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천검-67화 (67/175)

# 67

화산천검 3권(17화)

7장 철검파(1)

“……그래서, 살아 있는 사람은 혈호와 초풍도객뿐이라는 얘기군.”

“그래, 그 둘뿐이야. 식객과 낭인 둘뿐. 우가장의 인물은 한 명도 없어.”

“네 아버지, 장주와 진짜 우 총관은?”

“인피면구를 만들었잖아? 그거 진짜 그 인물의 피부로 만드는 거야. 죽었겠지. 일 년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야.”

우승빈은 너무나 담담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식구들이 모두 죽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아무런 안타까움도 없는 듯한 말투였다.

“너…….”

“아아, 잔소리는 하지 말아 줘. 이미 일 년 전부터 예상했던 일인지라 감정은 털어 낸 지 오래야. 다른 사람들은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침울해하면 안 되는 일이잖아? 그 사람들에게도 미안한 일이라고.”

“그래.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그 가짜 장주로 바뀐 것이 네 감으로는 일 년 전이라면서? 그렇다면 그동안의 발작은 대체 어찌 된 것일까?”

“소혼술이었던가? 그 사술(邪術)을 쓴 뒤의 증상이나 비정상적인 힘 같은 것이 발작이 일어났을 때랑 비슷하더라고. 아마도 그 소혼술이라는 사술의 부작용이겠지. 사술이라는 것이 그래서 사술인 거잖아?”

“그렇군.”

“그건 그렇고, 네 걱정이나 하라고. 철검파랑 싸우는 이유가 사부의 복수라며? 그런데 내 걱정을 한다는 건 오지랖이 넓거나 아니면 바보라는 뜻이지.”

“알았다.”

“알았으면 이제 가 보라고. 귀찮으니까.”

“아직 물어볼 것이 하나 더 있어.”

“대답해 줄 테니까 빨리 물어.”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되지?”

우가장은 사라졌다.

우가장의 심처에서 흑영, 가짜 우정군, 가짜 우문혁과 싸운 지 일주일.

내가 장주의 거처에서 쓰러지고 나서 일어난 것이 삼 일이나 지난 후였다.

내가 누워 있는 삼 일 동안은 주 의원께서 먼저 나의 상처들을 치료해 주셨고, 사 일 동안 단전에 있는 고를 없애는 데 할애하느라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리고 우가장은 세간에 그저 비밀스럽게 사라진 장원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우승빈, 혈호, 주 의원과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아한 점은, 화산파가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화검수 출신의 속가제자가 만든 커다란 장원이었는데 그저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간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잠깐, 생각해 보니 매화검수 출신의 속가제자는 진짜 우가장의 장주잖아. 그렇다면 그 가짜 장주의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어떻게 된 것이지?’

의문점.

크게 파문이 일어 마음속을 잠식한다.

‘협박에 넘어갔을 리는 없어. 대 화산파의 매화검수였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비밀집단.

만일 그들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알고 있는 것이라면 생각보다 더욱더 위험해진다.

‘맞아, 생각해 보니 옛날에 합동훈련 때에도 무슨 일인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파훼식을 알고 있었어.’

이것은 옛날부터 알 수 있었던 일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더욱더 위험해진다.

‘나는 상관없겠지만, 만약 화산파와 싸운다면 화산파의 진짜 고수들을 빼고는 모두 당할 위험도 크다.’

심각하다.

‘일단 이 얘기는 나중에 비매각을 통해 전서를 보내고, 다시 우가장의 일으로.’

화산파가 어째서 우가장을 신경 쓰지 않았냐?

‘철검파와의 싸움에 신경을 쓰느라 그런 것이겠지.’

이미 우가장이 하나의 분타를 없앴고, 그 후로 화산파가 속가제자들을 이용해 철검파의 분타를 모두 괴멸시켰다.

‘남은 것은 하나지.’

철검파에 직접 쳐들어가는 것뿐이다.

“이봐, 내 말 들을 거야? 말 거야?”

잡념이 많았나 보다.

우승빈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말해.”

“듣는 태도가 되어야 말할 기분이 나는 거라는 것은 잘 알 텐데? 뭐, 고귀한 선검수이신데 나한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으시겠지요.”

검병에 손을 올려놓자 우승빈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빠르게 내저었다.

“미안, 미안. 장난이라고. 그 손 빨리 치워. 그래, 됐어. 자, 그럼 듣는 사람도 태도가 됐고 말하는 사람도 말할 기분이 나니 말해 주지. 난 이 이후로 너와는 별개로 행동할 생각이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화산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인데.”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네 목적은 사부를 친 철검파의 그 뒤잖아? 회라고 하는 그 비밀집단?”

고개를 끄덕이자 우승빈이 살짝 웃었다.

“거기를 내가 너와는 별개로 캐 보겠다는 얘기야. 알았어?”

“너도 복수가 목적인 거냐?”

“그것도 있기는 하지만, 호기심도 있어서 말이야.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기에 내 집을 뭉개 버렸나 호기심이 생겼어. 이 호기심을 풀기 전에는 죽지도 못할 지경이야.”

