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화산천검 3권(19화)
7장 철검파(3)
딱!
남자가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부딪쳐 소리를 내자 검은 인영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속에서, 건물 속에서, 각양각색의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인영들.
모두 하나같이 처음 만난 복면인과 같은 차림이었다.
그들이 모두 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눈을 초승달과 같이 만들었다.
웃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생각났다.
저들, 몇 년 전의 합동훈련 때 금강쇄망과 벽력탄으로 나를 혼수상태로 만들었던 마살문의 정예들이었다.
그때도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지금도 가리고 있지만 알 수 있었다.
“네놈들!”
그때의 복수는 아직 하지 않았다.
텅!
앞으로 달려 나가자 복면인들이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투망을 꺼내었다.
그때와 같은 금강쇄망으로 보였다.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
덮쳐 오는 금강쇄망들.
진각을 밟으며 매화표천을 전개해 위로 솟구친 후 매화난영을 전개했다.
매화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날아오는 금강쇄망들과 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을 만들었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먼지가 날아왔다.
그 사이로 눈을 번뜩이며 금강쇄망이 부서졌는지 아니면 파괴되었는지 살폈다.
다행히 파괴되지 않은 것들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나머지는 완벽히 파괴되었다.
“……!”
그 위력에 놀란 것인지 복면인들이 당황한 것이 느껴졌다.
구멍 뚫린 금강쇄망의 구멍 사이로 몸을 빼내며 한 복면인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하였는지 던져 낸 암기에 경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땅!
수도로 쳐 내며 매화천락을 전개했다.
촤촤촤촹!
공중을 뒤덮으며 떨어져 내리는 매화.
매화에 휩쓸린 복면인에게 혈선이 생기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발로 차 넘어뜨리며 자세를 잡았다.
복면인들이 한데 모여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동안 강해졌군. 금강쇄망을 찢은 것도 아니고 가루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경력이라니.”
“알았으면 덤벼라.”
검을 겨누자 복면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어디 승부를 내어 보자꾸나, 화산파의 꼬맹이.”
8장 구파의 정보, 의문의 여자(1)
“덤벼라.”
복면인들이 각자 품속에 손을 넣고 암기들을 꺼내었다.
한 사람당 암기가 각자 다섯 개 이상씩.
‘조금 힘들겠군.’
텅!
앞으로 달려 나가자 복면인들이 순차적으로 암기를 날려 댔다.
매화검로 오 초 매화요요.
부드럽게 움직여 방어하는 유(柔)한 매화의 막.
태태탱! 탱탱!
날아오는 암기들을 방어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픽! 피핏!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얇은 세침은 무시했다.
세침과는 다르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암기들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침은 근육에 깊숙이 박히지 않는 한 별 타격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칫.”
가운데의 복면인이 암기가 다 떨어진 듯 뒤로 일보 물러났다.
‘기회!’
순차적으로 암기를 던지느라 조금씩밖에 전진하지 못했지만 한 명이 빠지면 다르다.
암기가 다 떨어진 복면인이 뒤로 물러날 때에 맞춰 앞으로 전진하고, 그 사이 생긴 틈을 이용해 계속해서 빠져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매화작보를 통해 신기(神技)와도 같은 몸놀림을 선보였다.
신법 일절, 무진 사부에게 사사받은 보법이다.
당연히 이 정도는 되어야 마땅하다.
수월히 빠져나온 후, 막 암기를 던지려고 하는 복면인의 손을 잡고 맥을 눌렀다.
“크윽!”
손을 놓고 장천수를 전개했다.
퍼퍽! 부웅∼
강력한 경력에 하늘 높이 날아오른 복면인.
몸을 빙글 돌리며 다른 한 복면인의 비수를 막았다.
“그때완 다르다!”
왠지 나를 얕보고 있는 것 같아서 소리치며 비수를 튕겨 냈다.
“윽!”
촤악!
수평으로 베자, 복면인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틈으로 세 명의 복면인이 나를 노리고 달려왔다.
팽그르르∼
몸을 회전시키며 매화조수를 펼쳤다.
파파파팡!
피어나는 매화꽃이 복면인들의 단도를 튕겨 내며 휘몰아쳤다.
매화검로 십일 초 매화표천.
용이 승천하듯 휘몰아치며 날아가는 매화.
휩쓸린 복면인들의 몸에 얕은 혈선들이 생겨났다.
피슛!
“하앗!”
화아악∼!
매화검로 사 초 매화연혈.
피를 머금고 붉게 피어나는 매화꽃들.
사지에 피어나는 피를 머금은 매화꽃이 복면인들을 집어삼켰다.
턱!
땅으로 착지하며 몸을 튕겨 앞으로 달렸다.
남은 것은 다섯 명.
하지만 한 명은 가슴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싸울 수 있는 상태의 적은 네 명.
순식간에 다섯 명의 적을 쓰러뜨린 것이다.
“큭…… 얕봤군. 그때와는 조금밖에 달라진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그걸로 끝내자. 어차피 이곳을 파괴시키라 하지 않았었나?”
“그래야겠군. 하지만 피할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개발한 것이 있잖나.”
“하지만 그건 각자 하나밖에 없지 않나? 더 이상은 지급받지 못할 텐데.”
“그래서 이곳에서 죽고 싶다면 나는 말리지 않겠다.”
“시건방진 녀석.”
서로 대화를 주고받더니 다섯 복면인이 품속에서 폭탄을 꺼냈다.
