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화산천검 3권(13화)
5장 첫 번째 준비(3)
대도문.
사천에 있는 오대세가 중 하나, 사천당가와 더불어 사천의 으뜸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문파이다.
강인한 힘과 중(重)한 도법으로 유명한 문파이다.
“저기 말이야, 이 녀석이 이 근방에선 유∼명한 문파의 사람이거든? 내가 이걸 말하면 어떻게 될까?”
‘곧바로 싸움으로 직행이지.’
“안…… 된다.”
“그럼 어서 말하라고요. 나도 바쁜 사람인데 이렇게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지.”
“그래도 안 된다…… 컥!”
“곤란하지, 안 그래? 지금 내가 많이 날카롭거든?”
우승빈이 목을 움켜쥐자 복면인이 혀를 내밀었다.
“곤란하다고.”
더욱 움켜쥐자 복면인이 눈을 뒤집었다.
“시시하군.”
“그럼, 시시하지.”
“……뭐라고?”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아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빨리 죽였어야지. 안 그러니까 내가 곤란해지잖아.”
맨 오른쪽에 있던 복면인이 순식간에 몸을 일으키더니 비수를 빼 들고 옆에 있는 복면인의 목을 찔렀다.
목이 찔린 복면인은 아혈이 제압되어 있기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눈이 동그랗게 뜨여지고 놀란 표정인 것이,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은 듯 보였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맘에 드는 상황으로 변하지 않는 걸까? 그런 상황이 되도록 많은 공을 들였는데 말이야…….”
“누구냐!”
소리치며 매화초개를 전개했다.
서걱!
“이런…….”
빠른 속도에 복면인이 미처 팔을 회수하지 못했다.
‘얕다.’
얕은 생채기만을 내며 끝나 버렸다.
하지만 화산에서의 마지막 날에 더욱 높은 경지에 오른 매화초개.
이글이글 상처가 난 곳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곤란해. 피하기도 힘들겠군.”
우승빈이 대도문의 사람을 놓아두고 어느새 복면인의 뒤를 점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죽는다. 대답만 해. 혀를 깨물 생각은 하지 마. 혀를 깨물기 전에 내가 먼저 아혈을 점할 거다.”
“그래 보이는군. 그래, 대답해 주지.”
“첫 번째, 넌 누구지?”
“말해 줄 수 없지. 비밀이니까.”
“대도문의 사람은 아닌 것 같군. 저들의 표정을 보니.”
쓰러진 복면인과 마찬가지로 대도문의 사람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그럼. 내가 저런 하찮은 문파의 사람이라니 착각도 정도가 있지.”
“그래, 그럼 두 번째. 우가장의 일과 관련이 있나?”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지.”
“세 번째, 살아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럼. 이래 보여도 재주가 좋아서 말이야.”
펑!
“무슨…….”
“독무(毒霧)다. 호흡을 멈춰.”
나의 말에 우승빈이 얼굴을 굳히며 대도문의 인물들에게 달려갔다.
나는 검을 빼어 들고 바람을 일으켜 독무를 날려 보내는 데 집중했다.
독무를 모두 걷어 내자, 우승빈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젠장…… 전부 죽었군.”
창백한 인상과 느껴지지 않는 생기.
모두 죽어 버렸다.
“그 남자, 뭐였지?”
‘시시해’라고 말하기 전까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우승빈조차 눈치를 채지 못한 정도.
기척을 숨기고, 기운을 갈무리하는 것이 수준급이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 독무 속에서 확연히 보였던 움직이는 검은 흑풍이었다.
‘그래, 철검파 분타에서의 그 흑풍과 닮았어.’
철검파 분타에서 만났던 흑풍과 닮았다.
우가장에서 잡았던 그 복면인들도 그 흑풍과 닮았다.
‘연관이 있다.’
협력 단체이건 같은 단체이건 무언가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큭…… 이게 무엇이더냐? 이 썩은 냄새는.”
주가의원의 바깥으로 나온 주 의원이 코를 잡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 냄새는 독이로구나. 무언가 사건이 있었던 거냐?”
“상관하지 마요. 그건 그렇고, 초풍도객은 어떻게 됐어요?”
“다행히도 성공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어. 다만…….”
“다만?”
“단전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구나.”
“그렇다면 무인으로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군요?”
“그렇지, 깨어나면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초풍도객, 초절정의 고수.
그런 자가 내공을 잃었으니 얼마나 상심이 클까?
‘만일 나라면…….’
아마 죽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게 설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아무튼, 그런데도 할 말이 있느냐?”
“아니요, 없어요. 그냥 잘 회복되기를 빌게요.”
“그래, 알았다. 그럼 가 보거라.”
우승빈이 휘휘 손을 내저으며 등을 돌렸다.
“어떻게 아셨죠? 저희가 초풍도객의 무력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이곳에서 무인들을 치료한 지 어언 십 년이 넘었소. 그 정도 눈치는 있지.”
“그런가요?”
“그렇지 않다면 무인들을 치료하다가 죽었겠지. 그만큼 살벌한 사람들이니.”
피식 웃곤 나 또한 몸을 돌렸다.
그렇게 주가의원을 뒤로한 채 우가장으로 돌아왔다.
“어? 도련님,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윽!’
생각해 보니 바깥에 나갔다 온 것은 치명적이다.
이미 깊은 곳까지 정체불명의 무리가 자리 잡은 이상, 이런 것은 곧바로 보고가 되고, 아니 이미 거의 다 알려졌을 것이다.
우리가 놓친 의문의 인물도 있고, 별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복면인들을 제압하기도 했다.
이미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이상, 알려져도 별 이상한 것이 없는 시간이다.
