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화산천검 3권(16화)
6장 우가장의 심처(4)
타다닥!
오른쪽 옆구리 주변의 혈을 점하여 지혈을 했다. 그러자 조금은 편안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구나. 승빈아, 네가 편하게 해 주거라.”
“시끄러.”
“지금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것이냐?”
“일 년 전부터 쓰러져서 비실비실대면서 아버지 행세도 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군. 그날 이후로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내가 이렇게 마른 것이, 이렇게 쇠약해진 것이 보기가 싫은 것이냐?”
“그런 문제가 아니지, 당신들이 더 잘 알 거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승빈아. 나는 그저 살이 빠지고 쇠약해졌을 뿐, 네 아버지가 맞다.”
“가족을 버리고, 친구를 버리고, 식솔들을 저버린 당신들은 이미 내 가족이 아니야. 그저 당신들을 이렇게 만든 뒤의 회라는 조직에 대해 알려 줄 정보원일 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마. 저 아이를 편안하게 해 주거라.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무례를 용서해 주고, 새로운 우가장에서 후계자로 살 수 있게 해 주마.”
“새로운 우가장이고 뭐고, 난 지금까지가 좋았어. 당신들이 이렇게 만들기 전까지의 우가장이 말이야!”
“안타깝구나, 아들이 되어 가지고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주다니. 그렇다면 죽어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거라!”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로 우승빈에게 달려오는 우정군.
내가 보았을 때는 썩어 가던 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절정의 고수였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느껴지는 것이, 미약한 기라는 것이다.
캉!
“고용주를 건드리면 안 되지, 늙은이.”
혈호가 우정군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네 고용주는 나다, 혈호.”
“미친놈을 고용주로 두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말이야.”
채앵!
우정군의 검을 혈호의 호조가 튕겨 냈다.
“네 이놈!”
우정군의 호통에 뒤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것들 같으니. 그렇게 시간을 줬는데도 아직도 끝을 내지 못했나?”
“누구냐!”
건물을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
하지만 어디에서 들리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후웅∼
눈앞을 가로지르는 검은색의 흑풍.
순식간에 우문혁의 앞에 다다르며 용권풍(龍卷風)으로 변했다.
“크아악!”
휘몰아치는 폭풍.
검은 흑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쓸모없는 부하는 죽어 마땅하지. 능력이 없으면 도태된다.”
치이익∼
한 줌 독물로 녹아드는 우문혁.
‘음?’
그곳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얼굴 부분이 조금 미묘했다.
피부가 녹아들고 뼈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기는 하지만 또다시 피부가 나타나고 순식간에 뼈가 드러났다.
‘이상해.’
“네 녀석, 뭐하는 짓이냐!”
“능력이 없는 녀석은 도태되어 죽는 것이 회의 율법(律法)이다. 나는 두 시진이라는 시간을 줬어.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끝을 내지 못했으니 죽어 마땅하지. 안 그래?”
“크…….”
“네 녀석도 새로운 우가장을 보고 싶으면 어서 끝을 내. 회에서 이곳에 들인 노력이 얼만데, 저 세 마리 쥐새끼들도 이기지 못하는 거냐?”
“네 녀석은 꼭 내가 죽이마.”
“미안하지만 네 녀석 정도가 죽일 수 있을 만한 지위가 아니야, 나는.”
흑풍과 우정군의 대화.
남자가 우정군과 우문혁의 뒤에 있던 배후의 인물이라는 것과 두 사람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놈, 주가의원에서 보았던, 대도문의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던 녀석이로군.”
우승빈의 말에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알아보는 건가? 그 당시에는 인피면구를 썼었는데 잘도 알아보는군.”
“음? 주가의원에서의 그 남자?”
“그래, 그 녀석이다. 저 말투와 느낌. 찍었는데 맞췄나 보군.”
“찍어서 맞췄다고? 재밌는 녀석이로군.”
“네 녀석에게 그런 칭찬을 받기 싫은데 말이야.”
“녀석이라니, 나는 흑영(黑影)이다.”
‘흑영? ……흑영대!’
“네놈, 흑영대 소속이냐?”
“너도 감이 좋군. 하지만 틀렸어. 흑영대 소속이 아니라 흑영대가 나다.”
“무슨 소리지?”
“잘 생각해 봐. 잡담은 끝이니까.”
흑영이라고 이름을 밝힌 남자가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부딪쳐 딱! 하는 소리를 내자 우정군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혈호가 소리치며 우정군의 앞을 또다시 가로막으려 했다.
“귀찮구나.”
우정군이 나를 노렸던 검을 오른쪽으로 돌리며 초식을 전개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이십사수매화검법 구 초 매화구변.
아홉 번 변화하는 매화.
‘맞아, 우가장의 장주는 매화검수 출신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위험하다.
매화검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검수.
우문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한 자다.
“큭!”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매화검로보다 윗 단계의 무공이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가장 강력한 무공이자 가장 잘 알려진 무공.
고에 점점 기를 빼앗기고, 이미 살수들과 싸웠던 혈호로서는 싸우는 것이 무리다.
우승빈은 아버지이기에 자신은 모르더라도 조금의 흔들림이 있을 것이다.
나서야 하는 것은 나다.
텅! 큐우웅∼
청운검을 환집한 후 앞으로 내달리며 매화초개를 전개했다.
“어딜!”
콰앙!
우정군의 검과 나의 청운검이 맞부딪치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저 남자가 나서기 전에 제압해야 한다.’
우승빈과 나 둘 모두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혈호는 싸우기엔 무리.
‘속전속결!’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우기로 마음먹었다.
매화검로 이 초 매화부석.
따다다당!
우정군의 검을 튕겨 내며 앞으로 전진했다.