‘벽력탄? 아니, 조금 다르다.’
가운데 부분에 작은 홈이 있고, 다들 심지 부분을 중심으로 폭탄을 잡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큭큭. 아깝기는 하지만 악연은 이곳에서 끝을 내자꾸나. 꼬마야, 그만 죽어라!”
드르륵! 피핑!
녀석들이 폭탄의 윗부분을 조금 돌리자 가운데의 홈을 중심으로 폭탄이 조금 갈라지더니 순식간에 나의 앞으로 날아왔다.
‘무슨!’
기존의 폭탄과는 다른 사용법.
게다가 이런 방법이라면 피하기도 힘들다.
‘맞받아친다!’
매화번복을 전개했다.
땅을 뒤엎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일 검.
이번엔 공중에서의 전개다.
비단폭처럼 퍼져 나가는 기의 파동.
날아오는 다섯 개의 폭탄과 부딪치고, 폭탄이 폭발하였다.
쿠콰콰콰쾅!
사막에서나 볼 수 있다던 용권풍이 이곳에서 현신한 듯 커다란 회오리 먼지가 생겨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앞이 보일 정도로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녀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헉!”
놀라는 복면인들.
그럴 만도 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듯 뜨거워 죽을 것만 같고, 시리도록 차가웠던 청강검의 검신조차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거기서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서로 웅성대더니, 한 녀석이 앞으로 나오며 나에게 남아 있던 세침을 던졌다.
피슉∼ 푸욱!
어깨에 세침이 박혀 들어가 피가 조금 새어 나왔는데도 아무런 고통이 없었다.
그저 딱딱한 무언가에 작은 것이 들어가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살아 있기는 하지만 움직이지는 못하는 것 같군.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나의 상태를 확인하곤 녀석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뒤로 당길 때.
번쩍!
눈을 크게 뜨며 자색의 시계 사이에서 염력을 펼쳤다.
살아 움직이듯 혼자 검병에서 빠져나와 매화초개를 전개하는 중강검.
푸카카칵!
방심한 복면인들은 순식간에 가슴에서 피를 뿜어내며 모두 쓰러졌다.
웅웅웅!
중강검이 커다란 검명을 퍼뜨렸다.
턱!
나의 발목을 움켜잡으며 한 복면인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게 무……슨…….”
푹!
하지만 이내 고개를 떨구었고, 발목에 느껴지던 악력도 사라졌다.
철컹!
날아다니는 중강검을 환집하고, 다시 염력으로 손에 있던 청운검을 환집했다.
“크으…….”
온몸이 불덩이였다.
기로 몸을 보호하여 화상을 입지 않긴 했지만, 엄청난 충격에 몸이 잘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겠지…….’
매화번복으로 맞부딪쳤다고는 하나 폭탄이다.
파괴시키면 폭발하는 것은 당연지사.
차라리 매화종지나 매화초개를 전개했다면 모를까 매화번복을 전개한 것이 잘못이었다.
게다가 폭탄의 위력 또한 벽력탄보다 두 배는 컸다.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했었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저번에도 폭탄, 이번에도 폭탄에 쓰러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턱!
“윽…….”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것뿐이건만 온몸이 찌릿찌릿 저렸다.
마치 몸이 움직이기를 거부하려는 듯 의지를 벗어나고 있었다.
‘안…… 돼…….’
쓰러지려는 몸을 간신히 무릎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하아∼”
숨을 내쉬며 자하심법을 운기했다.
‘공신흡력 자천조화 합천인지…….’
그런데 이렇게 자하심법을 운기하다 보니까 하나가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나는 자하심법은 그저 운기를 할 때만 사용할 뿐, 그 극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공신흡력. 이것은 기를 끌어모으는 것이니 이미 깨우쳤다.’
게다가 그 끌어모으는 양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자천조화. 이것은 무엇이지?’
자색 하늘의 조화.
이것은 무엇인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지금도 느꼈던 자색의 시야와 자색의 매화로 막연히 무언가가 떠오를 것 같기만 한 것이다.
‘합천인지. 이것은 거의 모든 무인들이 추구하는 것이지.’
삼재(三才). 천, 인, 지.
하늘과 땅을 나로 끌어들여 하나를 이루는 것.
그것이 천인지의 합이다.
‘이것도 무리다. 천인지를 합할 정도라면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을 넘볼 정도겠지.’
자연을 나라는 존재로 하나로 합친다.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사람으로서의 경계를 넘어선, 신선(神仙)이나 그 위 단계의 존재다.
‘결국 무리라는 소린가.’
상념과 더불어 운기를 끝내자 몸이 한결 가뿐해졌다.
일단 몸을 움직이는 것에 별 지장이 없었다.
쓰라린 피부와 수월하지 않은 진기유통을 빼고는 말이다.
“합!”
기합을 넣으며 복면인들의 시체를 뛰어넘었다.
“다 타 버렸군.”
철검파는 이미 소각되었다.
모든 것이 다 재로 변해 버렸다.
“이…… 무…….”
“이게 철…… 아니…….”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피해야겠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무언가가 나의 눈길을 잡았다.
철검파의 후문의 옆 벽면.
살짝 어두운 가운데 조금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지?’
가까이 다가가 그을린 돌들을 치우자 주변과는 달리 타지 않은 묵색의 철이 보였다.
‘비밀 통로?’
작은 홈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