“아아, 저∼쪽 화영루(花榮樓) 알지?”
“예, 모르는 사람이 없죠. 씁∼”
“거기 한 번 갔다 왔어.”
“저기…….”
문지기가 다가와 우승빈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곳의 기녀들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어땠습니까?”
“훗,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야.”
“씁∼ 그렇습니까? 나중에 시간 내서 가 봐야겠군요. 그럼, 그만 들어가십시오.”
문지기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문을 열어 주었다.
우승빈의 재치로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이 별채로 돌아왔다.
“아까의 그 문지기, 대체 뭐지?”
맨 처음에 왔을 때 느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련되고 잘 다듬어진 칼과 같은 사람들이 문지기였는데?
“아아, 이곳의 애물단지야. 내가 보통 이 시간에 돌아오거든? 근데 다른 놈들은 쫑알쫑알 말이 많은 거야. 하지만 저 녀석은 저렇게 방정맞게 나랑 잘 맞춰 주거든? 그래서 문혁이 형한테 이 시간엔 꼭 저 녀석한테 문지기를 시키라고 했어.”
“…….”
“아아, 그렇게 보지 말라고. 그래서 이번엔 다행히 잘 넘어갔잖아?”
“……맞는 말이군.”
“그래, 그럼 된 거야. 남자가 되어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려고 들어?”
우승빈이 투덜거리더니 나의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자, 그럼 일에 대한 얘기를 해 보자고.”
“이 다음엔 뭘 어쩔 거지?”
“일단 초풍도객은 탈락이야. 저렇게 무인으로서는 폐인이 되었는데 끌어들일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다른 무인을 찾아야지.”
“초풍도객과 비슷한 경지의 무인은 무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
“조금 딸리는 정도지만 이곳에도 하나 있지.”
“음?”
“아직도 못 알아챈 거야? 진짜 둔해. 싸울 때는 머리가 잘만 돌아가더니, 가끔은 머리가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야, 조용히 있어 봐.”
눈을 감고 혈호의 기운을 감지하려 노력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냐, 혈호도 고가 있었어. 기의 느낌을 토대로 찾아야 돼.’
처음과 같은 내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혈호에게 느꼈던 기의 기운을 가지고 우가장에서 혈호의 기운을 느껴 보았다.
‘찾았다.’
역시나 처음에 비해서는 비교될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이쪽도 위험해지겠어. 혈호도 고가 있어. 내공이 점점 줄어든다. 하루 정도만 지나면 기척을 느끼기도 힘들어질 것 같아.”
“무슨 소리야?”
“고가 갑작스럽게 커지고 있나 보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내가 관찰한 바로는 다른 사람의 고는 전부 몇 년에 걸쳐서 천천히 커져 갔는데?”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서 가야 해.”
“잠깐만, 멈춰 봐.”
“또 왜?”
우승빈의 말에 문 앞에서 고개를 돌리며 짜증스럽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살펴봐. 이거 아무리 봐도 혈호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야.”
“그러고 보니…….”
우가장이 조용하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조금씩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치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한 적막만이 우가장에 자리 잡았다.
“이상해. 어서 나가 보자.”
우승빈의 말에 불길한 예감과 함께 별채를 나서 정원을 벗어났다.
“이런…….”
“역시나.”
우가장의 식솔들이 모두 땅에 쓰러져 헐떡이고 있었다.
내공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한 하인에게 다가가 아랫배 쪽에 장심을 대보자, 무언가를 고에게 급속도로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기(生氣)와 선천지기(先天之氣)를 빼앗기고 있다?’
“곤란하군. 이렇게 놔두다가는 모두 죽겠어. 선천지기와 생기를 빼앗기고 있어.”
“무슨…… 어떻게 막지 못해?”
“나로서는 불가능해. 약선쯤 되는 고명한 의원이 오지 않는 한은…….”
이렇게 죽어가는 우가장.
“젠장……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아아, 방법은 있어.”
우승빈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이 일을 저지른 녀석들을 족치면 되겠지. 따라와.”
저벅저벅 길을 따라 걷는 우승빈.
그 뒷모습이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분노한 듯 보였다.
6장 우가장의 심처(1)
“이봐, 거기 멈춰!”
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목소리.
돌아보자 어느새 달려왔는지 혈호가 붉은 얼굴로 소리치고 있었다.
“찾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찾아왔네. 잘됐다.”
우승빈이 무척이나 굳은 얼굴로 냉랭하게 말했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당황한 듯 떨리는 목소리는 아니지만 느낌이 그랬다.
“단전을 잘 살펴보십시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전? 대체 무슨 소리냐?”
“빨리 살펴보십시오.”
나의 말에 혈호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혈호가 눈을 뜨며 말했다.
“이건 뭐지? 고독인가?”
“그런 거라 볼 수 있죠. 무인들에게는 기를,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선천지기를 뺏어 가는 고입니다.”
“그런…….”
“아셨으면 어서 따라오십시오. 미약하지만 도움이 필요합니다.”
“알았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한 녀석들이 누군지 나도 보고 싶으니.”
혀로 입술을 축이며 혈호가 호조를 어깨에서 뽑아 손에 들었다.
“우승빈, 어디로 가는 거지?”
“아버지의 건물로 간다. 거기가 처음이자 끝이 될 거야. 늦어 봐야 이틀 후라고 했지? 하루 만에 끝이 날 것 같네.”
어두운 밤.
흉가(凶家)와도 같은, 생기가 점차 사라져 가는 길을 걸어 정원에 도착했다.
“멈춰.”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낀 듯, 혈호가 앞으로 나서며 우리를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지?”