장난스럽게 얘기하고 있지만 웃는 표정에 살기가 묻어났다.

울분과 분노를 가슴속 깊이 묻어 둔 남자의 표정이었다.

“알았다.”

“그건 그렇고, 말이나 편하게 하라고. 고귀하신 선검수라고는 하지만 나도 매일 그런 말투를 들으면 기분 나쁘다고.”

“……알았어, 우승빈.”

“그래, 그거야.”

밝게 웃는 우승빈과 그의 말을 뒤로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이곳은 주가의원.

나는 오늘로서 치료가 끝났고, 우승빈은 아직 치료를 해야 하기에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이다.

밖으로 나오자 주 의원이 나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얘기는 끝났소?”

“예, 끝났습니다.”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소. 화산파의 귀빈(貴賓)이신데 말이오.”

“아닙니다, 저를 치료해 주신 분이신데 어찌…….”

“그렇다면야 뭐…… 아무튼,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예정이오?”

“비매각으로 갈 예정입니다. 다음 임무를 받아야지요. 아마도 철검파를 치는 일일 것 같습니다.”

“쯧쯧. 승빈이와 우가장의 일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지…… 평화로운 시대는 이제 다 간 것 같소.”

주 의원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혈호라는 낭인과 초풍도객이라는 무인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소. 특히나 초풍도객이라는, 그 나이 들어 보이는 무인은 더 침울하시던데.”

“그렇지요.”

혈호와 초풍도객.

혈호와 초풍도객 두 무인 모두 고에 중독된 상태로 격렬한 싸움을 한 관계로 다행히 고를 제거할 수는 있었지만 무인의 근원인 내공을 잃어버렸다.

두 무인 모두 처음엔 무척이나 허탈하고 분노했지만 나중에는 체념을 했는지 어두운 표정으로 주가의원을 나섰다.

“자네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비네.”

“그래야지요.”

씁쓸하게 웃으며 주가의원을 벗어났다.

목표는 비매각.

새로 들어온 임무를 하달받고, 장부에 관한 내용이 들어왔나 확인하고, 이십사수매화검법에 관한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서이다.

약 한 시진 정도를 암향표 신법으로 달려 비매각 분타에 도착했다.

시내에 세워져 있어 커다란 전각들도 많다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건물. 그리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장식들.

정문에 飛梅閣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탁자와 그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였다.

지학(志學)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말투의 아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

“선검수 청우에게 들어온 임무는 없소?”

“선검수 청우? 본인이오?”

“그렇소.”

“본인이 맞는지 내가 어떻게 아오?”

“비매각에는 각 화산파 제자들의 얼굴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니오?”

말하며 장포의 소맷자락을 걷어 올려 매화 무늬를 보여 주었다.

아이가 그것을 보고 잠시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뒤지더니, 나와서 나의 얼굴과 종이를 대조해 보았다.

“맞군요. 죄송합니다, 요즘 시기가 시기인지라 의심부터 했습니다.”

“별로 신경은 쓰지 않소.”

“선검수이신데 편하게 얘기하세요. 전 속가제자인데, 육지검사였다가 비매각에 뽑혀서 이곳에 오게 된 우은강(禹垠降)이라고 해요.”

“우은강? 혹시 우가장의 사람이 아니오?”

“우가장이요? 아아, 이 옆에서 갑작스레 사라진 그 장원이요? 유감스럽게도 아니에요.”

“그렇소?”

“예, 그런데 말을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아니오, 이게 편하니 신경 쓰지 마시오.”

“네. 그건 그렇고, 선검수 청우에게 온 임무는 이것밖에 없어요.”

“아, 그리고 우가장에서 장부가 오지 않았었소?”

“예, 왔었어요.”

“그건 어떻게 되었소?”

“아직 본산에서 뭐라 지령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예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알았소. 그리고 화산파 본산에 전서를 보내야 되는데, 먹과 종이가 있소?”

“아, 잠시만요.”

우은강이 안쪽에 다시 들어가더니 내가 말했던 물건들을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용은 이번 우가장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장부에 대해 빨리 조사해 달라는 내용과 이십사수매화검법에 관한 얘기를 썼다.

“이걸 본산에 보내 주시오, 되도록 빨리.”

“중요한 내용인가 보군요. 알겠습니다.”

임무에 대한 종이를 품속에 잘 갈무리하고 인사한 후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길목의 어두운 골목에서 종이를 펼쳤다.

내용은 철검파에 대한 마지막 공격이 있을 예정이니 조속히 서안(西安)으로 오라는 지시였다.

‘서안이라면…….’

섬서성의 수도(首都)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현재 죽림현사 모청수의 학관(學官)인 죽림현학관(竹林賢學官)으로 가는 길목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그곳에 철검파가 있었던 건가? 화산과 그렇게나 가까운데?’

화산과 그렇게나 가까운 곳에서 구파인 화산파를 도발하였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대담한 것이지, 멍청한 것인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나는 가서 복수를 하면 된다.’

사부를 쓰러뜨린 황신.

그와 싸울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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