가 빠릅니다. 게다가…….”
“게다가?”
“사천당가와 황보세가(皇甫世家)가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사천은 가까우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만, 산동의 제남에 있는 황보세가가 어째서 이곳까지 움직이는 거지?”
“공작에 실패했습니다.”
“공작에 실패했다라…… 흑풍 몇 조였지?”
“흑풍 십 조입니다. 현재 괴멸 상태입니다. 하지만 간신히 다른 공작은 성공시켰습니다.”
“그래? 고생 좀 하겠군.”
초령이 나에게 눈길을 보냈다.
“어디까지 다가왔지?”
“한 시진이면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떠나야겠군. 먼저 피해라.”
“존명!”
스스슥!
흑풍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초령이 나에게 다가왔다.
“생각 같아선 귀여워해 주고 싶지만 시간이 없을 것 같네.”
나의 옆을 지나가는 초령.
“선물도 있으니 잘 행동하고,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야.”
뒤돌아보자 어느새 사라졌는지 초령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대체 뭐지?”
회의 사도라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흑풍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넘기고, 의미심장한 말만을 남겼다.
게다가 마지막의 선물이라는 말.
회의 인물이기에 믿을 수는 없지만, 일단 보통의 회의 인물들과는 달라 보이기에 조금 정도는 믿어 보기로 했다.
“의심 가는 곳은 당연히 저 태사의지.”
계단을 올라 태사의에 다가갔다.
마치 황제가 앉는 자리와도 같이 용, 봉황 등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황룡에 손을 대자 그그긍∼ 하는 기관의 소리와 함께 태사의가 옆으로 밀려나며 아래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검?”
솟아오른 제단의 위에 놓여 있는 한 자루 검.
칼집은 없었다.
칼집에 꽂혀 있지 않은 검신만이 그저 어두운 공간 속에서 환하게 자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적당한 예기(銳氣)와 왠지 모르게 무언가 있을 법한 느낌.
무언가에 끌리듯 들어 올리자 갑자기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엇!”
쿵!
저 멀리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건가?”
검을 들어 올리면 무너지게 설계되어 있던 것인가 보다.
“지체하면 안 돼.”
잘못하면 이 안에 갇힐 수도 있다.
검을 꾹 쥐고 암향표 신법을 전개해 길을 따라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9장 대화(1)
쿵! 쿠웅!
바로 앞에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내디뎠다면 육포와 같이 짓눌려졌을 것이다.
서늘함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휘익∼
바위를 타 넘어 계단으로 올라갔다.
픽!
울리는 동굴에 횃불이 떨어졌다.
잠시 그것에 정신이 팔린 사이, 바로 뒤에서 바위가 떨어졌다.
쿵!
“아!”
빨리 나가야 한다.
그런데 잠시의 멈춤 때문인지 순식간에 앞이 막혔다.
어느새 떨어진 것인지 다섯 발자국 정도 앞에 바위가 떨어져 길을 막았다.
쿠웅!
마지막 한 번의 큰 울림을 끝으로 진동이 가라앉았다.
“갇혀 버린 건가?”
조금만 더 가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을 터인데 잘못해서 갇혀 버렸다.
“뚫고 지나가야 되겠지?”
안에서 얻은 검.
이렇게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밝은 자색의 검광을 내뿜고 있었다.
“자색, 자하검(紫霞劍)이라 부르자.”
딱 알맞아 보였다.
자하검을 앞으로 겨누며 심호흡을 했다.
매화검로 이 초 매화부석.
초식의 명대로 바위를 깎듯 부숴 나간다.
파파팍! 쾅!
‘엄청나게 잘 드네.’
청운검보다 조금 더 잘 드는 검이었다.
청운검도 보통의 검들보다는 무척이나 잘 드는 검인데, 이 정도면 보검, 명검에 가까울 정도였다.
하지만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앞을 가로막았던 바위가 사라지니, 또다시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빨리!”
자하검을 휙 한 번 털고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앞에 묵색의 철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화검로 구 초 매화정개.
콰아앙! 파앙∼
철판을 부숴 버리고 위로 솟구쳤다.
그러자 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무너져 버리고 잿더미가 된 철검파가 보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여러 사람들이 보였다.
우가장의 철검파 분타 공격 때에 보았던 똑같은 복장의 관인들과 여러 가지 복색의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옷보다는 그 기운이 무척이나 눈에 띄는 무인들이 있었다.
수많은 무인들 중에서 그들의 주위엔 보통의 무인들로선 다가가기 힘들어하는, 그런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 녹색과 검은색이 섞인 색깔의 옷을 걸친 네 명의 무인 중, 한 노인과 눈이 마주쳤다.
깊은 눈과 어두운 기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앞으로 일보 나섰다.
터덕!
땅에 착지하자 나에게 검을 겨누는 무인들.
그리고 그들의 중간에서 관인이 앞으로 나섰다.
“누구지? 그리고 그 아래는 뭐냐?”
들고 있던 자하검을 일단 청강검의 검집에 넣었다.
장포 자락을 위로 올려 매화 무늬를 보여 주며 말했다.
“화산파요. 그리고 저 아래는 우연히 발견한 공간이오.”
“화산파? 그렇다면…….”
“여기 있었던 건가? 왠지 오랜만이군.”
사이에서 누군가가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금정일? 그리고 화산파?”