“죽으면 거기서 끝이야. 우가장은 버릴 것이니 그렇게 알아.”
흑영의 말에 우정군이 얼굴을 찌푸리며 검을 내리쳤다.
캉!
강력한 경력이 담겨 있지만 동작이 크다.
드러나는 빈틈으로 주먹을 내찔렀다.
퍽!
입술 사이로 피를 내뿜으며 뒤로 밀리는 우정군.
‘놓치지 않는다.’
팔을 접으며 팔꿈치로 우정군의 명문혈을 찍었다.
쿠웅!
“커어억!”
이어서 몸을 회전하며 신류퇴 회추(廻錐).
콰직! 콰앙!
갈비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리고 우정군의 몸이 옆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후우∼”
치명상이다.
만일 저 상태에서 일어난다 해도 무공을 펼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네놈뿐이다, 흑영.”
“흐음∼ 상대를 얕봐선 곤란하지.”
“뭐?”
비틀비틀 일어나는 우정군.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이미 앞섶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무슨…….”
아직도 일어나다니.
“크르르…….”
“아아, 드디어 쓴 건가? 그래,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간단한 소혼술(燒魂術)일 뿐이니 걱정할 것 없어.”
“소혼술?”
“영혼을 불사른다는 그 이름대로 혈에 집약되어 있는 기를 불태워 힘을 얻는 기공(奇功)이지. 지금까지와는 다를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다.”
“크아아!”
콰앙! 쾅! 콰앙!
“큭…….”
마치 불타오르듯 우정군의 어깨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혼술이라는 기공.
기를 불태워 힘을 얻는다 했는데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힘이다.
양손으로 검을 붙잡고 막아 내야 할 정도의 힘이었다.
‘하지만 너무 직선적이야.’
몸을 비틀며 살짝 다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우정군이 나의 다리에 걸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우당탕!
“화(化)인가? 대단하군, 그 정도의 응용이 가능하다니.”
화는 상대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기술.
이렇게 직선적이고 이성을 잃은 상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술이다.
일어서려는 우정군의 혈을 검병으로 눌러 찍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걱!
“큭!”
왼쪽 허벅지에 검상을 입어 버렸다.
“본능적으로 이혈공도 쓰는 건가? 의외로 소질이 있군.”
‘의외?’
매화검수 출신이다.
만일 어떤 무공을 배웠다면 그것을 수준급 이상으로 펼쳐 낼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 있는 자라는 소리다.
그런데 의외라는 말을 한다?
우문혁이 화골산에 녹아들었을 때의 이상한 점.
그리고 지금 흑영의 말.
감이 오는 것이 있었다.
우당탕!
또다시 화로 우정군을 넘어뜨리고, 다리로 등을 눌러서 제압하여 머리채를 붙잡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런!”
볼을 붙잡고 옆으로 찢듯이 손을 움직였다.
찌이익∼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가죽이 벗겨졌다.
‘인피면구(人皮面具)!’
우정군이 아니었다.
드러난 얼굴은 피부가 뼈와 붙어 마치 말라 죽어 버린 듯한 그런 남자의 얼굴이었다.
“가짜였구나!”
중강검을 뽑아 청운검과 함께 남자의 두 팔에 찍어 건물의 바닥에 붙잡아 놓고 도망치려 하는 흑영에게 재빨리 달려들었다.
하지만 늦은 것 같았다.
흑영은 어느새 괴인이 난입해 들어왔던 지붕의 구멍으로 몸을 빼내고 있었다.
“빠져나갈 구멍을 잘못 찾았어.”
구멍의 윗부분에서 음습한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흑영의 목이 공중을 날았다.
“어?”
쿵!
흑영의 몸과 목이 건물의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건물의 지붕에서 우승빈이 내려왔다.
“우승빈?”
“아무리 생각해도 난 살수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기척을 감추는 것이 내가 봐도 수준급이야.”
자화자찬을 하며 우승빈이 흑영의 얼굴을 발로 찍었다.
뿌직!
두개골이 박살 나며 육편이 비산했다.
“쥐새끼의 대장은 이걸로 끝이군. 남은 것은 저 광인(狂人)뿐이야.”
검에 팔이 찍혀 결박당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정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광인은 계속 발버둥을 쳤다.
“자,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크아아∼”
그런데 광인이 갑자기 크게 소리치더니 얼굴을 바닥에 묻었다.
“음? 설마!”
우승빈이 재빨리 몸을 날려 광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칫, 죽었군.”
맥도 뛰지 않고 피어오르던 아지랑이도 사라졌다.
하지만 나를 노려보는 그 두 눈이 무척이나 섬뜩했다.
“미친놈은 죽어서도 미친놈인가 보군. 눈 감고 잠이나 자.”
우승빈이 광인의 눈을 감겨 주며 중얼거렸다.
“크윽…….”
“아, 혈호!”
생각해 보니 혈호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혈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고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어. 위험해.”
명문혈에 장심을 대고 기를 불어넣자 알 수 있었다.
고가 혈호의 단전을 집어삼킬 듯 커져 가며 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돌팔이 의원!”
우승빈이 반갑게 소리쳤다.
들어온 사람은 주태, 의원이었다.
“사정은…….”
“사정은 나중에 들으마. 환자가 먼저다.”
주 의원이 나를 밀치며 작은 함을 꺼냈다.
그 속에서 초풍도객을 치료했던 금침이 보였다.
주 의원이 혈호를 치료하는 것을 보자 왠지 모르게 피로가 몰려왔다.
우승빈도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 의원이 혈호를 치료하는 것을 보자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조금만 쉬자.’
어두운 휘장이 시야에 내려앉으며 정신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