금정일, 만청풍 사형, 한 여자와 한 노인.
여자는 왠지 모르게 어디선가 본 것 같았고, 노인은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잠시 후에 알 수 있었다.
육지검사들과 육지권사들의 훈련을 맡고 있는 장로. 그리고 만청풍 사형의 사부인, 옛날에는 매화광 무청편이라 불렸고, 지금은 청도라는 도호를 얻은 장로님.
포권을 취하자, 청도 장로님께서 손을 내저었다.
“우가장에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곳에 있었던 건가? 아무튼, 일단 안으로 들어오거라.”
포권을 취하고 청도 장로님의 옆으로 향했다.
“자, 그럼 안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아무도 말리지 않으니.”
금정일이 짝짝 박수를 치며 말하자 몇몇 무인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안은 막혀 있소. 나도 무너졌기에 바깥으로 나온 것이오.”
“그러기엔 너무 오랫동안 안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바깥으로 나온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아오.”
커다란 덩치에 붕대를 손에 감아 놓은 한 무인이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말했다.
‘저 무인들.’
내가 나오면서 눈여겨보았던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이었다.
그 강인함이 마치 태산과도 같이 느껴졌던 무인들.
“황보세가의 사람들이군.”
옆에서 만청풍 사형이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이 황보세가?’
황보세가, 호한(好漢)이 무척이나 많던 산동 지방에 생겨난 한 무학세가.
대체로 체구가 크고, 신력을 타고난다고 하는 오대세가 중의 한 세가이다.
그 대부분이 권법을 배운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곳에 온 황보세가의 사람들 모두가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노부는 화산파 도문의 장로인 청도라고 하네만, 자네들은 누구인가?”
현재 이곳에 있는 화산파 사람들 중 가장 높은 배분의 청도 장로님이 나섰다.
그러자 나섰던 황보세가의 무인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청도 장로님이셨군요. 그 명성이 세간에 자자한데,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황보세가의 후기지수인 황보준(皇甫俊)이라고 합니다.”
“황보준이라…… 황보세가의 십팔권사(十八拳士) 중 으뜸이라고 하는 진산철권(鎭山鐵拳) 황보준인가?”
“허명일 뿐입니다.”
“아니네, 지금 보니 명불허전인 것 같네.”
훈훈한 말이 오가는 가운데 금정일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나는 호북의 금가장의 장자이자 화산파 선검수인 금정일이라고 하오.”
“호북 금가장?”
금정일의 신분을 듣고 놀랐는지 황보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렇소. 그런데 이렇게 덕담만 오고 가다가는 진전이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나선 것이오.”
“아, 그렇군요. 고맙소.”
“별말씀을.”
“다시 묻겠소. 오랫동안 들어가고 나온 사람들을 보지 못했는데 어째서 무너져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오?”
“말 그대로요. 안에 들어가서 살피다 잘못 건드려서 무너져 바깥으로 나온 것이오.”
“그렇다면 그 검은 무엇이오?”
“이것 말이오?”
황보준이 손가락질한 검.
안에서 얻은 자하검이었다.
“안에서 얻은 검이오.”
“그렇다면 그것은 화산파의 것이 아닌 것이오?”
“그건…….”
설명하기 곤란했다.
회의 인물이 나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곤란해하는 내 표정을 본 것인지 청도 장로님이 앞으로 나섰다.
“그것은 일단 화산파 내에서 일차적으로 얘기를 듣고 난 후에 얘기해 드리겠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에서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시오.”
“곤란하오.”
구파가 감시당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에게 알려 주기라도 한다면, 구파가 아수라장이 될 위험이 있다.
게다가 천 년 동안이나 정도의 수좌로 군림해 온 구파가 그렇다는 것을 안다면, 음지 속에서 구파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많은 세가나 문파들이 움직일 위험이 있었다.
이것은 일단 청도 장로님에게 얘기를 해야 할 내용이었다.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 먼저 얘기를 할 내용이 아니라.
“이자는 화산파의 선검수 청우, 화산파의 사람이니 일단 먼저 화산파가 얘기를 들어야 하겠소.”
만청풍 사형이 나를 감싸 주었다.
그러자 황보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화산파에서 안에 있던 무언가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오?”
“이곳에서 공표하자면, 절대 아니오. 우리는 청우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소.”
“처음의 반응으로 보자면 그렇지만…… 그렇다면 저자가 무언가 관련이 있는 것 아니오?”
“무슨 관련 말이오?”
“그건…….”
말하기 곤란한 것인지 황보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그 공작이라는 것인가?’
안에서 흑풍이 말했었다.
공작에 실패했었다고.
그리고 그 흔적을 따라 황보세가가 이곳으로 온 것이니 그것과 무언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니오. 나도 그것과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오.”
나의 추측이 맞았던지 황보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단 나중에 말씀드리겠소. 일단 어째서 모두가 이곳에 모여 있던 것인지 얘기해 주십시오.”
청도 장로님께 묻자, 청도 장로님이 말씀을 해 주셨다.
“갑작스런 철검파의 방화, 그리고 또한 그동안 어떻게 철검파가 급속도로 성장을 했는지 궁금해하던 늑대들이 모인 것이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남을 따라 하려는 추잡한 것들.”
청도 장로님의 독설에 모여 있는 무인들이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